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9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91화(9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91화
아이돌의 먹방이란 자고로 팬심을 측정하기 좋은 도구였다.
먹는 것도 귀엽게 보이거나 복스럽게 먹는 것처럼 보이면 아직 내 돌을 향한 애정이 충만한 상태.
먹는 게 처먹는 거로 보이면 ‘아, 내가 애정도가 떨어졌구나’를 느끼고 슬슬 탈덕의 각을 재야 하는 상태.
그리고 그건 먹방을 보여 주는 아이돌에게도 달려 있었다.
식탐 부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드러나면 아웃.
게걸스럽게, 혹은 추잡스럽게, 너무 빨리 먹으면 아웃.
깨짝깨짝 입맛 떨어지게 먹어도 아웃.
입에 음식물이 있는 상태로 말하는 등 식사 예절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여도 아웃.
다행히 레브 멤버들은 다들 적당한 속도로 복스럽게 잘 먹는 편이었다.
김 모 양이 나름 걱정했던 예현도 샐러드만 먹지 않고 치킨(물론 닭가슴살 부위만 골라서 먹긴 했지만)도 먹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혼자 유난이라는 여론을 무사히 피해 갔다.
“뮤비 메이킹 필름에 나오지 않은 비하인드긴 한데, 이든이 형이 덩크 하다가 뒤로 나자빠진 건 약간의 연기가 첨가된 거예요.”
“맞아요. 처음 컷은 골대 닿지도 못하고 앞으로 엎어졌음요. 그러다가 골대 기둥에 머리 박을 뻔하고.”
[앜ㅋㅋㅋ 이 버전으로 가짘ㅋㅋㅋ] [이든이 인권도 지켜 줘아죠] [이든이 표정 해탈했다ㅋㅋㅋ] [나는 또 너무 멋있게 성공시켜서 팬서비스 컷으로 개그연출 했다고ㅋㅋㅋ]질세라 폭로전이 시작되었다.
“도빈이는 수영장 힘차게 뛰어들다가 옷이 벗겨졌-.”
“으아악! 안 들린다악!”
[위? 아래?]“재희는 스케이트보드 타다가 넘어진 거로 NG만 10번 났어요!”
“아, 왜 갑자기 팀킬을 해! 그리고 뮤비 메이킹 필름에 다 나왔죠? 저는 꿀릴 게 없죠?”
“그건 분량 문제로 3번으로 줄여서 나왔잖아.”
“그러는 도빈이 형은……! 형은……!”
“이미 이든이 형이 말했죠? 누구랑은 다르게 내 브레이킹에 실수는 없었죠?”
오디오의 70%가 막내 라인이긴 해도 김 모 양의 최애인 이든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도 적절히 대사를 쳐 주는 덕분에 불만은 없었다.
‘와, 애들 진짜 잘 먹는다.’
그토록 많아 보였던 음식들은 훅훅 줄어들고 있었다.
어째서 예현이 저녁 6시 이후 음식물 섭취 금지령을 내린 건지 이해가 갔다.
“1위 공약 중에 제일 힘들었던 거요?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공약. 재희, 무거웠어요.”
“어라, 저는 오늘 공약이 제일 쉬웠는데.”
“그렇겠지. 너는 업는 쪽이 아니라 업히는 쪽이었으니까.”
“저는 저 혼자 솔로 안무…….”
“왜요? 예현이 형 댄스 실력 엄청 늘었는데! 그쵸, 데이드림?”
“아, 김도빈 뿌듯해하는 거 봐.”
[무거운 것치고는 이든이 표정 평온하던데ㅎ] [도빈이가 댄스 가르쳐 준다더니 저 뿌듯한 스승의 미소 좀 봐봐ㅋㅋ] [스승의 날 때 도빈이한테 카네이션 달아줘라 예현아] [걍 트레이너좀 붙여라 ㅇ3 언제까지 애들한테 미룰건데]“지옥미궁 방문 콘텐츠 한 번 찍을 생각 없냐-. 지옥미궁이 거기죠? 일본에 있는 엄청 무서운 귀신의 집? 음, 저는 괜찮은데 준이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저도 후기 봤어여. 궁금하긴 한데 분명히 무서울 것 같고…… 그런데 또 한 번쯤은 가 보고 싶고…….”
[아 안 돼 도빈아 너 기절한다고! 형들이 업고 탈출해야 한다니까] [벌써부터 귀 아파 비명 소리 들리는 거 같아] [이야기만 들어도 이미 꿀잼ㅋㅋㅋㅋ]오랜만에 먹는 속세의 음식이 그렇게 맛있고 기뻤던 건지 레브 멤버들은 한껏 높아진 텐션을 자랑했다.
