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9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94화(94/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94화
사활을 건 보드게임이 끝나고,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주사위를 휙 내던진 류재희가 제안했다.
“형들, 카메라 없는 진솔한 야자 타임 어때요?”
“와우, 거기서 더 진솔할 수가 있어? 정말 충분히 진솔했는데?”
부루마블 판을 정리하며 대꾸하자 김도빈이 옆에서 깝죽거렸다.
“카메라 앞이라서 자제한 거지 저는 형들이 이걸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 두시지만 않는다면야 진솔한 야자 타임을 가져 볼 의향이 있어요.”
“얘들이 은근슬쩍 하극상을 계속 시도하네? 20분 야자 타임 체험하고 하극상 맛 들렸어?”
[멤버들과의 불화를 조장하는 말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누구냐. 류재희냐, 김도빈이냐. 말 어미도 ‘~냐?’에서 ‘~어?’로 틀어가면서 기껏 순화해 줬더니만 누가 또 삐쳐서 내 소중한 초심도를 깎이게 만든 거냐.
“너는 365일 하극상이잖아.”
서예현이 심드렁하게 말을 얹었다.
진짜 제대로 된 하극상이 뭔지 한번 보여 줄까 하다가 그렇지 않아도 방금 깎인 초심도와 2년 안에 100%로 만들어야 하는 사이 개선도를 생각해서 단념했다.
내일도 일정이 있었기에 그놈의 야자 타임은 올지 장담하지 못하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취침 준비를 했다.
독채 펜션 수용 인원이 기본 4인이라 침대는 더블 침대 두 개였기에 한 명은 불가피하게 바닥에 침구를 깔고 자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앞서 한 부루마블은 바닥에서 자야 하는 그 한 명을 정하는 게임이었다.
괜히 게임에 사활을 건 게 아니었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오늘 부루마블의 패배자 서예현이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바닥에 깔린 침구를 내려다보았다.
참고로 나는 가장 많은 돈을 따냄으로써 할리갈리에서의 치욕을 오늘 자로 설욕했다.
“나 바닥에서 자면 불편하고 허리 아파서 못 자는데.”
아무리 7년간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지만 서예현이 바닥에서는 절대 못 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꼴깝이나 투정 정도로 생각했는데, 진짜 잠 못 들고 계속 뒤척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세상은 넓고 저런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넘어갔다.
“그럼 나랑 잠자리 바꾸던가.”
그런 서예현에게 친절한 제안을 건넸다.
나는 어쨌든 서예현과의 사이 개선도를 올려야 했고, 서예현은 편안한 잠자리를 얻을 수 있으니, 따지자면 서로에게 WIN-WIN이었다.
나는 예민한 몸뚱어리의 소유자인 누구누구와 다르게 아무 곳에서나 잘 잤기도 하고 말이다.
머리만 누일 수 있으면 잠자리지, 뭐.
서예현이 놀란 눈으로 나를 휙 돌아보며 물었다.
“진짜……?”
“속고만 살았나. 편하게 자라고. 바닥에서 잠 못 잔다며.”
관계 개선도가 1% 올랐다. 서예현이 이런 거로도 감동받는 멘탈 개복치라 참으로 다행이었다.
적어도 2년 후에 관계 개선도 때문에 강제 회귀할 일은 없을 게 아닌가.
서예현의 얼굴과 더불어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구석이었다.
기꺼이 내 침대를 양보하고는 침대 옆에 깔린 침구에 드러누웠다.
막내 라인 녀석들은 복층에서 자고 싶다며 복층 침대로 달려간 지 오래였다.
불빛이 있으면 잠들지 못하는 견하준을 위해 침대 옆 무드등의 불까지 모두 끄고 셋은 나란히 잠자리에 누웠다.
푹신하고 편한 침대에서도 뒤척거리던 서예현이 내 쪽으로 고개 돌려 나직하게 나를 불렀다.
“야, 윤이든.”
“왜 불러?”
“안 불편해?”
“딱히.”
짧게 대꾸하고 눈을 감았다. 조금 지나지 않아 또 서예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진짜 안 불편하지……? 등이 배기진 않고……?”
“어어.”
대충 맞받아치고 휙 등을 돌리자, 잠시 후에 또 서예현이 안절부절못하는 목소리로 내게 물어 왔다.
