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9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93화(9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93화
레브 멤버들의 나이 순서는 생일순으로 나열하면 서예현-견하준-나-김도빈-류재희.
나는 나름 연장자 라인에 속해 있긴 했지만, 생일까지 정확히 고려한 나이순으로 치면 딱 중간이었다.
만약 견하준이 빠른 연생으로 학교를 일찍 갔으면 견하준은 서예현과 묶여 동갑즈라 불리고 있었을 테고, 나는 견하준을 형이라 불러야 했겠지.
하지만 현재 나는 견하준과는 동갑이며 서예현하고는 이미 말을 까고 있었기에 야자 타임은 내게 의미가 없었다.
야자 타임의 묘미가 뭐냐. 평소에 하지 못했던 하극상을 ‘뒤끝 없음’이란 조건을 붙여서 마음껏 해 보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나는 레브에서 하극상을 할 상대가 딱히 없다니까?
내가 야자 타임을 하며 얻는 건 오직 막내 라인 놈들이 찍찍 내뱉는 반말을 들으며 드는 인내심과 빡침뿐.
야자 타임을 하는 순간 윤이든 개손해 세계관이 구축되는 거다.
가장 막내가 되어야 하는 서예현 역시 영 당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팀 내에서 둘째라 밑에 서예현 하나는 깔고 가는 견하준은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야자 타임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하극상이 너무나도 하고 싶다고 온몸으로 표출하는 막내 라인밖에 없었다.
하지만 PD님은 괜찮다고 판단했는지 우리에게 진행시키라는 신호를 보냈다.
“네, 좋네요, 야자 타임…… 나이 때문에 가로막혔던 서로의 진솔한 속마음을 알아보고자 야자 타임 한 번 가 보겠습니다.”
자본주의의 노예인 나는 그저 까라면 까야 할 뿐.
“타임은 10분으로. 아무리 야자 타임이어도 서로에게 선 지키는 건 잊지 말고. 뒤끝 부리지도 말고.”
“에이, 10분은 너무 짧은데요. 1시간!”
“그래, 많이 봐줬다. 20분.”
“30분도 아니고 20분?”
“아직 야자 타임 시작 안 했다, 도빈아.”
“30분도 아니고 20분이라니요.”
“5분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 인마.”
단 1초의 초과도 용납할 수 없었기에 휴대폰으로 정확히 20분 타이머를 맞추어 놓았다.
“시작!”
시작 선언이 떨어지자마자 류재희가 대뜸 나를 불렀다.
“이든아.”
나를 부른 놈은 아무렇지 않아 하는데 옆에 있던 김도빈이 더 식겁했다.
“우리 이든이, 형 말에 대꾸도 안 하네?”
시발, 재희야. 내가 너를 얼마나 오냐오냐 잘 대해 줬는데 시작부터 이렇게 나오기 있냐?
이미 서예현은 입을 틀어막고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네, 형.”
순순히 대답하자 서예현은 이제는 아예 바닥을 치며 오열했다.
“예현아, 웃겨?”
어금니를 깍 깨문 채로 묻자 겨우 웃음을 멈추고 눈에 맺힌 눈물을 쓱 닦아 낸 서예현이 즉답했다.
“아니요.”
“이든아, 예현이에게 왜 그래. 아무리 예현이가 막내라지만 막내한테도 웃을 자유는 줘야지.”
아주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자연스럽기 그지없게 술술 흘러나오는 반말에 기가 막혔다.
누가 보면 대본이라도 미리 작성해 온 줄 알겠다.
어쩐지 바로 야자 타임을 외치더니만 벼르고 있었구먼.
“이든이, 맨날 작업실 갔다가 새벽에 들어오던데.”
“아, 네. 일찍 일찍 다니겠습니다.”
“아니, 탓하려는 건 아니야. 일찍 다니면 좋지. 음, 그래. 항상 팀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걸 알고 있으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마.”
그래도 카메라가 있다고 선은 지키는군. 내 콘셉트가 동생들에게 평상시에는 져 주는 리더 롤이라 다행이다.
씩, 장난스러운 미소를 얼굴에 걸치며 류재희가 말을 이었다.
