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7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74화(74/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74화
문을 열자마자 밧줄에 매달린, 흰 천을 덮은 크고 길쭉한 인형이 툭 튀어나와 대롱대롱 흔들렸다.
그냥 흰 천만 덮인 인형이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번진 잉크로 눈과 입이 호러틱하게 그려져 있어서 문제였다.
예고된 공포였으면 무섭지 않았을 텐데, 휴식을 기대하다가 만난 호러라 약간 놀란 감이 있었다.
하필 시간도 점점 어둑해지는 시간대라 효과도 극대화되었다.
다섯 중 제일 겁이 많은 김도빈은 이미 견하준의 등에 착 붙어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눈발이 점점 거세지는 터라 일단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조명을 찾아서 불을 켰지만, 조명 자체가 어두컴컴한 건지 생각만큼 밝아지지 않았다.
“끄아아악!”
김도빈의 비명에 급히 달려가자, 김도빈이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향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삿대질했다.
마치 창문처럼 걸려 있는 낡은 액자들에는 금방이라도 액자 안에서 튀어나오려는 포즈를 취한 귀신 그림과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아, 뭐야. 이게 창문 정도였으면 비명 지를 건수였겠다. 사진이랑 그림이 뭐가 무섭다고 그러냐. 딱 봐도 공포감 조성하려고 일부러 걸어 놓은 거구먼.”
“으허헝, 말하지 마요! 무섭단 말이에요!”
“에휴, 겁쟁이 자식.”
혀를 차며 펜션을 쭉 둘러보았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둘째치고, 산장 벽에 걸린 귀신 그림들과 이곳저곳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노란 부적들은 숙소라기보다는 귀신의 집에 더 가까웠다.
장식장을 차지하고 있는 기묘한 일본 인형들과 정체 모를 무속 소품들은 무섭다기보다는 그저 노림수로 느껴졌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가져다 놓으니까 오히려 공포심이 더 사그라졌달까.
물론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던 듯, 슬며시 내 옆으로 와서 장식장을 본 서예현은 곧장 등을 돌려 장식장에서 멀어졌다.
‘벽난로는 장식용이야, 뭐야?’
펜션 뒤쪽에 창고가 있는 것까지 안내받고 캠코더를 넘겨받았다.
창고에 장작이 쌓여 있는 걸 보니 벽난로가 장식용은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주시고요.”
스태프들이 철수하고 우리만 이 귀곡산장인지 귀신의 집인지에 캠코더와 사방에 설치된 카메라들과 함께 덜렁 남았다.
우리끼리 알아서 귀신의 집 체험으로 분량을 뽑으라는 소리였다.
하긴, 스태프들이 따라다니면 방송인 걸 계속 자각시키니 덜 무서울 터였다.
“끄아아아악! 형드으을!”
다시 한번 김도빈의 우렁찬 비명이 들려왔다.
다급하게 달려가니 냉장고 안에 쑤셔 박혀 있는 토막 난 마네킹이 보였다.
“야, 딱 봐도 마네킹이잖아. 뭔 이런 거로 놀라고 그래?”
성의 없는 손길로 냉장고에서 마네킹을 모조리 빼고 우리가 사 온 식료품을 넣어 놓았다.
어느새 김도빈은 내 등에 거머리처럼 착 달라붙어 있다시피 했다.
“저 부적들 무서운데 떼면 안 돼요?”
“도빈이 형, 저게 뭔 줄 알고 함부로 떼? 저게 진짜 부적이면 어떻게 하려고?”
쫄보 2인 류재희가 벽에 덕지덕지 붙은 부적을 금방이라도 떼려 하는 김도빈을 만류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흐느끼는 소리 안 나요……?”
“백퍼 어디에 녹음기 설치되어 있겠지.”
겁에 질린 채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내 팔을 꼬옥 잡아 오는 김도빈에게 물었다.
“도빈이 너, 그러고 보니까 전에 하고 싶은 콘텐츠 말할 때 귀신의 집 이야기하지 않았냐?”
“그건 30분도 안 걸리잖아요! 이렇게 귀신의 집에서 하룻밤 묵는 건 아니잖아요!”
“진짜로 흉가도 아니고 그냥 펜션 빌려서 제작한 건데 왜 그렇게 무서워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나는.”
“저는 이걸 아무렇지 않아 하는 형이 더 이해가 안 가여…….”
산장의 방은 총 네 개였다.
