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9화(9/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9화
잘못 들었나 싶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벼 봤지만 대표님은 친절하게 말을 덧붙여 주기까지 했다.
“지금 새 곡 받아 오기는 시간이 좀 빠듯하잖아, 안 그래? 그리고 그 곡이 얼마짜린 줄 알아? 300만 원이다. 300만 원.”
앞 문장은 그냥 하는 말이고 뒤 문장이 진심이군.
유난히 300만 원을 강조하는 대표님의 말에 절로 벌레 씹은 표정이 나왔다.
아, 예. 그 쓰레기를 그 돈 주고 사셨다고요. 70만 원에 제발 사 달라고 애원해도 안 살 퀄리티의 곡을?
작곡가 놈한테 호구 잡혀서 눈탱이 맞은 게 참으로 자랑이십니다.
그리고 지금 <내 우주로 와>는 차트 저어기 밑바닥에 처박히고 가 겨우 차트인했는데 물 들어올 때 노 젓지는 못할망정 노를 아예 박살 내려고 그러시나.
앞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 올리며 말을 툭 던졌다.
“이번에 타이틀곡 제치고 차트인한 있잖아요. 현재 곡 추이도 후속곡 활동하기 나쁘지 않고.”
회귀 전이었던 7년 후는 후속곡 활동이 많이 죽었지만, 지금은 아직 후속곡 활동이라는 개념이 어색하지 않고 활발할 때다.
타이틀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후속곡에서 빵 뜬 경우들은 분명 존재했고, 나는 지금 바로 그 경우를 노리고 있었다.
가 차트인한 덕에 그 확률은 더 높아졌고 말이다.
“당장 사흘 후가 3주차인데 할 수 있겠어?”
“2주로 활동 단축하고 후속곡 활동을 일주일 건너서 하면 되죠.”
“흐음, 안무 만들고 무대 연습하고 하려면 일주일도 빠듯하지 않을까?”
아, 시발, 나왔다. 원하는 대답 나올 때까지 수동 질문 공격하기. 회귀 전에도 저 화법에 질리도록 당한 터라 절로 이가 갈렸다.
저 인간 한 대 치고 초심도 0으로 만들어 회귀해서 1주 차부터 무대나 짜?
왜 신은 저렇게 감 없는 사람에게 망하지 않을 만큼의 운을 줘서. 한번 망해 봐야 자기 선택을 되돌아보면서 정신을 차릴 텐데.
아, 그러면 우리도 같이 망하겠구나. 그 말은 취소.
“겨우 300만 원 아깝다고 그 몇 배를 벌 수 있는 기회를 날리는 건 좀 그렇잖아요?”
“아니, 그래도. 너희가 열심히 데뷔 무대 준비한 걸 내가 봤는데 지금까지의 노력이 아깝잖아. 열흘 준비하면 퀄리티도 어떻게 나올지 모르-”
“제가 어떻게든 멤버들 갈아서 데뷔 무대보다 더 좋은 무대 만들어 내겠습니다.”
계속 빙빙 도는 대화에 슬슬 짜증을 느껴 말을 자르고 단호하게 대꾸했다.
데뷔 초 기준으로 언제나 네네- 하던 내가 굽히지 않고 강경하게 나가자 대표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멤버들과의 불화를 조장하는 말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시발, 또 왜? 뭐? 대체 이번엔 뭐 때문에 이러는데?
절로 구겨지는 표정을 애써 펴고 서예현 쪽을 향해 턱짓했다.
“이미 제가 성공시킨 훌륭한 사례 하나 있잖아요?”
데뷔 전, 팀이 막 구성되었을 때 정말 얼굴만 잘생긴 목각인형이었던 서예현을 무대에서 아이돌 구실하게끔 만들었던 걸 언급하자, 대표님이 지그시 눈살을 찌푸렸다.
[멤버들과의 불화를 조장하는 말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아이고, 저 속 좁은 인간 때문에 겨우 얻은 초심도 다 깎이네.
손톱이 파고들 만큼 꾹 주먹을 쥐고 있는 서예현의 손을 힐긋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이제 저 인간 때문에 깎이는 초심도는 억울하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 한번 해 봐라.”
드디어 떨어진 긍정의 답에 한 시름 놓고 구겨진 표정을 폈다. 내가 또 우리 팀을 살리는 것에 한몫했군.
짧지도 길지도 않은 내부 회의가 무사히 끝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자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먼저 적막을 깬 건 나였다.
“뭐가 불만인데, 대체.”
