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rporate Underling Who Excels at Work RAW novel - Chapter (145)
대기업 말단이 일을 잘함-145화(145/357)
145화. 건설사 발주 (3)
일전에 한 번 들은 기억이 있다.
회장님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전 계열사를 상대로 경영 개선안을 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장 김흥민은 관심이 없어 그냥 넘겼지만 태성 건설에서도 승진 욕심 있는 직원들이 보고서를 냈었다고 했다.
그때 아마 회장의 눈도장을 찍은 게 어느 한적한 계열사의 신입이라고 했던가.
“아, 생각이 나네. 그때 개선안 된 게 너였구나.”
김흥민이 신기한 것을 본다는 듯한 표정으로 채경준을 훑었다.
노골적인 눈빛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적어도 대화할 의지는 생긴 듯했다.
“그 회장님의 눈에 들었다니…… 그거 신기하네.”
“칭찬 감사합니다.”
“그래. 수석이라고? 연수원은 400명씩 나눠서 하지 않던가? 어떻게 수석을 정했지? 수석끼리 만나서 가위바위보라도 했나?”
여전히 말투는 좋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그는 정말 아랫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했다.
신입 사원 체육대회가 워크샵으로 바뀐 것도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 결과 보고도 듣지 않은 듯했다.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체육대회 아시잖습니까. 그게 이번에 워크샵으로 바뀌었습니다. 신입 사원 동기들이 전부 모여서 모의 주식 투자를 했습니다.”
“거기서도 1등 했다고?”
사장이 이제는 완전히 흥미를 가진 눈빛이 되었다.
여전히 마음에 차지 않은 듯했지만 그렇다고 아까처럼 쫓아내지는 않았다.
옆에 있던 채인하가 작게 한숨을 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양 전무님이 찾아뵐 자리에 저희가 오게 되었습니다. 실적으로 총책을 맡은 저와 회장님의 따님인 채인하 씨. 둘이라면 이 자리에 부족함이 없다 생각합니다만.”
오호, 이녀석 보게. 제법이네. 사장은 그런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 패기가 가상해서 용건이나 들어봅시다.”
이제 다시 반존대로 바뀌었다.
어느 정도는 성공이었다.
“저희 사장님께서 안부를 전하라 하셨습니다.”
“안부는 무슨.”
김흥민은 백화승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티를 있는 대로 냈다.
그래도 안부 인사를 거절하진 않았다.
아무리 싫다 해도 현 사모님을 무시할 담력은 없었다.
“그래요. 거기 사장님도 건강하시고? 양 전무는 잘 있고?”
“네. 덕분에요.”
의례적인 인사가 끝났다.
이제는 정말 용건만 남았다.
채경준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희 태성 백화점에서 새 백화점을 올릴 부지로 여의도를 선정하였습니다. 부지 매입도 끝났고 조감도도 나왔고 시공만 남은 시점인데요. 견적을 내주십사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흐음.”
다 아는 내용이었다.
그저 직접 사람이 와서 예의를 갖춰 말하길 원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도 정해져 있었다.
“당연히 우리 쪽에서 해야지, 다른 건설사에 맡기시려고? 이렇게 큰 공사를?”
“내부거래에 걸리잖습니까. 주요 주주분께 증여세를 물릴 수는…….”
“크하하하!”
김흥민이 냅다 웃음을 터뜨렸다.
“뭐 이렇게 세상을 순진하게 사실까.”
채경준이라고 모르고 한 말이 아니다.
당연히 우회하는 방법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탈세다.
공식적으로 각 회사의 대표로 만나는 자리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채경준이 순간 입을 다물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김흥민을 훑었다.
김흥민 역시 그 눈빛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대충 생각해 봐도 몇천억은 들어가는 큰 공사인데 이런 건 집안 식구끼리 나눠 먹어야지. 채경준 씨라고 했나? 태성 백화점 대표로 왔다고 했으니 말하지.”
김흥민은 다 아는 얘기를 왜 모르는 척하냐는 듯 느물느물한 표정이었다.
“우리 태성 건설로 정해요. 싸게 해줄 테니까. 그럼 채경준 씨도 조금 챙겨 드릴게.”
양 전무가 와도 이렇게 말했을까?
채경준은 생각했다.
똑같이 말했을 사람이라고.
김흥민은 건설사의 폐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채인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자 김흥민이 혀를 쯧 찼다.
이래서 애들하고는 대화를 안 하려고 했던 건데, 라는 그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채경준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희미하게 미소를 띄운 얼굴 그대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어쭈…….’
김흥민은 웃는 척하면서 채경준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놀란 것도 아니고 당황한 것도 아니다.
마치 알고 있던 것처럼.
‘이런 걸 해봤나?’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는 젊은이치고는 너무나 태연한 태도였다.
반면 채경준의 머릿속은 맹렬하게 회전을 하고 있었다.
자신은 회사 경영에 선과 악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익을 가져다줄 수만 있다면 불법적인 일이라도 용인할 생각이 있다.
지금 태성 건설의 김흥민이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태성 건설에 발주해서 회사 이익을 최고로 올리자는 것이다.
