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8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80화(8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80화
굳게 닫힌 방문을 연신 힐긋거리던 김도빈은 곧 순순히 털어놓았다.
“댄스 연습이요.”
둘의 조합도 조합이거니만, 의외의 이유에 고개를 기웃했다.
같이하는 것이라 해 봤자 헬스 정도로 알았는데 댄스?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서예현은 무대에 설 일이 아니면 평소 안무 연습하는 걸 싫어했다.
춤을 못 춰서 춤추는 걸 싫어하니 또 실력은 늘지 않는 악순환.
그런데 나서서 김도빈과 연습을 한다?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설마 서예현한테도 시스템의 저ㅈ…… 아니, 축복이 내려졌나?
“예현이 형이 이번에 연말 가요제 무대 칼군무 잘 소화했잖아요. 비록 익히는 과정은 약간 험난했지만?”
“어어, 그랬지.”
KICKS와의 대결이라 독기가 바짝 올라 그랬는지, 웬일로 실수 한번 없이 무사히 고난이도 칼군무 동작으로만 이루어진 무대를 마친 서예현을 회상했다.
무대에서 내려오고 난 후 하이파이브하며 짓던 그 환한 미소도 절로 함께 떠올랐다.
“아무튼, 그래서 자신감이 좀 붙으신 모양이더라고요.”
“그래?”
머리를 긁적인 김도빈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댄스 안무 동영상 몇 개를 보여 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예현이 형 부탁으로 춤 연습 좀 도와주고 있어요. 뭐, 저도 방학이라 시간이 널널하기도 하고 해서.”
슬쩍 나랑 서예현이 같이 쓰는 방을 돌아본 김도빈은 목소리 낮추어 덧붙였다.
“그래도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형. 드라마틱하게 실력이 성장하는 일은 만화라서 가능한 일이거든여.”
김도빈이 뭘 걱정하는 건지는 알 것 같았다. 연습을 해도 실력이 그대로일 때, 내가 서예현한테 지랄하며 생길 팀 내 불화겠지.
고개를 저으며 픽 웃음을 터트렸다.
“나아질걸, 분명.”
그야 그럴 게 서예현의 댄스 잠재력은 B다, B.
D-에서 B로 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나아지지 않을 리가 있겠냐.
“그 형이 그래 보여도 성장 가능성은 충분히 있거든.”
무려 잠재력이 B라고, B!
그 인간이 그 수준에 닿기만 하면 씨바, 레브는 이제 보컬, 랩, 퍼포 다 되는 완벽한 멀티형 그룹이 되는 거라고!
그렇다면 회귀 전에는 왜 그 정도의 잠재력이 있던 서예현의 실력이 7년 차가 될 때 동안 그대로였나 의문점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예현에게 인기와 스케줄이 몰리며 연습할 시간이 없다고 안무를 저 인간이 조금만 연습해도 따라 할 수 있을 만한 수준으로 짰으니까.
회귀 전에는 서예현의 의지가 없었기에 개화하지 못했던 모양이지만, 이번에는 어떻게든 개화시켜 주마.
그리고 이대로 1군까지 쭉쭉 가서 이 빌어먹을 무한회귀를 끝내는 거다!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속마음을 겨우 가라앉히며 무심코 우리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 나와서 듣고 있었던 건지 방문 앞에서 입을 꾹 다물고선 멍하니 나를 보고 있는 서예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니까 죽어라 굴려. 형이라고 봐주지 말고.”
서예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비죽 웃으며 말했다.
단번에 거실 소파로 달려온 서예현이 김도빈의 어깨를 붙들고 마구 흔들었다.
“도빈아, 내가 쟤한텐, 말하지, 말라고, 했지.”
“억, 억, 사부를 이렇게 거칠게 흔들어 대는 제자가 대체 어디 있, 억!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 억! 이거 기사멸조라고요!”
마치 종이 인형처럼 흔드는 대로 힘없이 팔랑거리며 김도빈이 또 이상한 말을 해 댔다.
“또 또 못 알아들을 오타쿠 같은 말 한다.”
“형, 지금 무협을 씹덕 장르라고 무시하시는 거예요? 무틀딱 마초 아재들이 격노할 소리를 하시네.”
“그렇게까진 말 안 했어, 인마.”
애니랑 만화 보는 것 좀 뭐라 했더니 이제는 또 무협에 꽂혔나.