“정말 안 불편해? 거기서 잠잘 수 있을 거 같아?”
“아, 그렇게 신경 쓰이면 형이 내려와서 자든가!”
버럭 소리 지르자 곧게 누워 있던 견하준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제발 입 좀 다물고 자라는 무언의 의사표시였다.
슬쩍 동시에 견하준의 눈치를 보던 우리 둘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고요하게 밤이 지나갔다.
지난번 속초 귀신의 집 산장에서와는 달리 참으로 고요한 밤이었다.
눈이 안 오는 것도 한몫했다. 아무리 침구를 깔았다 한들 바닥이어서 안락한지는 모르겠지만.
* * *
제주도 2일 차 일정은 관광지 방문과 요트 투어였다.
내가 운전하는 차로 유명 관광지 몇 군데를 돌아다니고, 마지막으로 노을 지는 타임에 예약해 놓은 요트 투어를 하는 거로 일정이 끝날 예정이었다.
“중학교 수학여행으로 왔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한데 이렇게 형들이랑 같이 오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와,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갔어? 우리 학교는 지원금 어디에다가 삥땅 쳤는지 3년 내내 수련회였는데. 너네 샤워하다가 물 끊겨 봤냐? 섬이라 물 부족하다고 사람 샤워하고 있는데 물 끊더라. 내 친구 샴푸질하고 있었는데 물 끊겨서 소리 질렀잖아.”
“와우, 그 정도 수준의 시설이면 일부 삥땅 친 수준이 아니라 싹 다 횡령한 거 아니에요? 학교에서 뭔 그런 데를 데리고 가?”
“내 말이. 시설 수준이 딱 우리가 돈 받고 가야 할 수준이었다니까. 낮에는 찜통이고 밤에는 얼어 뒤지겠고, 방에는 개미 나오고, 이게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를 않는다, 진짜.”
관광지에서 학창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고,
“아, 도빈아! 떨지 말고 포즈 좀 잘 잡아 보라니까!”
“바다로 떨어지면 어떡하는데요! 지금 이거 찍는다고 구명조끼도 벗었잖아요!”
“돌겠네, 진짜. 그럼 표정이라도 웃던가! 뭔 어디 팔려 가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
“이쪽에서 레브 단체 사진 한번 찍자. 저희 단체샷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되나요?”
요트에서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SNS와 공카에 올릴 사진 촬영도 열심히 하고, “노을 지네요. 풍경 진짜 예쁘네.”
“그러게. 이 풍경은 정말로 못 잊을 것 같아.”
“어때요, 이든이 형. 저 노을과 탁 트인 바다를 보니 영감이 좀 떠오르는 것 같으세요?”
“그랬으면 좋겠다.”
“배고파여…….”
“하여간 무드 깨는 재능은 1등이야, 1등.”
요트 뱃머리에 앉아 지평선 너머로 지는 해도 구경하며 제주도 힐링 여행 일정을 마무리했다.
앞선 리얼리티 영상들과 달리 딱히 스펙타클한 장면 연출은 없어서 이걸로 딱히 유입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고민 없이 심신을 편안하게 푹 쉬고 올 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최고의 힐링 여행이었다.
물론 다 이 여행 덕분에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한 이야기지만.
* * *
제주도에 다녀오고 나서도 며칠째 진전이 없는 작업 때문에 결국 나는 스트레스를 버티지 못하고 작업실을 뛰쳐나와 숙소로 돌아왔다.
“뭐, 여행 한 번 다녀온다고 드라마틱하게 슬럼프가 해결되는 전개는 바라지도 않긴 했지만…….”
거실 소파에 편하게 드러누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식탁에서 한창 저녁 식사를 하던 멤버들은 다들 내 눈치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지금 리더는 슬럼프인데 니들은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내가 눈치 준 것도 아닌데 왜 저러나 싶었다.
“이든아, 저녁 진짜 안 먹을 거야?”
“아니, 먹어.”
이놈의 망할 시스템은 하루 두 끼 이상 꼬박꼬박 안 챙겨 먹으면 위클리 퀘스트 건강 관리 항목을 인정 안 해 줬다.
덕분에 창작의 고통 때문에 한 끼 식사를 거르고 싶어도 밥은 꼬박꼬박 먹어야 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슬럼프로 고통받고 있다는 걸 내가 말 안 하면 아무도 몰랐다.
