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rporate Underling Who Excels at Work RAW novel - Chapter (143)
대기업 말단이 일을 잘함-143화(143/357)
143화. 건설사 발주 (1)
전략실의 모두가 매달린 프로젝트는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디자인 나왔어요!”
권수영을 전담하기로 한 직원은 권수영의 집에 살다시피 하며 들락날락거렸다.
재촉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혹시라도 마음이 변할까 봐, 또는 소홀히 대한다고 생각할까 봐 들러붙어서 시중을 들었던 것이다.
거의 조수처럼 권수영을 접대하던 직원이 드디어 디자인 후보 세 개를 들고 왔다.
“이야…… 셋 다 참…….”
전략실장이 세 가지 디자인을 보며 말을 아꼈다.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나와 직원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디자인을 내려다보았다.
전략실장이 권수영을 전담했던 직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말 이게 맞아?”
“……네. 저도 당황했는데 이게 맞답니다.”
다시 한번 전략실 식구들이 디자인을 내려다보며 침음했다.
“흐음…….”
굉장히 난해했다.
그냥 건축물이 아니었다.
어디 세계 특이한 건축물에 나올만한 외관이었다.
“어……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라면 괜찮겠지만 백화점에 이런 걸 해도 되나……?”
전략실장이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권수영 전담 직원이 긴가민가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권수영 디자이너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마 다들 뜨악하는 반응일 거라고. 그 반응 나오면 디자인 잘 빠진 거니까 빠꾸할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하셨어요.”
우리 모두 잠시 침묵했다.
뜨악하는 반응이 나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원했던 게 이런 것이기도 했다.
지금 직원들 눈에는 괴상해 보이긴 해도 그만큼 대한민국에 없는 건물이라는 뜻이니까.
문제는 윗분들의 눈에도 차느냐인데.
“보고 올려보죠.”
나는 혼란스러운 전략실 분위기를 정리하듯 말했다.
전략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요. 채 팀장이 한번 잘 회의해 봐요. 중요한 일이라 아마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우리는 건설사 리스트업 하고 있을게요.”
전략실장은 함께 가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지금은 머리가 둘인 꼴이니 자신이 한 발짝 물러서 주는 것이다.
나는 실장에게 슬쩍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표했다.
실장 역시 내게 가볍게 웃어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세 개의 디자인을 들고 사장실로 향했다.
비서실 한쪽의 책상에 앉아 있던 양 전무가 자연스럽게 일어서서 따라 들어왔다.
도면은 둘둘 말린 채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사장실 안으로 들어서자 손톱을 손질하고 있던 사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드디어 나왔어? 디자인?”
“네, 사장님.”
우리는 소파로 모여 앉았다.
테이블 위에 세 가지 디자인을 펼치자 우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당황했던 전략실과는 달리 백화승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셋 다 마음에 드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지.”
양 전무 역시 조금 당황했는지 백화승을 불렀다.
“저, 사장님. 우리가 하려는 건 백화점입니다. 이렇게 예술 작품 같은 걸 해도 될까요?”
“뭔 소리 하는 거야. 요즘엔 그게 대세잖아.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 꾸미는 거야. 채경준 씨도 그렇게 말했잖아. 그치?”
내가 맨 처음 주장했던 바가 그것이기도 했다.
“맞습니다. 특별한 백화점을 만들자는 거였죠.”
그런 의미라면 권수영의 디자인이 딱 맞긴 했다.
백화점 같지 않아서 문제지.
“백화점 같지 않으니까 더 좋은 거야. 어디 보자.”
큰 돔으로 구성된 것도 있었고 가운데가 뻥 뚫린 것도 있었으며 유선형의 건물도 있었다.
하나같이 한눈에 봤을 때 백화점이라고 알아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난 셋 다 마음에 드는데 둘은 어때?”
양 전무는 굳게 입을 다물고 말을 아꼈다.
남은 건 나였다.
나 역시 쉽사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채 팀장이 그동안 봐온 게 있을 것 아닙니까.”
그때 말을 꺼낸 건 양 전무였다.
그는 일부러 채 팀장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현장에서 느낀 의견이 중요한 법입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는 채 팀장이 의견을 말하는 게 맞습니다. 사장님과 저는 보고서로만 접했을 뿐이니까요. 게다가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채 팀장 아니었습니까.”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말수 없던 그가 굉장히 많은 말을 꺼냈다.
