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7)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7화(7/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7화
‘돌겠네, 벌스 부분이 왜 이렇게 애매하냐.’
오늘도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용철 형 작업실에서 열심히 비트를 찍은 나는 뻑뻑한 눈을 비비며 반지하 숙소 문을 열었다.
매니저 형이 살짝 귀띔해 준 바에 따르면 회사에선 3주로 잡아 놨던 활동을 2주로 줄이는 걸 검토 중이라고 했다.
‘회귀 전에 진짜 2주로 단축됐던가?’
만약 그렇다면 진짜 철야 작업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예전 곡 따라가지 말고 벌스만 새로 갈아엎어?
새벽 세 시가 넘었기에 멤버들을 깨우지 않도록 살금살금 방으로 걸어갔다.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자마자 견하준이 쓱 상체를 일으켰다.
“뭐야, 안 자고 있었냐?”
“요즘 왜 이렇게 늦게 와? 혼자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고?”
견하준의 물음에 하품하며 대꾸했다.
“나중에 말해 줄게.”
내가 대답을 피하자 이번에는 이불 더미에서 서예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 설마 우리 몰래 여자 친구 만나고 다니는 건 아니지?”
“아, 깜짝이야. 형도 안 잤어? 그리고 여자 친구가 있냐고 묻는 게 먼저 아닐까?”
너희들이 퍼질러 자는 동안 나는 지금 팀 살리겠다고 내 한 몸 분골쇄신하고 있거든. 나중에 나한테 고마워해라.
이번 회차의 일등공신은 서예현이 아니라 내가 될 예정이니까.
기왕 둘이 일어나 있는 김에 씻고 온 나는 침대에 누워 이번 주의 위클리 퀘스트를 확인했다.
[☑위클리 퀘스트!] [▶주 5회 이상 공식 SNS에 셀카와 글 올리기(초심도 +2) ▶주 6회 이상 팬반응 서치하기(초심도 +2)▶주 4회 이상 팬카페 FROM 게시판에 셀카와 글 올리기(초심도 +2) ▶출, 퇴근길에 팬들에게 다정한 인사 건네주기(초심도 +2)]
지금까지 FROM 게시판에 글 세 개 올렸으니까 하나만 더 올리면 이번 주 퀘스트는 끝이고, 팬 반응은 혹시 모르니까 알람 맞춰 놓고 날마다 서치하고 있고, 출, 퇴근길에 팬들에게 인사하기까지 계속하면 대충 이번 주에 초심도 6은 회복하겠군.
퀘스트창을 끄고 눈 좀 붙여 볼까 하고 눈을 감자마자 견하준이 방의 불을 켰다. 미간을 팍 찌푸리고 잠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준아, 나 잠 좀 자자.”
“우리 오늘 새벽 사녹 있잖아. 얼른 일어나서 애들 깨워. 예현이 형도 일어나고요.”
아 맞다, 사녹. 다음 앨범 준비 때문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군.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망한 앨범인데 시스템에 시간 스킵 기능은 없나?
[망하든 뜨든 모든 활동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초심입니다.]하아암, 그렇구나. 물어본 사람?
* * *
해도 뜨지 않은 새벽부터 한참을 대기했다가 무사히 음방 사전 녹화를 마친 우리는 다음 스케줄로 향했다.
오늘은 가수 하나의 펑크로 간신히 얻은 음방 사녹에 이어 라디오 스케줄까지 잡혔다.
“이상호와 함께하는 정오의 뮤직 트립입니다. 2부에서는 이제 막 데뷔한 실력파 신인 보이그룹, 레브를 게스트로 모셨습니다.”
“하나, 둘, Dream of me! 안녕하세요, 레브입니다!”
내 신호에 멤버들이 동시에 ‘내 꿈 꿔’ 영어 버전의 인사말을 내뱉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짧은 자기소개를 마치자 곡을 홍보할 시간이 주어졌다. 대본을 대충 훑은 DJ가 질문했다.
“데뷔곡 <우주로 와 줘>는 어떤 곡인가요?”
그건 2년 전에 발매돼서 히트친 걸그룹 노래고. 듣보 망돌 나와서 짜증 나는 건 알겠는데 최소한 대본은 똑바로 읽어야 하지 않겠냐?
“네, 저희 데뷔 앨범 타이틀곡 <내 우주로 와>는 줄이 끊어져 우주를 헤매던 우주비행사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그 우주로 이끌린다는 내용으로…….”
일부러 제목을 강조해 말하며 소속사에서 적어 준 타이틀곡 소개를 기계적으로 읊었다.
곡 콘셉트를 무슨 유리 가가린 영상 보면서 생각해 냈냐.
“고독한 우주여행이라니, 참 독특하네요. 가사도 굉장히 서정적인데 우주라는 콘셉트에 굉장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러게요, 우주 전쟁까지 일으키는 소속사의 뇌절만 아니었으면 저희도 나름 우주여행 콘셉트에 적응할 수 있었을 텐데요.
“이쯤 되면 라이브 무대가 굉장히 궁금해지는데요, 광고 듣고 레브의 무대! 한번 보시겠습니다!”