불면증까지 사라지니 다들 이미 슬럼프 극복한 줄 알더라. 겉보기에는 하도 건강해 보여서.
“그럼 빨리 와서 먹어. 밥 식을라.”
“어어, 알았어.”
견하준의 부름에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대충 걸친 후드 집업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식탁 앞 의자에 앉았다.
내가 굳이 멤버들이 다 모여 있는 저녁 시간에 맞추어 들어온 이유가 있었다.
“하고 싶은 컨셉들 싹 말해 봐.”
수저를 들기도 전에 툭 뱉듯이 말하자 네 쌍의 눈이 한꺼번에 나를 향했다.
흐뭇하게 웃고 있는 견하준을 보며 더듬더듬 물었다.
“왜, 왜 그렇게 봐……?”
“드디어 네가 내 조언을 이해했나 싶어서.”
견하준이 무슨 조언을 했더라.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기억나지도 않는 견하준의 조언보다는 내 깨달음이 더 컸지만, 기억나지 않는 견하준과의 대화가 내 무의식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으므로 말을 속으로 삼켰다.
제일 먼저 번쩍 손을 든 김도빈이 외쳤다.
“섹시요! 아니면 느와르 컨셉!”
대꾸할 가치도 느껴지지 않아 그냥 무시했다.
팀에 미성년자가 둘이나 있는데 섹시 콘셉트가 퍽이나 먹히겠다, 인마. 느와르 콘셉트도 마찬가지고.
하려면 류재희 성장기 이후에나 하던가.
먹금당한 김도빈이 울상을 지으며 손을 내리자, 서예현이 쓱 손을 들고 그다음으로 의견을 냈다.
“우리 이번 수록곡이었던 <하이라이트 필름> 같은 발라드는? 이제까지는 우리가 외국 하이틴 컨셉만 했으니까 교복 입고 K-하이틴, 그러니까 학생 컨셉으로…….”
“하긴, 저희는 몰라도 형들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교복이 어색해지겠죠.”
“너희는 평생 10대일 줄 아냐, 도빈아. 당장 내년이면 너도 성인이잖아, 인마.”
“그런데 이제 슬슬 청량, 하이틴 컨셉도 질린다는 소리가 나오는데 정규까지 그걸로 활동하면 좀 위험할 것 같아요. 뇌절 소리 나오는 건 피할 수 없을 듯요.”
“그리고 발라드 컨셉으로 가면 예현이 형이 원하던 칼군무를 못 끼우잖아여.”
“아, 도빈이 형, 눈치 더럽게 없어. 이게 다 칼군무를 피하시려는 맏형의 빅픽쳐잖아.”
“그거 아니거든, 재희야?”
서예현이 이를 악물고 반박했다. 턱을 괴고 곰곰이 고민하던 견하준이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미안, 막상 말해 보라 하니까 생각나는 게 없네.”
“미안할 것까지야. 천천히 생각해 봐.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내 말에 류재희가 혀를 차며 말했다.
“비견하준 차별을 멈춰 주세요.”
“견하준? 하준이가 니 친구냐? 아님 너 혼자 야자 타임 중이냐?”
“비견하준 자체가 밈임요. 형까지 붙이면 너무 길어지잖아요.”
“그래도 짜식아, 형은 붙여야지.”
“괜찮아, 이든아. 밈이라잖아.”
그래, 눈치 없는 김도빈이 아니고 류재희라 그냥 넘어간다.
기왕 입 연 김에 너도 의견이나 내 보라고 판을 깔아주니 잠시간 고민하던 류재희가 운을 떼었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범인 잡는 탐정 컨셉-.”
“으아악! 류재희한테 대표님 귀신이 쓰였다! 아니, 대표님은 살아 계시니까 귀신이 아니고 생령인가?”
“진심이야, 재희야……?”
“막내야, 너 장난치다가 분명 윤이든에게 한 소리 듣는다. 벌써, 쟤 표정 봐라.”
멤버들이 류재희한테 떠들썩하게 한마디씩 하는 동안 팔짱을 끼고 류재희를 삐딱하게 쳐다보고만 있다가, 서예현의 말을 마지막으로 모두 조용해지자 입을 열었다.
“계속 말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