내가 우리 팀 좀 1군으로 끌어 올려서 이 빌어먹을 회귀 좀 끝내겠다는데 왜 협조를 안 하냐고, 왜. 도움이 안 되면 적어도 내 발목이라도 잡진 말아야 할 거 아니야.
지긋지긋하다는 내 목소리에 서예현이 울컥한 표정으로 따져 들었다.
“넌 그걸 진짜 몰라서 물어?”
“어, 진심으로 몰라서 묻는 거니까 말 좀 해 봐. 형 실력 그만큼까지 끌어 올려 준 것도 나고, 지금 대표님 앞에서 들이받으면서 후속곡 활동 따낸 것도 난데,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만 했던 형이 불만이 왜 있냐고.”
내 빈정거림에 서예현이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진짜로…… 내가 그것 때문에 지금 너한테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냐?”
“그게 아니면 뭐 때문에 이러는데?”
[멤버들과의 불화를 조장하는 말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빌어먹을. 또 깎이는 초심도를 보며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렸다. 이러다가 또 회귀하게 생겼네.
“시발, 네가 그러고도 리더야? 이딴 식으로 굴 거면 리더 왜 맡겠다고 했냐?”
“아, 리더 자리가 탐이 나신다? 그러면 오늘 우리 망하라고 고사 지내던 대표님 앞에서 대거리 한 번이라도 해 보지 그랬어. 가만히 입 다물고 있지 말고! 우리 팀 위해서 총대 멘 게 누군데!”
“둘 다 그만해!”
분위기가 더 과열되기 전, 견하준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 나와 서예현을 떼어 놓았다.
“예현이 형, 진정해요. 이든이 너도 머리 좀 식히고.”
앞머리를 거칠게 헝클이며 떠미는 손길에 따라 두어 발짝 뒤로 물러났다.
1회차 때도 서예현과 이 정도의 다툼은 있었다. 다만 그 시간이 당겨졌을 뿐이다.
힐긋 고개를 돌리자 잘게 떨리는 불안한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두 동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뭐, 너희도 불만 있어? 불만 있으면 지금 당장 말하던가.”
“이든아.”
나를 말리듯 내 이름을 부르는 견하준에 꼭 붙어 있는 두 녀석에게서 시선을 떼고 거칠게 마른세수했다.
나도 두 녀석들에게까지 하는 건 그저 화풀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던 탓이었다.
띠링-.
문자 음이 무겁게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홀로 경쾌하게 울렸다.
[용철이형- 야. 크루애들 내 작업실로 모였는데 올래?] [용철이형- 형범이랑 세민이도 오랜만에 너 보고 싶단다]마침 이 엿 같은 분위기의 숙소도 벗어나고 싶었는데 잘됐네. 여기서 더 있자니 초심도만 계속 깎일 거 같고 말이지.
짧게 긍정의 답장을 보내고는 성큼성큼 현관으로 향했다.
“어디 가?”
“머리 좀 식히라며. 나가서 식히고 온다고.”
“야, 윤이든……!”
쾅!
제어장치가 고장 나 잡지 않는다면 거칠기 짝이 없게 닫히는 현관문이 굉음을 내며 닫혔다.
* * *
“여어, 탑100!”
“오늘 대박턱 내냐?”
“차트 100위 가지고 대박은 무슨…….”
용철 형의 작업실에 도착하자 언더에서 친하게 지내던 힙합 크루 형들이 캔맥주와 함께 나를 따스하게 반겼다.
술이 몇 캔 들어가자 어지간히 서러웠는지 방금의 사건이 입에서 줄줄 새어 나왔다.
“이야, 데뷔한 지 일주일 만에 불화로 해체 위기에 놓인 아이돌 그룹이 있다?”
“아, 그만 좀 놀리쇼!”
위로 대신 쏟아지는 놀림에 버럭 짜증을 내며 의자에 기댔다. 용철이 형이 그런 나를 보고 킬킬거렸다.
“우리 이든이가 눈치 안 보고 사는 건 알았지만 이건 좀 심각한데?”
“맞아, 인마. 아무리 그래도 단체 생활인데, 배려도 좀 하고 그래라.”
“아니,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 뭣 같은 노래로 계속 활동 안 하게 해 준 걸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얘 진짜 모른갑네.”
크루 형 하나가 입가로 가져가던 캔을 멈추고 혀를 찼다. 턱을 괴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던 용철이 형이 운을 뗐다.
