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77)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77화(77/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77화
8부작으로 이루어진 리얼리티 촬영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오늘 촬영은 우리가 뽑은 두 번째 리얼리티 콘텐츠 주제, 요리(?)였다.
가슴이 싸늘해지는 개허접 요리 대회 정도나 생각했으나, 제작진이 가져온 플롯은 우리의 빈약한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었다.
“릴레이 요리 도전?”
큐시트에 적힌 글자를 읽으면서도 어리둥절했다.
차라리 냉장고 속 재료를 털어서 먹을 만한 음식 만들어 내는 게 더 유잼일 거 같은데.
“레시피, 재료 구입, 재료 손질, 요리, 시식을 멤버들이 차례로 하는 거라네요. 1번 타자가 레시피를 골라서 적으면 2번 타자가 레시피대로 재료를 구입, 3번 타자가 재료를 손질하고 4번 타자가 레시피대로 요리, 5번 타자가 시식을 하면 되겠습니다. 단, 서로 소통이나 상의는 금지입니다.”
설명을 읽으니 대충 어느 방법인지는 알 것 같았다.
이 중 제일 중요한 역할은 요리하는 4번 타자와 레시피를 고르는 1번 타자였다.
1번 타자가 뵈프 부르기뇽, 이런 거 고르면 다 같이 망하는 거다.
제발 4번만 걸리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요리 주제가 회오리오믈렛이 아닌 이상, 내 요리 솜씨는 형편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제일 편한 건 1번 타자.
5번은 망한 요리라도 먹어야 했기에 별로 끌리지 않았다. 물론 4번이 견하준이라면 말이 다르겠지만.
“무조건 4번 타자는 하준이 형이 해야 함요.”
“맞아여, 레브의 유일한 요리사.”
“나는?”
“형은 다이어트 요리사요.”
그 칭호도 마음에 든 듯, 서예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우리끼리 순서를 정하기도 전에 제작진이 끼어들었다.
“순서는 게임으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재량껏 정하는 거 아니고요?”
제작진은 단호했다. 류재희가 머리를 움켜쥐며 절규했다.
“망했다! 4번 타자가 하준이 형이나 예현이 형이 아닌 이상 5번 타자는 무조건 벌칙 역할이 되어 버리는데!”
“솔직히 레시피가 다이어트식 음식 아니면 예현이 형이 4번 타자를 하는 것도 위험해.”
“만약 예현이 형이 4번 타자면 무조건 레시피는 다이어트식 요리로 가는 거로.”
“너무 좋은 생각이야, 얘들아.”
서예현은 다이어트식 요리로 가자는 말이 나오자마자 돌아온 탕아를 따스히 맞이하는 아버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드디어 이 녀석들이 정신을 차린 것 같다는, 저 흐뭇하고도 감격스러운 미소를 보고 있자니 나름 화해했음에도 저 기대감을 깨부수고 싶어졌다.
‘크림 뇨끼나 트리플 수제 치즈버거 이런 거 한다고 하면 뒤로 넘어가려나?’
그걸 현실로 이루려면 어떻게든 1번을 사수해야 했다. 만들기 힘든 건 내 알 바 아니었다.
제작진이 준비한 순서 정하기 게임은 할리갈리였다.
“제일 먼저 탈락한 사람이 5번이고, 제일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1번입니다.”
할리갈리의 규칙은 자기 차례에 더 이상 펼칠 카드가 없는 사람이 탈락, 카드를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우승.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우승자를 내는 게 아니라 탈락 순서대로 5번부터 1번을 정하겠다는 소리였다.
가볍게 손을 풀며 속으로 한탄했다.
‘에이씨, 할리갈리보다는 원카드가 더 자신 있는데.’
종이 가운데에 놓이고 각자 카드를 배분받았다.
“아, 종 좀 살살 치자! 손등뼈 작살 나겠다!”
“바나나 다섯 개 아님요! 이거까지 여섯 개잖아요!”
“뭐야? 저거 언제 나왔어?”
“하준이 형, 종 잘못 치셨으니까 카드 하나씩 배분하시고요.”
“방금 김도빈 카드 안쪽으로 펼쳤어! 바깥쪽으로 펼치라고! 야, 카드 하나씩 돌려.”
