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6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65화(65/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65화
[Dear Love]대형을 맞추어 서자, 속삭이는 듯한 나레이션이 들리더니 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이건 굳이 편곡하지 않고 음역대만 적당히 조절했다.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굳이 건드릴 필요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랩 파트도 없어서 제일 무난한 보컬 파트 하나만 차지하고 나머지는 서예현에게 밀어주었다.
난 청순이랑 거리가 멀었고 서예현은 청순이랑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대의상을 보고선 역시 욕심을 부리지 않는 자에게 복이 오는 법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파트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에 이 무대의상을 입은 내가 카메라에 덜 잡힐 게 아닌가.
걸그룹 안무를 보이그룹이 춰도 어색하지 않게끔 뜯어고친 김도빈 덕분에 그나마 그거 하나는 위안이 되었다.
만약 이게 현장 무대가 아니라 사전 녹화였으면 좀 덜 쪽팔리지 않았을까.
초심도를 생각하며 애써 표정 관리를 하는 나와는 달리, 무대를 휘젓다시피 하면서 통통 튀어 다니는 김도빈은 직업만족도 100%를 자랑하는 얼굴로 활짝 미소 짓고 있었다.
이런 반바지를 입고 이런 안무를 하고도 저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니, 팬심이란 무엇일까.
내가 존경하는 외국 래퍼인 Taker와 이 의상을 입고 30초간의 짧은 시간 동안 무대에 오를 수 있다면…… 음…….
‘그래도 저만치 웃음은 안 나올 것 같은데.’
물론 Taker 형님은 고인이시기에 내가 그와 함께 무대를 오를 수 있는 확률은 0이지만.
검지를 치켜들어 팔을 쭉 돌리다가 입술 앞으로 가져다 대는, 나름 깜찍한 포인트의 안무를 해내며 생각했다.
여러 의미로 영원 같던 1분 12초를 마치고 우리가 뒤로 물러날 순서가 되자 그제야 숨을 골랐다.
스크린이 갈라지며 스테이지 앞으로 등장한 아도라의 2절 무대가 곧바로 이어서 시작되었다.
아도라의 무대의상은 우리와 비슷했다. 복슬복슬한 아이보리, 혹은 화이트 컬러의 털 니트에 무릎 위로 올라오는 검은색 치마와 니삭스.
물론 우리와 달리 아도라 선배님들은 이 청순·발랄 의상을 잘 소화해 내고 계셨다.
아도라의 2절 파트도 끝나고 마지막 후렴구 부분이 시작되자, 아도라와 레브가 자연스럽게 섞여서 대형을 이루어 섰다.
합동 연습을 세 번밖에 하지 못했지만 두 그룹의 콜라보 무대는 제법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왈츠를 추듯 아도라 측이 레브 손을 잡고 빙그르르 도는 동작이 있었기에 손을 내밀자 내 옆에 있던 아도라 멤버가 살짝 손을 내 손바닥에 올렸다.
혹시 걸그룹 손잡았다고 초심도 깎이는 거 아닌가 걱정했지만, 다행히 깎이지는 않았다. 무대 위 안무 정도는 시스템도 봐주는 모양이었다.
그래, 이 정도도 안 봐주면 말이 안 되지.
[기억할게 우리 둘의 핑크빛 love story]마지막 파트를 부르며 옆에 있는 아도라 멤버와 손하트를 만들어 보이는 거로 무대가 마무리되었다.
후다닥 무대를 내려와 무대 모니터링을 하며, 지금이나 7년 후나 여전히 발캠인 카메라에 속으로 감탄을 내뱉어 주었다.
모니터링을 마치고 대기실로 가기 전 아도라와 인사를 나눴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안무 너무 잘 수정했던데요. 보면서 어색한 부분 하나 없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감탄했어요.”
“아, 진짜. 보이그룹이 추면 좀 웃기지 않으려나 걱정했는데 진짜 괜찮았어.”
“감사합니다!”
칭찬을 들은 김도빈이 헤실헤실 웃었다.
