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rporate Underling Who Excels at Work RAW novel - Chapter (128)
대기업 말단이 일을 잘함-128화(128/357)
128화. 워크샵 (7)
연회장의 한편.
11명의 청년들이 모인 가운데 말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자 한민규가 3명의 남녀를 데리고 합류했다.
그러자 모임에 활기가 띠었다.
벽에 기대고 있던 사람도 등을 떼고 팔짱을 끼고 있던 사람도 자세를 바로 했다.
“다들 아는 얼굴이네.”
나재홍이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옆의 박혜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물, 채경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한 번 좌중을 훑더니 씨익 웃어 보였다.
“다 모였네요.”
그는 단번에 이 자리에 수석부터 3석까지 모여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 말인 즉슨 아까 방에서 봤을 때 사람들 얼굴을 다 외웠다는 말이 된다.
단 한 번 본 것만으로.
좌중이 서로 쳐다보며 반성하는 눈빛을 보냈다.
자신들이라고 별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주의 깊게 외울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차피 다시 만날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보 공유를 하자고 하셨죠? 뭐부터 할까요. 다들 뭘 알아내셨나요?”
채경준은 도착하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성격이 급한가 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시간이 없다.
주어진 사전 준비 시간은 겨우 30분.
그중에 이미 10분이 흘렀다.
지금까지 여유를 부리고 있던 건 이쪽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각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빨리 해봅시다.”
한민규도 눈치챘는지 일동을 재촉했다.
그러나 쉽사리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그야 당연하다.
누가 자기가 가진 정보를 먼저 풀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의외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채경준이었다.
“이렇게 시간 버리느니 그냥 시원하게 까버리죠. 일정 시간마다 변수 생기는 건 다들 알고 계실 거고.”
대부분 모의 투자를 접해본 사람들이었다.
다들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쯤은 말해도 상관없는 것이었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도 아시죠?”
쿵, 무언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민규는 땀이 삐질 났다.
이건 서로 거래도 할 수 있는 고급 정보였다.
‘이런 정보를 공짜로 막 푼다고? 이 사람 뭐야?’
바본가?
그러나 그동안 들은 행적을 생각해 보면 바보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정보를 시작도 전에 푼단 말인가?
정보전에도 써도 될 정보를.
‘아, 정보전이구나.’
한민규는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정보전은 자신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기껏해야 주가 조작 정도였다.
악재와 호재를 적절히 퍼뜨려서 주가를 조절하는 것 말이다.
한민규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표정이 비슷했다.
큰 충격을 받은 얼굴들이었다.
‘이 정도 정보도 그한테는 그냥 정보전 재료에 불과한 건가?’
낭패한 얼굴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이 정보를 갖고 뭔가 해볼 생각인 듯했다.
그런데 이미 시작도 전에 까발려 버렸으니 행동에 제약이 생기거나 불리해질 것이다.
‘그걸 의도했으면 정말 미친놈이지.’
정보 하나로 사람의 손발을 묶는다.
그것도 지금 푼 걸 보면 채경준으로서는 그다지 중요한 정보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대체 어떤 정보를 손에 쥐고 있는 걸까?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과연 자신이 전력을 다해도 될 만한 상대라 느껴졌다.
‘아니, 전력을 다해도 이길 수 있을까?’
실제로 채경준이 현재 손에 쥔 정보는 없었다.
다만 그럴듯한 정보를 하나 뿌려서 있는 척을 했을 뿐이다.
첫째로, 이 정보는 금방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될 정보였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이 정보를 이용하려던 누군가의 계획을 무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채경준은 시시각각 표정이 변화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심 웃었다.
몇 명인가는 낭패한 표정인 걸 보니 잘 먹혀들어 간 듯싶었다.
아마 이 정보를 거래 대상으로 삼으려던 사람일 것이다.
-좋은 정보를 줄 테니 너도 알고 있는 정보를 내놔라.
하는 식의 정보 교환 말이다.
다들 당황한 가운데 한민규는 얼른 머리를 굴렸다.