“도빈이가 요즘 작사랑 작곡에 흥미를 보이거든. 자꾸 이든이 프듀멤 자리를 넘보는데 정 힘들면 이든이가 도빈이 키워서 보조로 써먹어도 되고.”
“재희 형? 왜 저를 메인도 아니고 보조로 써먹으라고 하시는 거죠?”
“메인은 당연히 이든이가 해야지.”
“제게 의외의 재능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요?”
당당한 말에 짝짝 박수를 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도빈이. 그렇게 안 봤는데 야망 있네.”
“어유, 야망이라니. 그 정도는 아니고.”
김도빈이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내 등을 두드린 류재희가 또 내게 말을 걸었다. 아직 할 말이 더 있었나 보다. 빨리 다음 타깃으로 넘어가 줬으면 했다.
“그리고 이든이는 다 좋은데 웃고 좀 다니자. 무표정으로 돌아다니면 흠칫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타고난 인상으로 그러시면 제가 좀 섭섭하죠?”
“물론 이든이 네가 기분 나쁜 티를 내는 게 아니고 타고난 인상이 그런 건 아는데, 그래도 사람이 웃어야지 복이 오지. 스마일- 한번 해 봐.”
내게 웃음을 종용하는 류재희의 말에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휴대폰 타이머를 확인했다.
뭔 놈의 시간이 5분도 안 지났어?
이럴 줄 알았으면 20분은 개뿔, 10분으로 무조건 우길 걸 그랬나 보다. 아니, 10분도 길다. 5분.
“다음으론, 하준아.”
내게 할 말은 끝났는지 타깃은 무사히 견하준으로 넘어갔다.
“부르셨어요, 형?”
“항상 팀을 위해서 마음 써 주고 신경 써 줘서 고마워. 하준이는 정말로 우리 레브의 엄마 같은 사람이야.”
웬일로 감동적인 말만 하는가 했더니 그건 다음 말을 위한 빌드업이었다.
“그런데 가끔 밥에 콩 넣는 건 자제해 줬으면 좋겠어. 나는 콩밥이 싫어.”
“맏형이 돼서 편식하면 안 되죠.”
“맏형이랑 편식은 상관관계가 없지. 안 그래, 예현아?”
눈치 빠른 녀석답게 류재희는 적당히 칭찬과 투정을 섞어 감동과 재미 포인트를 모두 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든이가 콩밥 싫다고 즉석밥 돌려먹을 때는 뭐라고 안 하면서 나도 즉석밥 먹는다고 하면 편식은 나쁜 거라고 콩밥 퍼 주는 거 너무 서러워.”
“재희 형 키 크라고 그렇죠.”
“이든이도 먹고 190cm 찍으라 해.”
저 자식이 기어이 나까지 콩밥 지옥에 끌고 가려 하다니. 내가 슬쩍 저를 돌아보자 류재희가 뻔뻔하게 웃었다.
“예현아.”
저보다 네 살 어린 막내의 반말이 영 적응이 안 되는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서예현이 부름에 대꾸했다.
“원래부터 열심히 하긴 했는데 요즘은 엄청 열심히 연습하더라. 이든이가 되게 뿌듯해하던데.”
“이 정도에 ‘엄청 열심히’라는 단어를 붙이기는 좀 부끄럽죠.”
류재희의 칭찬에 서예현이 쑥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뉴 안무의 창시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우리 예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이 형도 너무 기뻐. 다음 활동에는 레브가 칼군무를 보여 줄 수 있는 수준까지 가 보자.”
훈훈한 덕담과 칭찬에 서예현이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침에 급할 때 샤워는 30분 내로 끝내자. 지금은 그래도 화장실이 두 개라서 그나마 괜찮은데. 옛날 숙소에 화장실 하나였을 때는 진짜 그냥 화장실 문 열고 들어가고 싶었어.”
그 말에 나머지 세 멤버들 역시 모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노력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머쓱하게 뒷머리를 쓸어 올리며 서예현이 대답했다.
“그래, 샤워는 좀 15분 내로 끝내자. 10분까지는 바라지도 않을 테니까.”
나도 슬쩍 한 마디 얹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도빈이!”