자연스럽고 뭐고 빨리 옷이나 갈아입고 싶어서 대기실로 향하려는 우리에게 아도라 리더가 제안했다.
“여기서 단체 사진 한번 찍고 갈까요? SNS에 올릴 용으로.”
이 의상을 SNS에 박제하시겠다고? 우리한테 너무 잔인한 처사 아니신지……?
하지만 우리는 연차 덜 찬 신인이었기에 선배님들의 제안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필 치마를 입으신 터라 아도라 멤버들이 뒤에 서고, 앞에 쪼그려 앉는 건 우리가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맨다리를 가리려는 시도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날아갔다.
겨우 대기실로 돌아와, 나는 곧 있을 <어떤 엔딩> 무대의상, 다른 멤버들은 마지막 무대인사를 위해 다시 무대의상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 나서야 참았던 숨인지 한숨인지 한탄인지 모를 것을 내쉬었다.
“엌, 이든이 형. 이것 좀 봐봐요.”
소파에 널브러져 <어떤 엔딩> 랩 파트 가사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훑고 있던 내게 류재희가 제 휴대폰 화면을 불쑥 내밀었다.
-내가뭘본거임
-1절 남돌 독기 ㄹㅈㄷ
-포보스 선정 ‘청순 컨셉인데 독기라는 말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무대’
-착한 상의에 그렇지 않은 하의와 다리와 얼굴
-청순발랄한 의상만 입혀놓으면 다 청순이냐고ㅋㅋㅋㅋㅋㅋㅋ
-저기 걔 그룹 아니냐 전에 너튜브에 떴던 유안 대타로 아도라 리허설한 남돌 걔
└여전히 행복해 보이네 멤버들은 행복했을지 모르겠다만
-ㄱㅊㄱㅊ 울오빠들 스펀지 실험맨 복장보단 반바지가 훨 나음!
“재희야, 이게 웃기니?”
“이런 친근한 이미지 쌓이면 좋잖아요.”
“우리가 스펀지 실험맨 같은 점프슈트 입고 무대 뛰었을 때부터 스펀지 보고 자란 세대들한테는 친근감 쌓았어.”
투덜거리면서도 실수나 구설수에 오를 일 없이 무사히 마친 무대에 안도하며 단체대기실에 박혀 있다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어떤 엔딩> 무대는 앞서 했던 음방들처럼 1절의 피처링 파트만 하고 내려오면 되었기에 큰 부담은 아니었다.
짧은 피처링을 마치고는 무대 뒤편에서 서라온의 무대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
‘예전에는 그렇게 솔로 활동이, 솔로 무대가 하고 싶었는데…….’
애초부터 솔로 활동을 위한 발판으로 여겼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운과 한 사람의 덕만으로 떴기 때문에 그 힘든 세월을 함께 헤쳐 왔다는 그룹 멤버들과의 유대감보다는 허망함과 무력함이 더 컸기 때문일까.
회귀 전에는 그룹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친구인 견하준을 빼고는 그냥 같이 일하는 동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나마 류재희나 내 선 안으로 들어오려 깔짝여서 슬쩍 끼워 주었던 것뿐이지.
그래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인, 그리고 내가 연예계에 발을 들인 이유인 그것에 그리 집착하고 안달했다.
뭐, 세상일이 다 그렇듯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지금은 솔로 활동이, 홀로 서는 무대가 그렇게까지 간절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더 이 녀석들을 데리고 올라가 보고 싶었다.
단순히 무한 회귀를 멈추려는 이유가 아니라, 내 노래로 정말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보고 싶어서.
회귀 전의 우리가 놓쳤던 우리의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그럼으로써 이 회귀가 아무 의미 없지 않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그러니까…….
“다들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서라온과 인사를 마치고 대기실에 돌아와 25초짜리 무대도 멋있었다고 한마디씩 뱉는 멤버들에게 씩 웃으며 말하자 류재희가 감탄을 내뱉었다.
“확실히 곧 신년은 신년이구나. 이든이 형이 이런 감성적인 연말용 인사도 하고.”
“리더가 이런 말도 못 하냐, 인마?”