심지어 그것은 나를 가르치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다. 나는 현장 책임자인 것이다.
윗선에 보고를 해야 하는 입장이고 현장의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이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한 후 신중하게 디자인을 보았다.
우리의 목적을 생각했다.
백화승과 양 전무는 가만히 내가 생각을 마치기를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하나의 디자인을 가리켰다.
“이게 좋겠습니다.”
“이유는?”
당연하지만 백화승은 내게 이유를 물었다.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셋 다 용적률을 고려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디자인의 경우 1층부터 6층까지 가운데 부분이 뚫려 있어 천장의 빛이 1층까지 닿습니다. 자연광의 상쾌한 효과를 줄 수 있는 거죠.”
“가용 면적이 반밖에 안 되는데?”
그랬다. 내가 고른 마지막 도안은 말한 대로 층마다 가운데가 뚫려 있었기 때문에 가용 면적이 적었다.
아무리 백화점을 크게 짓더라도 쓸 수 있는 공간이 적다는 뜻이다.
“엄선한 매장만 들어올 테니 가용 면적은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희소가치가 높아지겠죠.”
“그렇군. 또 다른 의견은?”
“기둥과 천장이 없어서 개방감이 듭니다. 같은 면적이라도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내 대답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러나 딱히 불만스러운 기색은 아니었다.
백화승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양 전무에게 물었다.
“더 파격적으로 가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사장님. 크게 가시죠.”
둘 사이에서만 통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백화승은 내가 고른 디자인을 탁 짚었다.
“이거 보자마자 떠오른 게 있어. 5층에는 아예 진짜 식물을 들여놓는 거야. 그리고 한쪽에는 카페를 하는 거지.”
“역시 파격적이십니다.”
전략실장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백화점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백화점에 진짜 식물을 심는다고? 미친 짓인데?
진짜 가능하면 재밌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의외인 것은 양 전무였다.
앞뒤가 꽉 막혔다는 게 아니라, 나름 평생 박힌 사고관이라는 게 있을 텐데 이렇게 쉽게 백화승의 의견에 동의하는 게 신기했다.
“공간을 젊게 쓰시겠다는 거군요. 사장님 뜻대로 하십시오.”
“그렇지? 역시 양 전무야.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잖아.”
역시 둘이 호흡을 맞춰온 기간이 길다 보니 별말이 없어도 통하는 게 있는 듯했다.
백화승은 신나서 디자인을 보며 내게 물었다.
“부지 확보는 끝났지?”
“네. 건설 허가만 남았습니다만 그것도 마무리 단계입니다.”
건축물을 올리려면 여러 가지 허가를 받아야 할 것들이 많다.
그것 또한 전략실에서 진행 중이었다.
공사에 지장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이제 예산하고 자금 조달, 건설사 발주가 남았네.”
들어가는 공사비만 몇천억이 예상되는 대공사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디자인된 건물을 그대로 현실에 재현할 수 있을지도 문제였다.
뛰어난 건축가가 필요했다.
“우리나라에 건설사라고 해봤자 몇 개 없어. 다 돌아봐.”
“네, 알겠습니다.”
백화승이 말을 끝낸 후에는 양 전무가 덧붙였다.
“제일 싸다고 발주하면 안 됩니다. 건설에 한해서만은 가격을 함부로 후려쳐서는 안 돼요. 큰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네.”
나는 긴장하고서 대답했다.
회사의 사활을 거는 프로젝트인 이상 싼값에 맡길 수는 없다.
그건 나도 인지하고 있었다.
잘못 발주했다간 태성 백화점뿐 아니라 태성 그룹 전체가 골로 간다.
나는 새삼 내가 맡은 일이 중대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럼 확실히 이걸로 정하시는 겁니다?”
양 전무가 다시 한번 확답을 받았다.
“응, 그래. 이걸로 가는 거야. 이제 백지화는 없어. 이대로 간다.”
백화승의 굳은 결의가 보였다.
양 전무가 날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진행하라는 뜻이다.
나는 일어서서 둘에게 인사를 건넨 후 나왔다.
다음 단계는 건설사 발주다.
쉴 틈이 없었다.
* * *
태성 건설은 태성 그룹의 1군 계열사 중 하나였다.