여기도 원래 서로에게 할 말 다 하고 사는 조합이라 스펙타클한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오우, 재희 형. 저는 형이 무슨 말을 하시든 겸허히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정말? 안 삐칠 자신 있어?”
그 물음에 김도빈이 당당하게 제 가슴을 두드렸다.
“당연하죠. 누굴 속 좁은 사람으로 아시고.”
곧바로 류재희가 공격에 들어갔다.
“우리 도빈이 개그 진짜 노잼이야.”
“네, 형한테 맨날 듣는 말이라 타격 제로에여.”
“형은 우리 도빈이가 눈치를 좀 키웠으면 좋겠어.”
“그건 맨날 듣는 말 수준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듣는 수준이군요. 이번에는 기본 공격 타격만 들어갔죠? 그럼 이제 얼른 칭찬 부탁드려요.”
초롱초롱한 김도빈의 눈빛을 마주한 류재희는 내가 저한테 하는 것처럼 김도빈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그렇지만 눈치랑 개그 빼면 우리 도빈이는 레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메인댄서야.”
“이게 끝?”
“응, 이게 끝.”
적당히 센스 있게 야자 타임을 마친 류재희가 김도빈에게로 순번을 넘겼다.
“야, 윤이든!”
패기 있는 외침과는 달리 내가 저를 쓱 쳐다보자 김도빈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그, 그냥 불러 봤어…….”
“그러시면 다른 사람들이 제가 눈치 줬다고 오해하잖아요, 형.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자애롭게 웃으며 말하자 김도빈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뭐, 항상 고맙다고…….”
그러면서 견하준과 서예현한테는 할 말을 잘만 쏟아 냈다.
“우리 제자! 난 진짜 요즘 너무 뿌듯해! 나 원래 이든이 같은 먼치킨캐만 선호했는데 왜 사람들이 성장캐에 미치는지 예현이 보면서 좀 알 것 같아.”
무어라 반응을 해 주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는 서예현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겨우 삼켰다.
나, 견하준, 서예현, 이렇게 형 라인 셋은 평소에도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아왔기에 야자 타임에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예현아……?”
“네, 하준이 형.”
“야, 예현아. 서예현.”
“예에, 부르셨어요, 이든이 형?”
그저 우리를 형이라고 부르는 서예현의 모습만 즐길 뿐.
“예현아, 왜 우리 키 똑같다는 말에 맨날 반박해? 우리 키 똑같은 거 맞잖아?”
“180.2cm랑 180.3cm가 같진 않죠?”
“나 이제 180.3cm인데?”
“뭐? 진짜? 언제 쟀는데?”
“오, 예현이. 형한테 말 놓는 거야?”
“진짜요? 아니, 잠깐. 생각해 보니까 형도 나한테 말을 놓는데 왜 나는 말을 높여야 하는지?”
타임 오버를 알리는 타이머가 요란스럽게 울리며 야자 타임도 끝이 났다.
“끝, 끝!”
나보다 서예현이 먼저 선수 쳐 격렬하게 팔을 휘저으며 끝을 선언했다.
합법적 하극상 시간이 끝나버린 막내 라인들은 잔뜩 아쉬운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나를 포함한 형 라인 셋은 이제야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편히 늘어졌다.
“이 야자 타임은 뒤끝 없이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시간으로 흘려보내겠습니다.”
“그래도 콩밥은 싫어요, 하준이 형.”
“키 크려면 먹어야지.”
류재희의 투정에도 견하준은 단호했다.
방송 분량 뽑게 부루마블이나 하자며 보드게임 판을 깔기 전에 카메라가 잠깐 꺼지자 류재희가 바로 키득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
“카메라 앞이라서 입가에 경련 일어나면서도 웃으며 얌전하게 고개 끄덕이던 형들이 너무 웃겨서?”
머리를 거칠게 헤집어 주고는 다 깔린 부루마블 판 앞에 앉았다.
“아, 무인도 걸렸어!”
“오예, 통행료 내시고요!”
“나 뭐 했다고 벌써 파산……?”
“이게 진짜 다 내 땅이었으면 나는 세계 재벌이었을 텐데.”
“형들, 저 성인 되면 주루마블 해요. 주루마블!”
“까먹으니까 2년 후에 다시 이야기해.”
그렇게 제주도에서의 밤이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