아직 미성년자라 ‘오후 10시 통금’ 때문에 밤 10시에 퇴근해야 하는 류재희와 김도빈을 배웅하고 나니, 나랑 견하준, 서예현, 이렇게 셋만 남았다.
레브 대화 지분의 약 80% 정도를 차지하며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막내 라인이 없으니 조용했다.
서예현이 굳이 나한테 시비만 걸지 않는다면 우리 레브는 이렇게나 평화로웠다.
2년 만에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이런 연말 시상식의 후반부 순서를 순탄하게 차지한 알테어의 무대를 턱 괴고 대기실의 화면을 통해 심드렁하게 보다가 혀를 찼다.
저 히트곡이 저들의 발목을 잡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이래서 사람이 정직하게, 그리고 정정당당히 살아야 하는 거야.
나 봐봐라. 혼자는 못 죽는다고 발목 잡고 같이 수렁으로 끌어내리려고 탈탈 털어 봐도 먼지 하나 안 나왔잖아.
이번에도 똑같이 미래가 흘러갈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저 곡을 들고나온 걸 보아하니 저들의 끝은 내가 아는 미래와 별반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았다.
먼저 퇴근한 막내 녀석들을 부러워하며 소파에 편히 등을 기댔다.
물론 막내 라인 녀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엔딩 단체무대 서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단체 채팅방에 징징거리는 중이었다.
알테어 뒤에 몇 그룹의 무대가 더 지나가고, 드디어 이 지겨운 대기 타임을 끝날 시간이 다가왔다.
엔딩 단체 무대를 위해 전 출연진들이 무대 위에 섰다.
레브가 올해 데뷔한 터라 우리의 위치는 센터와 떨어진 곳.
문득 연차 덕분에 센터 가깝게 서 있을 수 있었던 회귀 전이 떠올랐다.
멜로디를 들으면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90년대 히트곡이 울렸다.
카메라가 비치지도 않을 텐데 코인노래방이라도 온 양 열심히 핸드마이크를 들고 열창하는 옆 아이돌 그룹을 보며, 픽 웃다가 바로 내 오른쪽에 서 있는 여섯 명을 힐긋거렸다.
‘그런데 왜 이 자식들은 굳이 여기에 서 있는 거지.’
그러다가 차연호와 눈이 마주쳤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자 옆에서 계속 시선이 느껴졌다.
이쪽을 비추던 카메라가 돌아가자마자 다시 차연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약간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차연호의 표정을 보고 눈썹을 치켰다.
내가 먼저 말을 걸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곧바로 표정을 갈무리하더니 싱긋 웃는 얼굴로 고개를 짧게 저었다.
“아니에요. 그쪽이 지금 여기 있는 게 조금 의외라서.”
“당연히 지금 출연진들 단체 인사하는 엔딩이니까 여기 있겠죠?”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며 대꾸하자 차연호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 먼저 뚫어져라 쳐다봐 놓고 왜 저래? 한 대 패고 싶게.
회귀 전에도 좋은 인연으로 엮인 게 아니고 마지막 기억도 좀 안 좋았던 터라 저놈이 뭘 하든 일단 아니꼽게 보였다.
그렇다고 굳이 지금 부딪힐 필요도 없었다. 아직 알테어가 쌓아 올린 건 도화선에 불을 붙여 날리기에는 미약한 수준이다.
내버려 두었다가 그냥 1군으로 가는 길에 방해물이 된다면 내가 아는 비밀을 수단 삼아서 치우면 되는 거다.
잠시간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나와 차연호는 각자 멤버의 부름에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연호, 후배랑 눈싸움하는 거야?”
“싸움이라니. 그런 거 아니야.”
하하 웃으며 은근히 단호하게 부정하는 차연호의 말을 귀로 흘려듣고 있자 나를 툭툭 친 견하준이 내 귀에 속삭였다.
“저번에도 그렇고, 따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지워진 시간 속의 일을 저 인간이 알 리가 있나. 설령 알고 있다고 한들, 저쪽이 먼저 선빵만 치지 않으면 내가 굳이 보복할 일도 없는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