“아니, 카드 펼치는 방향으로 페널티 주는 건 좀 아니죠!”
서로의 손등을 벌겋게 붓게 만드는 치열한 게임이 오갔고, 우렁찬 땡-! 소리가 숙소 가득 울렸다.
카드 한 장 남지 않은 텅 빈 손을 내려다보다가 쓱 손을 들고 요청했다.
“원카드로 종목 바꿔서 다시 한번만 더 하면 안 될까요.”
“운명을 받아들이시죠, 형.”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첫 타로 탈락할걸!”
제일 떠맡기 싫었던 요리를 떠맡은 나는 절망했다.
차라리 시식이 낫지, 어째서 나한테 이런 시련을……!
[동태눈깔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멍하니 바닥을 보고 있자 시스템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초심도를 깎았다.
암암, 가암히 카메라 앞에서 멍 때린 제가 죄인이죠. 내가 지금 스케줄 중이라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넘어가는데 제에발 시스템 업데이트 좀 해라.
제일 먼저 탈락한 견하준이 5번 타자, 그다음으로 탈락한 내가 4번 타자, 나 다음으로 탈락한 류재희가 3번 타자.
이제 김도빈과 서예현의 단판 승부만이 남았다.
이긴 사람이 가장 꿀 빠는 순번인 1번 타자를 가져간다.
카드를 쥔 두 사람 사이에 긴장이 감돌았다. 누가 보면 카지노 도박판 세기의 명승부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뭐, 실상은 포커도 아니고 겨우 할리갈리지만.
그리고 승자는……!
“도빈아, 형 손등뼈에 금 가겠다…….”
“아아아, 0.1초만 더 빨랐어도!”
제일 쉬운 파트를 가져간 서예현을 부러운 눈길로 보다가 다가올 견하준의 어두운 미래에 마음속으로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견하준은 재료 손질도 제대로 안 되고 요리도 제대로 안 된 맛대가리 더럽게 없는 다이어트식 음식을 먹게 되겠구나.
미리 미안하다, 친구야. 너나 내가 할리갈리 실력이 조금만 더 뛰어났어도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 * *
레시피를 선택하는 1번 타자가 된 서예현은 카메라를 앞에 켜두고 고민에 빠졌다.
일단 샐러드류는 안 된다. 아무리 저칼로리를 중시하는 그라도 지금 이게 방송이라는 것쯤은 자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5번 타자, 시식 담당이 견하준인 이상, 너무 어렵거나 만들기 까다로운 요리도 탈락.
그 개노답 3형제 세 명이 요리를 잘 해낼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적어도 견하준이 사람이 먹을 만한 음식은 먹도록 만들어 줘야 할 것 아닌가.
지금이 활동 중임을 상기하니 왜인지 모를 사명감까지 들었다.
혹여 잘못 만든 음식을 먹어서 배탈이라도 나 응급실에 실려 가기라도 한다면 어쩌겠는가.
게다가 윤이든과 류재희는 이미 전적이 있었다. 그는 생일상 미역국과 제육볶음의 악몽을 아직 잊지 않았다.
5분에 한 번씩 무슨 노진구가 도라에몽 부르는 양 견하준을 불러 제끼던 둘의 모습도.
심지어 이건 소통도 불가능이었기에 그때처럼 견하준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다.
‘왜 볶음밥류는 되도록 피해 달라는 거지?’
제작진에게 들은 말을 상기하며 서예현은 적어 놨던 김치볶음밥과 회오리오믈렛을 얹은 오므라이스에 X자를 그렸다.
실상 요리를 해야 하는 류재희와 윤이든의 수준으로는 볶음밥이 딱인데 말이다.
물론 그 볶음밥도 태워 먹고도 남을 녀석들이지만.
너무 쉽게 성공해서 방송 분량이 뽑히지 않을 걸 걱정한 건가. 그렇다면 그 둘을 과대평가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한참을 고민하고 서치한 끝에 그는 적당한 난이도의 요리를 고를 수 있었다.
[떡볶이]서예현은 손을 멈추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탄수화물 범벅인 데다가 중요 영양소라고는 하나도 없는, 영양학적으로 최악의 음식을 굳이?
그래도 결국 최선은 떡볶이었다.