김도빈과 류재희는 혼자서는 못 자겠다고 꿋꿋이 주장했기에 둘이 같은 방에 넣고 나랑 견하준, 서예현은 각자 방 하나씩을 쓰기로 했다.
제작진에게 듣기로는 제일 큰 방 하나, 그리고 작은 방 세 개가 있다고 했으니 큰 방은 막내 라인이 쓰라고 기꺼이 양보했다.
아직 방을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분명 방 안도 귀신의 집처럼 꾸며 놓았을 확률이 높았다.
방에 분명히 뭐가 있을 것 같다고, 무서워서 못 들어가겠다며 징징거리는 막내 라인 때문에 캠코더 들고 다섯 명이 다 같이 방 하나씩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는 일단 내가 택한 방이었다.
“엥, 방은 별거 없네?”
“아니죠, 분명히 이런 데를 열어 보면…… 으아아아악! 거봐요, 있잖아! 으허허헝, 빨리 이거 좀 떨쳐 주세요! 이거 뭔데! 이거 뭔데!”
벽장을 열자마자 김도빈을 향해 무언가가 튀어나와 그의 얼굴을 덮쳤다.
제 얼굴을 덮은 길고 뻣뻣한 머리칼에 김도빈은 거의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김도빈을 덮친 것의 정체는 바로 소복을 입히고 긴 머리 가발을 거꾸로 씌워 놓은 마네킹이었다.
마네킹을 바로 세워 벽장을 닫자 류재희가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형, 여기서 잘 수 있어요?”
“눈에만 안 보이면 됐지, 뭐.”
“갑자기 마네킹이 옷장 열고 튀어나와서 침대에 누워 있는 형 목을 조른다던가…….”
“이야, 작가 해라, 재희야.”
혹시 몰라 침대 옆 선반을 열어 보자 피 묻은 식칼과 녹이 슨 낡은 가위가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대체 이게 왜 들어 있는지 몰랐는데.
“이제 형 잠들면 마네킹 귀신이 벽장 열고 나와서 한 손에는 식칼, 한 손에는 가위 들고 침대 옆에서 형 빤히 내려다보고 있음요.”
덜덜 떨며 속사포처럼 쏟아 내는 류재희의 말을 듣고 왜 가져다 놨는지 한 큐에 이해했다.
소품 두 개만으로 창조 공포를 선사하는 게 가능하구나.
“혹시…… 지금 무슨 소리 안 들려요? 시계도 없는데 째깍거리는 소리 나는데요.”
“오, ASMR.”
“와, 이 형 멘탈 진짜…….”
어딘가 녹음기가 붙어 있겠지만 찾기 귀찮아서 포기했다. 손톱으로 철판 긁는 소리도 아니고, 시계 소리 정도야, 뭐.
아무튼 내 방은 옷장 갑툭튀 처녀귀신이었고, 다음으로 견하준의 방은…….
“여기는 뭔 살인 현장 컨셉 같은데?”
바닥에 그려진 현장 보존선과 혈흔, 침대를 둘러싼 폴리스 라인, 이불에 튄 듯한 피.
피아노 의자에 앉아 건반에 머리 박고 죽어 있는 듯한 얼굴 없는 사람 크기의 헝겊 인형.
피아노 건반에 묻은 피, 그리고 피아노 의자가 놓인 바닥에 고인 듯한 피.
물론 진짜 피가 아니라 물감일 확률이 100%였다.
이불을 슬쩍 들추자마자 나온 붉은 물감 범벅 헝겊 인형에 김도빈이 기겁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류재희는 못 보겠다며 나갔다가 거실도 혼자 있기에는 너무 무섭다며 되돌아왔다.
“여기에서는 못 자겠다.”
견하준이 깔끔하게 항복을 선언했다.
다음으로 서예현이 선택한 방은 의외로 멀쩡했다.
“내가 방 하나는 잘 골랐네.”
침대에 풀썩 드러누운 서예현은 곧 소리 없는 발악을 하다시피 하며 천장을 삿대질했다.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입이 찢어지라 웃고 있는 귀신 사진이 천장에 떡하니 붙어 있었다.
침대에 누웠을 때 딱 정면으로 눈을 마주칠 만한 위치였다.
“그러고 보면 막 베개 밑에 부적 있고…… 진짜 있네.”
베개를 슬쩍 집어 들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부적이 보였다. 서예현도 패배 선언을 했다.
“나도 여기에서 못 자.”
“어차피 눈 감으면 안 보이잖아.”