이제는 오늘 받은 1위 트로피를 꺼내 들어, 트로피 기념샷 촬영 과정을 재현하고 있었다.
“도빈아, 너 그렇게 한 번에 촬영 끝내는 스타일 아니잖아. 빨리 오늘 한 대로 포즈 열 개씩 취해 봐.”
“무슨 소리세요, 형. 저는 항상 한 번에 촬영 끝내는 프로 아이돌인데요.”
“와, 여기 증인이 넷이나 있는데 도빈이 형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거짓말하는 거 봐. 저 형은 연기를 시켜야 해.”
“저희 사실 이거 폭로하려고 트로피 기념샷 촬영 재현하려고 했어요. 도빈이가 이렇게 상큼하고 어색하지 않게 잘 나온 이 한 장의 사진 뒤에 얼마나 많은 수고가 담겨 있는지 알리기 위해서.”
[혹시 이거 음주방송인가요?] [이든이 대체 얼마나 시달린 거야] [사진촬영 대부분 이든이 담당이라 들었는데 도빈이한테 어지간히 시달린 듯ㅋㅋㅋ]곧 다가올 공백기를 오늘 다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 길게 이어지던 라이브 방송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애들아 벌써 끝내려는 거 아니지? 우리 아직 약속한 6시간 더 남았는데] [밤샘 콘텐츠 가자]아쉬움이 담긴 채팅이 휙휙 올라왔다.
김 모 양도 이만 보내 주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괜한 아쉬움에 가지 말라는 채팅을 남겼다.
깨끗하게 빈 음식 상자들 앞에서 레브가 손을 흔들었다.
“우리 데이드림 분들 심심하지 않게 자주자주 찾아뵙겠습니다.”
“내일도 올까요? 내일도 유제 만나고 싶은 데이드림 손!”
“Dream of me, 데이드림!”
“또 봐요. 안녕.”
“좋은 꿈 꿔요, 데이드림.”
-OA라이브가 종료되었습니다-
* * *
[HI-Light] 활동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박을 치며 성공적으로 끝나서였을까, 여전히 슬럼프는 현재 진행 중이었다.차라리 망했으면 절치부심해서라도 독기를 품고 어떻게든 곡을 짜냈을 텐데, 성공한 곡 그 이상으로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리니 더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너 진짜 DTB 나올 생각 없냐? 너 나오면 그림 존나 재미있어질 텐데.”
비트 뽑는 작업이나 도와 달라고 불려 간 G1의 작업실.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게 한 달 전이었는데, 그새 또 장비 몇 개가 최신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늘도 시그니처인 노란색 색안경을 쓴 채로 의자에 편히 등을 기댄 이지원이 툭 말을 던졌다.
망할 게 예정된 시즌인 ‘Drop The Beat 2’도 곧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오디션 공고는 이미 인터넷에 떴고 말이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영상을 업로드하는 게 1차 예선이고, 현장 2차 예선에서 참가자가 걸러진다.
순진한 우리 막내 라인들도 이걸 보고선 형도 한번 나가보라고 나를 부추겼었는데.
여기서 우승해 봤자 얻는 건 없다고 말해 줘도 이해를 못 하는 듯했다.
“와우, 벌써부터 반응이 예상 가는데요. 일단 디스전 지목은 만장일치로 받을 수 있겠네요.”
얼굴로 힙합하네-부터 시작해서 벌써 디스곡 가사도 몇 구절 떠오른다.
“너 프리스타일 강하다며. 일단 디스전에서 밟고 들어가면 2라운드는 껌이지.”
“아이돌 래퍼까지 투입해야 할 정도로 그렇게 전망이 심각해요?”
“이 새끼는 지도 아이돌 래퍼면서 은근 아이돌 래퍼 무시를 까.”
가벼운 타박에 다시 흑발로 돌아온 머리를 긁적였다.
“무시가 아니고 그림이 뻔해서 그렇죠. 뻔-해서.”
일부러 말 중간을 늘이며 대꾸했다.
힙합 자부심 강한 래퍼들 사이에 던져진 아이돌 래퍼. 어그로 및 언플용으로 아주 최고 아닌가.
“이 형 그렇게 안 봤는데, 저를 시청률의 제물로 던져 넣으려 하시네.”
밉지 않게 툴툴거리자 이지원이 픽 웃었다.
“나중에 생각 바뀌면 말해. 아직 촬영까지 시간 남았으니까. 내 재량으로 1차 예선은 통과시켜 줄게.”
