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rporate Underling Who Excels at Work RAW novel - Chapter (135)
대기업 말단이 일을 잘함-135화(135/357)
135화. 뒷풀이
오전 11시. 워크샵이 끝났다.
다들 지친 모습으로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사당행]올 때는 계열사별로 버스를 타고 왔지만 돌아갈 때는 사당과 신촌행, 용인행, 수원행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원하는 버스에 타는 방식이었다.
나는 사당행에 올라탔다.
혼자가 아니었다.
박혜나, 나재홍과 함께였다.
워크샵 내내 모의 투자로 시달린 탓에 제대로 밥도 못 먹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모였는데 그냥 헤어지긴 아쉽다.
때문에 사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
“어후, 피곤해 죽겠네.”
다들 지친 모습이었다.
올라타고 나서도 버스 안은 조용했다.
다들 자느라 정신이 없었다.
모의 투자의 파장 시간이 오후 11시였던 탓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 일찍 일어나기도 했고.
그야말로 2박 3일 내내 빡세게 굴린 워크샵이었다.
말이 워크샵이지 연수원을 한 번 더 다녀온 기분이었다.
게다가 우승자 발표가 끝난 이후에는 다른 연수원의 수석들에게 시달렸다.
워크샵을 하는 동안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버스에서 곯아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드르렁…… 커억.
깊게 잠든 누군가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버스는 1시간 40분 만에 사당역에 도착했다.
뒤따라 들어오는 버스가 많았기 때문에 얼른 내려야 했다.
“일어나! 나가자!”
나는 옆자리에서 입을 벌리고 자고 있는 나재홍을 흔들어 깨웠다.
“커헉! 음? 벌써 도착했어?”
“입가에 침이나 닦고 말해. 쪽팔리다.”
“아, 그래? 쩝.”
나재홍은 아무렇지 않게 슥슥 입가를 닦고 버스에서 내렸다.
찌뿌둥한 몸을 풀고 있자니 바로 다음 버스에서 박혜나가 내렸다.
자리가 없어서 다른 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사당행은 인기가 많아서 금방 찼다.
“으엑, 나재홍 씨 침 흘렸어요?”
“닦았는데 티가 나?”
“자, 여기요. 물티슈.”
준비성이 투철한 박혜나였다.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보쌈집이었다.
“어후, 너무 피곤한데 간단하게 먹고 헤어지죠.”
박혜나가 피곤에 찌든 얼굴로 말했다.
음식이 나오고 보쌈을 한 입 먹었을 때였다.
박혜나의 얼굴에 화색이 확 돌았다.
“안 되겠다. 우리 소주 한 병 깝시다.”
“어? 대낮부터요?”
내가 묻자 나재홍이 손뼉을 한 번 치고는 오른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묻고 더블로 가! 2병 가자!”
“너까지 왜 그래? 지금 점심때야.”
나는 나재홍을 말렸지만 그는 이미 술을 먹을 생각이 만만이었다.
“우리 솔직히 워크샵 때 뭐 했냐.”
“모의 주식 투자 했지.”
나재홍이 분개하며 소리쳤다.
“그래! 일했잖아! 워크샵은 원래 놀러 가는 곳이라고!”
“맞아요!”
박혜나도 나재홍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둘의 의견이 꼭 맞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태성도 너무한 거 아니냐? 체육 대회였던 거 워크샵으로 바꿨을 땐 우리도 놀다 가는구나 생각했다고! 근데 무슨 모의 투자를 시켜?”
“게다가 파장이 오후 11시였어요. 11시! 그건 밥도 먹지 말고 잠도 자지 말란 소리잖아요! 야근한 거나 다름없어요!”
박혜나 역시 흥분해서 소리쳤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야 5연수원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워크샵도 그 연장선상이라 생각해서 당연하다 여겼다.
그런데 워크샵이 원래 이런 것이었던가?
그들 말이 맞다.
2박 3일간 일한 기분이었다.
심지어 파장도 11시여서 저녁 늦게까지 야근한 느낌도 들었다.
“워크샵은 교육 좀 듣고 먹고 노는 데라고! 적어도 어제저녁엔 일찍 파장하고 맛있는 거 먹여서 보냈어야지!”
나재홍이 테이블을 탕 내리쳤다.
박혜나도 비슷했다.
나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네요. 우리끼리라도 뒷풀이 합시다.”
