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9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92화(9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92화
“비행기 탈 때 신발 벗어야 하는 거 알지?”
“와, 언제적 고리짝 고전 구라죠? 그거 믿는 사람 카드캡터 체리 말고 있음요?”
“시꺼, 민증도 안 나와서 여권 들고 제주도 가는 녀석아.”
민증과 운전면허증이 지갑에 잘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농담 한 번 안 받아쳐 줬다가 졸지에 타박만 먹은 류재희가 투덜거렸다.
“형은 지금 세상의 모든 만 17세 이하를 무시하신 거예요.”
“아니,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건데? 그리고 너 올해 고2니까 18살이잖아. 그러면 만 17세 아니야?”
“생일 안 지났잖아요. 형은 제 생일도 몰라요?”
“9월…… 몰라, 인마.”
“저도 형 생일 기억 안 할 거예요.”
“어어, 8월 1일.”
서예현이 대체 무슨 대화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짐가방을 챙겨 쓱 우리 옆을 지나갔다.
“형, 그런데 운전면허 몇 종이에요?”
“당연히 1종 보통이지. 너도 나중에 따면 1종 보통으로 따라.”
“왜요?”
“2종이랑 오토는 가오가 안 살잖아.”
“전 그냥 쉬운 거 딸래요.”
짜식이, 기껏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를 해 주니까.
이건 2월 중순에 촬영이 끝났던 <마이돌 관찰카메라>에서 보내 주는 여행이었다.
<마이돌 관찰카메라> 측의 제작 일정상의 문제로 약속했던 힐링 여행 대신 서울 근교의 촬영장에서 에필로그를 찍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우리 측도 컴백 준비네 뭐네 하며 바빴고 <마이돌 관찰카메라> 측도 새로운 아이돌을 컨택하느라 바빴다.
아무튼, 그래서 리얼리티 촬영이 끝난 지 2달 반 만에 다시 찍는 에필로그였다.
방영 기간이 아니어서 이건 케이블 방영은 안 되고 레브 너튜브 공식 계정에만 올라갈 예정이었다.
뭐, 대충 ‘약속 지킨 마이돌 관찰카메라’라는 제목을 달고 올라가겠지.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제작진의 안내를 받아 공항을 빠져나가자 렌트카가 보였다.
승용차는 다섯 명이 타기에 충분했고, 차 안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미리 목적지를 제작진에게 넘기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경치가 예쁘기로 유명한 해수욕장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챙겨 온 선글라스를 썼다. 조수석에 탄 류재희는 제가 드라이브 전용 플리를 만들어왔다며 바로 블루투스 스피커와 제 폰을 연결했다.
“4인이었으면 오픈카 뚜껑 딱 열고 달렸을 텐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여. 한 명 낙오시키고 오픈카 빌리죠.”
“아니, 늦었어.”
김도빈이 더 헛소리하기 전에 운전대를 잡고 차를 출발시켰다.
한참을 달려 해안도로에 진입하자 류재희가 튼 청량하고 신나는 멜로디의 노래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나도 잘 아는 팝송이었다.
대체 왜 진작 안 틀고 지금 와서 트냐 물으니 원래 이런 건 해안도로에서 바다 풍경을 보며 틀어야 한단다.
무어라 하기도 귀찮아 한 손으로 운전대를 부드럽게 꺾으며 음을 흥얼거렸다.
“나도 스무 살 되면 바로 운전면허 따야지.”
탁 트인 해변가 풍경은 안 보고 나를 보며 류재희가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선글라스를 쓱 올리며 키득거렸다.
“왜, 형 운전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냐?”
류재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랑 함께 따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운전면허를 딴 견하준이 물었다.
“이든이 너, 어디에서 운전 연수라도 받았어?”
“노코멘트.”
회귀 전에 차 뽑아서 잘 타고 돌아다니긴 했지. 아, 새로 뽑아 놓고 몇 번 타지도 못한 그리운 내 페라리여.
“나도 면허 따야 하는데.”
“원래 스물한 살까지가 마지노선이야. 그때 안 따면 그 후로도 쭉 안 따더라.”
스물두 살 먹었는데도 아직도 무면허인 맏형의 말에 적당히 대꾸해 주고는 다시 노래를 흥얼거렸다.
