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9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95화(9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95화
김도빈이 기겁하는 얼굴로 류재희와 나를 번갈아 보며 말을 더듬거렸다.
“생, 생령이 이든이 형한테까지 영향을……? 우주 세계관을 향한 대표님의 의지가 그렇게 강했나? 굿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너 인마, 내가 무속에 관심 끊으라고 했지. 이제까지처럼 그냥 애니랑 만화만 보고 살라고.”
내 윽박에 김도빈은 조용히 입에 계란말이만 욱여넣었다.
“아, 다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보라고요! 누구를 대표님 주니어로 만들고 있는 건데요.”
“주니어로 만든 적은 없어. 그저 생령 빙의를 의심했을 뿐이지.”
“그래, 막내야. 아무도 너를 대표님 주니어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도 선은 지켜.”
대표님의 의견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오해받은 게 끔찍하게 싫었는지 투덜거린 류재희가 식탁을 탕탕 쳤다.
물론 그러고서는 견하준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손을 슬그머니 식탁 아래로 내렸다.
“그래서, 하려던 말이 뭐였는데?”
“시공간을 넘어 범인 잡는 탐정 컨셉 중에서 ‘시공간을 넘어’를 빼고 탐정 컨셉만 채용하는 건 어때요? 그런데 거기에 괴도 컨셉까지 곁들여서.”
“그럼 괴도 겸 탐정이야? 그런데 탐정이 괴도면 뭔가 이상하지 않나? 자기가 훔치고 자기가 찾는 거?”
“난 정말 형이 이럴 때마다 울고 싶어.”
생각은 하고 내뱉은 건지 궁금한 수준인 김도빈의 말에 류재희가 한탄하며 마른세수했다.
막내 녀석이 정말로 울어 버리기 전에 급히 화자의 의도를 아주 잘 이해했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탐정, 그리고 괴도로 컨셉을 반반 나누자는 소리지? 셜록 홈즈 대 괴도 뤼팽처럼?”
“넵, 바로 그거예요! 와, 도빈이 형의 멍청한 소리만 듣다가 저 핵심 요약 들으니까 이제야 좀 속이 풀리네.”
김도빈의 발언이 어지간히 답답했는지 류재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도빈이 입을 떡 벌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헐, 이든이 형 입에서 셜록 홈즈와 괴도 뤼팽이 나오다니. 굉장히 캐붕 같고 세계관의 파괴 같고 막 그런…….”
“여기 셜록 홈즈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셜록 홈즈가 제가 보는 일본 애니나 만화처럼 오타쿠픽인 줄 아나. 눈썹을 치키며 묻자 볼을 긁적인 김도빈이 대꾸했다.
“셜록 홈즈는 메이저인데 괴도 뤼팽은 상대적 마이너 아닌가요. 덕후들 취향을 저격한.”
“뭐라는 거야. 어렸을 적에 우리 집에 전집 있었어.”
“헉, 이든이 형이 책을 봤다니.”
“넌 대체 나를 뭐로 생각하는 거냐?”
지끈거리는 미간을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렇게 책을 멀리했을 것처럼 보이나. 물론 고등학생 때까지는 책보다 게임을 훨씬 더 가까이 하긴 했지만.
“그런데 한 번에 두 컨셉을 나누면 너무 어수선하지 않으려나? 차라리 괴도 아니면 탐정, 이렇게 하나로 통일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괴도 한 명에 탐정 넷으로 가도 괜찮고. 어차피 탐정으로 가려면 범인 잡는 컨셉이어야 하니까.”
“괴도 5인조는 어때요?”
“보물 하나 훔치려고 다섯 명이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건 가오가 안 살잖아.”
“포인트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여기서 컨셉 확정할 것도 아니니까 적당히 넘어가자. 그건 나중에 컨셉 회의에서 말해.”
지금은 컨셉 회의가 아니라 곡 영감 얻기 과정이었다.
세세한 건 타이틀곡 확정되고 나서 정하면 되는 거다. 그러려면 일단 타이틀곡을 만들어야 하고 말이다.
“아무튼, 교복 컨셉 발라드 나왔고, 괴도와 탐정 나왔고, 또. 더 내봐. 아직 부족해.”
“경찰과 도둑?”