그냥 어디서 이상한 거 보고 와서 이상한 상상력을 발휘하지만 말아 줬으면 싶었다.
김도빈의 얼굴이 어지러움에 하얗게 질리자 잡고 흔드는 걸 멈춘 서예현이 버럭했다.
“아무튼!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왜 말하냐고!”
“그치만 이든이 형이 더 무서운데 어떡해여……! 저 방금도 목 졸렸어여!”
“누가 들으면 내가 멤버 폭행한 줄 알겠다. 목 뻐근할까 봐 해 준 마사지를 그렇게 곡해하는 거 아니다.”
“누가 헤드록을 마사지라고 해요.”
시스템이 폭력으로 초심도 안 깎았으니 마사지지, 뭐.
소심하게 대꾸하는 김도빈을 향해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손짓했다.
“예현이 형이랑 할 말 있으니까 문 닫고 있어. 엿듣지 말고.”
슬그머니 서예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방을 향해 달려간 김도빈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방문이 닫히자 입을 열었다.
“왜 나한테는 말하지 말라 했어? 아, 참고로 시비가 아니라 그냥 물어보는 거야. 궁금해서.”
“그야 실력 안 늘면 네가 뭐라 할까 봐…….”
연습생 시절 6개월 동안 저 인간을 무대에는 올릴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달달 볶기는 했는데, 아직까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줄이야.
회귀하고 나서는 초심도 때문에 나름 유하게 대했는데.
말끝을 흐린 서예현에게 사실을 말해 주었다.
“형이 뚝딱이로 타고난 걸 내가 뭐라 하겠어. 내가 고음 안 되는 거랑 똑같지.”
그 말에 서예현이 큽, 소리를 내며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아마도 데모곡의 내 가녀린 가성 고음이 생각난 모양이다.
서예현이 이때까지 해 왔던, 안무가 되지 못한 수많은 몸부림과 삑사리 음정들도 한 번 들춰 줄까 하다가 포기했다.
“그런데 형은 그게 쪽팔리고 싫다고 노력을 안 하고 회피했잖아, 이때까지.”
내 말에 슬그머니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뗀 서예현이 찔렸는지 나와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바닥만 쳐다보았다.
“난 그게 짜증이 났던 거야.”
서예현이 계속 바닥을 보고 있든 말든 계속해서 할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전에 했던 대화도 솔직히, 그때 내가 팩트로 후려치면 형이 팀 탈퇴한다고 할까 봐 말 못 했는데. 우리 발목 잡을까 봐 걱정됐던 것보단 그냥 내게 반박하고 싶었던 게 더 컸잖아? 안 그래?”
대답 대신 침묵이 돌아왔다.
이 대화는 제정신으로는 못할 대화라는 판단하에 말없이 일어나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와 한 캔을 내밀었다.
평소였으면 맥주 칼로리가 얼마인 줄 아느냐고 지랄해 댔을 서예현은 웬일로 순순히 맥주캔을 받아 들었다.
말을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은 해 봤지만,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절로 냉소 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정 형이 부족한 실력 때문에 발목 잡을까 봐 걱정했으면 잠을 줄여서라도 연습한다고 했겠지. 그놈의 망할 내우주로 계속 활동하자고 우기는 게 아니라.”
나는 아직도 그때의 막막했던 심정을 잊지 못한다.
김도빈이야 실력이 있기도 하고 금방 꼬리 내리기도 했지만 서예현은 내가 윽박지른다고 기죽을 인간도 아니었고, 남들보다 배의 노력이 필요한 놈이 의지조차 없다는 걸 보여 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한참의 침묵이 감돌고, 맥주를 원샷할 기세로 목구멍에 들이부은 서예현이 드디어 그 무거운 입을 열었다.
“……맞아.”
놀랍게도 변명이 아니라 깔끔한 긍정의 말이었다.
“그때는 네 말이 모두 막말처럼만 들렸어. 지금 따지고 보면 다 맞는 말이지만.”
내가 혹시 맥주에 나도 모르게 자백 물약이라도 탄 건가 싶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진실 고백 타임에 맥주를 입가로 가져가던 손을 멈칫했다.
“아마 내가 이 팀의 구멍이라는 사실을 회피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네 말에 반박하고, 네 말을 부정하면 내가 좀 나은 사람처럼 느껴졌거든. 우습지?”
드디어 이해하지 못했던 서예현의 행동 알고리즘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이해는 안 됐지만.