“그럼 나랑 방 바꿀래? 아니, 진짜 저거 신경 안 쓰이면 바꿔 줘.”
천장을 가리키며 서예현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게 매달렸다.
하지만 나도 푹 자고 눈 뜨자마자 귀신 사진과 눈빛 교환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단호하게 거절했다.
지금까지 방 세 개 중 하나만이 잘 수 있는 방으로 판별됐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방의 문을 열었다.
“와, 여긴 진짜로 귀신 나올 것 같은데? 여기서 자면 가위눌릴 듯. 여기는 나도 좀 무섭다.”
“나가면 안 될까요? 저희 그냥 여기서 나가면 안 돼요?”
무슨 무당집을 통째로 옮겨 온 듯한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여기 혹시 무슨 영화 촬영지였나? 엄청 리얼하게 꾸며 놨구먼.
여기는 심지어 침대도 없었다. 두툼한 요만이 깔려 있을 뿐.
“어디에서 향냄새 난다 싶었더니 여기였구먼.”
향로에 꽂힌 향이 타들어 갔다.
제단에 놓인 제사 음식 모형들과 짚 인형을 천천히 구경했다.
먼지가 쌓이지 않은 걸 보니 가져다 놓은 지 얼마 안 된 듯했다.
먼지 쌓여 있었으면 더 무섭긴 했을 텐데, 아쉽군. 물론 이 방에서 자야 하는 두 겁쟁이는 이 정도도 무섭다고 난리였지만.
벽을 가득 메운 빛 바란 탱화를 보며 저게 과연 이런 곳에 붙어 있어도 되는 건 맞는지 진지하게 고찰했다.
내 방이 시계 째깍거리는 소리가 났다면 여기는 방울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점프 스케어보다 이런 창조 공포를 더 무서워하는 류재희가 어서 나가자며 우리 등을 다급히 떠밀었다.
더 있다가는 정말로 귀신 붙을 것 같아 후다닥 나왔다.
“그러니까…… 정말로 잘 수 있는 방이 이든이 형이 선택한 방 하나……?”
“솔직히 그 방도 안 무서운 건 아닌데 다른 방은 아예 못 잘 정도라 문제지.”
“그런데 그 방은 다섯 명이 다 같이 자기에는 너무 좁지 않아? 침대도 싱글 침대던데.”
“어쩌겠냐. 이불 들고 와서 거실에서 다 같이 모여서 자야지.”
저 방은 못 들어가겠다고 난리 쳐서 결국 무당집 컨셉 방의 이불은 내가 들고나왔다.
아주 형을 부려 먹는 방법도 가지가지구나.
“이야, 분량 걱정할 필요가 없었네.”
방 하나씩 돌아다니며 겁쟁이들 리액션 뽑은 것만으로도 한 편 뚝딱이었다.
겨울 바다 콘텐츠가 재미없을 걸 예상하고 이 귀곡산장에서의 하룻밤을 미리 기획해 놓은 듯했다.
역시 좋은 대학 나온 인재들은 달라도 다르다.
“……잠이 안 와요.”
퀭한 눈으로 류재희가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뭐, 돌아가면서 괴담 이야기라도 하나씩 해?”
“그럼 더 잠이 안 올 거 같은데요. 그리고 귀신 이야기하면 귀신이 옆에서 듣고 있대요.”
류재희의 대꾸에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파드득대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김도빈이 웅얼거렸다.
“거실도 무서운데 어떡해요.”
“그럼 나가서 야외에서 자야지, 어쩌겠냐.”
필사적으로 장식장을 외면하며 창문으로 걸어가 바깥 동태를 살핀 서예현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눈 장난 아닌데. 우리 또 휴가 첫날 숙소처럼 고립되는 거 아니야?”
“거기는 도심이기라도 했지, 여기서 고립되면 답도 없-”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괘종시계 소리가 내 말을 끊었다.
진짜로 작동하는 괘종시계 처음 봤다.
괘종시계 안에서 귀신 나올 것 같다며 괘종시계와 제일 가까이 있던 김도빈이 자리를 바꿔 달라고 한바탕 난리를 쳤다.
그 뒤로도 동시에 가위가 눌린 서예현과 류재희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 모두를 깨우고, 어디에선가 들리는 흐느낌의 근원을 찾는다고 온 거실을 뒤지느라 그대로 날밤을 새웠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뜬 아침.
어젯밤, 우스갯소리로 말했던 그 답도 없는 상황이 실제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