“그거 어차피 인터넷으로 랩 영상 보내는 거잖아요. 현장에서 하는 2차 예선을 통과시켜 줘야지.”
“거기부터는 네 재량이지.”
그 대화를 끝으로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다행히 비트메이킹은 슬럼프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형은 슬럼프 온 적 있어요?”
내 물음에 턱을 괴고 마우스를 딸깍거리고 있던 이지원이 의자를 빙글 돌려 나를 돌아보았다.
“왜, 슬럼프냐?”
“비스 무리한 거?”
“슬럼프면 슬럼프지 비스 무리한 건 또 뭐냐.”
옆에 있던 비타민 음료를 집어 들어 마신 이지원이 고개를 짧게 저었다.
“글쎄다, 난 곡이 안 써지는 날은 있어도 슬럼프라고 할 만한 기간은 없었던 것 같은데.”
멘탈 한번 부럽네.
“형은 본인 히트곡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이 안 느껴지세요?”
“딱히. 별로 돈 벌려고 시작한 일도 아니라서. 만들고 싶은 노래만 만들면 됐지, 히트곡이 중요해?”
하긴, 저 인간은 회귀 전에도 자기만의 음악성을 굳건하게 지켰다.
이건 나도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내 스타일을, 내 음악성을 잠시 접어 두고 대중성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하고 싶은 음악을 해 볼 것인가.
회귀 전에 프로듀서 활동을 할 때, 내 스타일대로 만든 곡은 모두 중박 이상을 쳤다.
우리 그룹의 곡이 아닌, 어차피 다른 그룹에게 줄 곡이었기에 실패의 부담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으리라.
하지만 그때 만들었던 곡은 당시 곡의 주인들에게 돌려주기로 한 이상, 그 곡들이 중박 친 건 이제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은…… 김노담 대표님을 원망해라, 후배들아. 대신 좋은 노래로 보답하마.
물론 난 뭘 해도 중박 이상은 치겠지. 이제까지 쌓인 빅데이터가 증명해 줬으니까.
문제는 다음 활동이 이번 활동을 뛰어넘을 수 있느냐. 그리고 만약 뛰어넘는다 한들 그 성공에 짓눌리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회귀라는 페널티가 달려 있기에 신중해야 했다.
“하고 싶은 거 해, 하고 싶은 거. 곡이 안 써질 때는 하고 싶은 거 다 때려 박는 게 최고야.”
복잡한 표정이 된 내게 이지원이 충고했다.
하고 싶은 거…… 충고를 되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여행이라도 다녀오면서 머리 좀 식히던가.”
“그렇지 않아도 내일 여행 가는데요.”
“오, 어디로?”
“제주도요. 그런데 아마 편하게 쉬지는 못할걸요. 촬영차 가는 거라. 힐링 여행이라고는 하는데 카메라 앞에서 얼마나 편하게 있겠어요.”
“연예인 부럽네. 힐링 여행하라고 공짜로 제주도도 보내 주고.”
이지원이 킬킬거렸다. 말에 가시는 없는 터라 나 역시 장난식으로 맞받아쳤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데뷔해 보시는 건? 아직 나이 앞자리가 3은 아니시니까 희망은 아직 남아 있슴다.”
“짜식이 누구 놀리냐.”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리는 손길을 가만히 받고 있다가 밥이나 먹으러 가자는 말에 몸을 일으켰다.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있냐?”
“국밥이나 먹죠.”
“쓰벌, 너도 국밥충이냐…….”
* * *
다시 숙소로 돌아오자 내일 제주도 여행 준비가 한창이었다.
“형, 제주도 갈 때 여권 필요해요?”
“인터넷에 물어봐.”
“여권은 필요 없고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은 챙겨야 한다는데요? 그런데 저 아직 18살이라 민증 안 나왔음요.”
“푸하하! 민증도 없냐? 나는 1월에 나왔는데!”
“그러면 막내는 여권 챙기자.”
“기왕이면 매니저 없이 우리끼리 다니는 거 찍고 싶다는데? 운전 가능한 사람 없으면 어쩔 수 없고. 운전면허 있는 사람?”
“나.”
당당하게 손을 들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운전면허를 딴 보람이 있었다.
현재 레브의 운전면허 보유자는 나랑 견하준. 그리고 견하준은 당연히 장롱 면허였다.
“장롱 면허 아니지? 너 운전 잘할 수 있지?”
“거참, 별걱정을 다 하네.”
서예현의 불안감 담긴 물음에 자신 있게 고개를 까딱했다.
회귀 전에도 차 뽑아서 잘 타고 다녔는데, 뭐. 무사고 경력 7년의 운전 실력을 보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