“막 던져도 이번에는 뭐라 안 한다. 그냥 막 던져 봐.”
“형이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무서워서 생각이 안 나요. 그냥 차라리 장난하냐고 화를 내 주세여.”
“그래, <내 우주로 와> 2탄 발매하고 싶으면 계속 생각하지 말고 그렇게 장난치고. 내가 슬럼프 극복 못하면 어쩌겠냐. 대표님이 받아 온 곡이나 타이틀곡으로 올려서 부르고 있어야지.”
내 태평한 말에 한결 다급해진 멤버들이 앞다투어 의견을 쏟아 냈다.
우리의 데뷔곡을 재현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한복 퓨전 동양풍은 어때? 약간 국악이랑 접목시켜서. 예를 들자면 국악과 힙합의 퓨젼?”
“그것도 괜찮네.”
“뮤지컬 컨셉도 괜찮지 않아요? 주인공을 바라보는 엑스트라의 시점이라든지?”
“어어, 굿 아이디어.”
“복고풍은?”
“복고풍 좋지.”
“게임 캐릭터! 초능력! 빌런 앤 히어로!”
“어어, 그래, 잘한다, 잘한다.”
“와, 이날만을 위해서 서브컬쳐를 섭렵한 사람 같아요, 형.”
몇 년 치 활동 콘셉트가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졌다.
나중에 이번처럼 아이디어가 대가리 쥐어 짜내도 안 나오면 오늘 나왔던 것들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멤버들이 말한 것들을 머릿속으로 곱씹다가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발, 슬럼프 끝이다.”
[비속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좆까! 나는 진짜 슬럼프 때문에 1군 가는 길에서 거꾸러져서 회귀할 뻔했다고!
초심도고 뭐고 은퇴까지 1군 못 찍어서 15년 차 아이돌이 되고도 팬 3천만 명이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다시 데뷔 초로 회귀하는 상상까지 했던 터라 초심도 –2점과 초심통은 슬럼프 극복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식사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곧바로 작업실로 달려갔다.
못 미더웠던 멤버들이 이렇게 도움이 되는 날도 다 오는구나!
* * *
‘100%가 아니면 의미 없는데.’
작업실에 앉아 손가락으로 툭툭 신디사이저 키보드 끝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타이틀곡 후보로 내밀 곡은 총 두 곡이었다.
강렬한 비트와 미니멀한 소스로 완성한 일렉트로팝, 그리고 드럼 비트에 브라스 섹션으로 후렴구를 처리한 댄스 장르곡.
둘 다 류재희의 의견을 토대로 완성된 곡이었다.
김도빈에겐 아쉽겠지만, 서브컬쳐는 이번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빌런 앤 히어로나 게임 캐릭터는 나중에 컨셉츄얼 곡의 주제로 써먹을 만도 할 것 같았다.
긴 슬럼프를 이겨 내고 완성한 곡들은 슬럼프가 오고 나서 끄적인 이제까지의 습작곡들보다는 훨씬 괜찮은 퀄리티였지만 를 넘어설 정도냐 하면, 글쎄.
‘5%가 부족해, 5%가.’
G1의 충고대로 하고 싶은 거 다 때려 박았지만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다.
전곡과 비슷한 수준은 용납할 수 없었다. 무조건 뛰어넘어야 했다.
그저 적당히 하려고 슬럼프까지 시달린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든 걸 홀로 하려 하지 않고 도움을 한번 받아 보기로 했다.
“형, 편곡 좀 맡아 주실 수 있으세요?”
대뜸 건넨 내 부탁에, 한번 들어 보고 나서 결정하겠다 대꾸한 이지원이 내게서 작업 곡이 담긴 USB를 받아 갔다.
헤드셋을 쓰고 고개를 까딱이던 이지원은 6분이 지나자 헤드셋을 벗으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 슬럼프는 잘 극복하고 온 모양인데? 노래 마음에 든다. 편곡 허용 범위는 몇 프로?”
“제 원본만 남아 있으면 오케이.”
“뭐, 딱히 많이 건드릴 부분도 없어 보이는데. 일단은 네 스타일 최대한 안 건드리는 쪽으로 작업한다.”
“어휴,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넉살 좋게 대꾸하며 꾸벅 고개를 숙이자,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린 이지원이 USB를 건넸다.