한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탁 트인 푸른빛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햇빛을 받아 빛무리가 부서지듯 반짝거리는 파도를 두 눈 가득 담았다.
아직 성수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해변에 사람은 많이 없었다. 5월 초입이라 날씨는 봄과 여름의 중간이었다.
류재희와 김도빈이 제일 먼저 모래사장에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지고는 바지를 걷고 바닷물을 향해 뛰어갔다.
설마 옷을 입은 채로 입수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여기까지 와서 발 한번 담그고 가지 못하면 아쉬울 것이란 감정과 발 담그고 난 후 맨발에 잔뜩 묻을 모래가 귀찮으리란 감정이 충돌했다.
그냥 모래사장에 앉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자 서예현이 내 옷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다섯 명이 다 같이 발이나 한번 담그고 가자.”
나랑 같이 바닷물 안 들어가는 파일 줄 알았는데 웬일이래.
내가 눈을 깜빡이며 저를 쳐다보자 서예현이 볼을 긁적였다.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바닷물 한 번 안 들어가기엔 아깝잖아. 2월에 갔던 속초 바다에서는 발도 못 담그고 왔던 게 아쉽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마이돌 관찰카메라 촬영 첫날 회의에서 바다 이야기를 꺼냈던 것도 서예현이었지.
그 말에 못 이기는 척 신발과 양말을 훌훌 벗어 던지고 바지를 걷었다. 뒤처리는 미래의 윤이든이 알아서 하겠지.
서로에게 물을 뿌려 대며 기어이 옷을 바닷물로 적시는 막내 라인을 보며 혀를 차다가 바닷물을 향해 한 발짝 걸음을 내디뎠다. 시원한 바닷물이 발을 적셨다.
“저 형은 왜 혼자 화보를 찍냐.”
해풍이 불어와 지평선을 보고 있는 서예현의 머리를 부드럽게 흐트러뜨리자 영상 화보 한 편이 뚝딱이었다.
내 중얼거림에 견하준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팔 티 위에 가볍게 걸친 남방 자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있으니 슬럼프 때문에 답답했던 속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평화로우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그러게. 금방이라도 누구 하나 바닷물에 입수시켜서 방송 분량 뽑아야 할 것만 같은데.”
견하준의 말에 대꾸하며 눈을 살짝 감았다. 선선한 날씨. 종아리를 살짝씩 치고 지나가는 파도. 그리고 내 얼굴에 튀는 바닷물…….
“재희야, 도빈아. 재밌어?”
“헉, 이든이 형, 그게요…… 고의는 절대 아니고요…….”
“악, 형! 몇 방울과 손으로 퍼담아 끼얹는 건 무게가 다르지 않을까요?”
장난치다가 나한테까지 물을 튀긴 막내 라인의 머리에 바닷물을 부어 주고 있는데 제작진이 우리를 불러 모았다.
“저희가 낚시 체험과 승마 체험을 준비했거든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완전히 자율 여행은 아니군.
“낚시 체험은 인원이 두 명이고요, 승마 체험은 세 명입니다.”
“저희가 원하는 대로 가나요? 아님 게임으로 정하는 거예요?”
“원하는 대로 가시면 됩니다. 그런데 만약 숫자가 한쪽으로 몰린다면 불가피하게 조정을 해야겠죠.”
나랑 견하준은 낚시를 택했고, 나머지 셋은 승마를 택했다. 덕분에 수를 조정할 필요는 없었다.
낚시를 택한 이유는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워 놓고 바다를 구경하며 사색에나 빠져 볼까 해서다.
그렇게라도 쉬는 거지. 승마는 일단 말 위에 올라탄 이상 긴장을 못 놓잖아.
식당에서 다 같이 점심을 먹고, 각자 선택한 체험에 따라 갈라져 촬영팀과 차를 나눠 탔다.
차는 한참을 달려 배들이 모여 있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제작진이 예약한 배에 올라타 구명조끼를 입고 낚시 스팟에 도착해 간단한 낚시 방법 설명을 들었다.
다행히 나랑 견하준 둘 다 뱃멀미는 없었다.