경쾌한 CM송이 흘러나오자마자 헤드셋을 벗은 DJ는 휴대폰을 집어 들며 우리 들으란 듯 투덜거렸다.
“여기는 도시락 조공도 없대?”
멤버들의 표정이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하게 변하는 걸 보고 혀를 찼다.
팬카페 회원 수가 오백 명도 안 넘는 갓 데뷔한 중소 망돌에게 뭘 기대해, 인간아.
라디오가 끝날 때까지 성의 없는 태도를 유지한 DJ는 2부가 끝나고 우리가 인사를 하는데도 휴대폰에서 고개도 들지 않고 건성으로 손을 휘저었다.
인사하느라 공손하게 모은 손 뒤로 중지를 쓱 올렸다.
뜨고 나서 보자.
[나쁜 손동작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따끔한 감각에 씁, 숨을 들이켰다. 어이가 없네? 안 들키게 했는데 왜 초심도를 깎고 난리야? 안 들켰으니까 당연히 봐줘야 하는 거 아니냐?
스케줄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의 분위기는 우중충했다.
2년 반간의 망돌 생활로 멘탈을 단단하게 다진 나만이 대놓고 보이는 홀대에 타격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지이잉,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팬반응 서치 시간>
서치 횟수 한 번 못 채워서 피를 토한 이후로 까먹지 않도록 아예 알람을 맞춰 놨다. 검색 내역은 딱 둘이었다. 레브, 그리고 이든.
쓱쓱 피드를 내리던 내 눈에 팬싸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우리는 곧 첫 팬사인회를 열었기 때문에 그 레브가 우리 레브일 확률이 높았다.
양기미남찾아요 @kpopdol
레브 팬싸컷 알려주실분
│
하이디 @hi_everydi
레브가 ㄴㄱ임?
│
양기미남찾아요 @kpopdol
이번에 데뷔한 애들이라는데 얘 보러가려고
새로운 양기미남 찾아써
(사진)
│
하이디 @hi_everydi
미친이와꾸로대체왜안뜬거임?
│
양기미남찾아요 @kpopdol
노래가 존나 구려
헤메코도 구리고 아무래도 소속사 완전체인듯
│
하이디 @hi_everydi
Aㅏ…… 난 그럼 품기 불가능
역시나 예상대로 서예현의 사진이 딱 박혀 있었다.
회귀 전 이 형의 별명이 다시 생각났다. 우리 청년가장은 데뷔 초부터 열일했구나.
‘우리 타이틀곡이 구리긴 하지…….’
반박할 수 없는 말에 쓰디쓴 입맛을 다셨다.
괜찮은 수록곡이라도 있었던가 싶어 앨범 수록곡을 훑던 내 눈에 새까맣게 잊고 있던 곡 하나가 들어왔다.
데뷔 앨범인 1집은 타이틀곡부터 수록곡까지 다 구렸지만 딱 하나, 그나마 괜찮은 곡이 있었다.
바로 내가 작사, 작곡한 마지막 트랙, .
나는 언더에 발을 담구고 있었기에 기본적인 작사, 작곡 정도는 할 줄 알았다.
데뷔 앨범에 내 노래가 하나 있었으면 해서 언더 시절에 만든 랩 믹스테이프 하나를 노래로 뜯어고치고, 소속사를 설득해 간신히 데뷔 앨범에 끼워 넣을 수 있었다.
물론 본격적으로 작곡과 프로듀싱을 해 왔던 때는 시간이 남아돌던 망돌 시절이었던 터라, 이 곡이 현재 내 시점에서 봤을 때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타이틀곡과 다른 수록곡들과 묶여서 구리다는 평을 받기에는 아까운 곡이었다.
회귀 전에는 1집 성적이 처참하게 망하며 그대로 묻혔지만.
‘나중에 레브가 역주행하고, 이 곡도 1집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곡으로 재평가받았었지? 아마?’
이 곡이나 한번 홍보해 볼까.
위클리 퀘스트 때문에 반강제로 꾸준히 팬카페에 글을 올린 덕분에 몇 안 되는 팬들 사이에서 나는 재희 녀석과 더불어 소통 멤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From. 이든]팬분들, 기체후일향만강하셨어요? 이제 그냥 팬분들이 아니라 데이드림이라고 불러드릴 수 있겠네요.
오늘 사실 노래 구리다는 글을 봤는데 반박할 수 없는 게 속상해서ㅋㅋ 그나마 앨범에서 제일 나은 노래 올리고 갑니다.
p.s. 작사·작곡 By. 윤이든
https://yxxtu.be/SDFJPEx42
(One Chance_audio_영상)
댓글 13
-이든아 그렇게 극존칭 인사 안 해도 돼…… 누나 그렇게 나이 안 많아……
-누구야!!! 누가 노래 구리다고 그랬어!!!!