“참, 이번에 우리 크루에서 음원 하나 낼 건데.”
갑자기 이야기하다 말고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싶어 눈을 깜빡이자 용철이 형이 덧붙였다.
“너도 참여하는 거로 이름 올려놨다.”
“엥, 나도?”
“왜? 싫어?”
술이 들어가서인지 생뚱맞은 흐름으로 흘러가는 대화를 따라잡기 힘들어서인지 지끈거리는 미간을 문지르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아니, 싫진 않은데 내 의견은 물어보고 나를 끼워 넣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러면 좀 곤란하지.”
“그래, 인마! 바로 그거야!”
용철이 형이 내 면전에서 손가락을 튕기며 외쳤다.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멀뚱히 얼굴만 보고 있자 한숨을 내쉰 용철 형이 물었다.
“너, 너희 멤버들에게 의견 물어봤냐?”
“…….”
“역지사지하니까 이제 알겠지?”
참고로 네 이름 사실 안 올려놨다며 용철이 형이 낄낄대면서 맥주 한 캔을 더 내밀었다.
“……겨우 의견 하나 안 물어본 거 가지고 마음 상해서 그 지ㄹ…… 난리를 떤 거라고?”
“방금 자기 의견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정색했던 놈은 누구시죠?”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입을 다물었다.
“우리만 해도 이런데, 앞으로 몇 년은 더 같이 동고동락해야 할 사이라면 어떻겠냐. 여기선 네가 막내여도 그쪽에선 리더잖아. 그러니까 더 배려해야지.”
용철이 형이 내 머리를 마구 헝클이며 덧붙였다.
아니, 타고 있으면 무조건 침몰하는 배에서 의견 안 듣고 멀쩡한 배로 갈아 태운 게 그렇게 잘못인가?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정리한 나는 맥주캔을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탁 내려놓았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됐지만 이해하기는 미뤄두고, 일단 지금은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형들, 노래 좀 듣고 평가해 줘. 우리 그룹의 운명이 담긴 차기곡임.”
“뭔 노래 하나에 운명이 담기고 난리야?”
“이거 망하면 3년간은 진짜 망돌 행이거든.”
마우스 더블클릭 몇 번에 음악이 작업실에 시끄럽게 퍼져 나갔다.
“어때?”
노래가 끝나고 찾아온 적막을 깨고 묻자 형들이 내가 들려준 곡을 들은 소감을 한마디씩 내뱉었다.
“벌스가 존나 애매한데?”
“어, 애매해. 귀에 때려 박히질 않아.”
“뭐랄까, 틀이 덜 잡힌 멜로디에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
오, 예리한데. 지금 이 벌스의 상태를 정확히 짚은 마지막 말에 속으로 감탄했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애매하다고 평가하는 걸 보아하니 이대로 상업 시장에 내놓으면 거꾸러질 게 자명했다.
자기들끼리 맥주를 마시며 낄낄거리는 형들을 등지고 의자에 멍하니 기대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동태눈깔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이거 팬 앞에서만 감지되게 업데이트는 안 되냐? 나 혼자 고민에 빠져 있을 때도 꼭 초심도를 깎아야겠어?
뺨을 짝짝 쳐 눈이 초롱초롱한 상태를 유지하며 고민에 빠졌다.
벌스 부분만 새로 작곡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작곡할 곡이 이 곡 하나가 아니니까.
‘시스템 이 자식은 이럴 때 도움을 줘야 하는 거 아냐? 예를 들면 기억 추출이라든지.’
그때, 내 투덜거림에 답변이라도 하듯 눈앞에 펼쳐진 상태창이 반짝반짝 빛났다.
[랜덤 티켓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es/No]랜덤 티켓이라면 이번 팬 1,000명 달성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 아니었나?
오, 도움 될 만한 걸 찾는 내 눈앞에 이렇게 들이밀어 준다는 건 자신 있다는 소리겠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써 보자. 초심자의 행운을 믿어 봐야지.
[아이템 ‘언젠가의 USB’가 나왔습니다!]툭, 낡은 USB가 내 손에 떨어졌다.
뭐지, 이건?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USB를 손안에서 굴리던 나는 일단 노트북에 연결해 내용물을 확인했다.
USB 안 폴더에는 mp3 파일 몇 개가 담겨 있었다. 하나씩 클릭해서 이름을 확인하던 나는 파일 하나에서 멈췄다.
All Right or Night(MR)_mp3(진짜_정말_레알로_최종)
내가 지금 구현시키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바로 그 곡의 제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