그 말을 기다렸던 것처럼 박혜나와 나재홍이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
“드디어 술 먹는다!”
낮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점원 이모가 가져다준 빨강 뚜껑의 병을 둥글게 흔든 후 소용돌이를 감상했다.
-와자작!
뚜껑이 뜯기는 소리가 경쾌하게 났다.
우리는 세 개의 잔에 투명한 액체가 채워지는 것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보게 되네요.”
박혜나가 중얼거리며 잔을 들었다.
“그건 모르겠고 일단 먹자.”
우리는 잔을 부딪친 뒤 동시에 입에 가져갔다.
알코올 향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얼른 보쌈을 김치에 싸서 한 점 입에 집어넣었다.
달짝지근한 김치와 고기의 육즙이 입안에 가득차자 쓴 알코올 향이 빠져나갔다.
꿀맛이었다.
“아, 이제 살 것 같다.”
얼굴이 온화하게 풀어졌다.
적절한 알코올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2박 3일 내내 잠도 설쳐가며 고생했던 것이 말끔히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보쌈 고기를 욱여넣었다.
술 한잔에 고기 한 점,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여기 빨간 뚜껑 한 병 더요!”
어느 정도 배가 차고 나자 이제야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이번에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저 밤에 잠 한숨도 못 잤잖아요.”
박혜나가 불평하는 건 처음 봤기에 나재홍이 눈을 둥글게 떴다.
“이야, 네가 그런 말 하는 거 처음 봐.”
술의 힘일까.
박혜나가 힘차게 말했다.
“그렇잖아요. 워크샵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주식 투자라니!”
나는 잔을 홀짝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윗선에서는 우리 동기들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거죠.”
나재홍이 은근한 얼굴을 했다.
“우리 동기가 아니라 수석들, 정확히는 널 시험해 보고 싶었던 거 아닐까?”
나는 화들짝 놀라서 되물었다.
“나를?”
아무리 회장 눈에 들었다고는 해도 그렇게까지 할 정도인가?
거의 몇 명을 위해 2천 명을 동원한 수준 아닌가.
“그렇게 할 수 있나?”
“태성이니까.”
태성이니까.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납득이 갔다.
“몇 년 전에 기름 유출 사고 있었던 거 알지?”
“지역이 어디더라, 바닷가 난리 났던 거?”
“거기에 그 해 태성 신입 사원들 모조리 동원돼서 자원봉사 하고 왔다더라.”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아니, 왜? 그건 자원봉사가 아니지 않나?”
“일을 하기 전에 사회성부터 길러야 한다고.”
“으악.”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선배들이 불쌍하다.
말이 사회성이지 기업 이미지 올리기 전략에 동원된 것 아닌가.
그런 활동에 비해서 우리 워크샵 정도면 나은 편에 속했다.
좋아해야 하나?
“그나저나 다른 연수원 애들 표정 봤냐?”
나재홍이 낄낄대며 잔을 들었다.
그는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는지 웃음소리에 알코올이 섞였다.
박혜나도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상태였다.
“처음엔 5연수원이라고 무시하더니 워크샵 끝나고 나올 땐 쳐다보는 눈길 봤죠?”
“우리 수석 지나갈 때 길 터주는 거 봤냐?”
오히려 나보다 둘이 더 신나 보였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빈 잔에 술을 채웠다.
“힘들긴 했지만 재밌었어요. 다음에 또 이런 기회 있었으면 좋겠다.”
말로는 잠도 못 잤다느니 힘들었다느니 하지만 둘의 눈에 아쉬움이 가득해 보였다.
이젠 아마 워크샵이 있더라도 계열사별로 하겠지.
“너 근데 계속 태성 백화점에 있을 거야?”
나재홍이 칼칼한 순두부찌개를 떠먹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
“바보야. 네 윗분들이 널 언제쯤 다른 계열사로 보내주실 거냐, 묻는 얘기잖아.”
“그러니까 이 멍청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윗분들만 아는 거지.”
서로 바보네 멍청이네 아웅다웅하고 있을 때 박혜나가 입을 열었다.
“아마 백화점에서도 오래는 안 계실 걸요?”
“어? 박혜나 씨가 어떻게 아세요?”
박혜나는 잠시 흠칫했다.
“제가 말 안 했던가요?”
“뭘요?”
“저 명지윤 상무님 밑으로 들어갔어요.”
“오…….”