여기서 우습다고 대답하면 초심도 얼마나 깎이려나.
그런데 솔직히 좀 서예현 말대로 우습긴 했다. 해일이 몰아치는데 눈만 가리고 있으면 파도가 안 덮치냐?
“그렇게 자존심 세울 시간에 네 말대로 연습이나 한 번 더 할 걸 그랬다. 그랬으면 더 괜찮은 무대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서예현이 힘없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김도빈이 전에 말한 아이돌 빙의물의 법칙 어쩌고가 생각났다.
팀 내에서 제일 성질이 더러워서 팀 내 분란을 일으키는 그런 멤버 몸으로 한다고 했었나.
‘그렇게 성질 더러운 멤버가 찐으로 새사람 되어서 팀 분위기가 바뀌고 승승장구하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금 이 상황 아니냐……?
“미안.”
짧게 건네오는 사과는 그 의심의 화룡점정이었다.
“형.”
“어?”
내 진지한 부름에 맥주를 홀짝거리던 서예현이 나를 돌아보았다.
“형이 원찬스 후속곡 활동 잡혔을 때 안무 연습하면서 나한테 뜯어간 돈, 얼마야?”
“50만 원. 그러고 보니까 너 그거 70개월 무이자 할부로 갚는다면서 지금까지 한 푼도 안 갚았다?”
어라, 이거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다른 사람은 아닌데.
“그런 사소한 건 그냥 넘어가자.”
금전 관련 문제는 자연스럽게 넘기며 서예현을 빤히 마주 보았다.
회귀 전의 우리 둘 사이는 사석에서 서로에게 말도 걸지 않을 정도로 완전한 파탄이었다.
허구한 날 불화설 올라왔다고 막내에게 전해 듣고, 그게 사실인데 뭐가 어쨌다고, 그러면 내가 저 새끼한테 친한 척이라도 해야 하냐고 죄 없는 막내에게 쏘아붙이던 시절.
서로에게 상처와 스트레스만을 안겨 주다가 결국은 같은 그룹인데도 급의 격차마저 커져 버려 영영 서로를 이해할 기회조차 사라진 그 시절의 서예현과 나.
1회차 때의 내가 상상이나 했을까.
나랑 서예현이 이렇게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시며 비속어와 빈정거림, 언성 높이는 대화가 아닌 속마음을 깐 대화를 하고 있으리란 걸.
“네가 나 대할 때 나름 순화하려고 노력하는 거 알고 있어.”
서예현이 맥주캔을 흔들며 픽 웃었다.
“물론 가끔은 순화하지 않았으면 어느 수준의 막말이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저 인간은 정말로 의도치 않게 시스템의 수혜를 받은 자였다.
시스템 생각해서 말을 좋게좋게 해도 가끔씩 불화 조장으로 초심도가 깎이는데 필터링 없이 말했으면 얼마나 그 개복치 멘탈이 박살 났을지.
“그러니까, 나도 노력해야지.”
날 서 있지 않은, 편안한 얼굴을 마주하자 새삼 서예현의 외모가 S+라는 게 자각되었다.
[‘HIDDEN QUEST’ 열람 조건인 ‘사이 개선도가 가장 낮은 멤버와의 진솔한 대화’를 달성했습니다.] [HIDDEN QUEST] [▶멤버들과의 관계 개선하기-내용: 멤버들과의 진중한 대화와 배려하는 행동을 통하여 사이 개선도를 100%로 채워 보세요.
-보상: 초심도 20, 아이템 선택권
-기한: 2년
※100%를 달성하지 못할 시 ‘회귀’ 페널티가 존재합니다!] [▶멤버들과의 사이 개선도
-서예현(60%)
-견하준(91%)
-김도빈(47%)
-류재희(72%)]
지금 상태의 견하준도 100%를 못 채운 걸 다른 놈들은 어떻게 채우라는 건데?
그리고 이 와중에 김도빈은 왜 이렇게 낮아? 설마 헤드록 때문이야? 그럼 저 47%보다도 낮았던 서예현은 대체 어느 정도였다는 거야?
갑자기 회귀라는 페널티를 짊어지고 나타난 히든 퀘스트에 당황한 것도 잠시.
[※시스템 업데이트 안내※] [프로젝트 대상자의 지속적인 건의사항을 일부 수용하여 시스템 업데이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내용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