-노래 진짜 좋다!! 왜 이거 타이틀곡으로 안 했어요 ㅠㅠㅠㅠ
-작사작곡 윤이든?? 우리애가 작곡멤이었다니
-애들에게 스펀지 실험맨 복장같은 하얀색 점프슈트 입힐 때부터 알아봤는데 소속사 진짜 감없네 이런 노래 두고 네 눈동자도 반짝반짝 이딴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올리냐
└그래도 내 우주로 와도 우리 애들 노랜데 이딴 노래라뇨ㅜ
└구리다는 말에 이든 오빠도 반박 못한다잖아요ㅠ 솔직히 내우주로와 객관적으로 구(읍읍
-이노래 묻히긴 너무 아깝다 홍보 갈기러 갔다올게
(댓글 더 보기)
쭉 달린 댓글들을 보며 키득거리고 있자 류재희가 내 팔을 툭툭 쳤다.
“형, 대체 왜 From글 첫인사를 계속 기체후일향만강하셨어요로 시작해요?”
“안녕하세요는 다섯 글자, 기체후일향만강하셨어요는 열한 글자. 됐지?”
손가락까지 꼽아 주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자 류재희의 표정이 굉장히 묘해졌다.
“차라리 컨셉 잡았다고 해요. 글자 수 늘이려는 그런 속세적인 이유 말고요.”
할 말은 없는데 두 줄 이상 아니면 퀘스트 인정도 안 되는 거로도 모자라서 성의 없다고 초심도까지 깎여서 어쩔 수 없었다고, 인마.
공식 SNS 계정에도 같은 게시글을 올리고 마찬가지로 영상 링크까지 첨부했다.
뜨면 좋고, 안 떠도 뭐, 다음 앨범으로 승부 보면 되고.
* * *
김 모 양은 대한민국의 흔한 아이돌 덕후였다.
7년 차가 되자 귀신같이 동태눈깔이 되고 유흥 살이 찌기 시작한, 곧 남의 새끼가 될 내 새끼들을 보고 있으니 이제는 눈빛이 반짝반짝한 생태돌을 보고 싶었다.
그런 김 모 양의 눈앞에 나타난 아이돌이 바로 레브였다. 음악방송 맨 첫 번째 순서를 차지한 레브를 본 김 모 양의 부모님은 그들을 이렇게 평가했다.
“쟤들은 무슨 반도체 공장 직원이대냐?”
“어휴, 요즘 노래는 왜 이렇게 조잡하대?”
오랜만에 보는 반짝반짝한 안광과 보는 사람마저 짠해지는 코디를 희미하게 뚫고 나오는 서예현의 얼굴을 본 그녀는 이제는 남의 새끼가 된 구 내 새끼들을 버리고 새 아이돌에 입덕했다.
그리고 팬카페에 가입하고 정확히 일주일 후 최애가 바뀌었다.
날마다 공식 SNS와 팬카페 From으로 와서 소통해 주는 귀여운 햄찌 막내 유제도 좋았다.
하지만 새로운 그녀의 최애는 막내만큼 자주 From 게시판에 기체후일향만강하셨어요라는 인사말로 오는, 서늘한 인상과 어울리지 않는 갭모에 포인트와 김 모 양이 환장하는 눈물점을 가진 리더 윤이든이었다.
거의 덕질 동아리라 해도 될 만한 팬카페 회원 수와 10을 넘기지 못하는 공식 SNS 계정의 공유 수를 보고 있자면 어떻게든 이 아이돌을 띄워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까지 들었다.
우리 애들 얼굴이랑 기럭지는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고 완벽한데!
하지만 문제는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코디와 조잡한 타이틀곡이었다. 신인이라 입덕 포인트가 될 영상이나 SNS 캡처 같은 것도 없었다.
얼마나 예산을 아끼고 아끼셨는지 뮤비 움짤은 찌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압도적 얼굴천재 서예현의 외모마저 묻어 버리는 퀼리티와 코디였다.
누가 좆소 아니랄까 봐 일 더럽게 못하는 망할 소속사만 씹고 있던 김 모 양은 올라온 최애의 From 게시글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달려갔다.
“누구야! 언놈이 구리다고……! 구리긴 구리지…….”
불붙은 듯이 손가락을 움직여 분노의 댓글을 달던 김 모 양은 씁쓸하게 웃으며 작성하던 댓글을 지웠다.
오늘 이든이 글과 함께 올린 건 수록곡 너튜브 오디오 영상이었다.
이런 노래도 있었던가. 비록 팬이지만 타이틀곡의 충격으로 수록곡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김 모 양은 초면의 노래에 눈을 깜빡였다.
보통은 제일 나은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정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와, 우리 이든이가 작곡도 해?”
좋아, 작곡돌로 영업할 수 있겠군. 물론 노래가 들을 만 한 수준이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너튜브 오디오 영상을 재생한 김 모 양의 표정은 노래가 계속될수록 점점 경악으로 변했다.
진짜 소속사 미친 거 아니야? 이런 노래를 두고 눈깔 반짝반짝 같은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넣어?
‘그래, 이거다. 이 노래라도 홍보하자.’
드디어 영업 포인트를 찾아낸 k-pop 덕질 10년 차, 김 모 양의 눈빛이 거세게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