“그리고 여기, 부탁했던 곡.”
“감사함다. 지인 할인,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뭘 감동받고 그래. 할인해 준 만큼 너 굴릴 건데.”
“예에, 마음껏 굴려 주십쇼.”
이지원이 지인 할인을 해 준 덕분에 이지원의 작업 곡도 소속사에서 내건 예산 내에서 받아 올 수 있었다.
그래도 LnL이 내 생각보다 더 돈을 쓰긴 했다. 하긴, 초기에 쓰레기 같은 곡도 300만 원, 350만 원 주고 사 왔는데.
대표님이 콘셉트 회의에서 얼마나 또 속을 터지게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미리 받는 금융치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 이지원이 내게 보낸, 편곡을 마친 곡은 부족한 5%를 채워 준 것도 모자라 거기에 5%를 더하기까지 했다.
“와, 돌았네. 확실히 이 형님 실력이 미쳤긴 하네.”
도합 105%가 되어 버린 곡을 들으며 G1의 축복을 찬양했다.
슬럼프 전에 미리 작업해 놓은 곡 4개, 이번 타이틀곡 후보 2개, 이지원에게 받아온 곡 1개, 상열이 형한테 받아 온 곡 1개로 총 여덟 개의 곡이 모였다.
참고로 상열이 형은 지인 할인 따윈 없이 제값을 받아 갔다. 그래도 아직 회귀 전만큼 히트곡 제조기로 뜨지 않아서 G1보다는 저렴했다.
‘이제 두 곡 남았군.’
웬일로 자기만 믿으라고 큰소리 땅땅 치던 대표님을 떠올리고 마음을 놓았다.
알아서 두 곡 구해 오시겠지. 그것들이 블랙소울급의 웬만히 끔찍한 곡만 아니면 앨범에 넣어도 상관없었다.
그것들이 타이틀곡으로만 안 들어가면 오케이다.
하지만 이제 그걸 타이틀곡으로 올려야 한다고 우기신다면 그때부터 전쟁 시작인 거다.
이제는 무속도 못 써먹는데 대체 뭐로 대표님을 혼란에 빠뜨려야 하나 싶었다.
“야, 준아, 고맙다.”
“갑자기?”
뜬금없이 전해지는 감사 인사에 픽 웃은 견하준이 책을 덮으며 물었다.
누운 상태라 고개를 끄덕이지는 못하고 모로 돌려 누운 거로 긍정의 답을 대신했다.
“네 조언이 뭐였는지 드디어 생각나서.”
“그전에는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자백하는 거야?”
“에이, 별 신경도 안 쓰면서. 그리고 이제라도 기억해 냈으면 됐지, 뭐.”
능글맞게 대꾸하고는 감상 한 마디를 더했다.
“가끔은 주변에 도움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방문을 열고 들어온 류재희가 제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나를 발견하고 투덜거렸다.
“이럴 거면 그냥 형 침대를 여기로 옮기세요. 도빈이 형도 그렇고, 자기 방 있으면서 맨날 이 방에 와 있어.”
“룸메이트가 어색한데 어떡하냐.”
서예현과 나는 현재 굉장히 미묘한 사이였다.
여전히 서로가 마냥 좋게는 느껴지진 않지만 그렇다고 전처럼 꼴 보기 싫을 정도도 아닌 상태.
마음을 털어놓을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서로를 이해하고는 있는 상태.
그래서 나는 빨리 방을 바꿀 날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이번에는 독방 걸렸으면 좋겠고.
참, 류재희의 예상대로 김도빈은 한 달 반 만에 혼자 지내는 게 외롭고 쓸쓸하다며 허구한 날 이 방으로 와 있었다.
그럴 거면 그냥 나한테 10만 원이랑 솔로곡 받고 방 넘기지 왜 굳이 고집했나 싶었다.
내 진솔한 대답을 들은 류재희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이랑 예현이 형은 왜 이렇게 사람들이 극단적이에요? 싸우거나, 어색하거나. 그 사이의 타협점을 찾을 수는 없는 거예요?”
“그렇게 싸웠는데 친한 게 더 이상하지 않냐.”
앞에서 뒈지게 싸우고 뒤에서 친한 건 정치인들밖에 없어,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