‘채경준이 판을 깔아놨으니 나도 이걸 이용해야 해!’
이미 풀린 정보에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여기서 이용할 수 있는 걸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채경준 씨가 중요한 정보를 무료로 풀어주셨네요. 여러분도 아는 것 하나씩은 내놔야 하지 않겠어요?”
이것 역시 채경준이 의도한 바였다.
다들 머리깨나 돌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자신이 정보를 뿌리면 그걸 빌미로 서로 어떻게든 상대의 입을 열려고 할 것이다.
자신은 그저 가만히 서서 남들이 뭘 알고 뭘 모르는지 파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자리였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한민규에게 고마울 정도였다.
“사람들 잘 관찰하세요.”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게 나재홍과 박혜나에게 속삭였다.
둘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하다 해도 미숙한 신입 사원들이다.
표정 관리를 완벽히 하진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이 자리에서 꽤 많은 정보를 캐갈 수 있을 듯싶었다.
“저도 한 말씀 드리죠.”
2연의 수석이 손을 들었다.
그녀는 굉장히 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기 운영진 계신 거 보이죠? 저게 그냥 우리 지켜보려고 나온 건 아닐 거예요.”
일동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반대쪽에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주변에 5명의 임원진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룰이 이게 끝이라고는 안 했으니까 분명히 숨겨진 비밀 룰이 있을 거고, 그걸 알려주기 위해 있는 걸 겁니다.”
이것 역시 그다지 고급 정보는 아니었지만 굳이 이 자리에서 말할 필요도 없는 정보였다.
정보는 어찌 되었든 상대가 적고 내가 많은 게 좋다.
그런데도 푸는 이유는 간단했다.
-네가 깽판 놨으니까 나도 깽판 칠 거다!
채경준 때문에 자기 계획이 무로 돌아갔으니 남들의 계획에도 자신이 깽판을 놓겠다는 생각이었다.
2연 수석의 말에 얼굴이 흐려진 사람도 몇 보였다.
시작하자마자 임원진 쪽으로 오픈 런 할 생각이었나 보다.
이러면 임원진 쪽에 사람이 몰리게 된다.
한두 명이 모이면 몰라도 15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꺼번에 몰리면 자연히 이목을 끌게 된다.
그것도 각 연수원의 상위권들이 모이면 눈길을 끌게 마련이다.
지금도 그들을 힐끗힐끗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아니, 정말 이러시기예요?”
“뭐가요?”
“너무하잖아요. 본인이 안 쓰실 정보라고 그냥 다 풀어버리면 저희는 어떡하라고요.”
결국 한쪽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러면 저도 그냥 확 풀 거예요.”
“푸세요. 정보 공유하자고 모인 거잖아요. 풀면 저희야 좋죠.”
좋은 뜻으로 모였던 자리가 점점 더 깽판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한민규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는 다른 사람에게서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 제안한 모임이었다.
대표적으로는 채경준이 있다.
한마디씩 던져가며 그를 관찰해서 뭘 알고 뭘 모르는지 알아내려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정보 공유는커녕 서로 훼방을 놓고 있는 것 아닌가.
‘이게 아닌데…….’
한민규는 슬쩍 채경준을 보았다.
이 정도로 판이 어그러지면 그도 난감할 텐데.
그런데 채경준은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표정 관리가 이렇게 완벽하게 된다고?
그러다 그의 눈을 보고는 이게 표정 관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뭐야, 진짜로 좋아하고 있는 건가?’
한민규는 다시 한번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자리가 깽판이 되는 것까지 그가 의도했단 말인가.
‘아니면 애초에 그런 생각이었는지도.’
상위권끼리 정보 공유를 하는 걸 막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연합하면 아무리 전설의 5연 수석이라도 혼자 상대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연합을 깨뜨리려 하는 거라면 이런 행동이 이해가 간다.
처음 정보를 푼 것도 이런 상황까지 오기를 의도한 거였던가.
‘이제 우리끼리 협력은 물 건너갔어.’