명지윤이라면 5연수원의 책임자이자 이번 워크샵의 총책임이기도 했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건 만나 봐서 안다.
박혜나가 그 밑으로 들어갔구나.
나재홍은 감배섭, 나는 권태호.
우리 셋 다 각각 다른 사람이지만 다들 잘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명지윤 상무님 말씀이, 회장님뿐만 아니라 부회장님이나 사장단들도 채경준 씨를 안다고 했어요. 아마 권태호 사장님이랑 같은 길 밟을 거라고 하시던데요?”
내 롤 모델인 권태호와 같은 길이라.
초반에는 그룹의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해결사로 일했다가 중년에는 본사의 전략기획실에서 그룹 전체의 은밀한 일까지 책임졌다.
그리고 지금은 CTO로 있으며 그룹의 자금 흐름을 쥐고 있다.
그야말로 완벽한 출세가도였다.
아니, 출세여서가 아니라 내 롤 모델의 길을 내가 걷는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기분 좋았다.
나는, 고졸에 아무것도 없던 나는 이제 권태호를 따라가는 레일 위에 올라선 것이다.
그것도 내 실력으로 증명해 내서.
자연히 술이 술술 들어갔다.
“축하해. 역시 네가 제일 빨리 올라갈 것 같더라. 아니지, 우리 중에서 네가 올라가야지 그럼 누가 올라가겠어.”
나재홍은 앞뒤가 같은 사람이라 저렇게 말한다는 건 진심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멍청하다는 뜻은 아니고.
“아, 그리고 네가 저번에 부탁했던 정보망 있잖아.”
일전에 나는 정보의 필요성을 느꼈다.
때문에 나재홍에게 수시로 정보를 흘려줄 것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5연수원에서 상위권 몇 명하고 이번에 만난 다른 연수원 수석을 포함한 상위권들 합쳐서 단톡방 만들었어. 둘 다 초대해 줄게. 잠깐만.”
그의 행동력에는 혀를 내둘렀다.
나는 오전 발표 이후에 번호 교환만 했을 뿐인데, 그사이에 나재홍은 그들을 모아 단톡방을 만들었던 것이다.
“나도 뭐 듣는 거 있으면 따로 알려줄 텐데, 이런 단톡방은 하나쯤 있는 게 좋아서 만들었어.”
-우웅.
진동으로 해둔 핸드폰에서 알림이 떴다.
단톡방에 초대되었다는 메시지였다.
나는 나재홍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단톡방을 열어보았다.
실시간으로 다른 사람들도 초대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상위권의 모임이었다.
-안녕하세요.
-와, 반갑습니다. 이런 방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제일 중요한 사람이 빠졌네. 채경준 씨 들어왔어요?
-초대했습니다.
나도 자판을 눌러 답장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채경준입니다.
-오오오오오!
-이 방은 이제 성공이야!
-좋아해요! 사귀어주세요!
-진짜 방 라인업 미쳤다.
-키야…… 수석에 차석에. 어우,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동기방은 채경준이 있는 방과 없는 방으로 나뉜다.
-초대받은 사람들 자랑스러워하셔도 됩니다.
초대된 사람들은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엄선된 사람들만 초대되는 방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날 찾고 있었다.
처음 연수원에 들어갔을 때는 내 이름 석 자는커녕 존재조차 모르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젠 날 중심으로 모이고 있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왠지 모를 울컥함이 올라왔다.
“계열사도 각각 다르니까 뭐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여기다 물어봐. 필요한 것도 여기다 말하고. 다들 이번 워크샵에서 네 활약을 봤으니까 군말 없이 해줄 거야.”
박혜나가 찡긋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자기들이 더 뭔가 해주려고 할 걸요? 눈에 띄고 싶어서.”
정보원이 박혜나와 나재홍밖에 없는 내겐 소중한 정보망이 될 것이다.
나는 나재홍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맙다, 정말로.”
“짜식. 고마우면 나중에 승진해도 나 모르는 척하기 없기다.”
나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승진할 때쯤이면 둘 다 한자리 하고 있을 것 같은데?”
“오오. 인정해 주는 거야?”
“인정하고 자시고 5연수원의 차석과 3석 아니십니까.”
장난스럽게 말하자 나재홍이 킬킬 웃었다.
오늘은 얻은 게 너무 많았다.
나는 손수 둘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동기에서 동료로, 이제는 친구가 된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