첫째 부인이 가져온 건설사와 태성 그룹이 합쳐지며 태성은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니 태성 그룹 내에서도 태성 건설의 입지는 확고했다.
물론 지금은 첫째 부인의 손아귀에 있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어차피 태성 그룹의 후계자는 첫째 부인의 아들인 채태익이니까.
문제가 있다면 태성 건설의 대부분 임원은 첫째 부인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태성에 충성하지 않았다.
채태익 역시 그들이 모시는 첫째 부인의 아들이기 때문에 인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태성 건설의 모태가 따로 있는 이상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몇 번의 금융 위기와 모기지 사태로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지만, 아직도 태성 건설의 위치는 강했다.
때문에 태성에서 무언가를 지으면 당연히 태성 건설이 수주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사장님! 이번에 태성 백화점에서 새 지점을 아주 크게 올린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태성 건설의 마 이사가 헐레벌떡 사장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둘 다 당연하게도 첫째 부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옛 건설사의 사람들이었다.
“그래? 당연히 우리 건설사에 발주하겠지?”
“그게…… 경쟁 입찰을 하기로 했답니다!”
사장이 눈을 치켜떴다.
“뭐라고? 같은 태성 식구들인데 당연히 우리 태성 건설에 발주해야 하는 거 아니야?”
“금액이 커서 내부 거래가 된다고…….”
“그게 무슨 헛소리야?”
대기업에는 내부 거래 금지 규정이 있다.
아니, 금지까지는 아니지만 내부 거래 매출이 30%를 넘을 경우 지배주주에게 증여세를 매기도록 되어 있다.
내부 거래로 편법 증여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가진 A회사와 별개로 자식이 B회사를 세운다.
A회사는 자신이 따낸 일감들을 B회사에 건네준다.
B회사는 아무 노력 없이 A회사의 일을 맡아 성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산 가치가 상승하면 이번에는 주식 교환으로 합병을 시도한다.
완벽한 경영 승계 방식이었다.
2012년부터 일감 몰아주기 증여 의제라는 세법이 생기면서부터 내부 거래에 제한이 걸렸고, 이제는 저런 방식은 못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느냐?
그건 아니다.
내부 거래만 금지이므로 서로 회사를 바꿔서 일감 몰아주기를 하기도 하고, 공사를 양도하거나 타절하는 식으로 일감을 넘겨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싶은 A회사와 C회사가 있고 그들의 자식 회사 B와 D가 있다고 치자.
A회사는 B에게 일감 몰아주기를 하면 증여 의제에 걸린다.
그렇다면 둘이 서로 협약을 맺고 교환을 하면 되는 것이다.
A회사는 D에게, C회사는 B에게.
그렇게 하면 세법에 걸리지도 않고 서로 회사를 키워줄 수 있다.
물론 이번 태성 백화점과 태성 건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공사를 나눠서 맡는 방법도 있었고 태성 건설의 하청 회사에게 맡기는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 공개 입찰을 한다?
그것은 같은 식구인 태성 건설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새 백화점 짓는 거라고 해봤자 얼마 안 될 거 아냐. 30% 넘는다고 해봤자 조금 넘을 것 같은데 하청 회사에 돌리면 되는 거 아니야?”
이사가 침을 꿀꺽 삼키며 핸드폰을 보았다.
거기에는 전화를 받으면서 메모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게…… 국내 최대 규모로 지을 거랍니다. 몇천억 정도로 끝날 것 같지가 않은데요.”
“뭐? 대체 걔네들은 뭘 짓는 거야?”
태성 백화점은 둘째 부인이 사장으로 있는 곳이다.
가뜩이나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데 이렇게 서로 날을 세우니 사이가 좋아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각 건설사에 연락 넣어서 견적 내달라고 하고 있나 봅니다.”
“직접 와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연락이 왔어?”
“네.”
같은 태성 그룹이라고 해도 예의라는 게 있다.
태성 건설은 첫째 부인의 손에 있는 데다, 태성 그룹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건설사가 모태가 된 유서 깊은 곳이다.
둘째 부인이 하는 태성 백화점 쪽이 당연히 와서 상담해야 했다.
물론 의뢰사와 건설사 간에 그런 법칙은 없다.
괜히 충성심 깊은 임원들이 서열 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오라고 해. 견적서는 그 다음에 뽑아주겠다고.”
태성 건설의 사장은 벼르고 벼르며 태성 백화점의 대표자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