다른 후보였던 토마토파스타는 재료를 손질할 만한 게 거의 없어 류재희의 분량이 사라지는 수준이었다.
“떡, 떡이 제일 문제인데…….”
서예현은 중얼거리며 떡볶이의 떡을 대체할 만한 것을 찾았다.
고심 끝에 다이어트식 떡볶이를 찾다가 발견한 곤약 떡볶이가 채택되었다.
계량한답시고 설탕을 작은 술이 아닌 큰 술로 두 스푼 넣고도 충분히 남을 녀석을 생각해 서예현은 간단한 방법을 택했다.
곤약, 양배추, 대파, 당근, 어묵, 고추장, 고춧가루, 캔식혜, 진간장, 다진 마늘.
인터넷에 열심히 레시피를 검색해서 재료를 먼저 싹 적은 그는 여러 레시피를 참고하여 제일 간단하고 따라 하기 쉬운 최적의 레시피를 최대한 자세하게 써 내려갔다.
초등학생도 보고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식혜를 넣을 때 체에 걸러 식혜의 밥알을 빼라는 문장에 밑줄을 잔뜩 긋고 그것마저도 불안해 별 다섯 개를 큼직하게 그러고 나서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서예현의 몫이었던 음식 선정 및 레시피 작성이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제발 이대로 무사히 음식이 완성되기만 바랄 뿐입니다. 하준이가 멀쩡한 음식을 먹을 수 있기를 바라며.”
빽빽하게 채운 종이를 카메라 앞에 가져다 대며 서예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할리갈리 실력이 부족한 것만으로 너무 큰 시련을 떠맡은 게 아닌가…….”
소화제라도 미리 사 놔야 하나 고민하며 서예현은 제 몫의 촬영을 마쳤다.
1번 타자의 역할이 끝나자, 재료를 구매하는 2번 타자의 역할로 넘어갔다.
김도빈 역시 제 역할에는 불만이 없었다. 제일 쉽고 편한 레시피 선택 및 작성을 하지 못하여 살짝 아쉬울 뿐이었지.
“곤약떡볶이? 아, 떡이 안 들어가는구나. 떡 대신 곤약. 와, 진짜 예현이 형답다.”
레시피 종이를 받아 읽은 김도빈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돈까스였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예현이 형이 돈까스를 용납할 리는 없겠지만여. 하준이 형만 먹으니까 상관없으려나? 하준이 형은 진짜 살 안 찌는 체질이거든요. 다 키로 가나 봐요. 부럽다.”
주섬주섬 장바구니와 레시피 재료가 써진 종이를 챙기면서도 입은 쉬지 않았다.
“만약 돈까스였으면 재희는 망치로 고기 두드리고 있었으려나. 이든이 형은 그거 기름에 튀기는 게 아니라 굽고 있었을지도. 그런데 이제 예현이 형처럼 칼로리 생각해서가 아니라 기름양 조절을 잘못해서.”
눈을 깜빡이며 입을 헙 다문 김도빈이 손가락으로 가위질하는 시늉을 했다.
“음, 이 말은 편집해 주세여.”
윤이든은 그에게 어려운 형이였기에 리더를 무시했다고 오해 살 발언은 사양이었다.
“아니, 그런데 떡볶이도 오케이했는데 돈까스를 허락 안 할 이유가? 돼지고기 말고 닭가슴살 튀기면 되지 않나? 아니, 그럼 치킨인가? 치킨까스?”
김도빈은 오디오를 안 채우면 초심도라도 깎이는 것처럼 아무 말 대잔치를 해 대며 카메라맨과 함께 숙소 근처의 마트로 향했다.
혹시라도 김도빈이 종이에 적힌 모든 걸 사 올까 봐 걱정한 서예현은 숙소에 있는 재료들을 모두 확인하고 사 와야 할 것에만 동그라미를 쳐 놨다.
하지만 맏형의 그런 하해와 같은 노력에도 세상일은 계획한 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보여 주는 김도빈이었다.
“곤약이 안 보이는데. 실곤약으로 사도 되겠죠? 실곤약도 곤약이니까.”
서예현이 본다면 “도빈아, 그거 아니야! 그거 내려놔!”를 당장 외쳤겠지만 안타깝게도 룰은 소통 불가였고 김도빈은 실곤약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1차 비극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