미끼를 낚싯바늘에 꿰고 바다에 던진 후 가만히 서서 바다를 바라본 지 1분. 낚싯대가 마구 요동쳤다.
그걸 서막으로 내가 원했던 유유자적한 강태공 체험기가 아닌, 극한 직업-낚시 편이 시작되었다.
“뭔데? 왜 계속 잡히는데?”
계속해서 잡히는 물고기를 열심히 물이 채워진 양동이 안으로 던져 넣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저는 이런 낚시를 원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원했던 건 강태공같이 느긋하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기다림의 미학을 느끼는…… 으아악, 또 잡혔어!”
나를 찍는 카메라에 대고 말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다시 물고기가 잡혔다.
“큰 것만 잘 골라서 잡는구먼. 낚시 좀 해 봤는가?”
양동이를 슬쩍 본 선장님이 껄껄 웃으며 쓱 지나갔다.
오히려 내가 원하는 낚시 체험기는 견하준이 하고 있었다.
난간에 낚싯대를 기대어 놓고 턱을 괸 견하준이 권태로운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각오는 했지만 하나도 안 잡히니까 역시 지루하네.”
“준아, 그럼 나랑 자리 바꿀래? 아니, 낚싯대도 바꿀까, 우리?”
나는 권태를 느낄 시간도 없이 낚싯줄만 열심히 감아대고 있었다.
자리의 축복과 템빨의 축복을 모두 차단해 봤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배에서 내린 내 손에는 오늘 잡은 생선이 가득 든 봉지가 들려 있었다.
필생즉사 필사즉생도 아니고. 잡고자 하면 잡히지 않을 것이고 잡지 않고자 하면 어복이 터질 것이다, 이거냐?
“……난 분명히 쉬려고 낚시를 선택했는데.”
“난 좀 많이 낚아 보고 싶었어.”
나란히 걸으며 중얼거리다가 둘 다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왜인지 웃겼던 터였다.
선착장 앞 식당에서 생선을 손질하고 숙소로 가는 차에 탔다.
숙소는 깔끔한 독채 펜션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승마 멤버들이 우리를 반겼다.
“형들, 낚시 재미있었어요?”
“아니, 한두 마리밖에 못 낚았어.”
견하준이 고개를 짧게 저으며 대꾸했다. 내게서 봉지를 받아 든 류재희가 봉지 가득 든 회와 매운탕 거리를 보고선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헐, 그럼 이 회는 다 뭐예요?”
“이 형아가 잡아 온 거. 참고로 매운탕 거리도 있다.”
“하준이 형 몫까지 이든이 형이 다 잡은 거 아니에요?”
어어,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승마는 재미있었냐는 물음에 10분간 승마 썰을 풀어 놓는 류재희를 보며, 괜히 물어봤다고 후회했다.
저녁은 펜션 앞마당에서 바비큐 파티였다. 거기에 내가 잡아 온 회를 곁들인. 참돔이랑 옥돔 회도 있었다.
“윤이든! 고기 가져가!”
고기 굽기 담당은 의외로 서예현이 자진해서 맡았다.
어차피 안 먹을 거니까 고기 굽는 역할이나 맡겠단다.
그는 카메라 앞이라 조금 먹으라는 소리도 못 하고 묵묵히 우리에게 고기를 구워 주고 있었다.
서예현은 옆에서 류재희가 회와 채소 가득 넣은 쌈을 입에 넣어 주는 것만 몇 개 받아먹었다.
“저희, 설마 또 고립되는 건 아니겠죠…….”
“괜찮아. 지금은 5월이야, 도빈아. 눈이 올 리가 없잖아.”
고기 먹다 말고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김도빈을 향해 견하준이 선수 쳐 단호하게 말했다.
라면을 넣어 매운탕까지 야무지게 먹어 치운 우리는 뒷정리를 마치고 다시 펜션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카메라 앞에 모여앉아 자기 전까지 할 만한 걸 정했다. 사실상 방송 분량을 뽑기 위함이었다.
펜션에는 부루마블 등의 보드게임도 있었고 트럼프 카드와 나랑 견하준에게 아픈 기억을 심어 주었던 할리갈리도 있었다.
“그거 한 번 해요!”
류재희가 손을 번쩍 들고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야자 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