필요하다면 타 연수원 상위권과 손을 잡아서라도 5연 수석을 견제할 생각이었다.
그동안의 행적을 들었을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을 가장 먼저 배제해야 한다고.
전해 들은 것이 사실이라면 모두 힘을 합쳐도 부족하다.
그런데 이제는 다 끝났다.
하나둘 깽판을 놓기 시작하는 분위기에서 서로 손을 잡을 리 만무하다.
연합하려 했던 이들끼리 사이가 갈라져 버린 것이다.
이젠 이들 모두가 경쟁자다.
“여기까지 생각하신 겁니까?”
결국 참지 못한 한민규가 물었다.
채경준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한민규 수석님께는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판을 깔 수 있게 자리까지 마련해 주셨어요.”
한민규는 분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려고 만든 자리인데 그대로 채경준에게 갖다 바친 꼴이 되었다.
그사이에도 상위권끼리의 다툼은 계속되고 있었다.
“저도 한마디 할게요! 모의 투자에서는 보통 힌트를 돈 주고 사기도 해요!”
“각자 직업 하나 정해서 그쪽 종사자인 걸로 간주하고 업계 소문을 흘려주는 경우도 있어요. 근데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아이, 정말!”
이것도 그다지 고급 정보는 아니었지만 깽판 치기엔 딱이었다.
서로 그동안 해왔던 모의 투자에 대해 아는 걸 말하느라 바빴다.
여기서 말해 버리면 쓸모없는 정보가 되어버린다.
정보 쓸모없게 만들기 대회라도 열린 것 같았다.
각자 모의 투자 때 경험했던 규칙을 풀어놓자, 모의 투자를 경험해 보지 못했던 채경준으로서는 주워 들을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잠깐만요! 다들 그만 합시다.”
결국 한민규가 모임을 말렸다.
이젠 더 이상 지속할 의미가 없었다.
“벌써 개장 10분 전입니다. 우리끼리 이럴 때가 아니에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상위권들은 결국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흩어졌다.
한민규는 채경준을 스윽 보았다가 고개를 떨구고 멀어져 갔다.
연합도 물 건너갔고 정보 공유도 끝장났다.
한민규로서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이건 진짜 주식 투자가 아냐. 정보전이야. 누가 더 확실한 정보를 잡고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거야.’
하지만 정보를 얻으려면 어떤 조건을 가져야 하는지 아직 모른다.
다들 아무것도 모르는 똑같은 조건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장을 흔들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했다.
도박이긴 하지만 이 연수원에 똑똑한 사람이 있다면 가능했다.
‘상위권들은 다 똑똑해 보였으니까 금방 내 의도를 눈치채겠지?’
이건 다른 연수원 동기들을 믿고 벌이는 도박이었다.
‘시작하자마자 공매도 친다.’
그리고 한편, 상위권들이 흩어진 후 그 자리에 남은 세 명은 가만히 서로 느낀 점을 나누고 있었다.
“이젠 어떻게 하지? 정보부터 손에 넣어야 할 텐데.”
“이건 그냥 내 예상인데 아마 정보 중에는 돈 주고 사야 하는 것도 있을 거야.”
“그럴 수 있지.”
“연합을 못하게 막았으니 상위권들은 다 우리랑 똑같은 조건에서 시작할 거야.”
나재홍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그럼? 우리 셋이 모으면 3천만 원이니까 이걸로 정보 사서 시작하자고?”
예를 들어 정보가 천만 원이라 하면, 정보를 사도 투자할 수 있는 기초 금액이 없다.
하지만 셋이 모이면 3천만 원이다.
걸어봄 직했다.
그러나 채경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연합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 다른 수를 쓸 거란 얘기야.”
“다른 수요?”
박혜나가 물었다.
그녀 역시 감이 잘 잡히지 않는 듯했다.
채경준이 멀어져 가는 상위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중 누군가가 공매도를 칠 거야. 우린 거기에 따라붙자.”
시작부터 대담한 예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