태성 건설 입장에서는 큰 매출이 발생하는 것이니 당연히 이득이고, 태성 백화점 입장에서는 싼 값에 할 수 있으니 이득이다.
그리고 또 하나, 태성 백화점에 리베이트도 가능하다.
챙겨주겠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이건 위험한데.’
계산적으로 따져보아야 할 때였다.
아무리 회사의 이익에 선악이 없다지만 이건 위험하다.
만약 이 일이 들키면?
탈세로 세무조사를 당하는 것은 물론, 태성 그룹 전체가 큰 타격을 받을 만한 일이다.
“위험합니다.”
채경준이 가만히 말했다.
태성 그룹의 오너 일가라지만 이런 일과는 거리를 두고 순수하게만 살아온 금지옥엽 막내딸 채인하는 이제 대놓고 혐오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서지는 않았다.
채경준에게 이 자리를 맡겨놓고 있는 것이다.
김흥민은 그런 분위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오너 일가면 당연히 아가씨가 주고 이 젊은이가 모시고 온 거여야 하는데 반대 같단 말이지. 오히려 아가씨가 이 친구의 시다바리 같잖아.’
건설계에 오래 있다 보니 그의 말투는 거기에 길들여져 있었다.
김흥민은 둘을 떠보기 위해 느물느물하게 말을 던져보았다.
“뭘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래요. 이건 관례적인 거라 다들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괜찮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괜찮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에 입각해서 생각한 것이었다.
탈세와 리베이트는 나쁜 짓이다, 라는 기준은 애초부터 세우지 않았다.
채경준에게 있어서 기준은 하나였다.
합리적이냐, 아니냐.
그가 보기에 이 제안은 너무 불합리했다.
채경준은 지금 일개 사원으로서 생각하는 게 아니다.
회사를 대표해서 온 총책임자로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자신이 아는 사람들, 예를 들어 구현수나 양 전무, 권태호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누구를 떠올려도 답은 하나였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그런 관행이 들키지 않은 게 신기한 겁니다. 세무조사 한 번이면 바로 들킬 거예요.”
“에헤이, 이 친구도 뭘 모르네. 그건 국세청에 아는 사람 좀 있으면 해결돼. 본사의 감배섭 사장이 그런 거 잘하잖아. 사건 터지면 무마하는 거.”
채경준이 조용하게 말했다.
“저는 세무사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김흥민은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입사하기 전에 세무법인에서 세무사로 일했습니다. 말씀하시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압니다. 실제로 무마하는 것도 봤습니다.”
“근데 그런 소리를 해요?”
“그렇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국세청도 변해가고 있습니다. 옛날 방식이 먹히지 않을 순간이 올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야죠.”
상황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만약 국세청에 있던 연줄이 떨어진다면?
더 이상 세무조사를 무마할 수 없다면?
그런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때 ‘이건 관례인데’라는 말이 통할 것 같은가.
푼돈에 눈이 멀어 일을 망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심지어 이번 건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일 아닌가.
만에 하나라도 일이 터지면 태성 자체가 흔들릴 만한 일이다.
일부러 돈을 쏟아서라도 이미지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노력도 한 방에 날아가 버린다.
문제는, 그 확률이 만에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분위기를 보건대 그보다는 높다.
국세청에서 작정하고 나서면 그땐 어쩔 것인가.
채경준의 눈에 김흥민은 관행만 찾는 어리석은 구세대의 유산처럼만 보였다.
“안 먹히긴 뭘. 아직도 내가 아는 과장들이 국세청에 즐비한데. 세무사였다면서 그런 인맥도 안 만들어놨어요?”
“아무리 인맥이라 해도 사회 분위기가 기업을 처벌하자는 쪽으로 기울면 막을 수 없습니다. 세무조사 한 방에 회사는 나락이 갈 겁니다.”
그러나 김흥민은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까지 잘 해왔는데 뭘.
앞으로도 무슨 일이 생기겠나.
세상은 그렇게 어영부영 돌아가는 법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 이상은 대화가 안 통하겠군요.”
채경준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져온 조감도조차 꺼내지 않은 상태였다.
“제게 전부 결정할 권한은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태성 건설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리스트에서 빼겠습니다.”
“뭐, 뭐야?”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는지 김흥민이 놀란 기색을 보였다.
“네가 뭔데 우리 회사를 뺀다 만다야? 같은 식구끼리 이러기야?”
다시 반말로 돌아왔다.
채경준은 일어선 채로 말했다.
“같은 식구가 잘못된 길로 가면 막아야죠. 이 자리에 양 전무님이 계셨어도 똑같이 말했을 겁니다.”
“확실해? 확실하냐고.”
김흥민이 불타는 듯한 눈빛으로 채경준을 노려보았다.
덩달아 일어선 채인하가 불안한 눈길로 둘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돌연 뭔가 결심한 듯 끼어들었다.
“확실합니다. 채경준 팀장의 결정에는 제가 힘을 실을 거니까요.”
“아가씨가?”
끝까지 채인하를 직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물론 일반 사원이라면 낄 수 없는 자리니 회장의 딸로 대우하는 게 맞다.
그것이 채인하는 못내 서운했다.
‘지금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겨우 이 정도네.’
그래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채인하는 옆에 선 청년에게 힘을 실어주며 생각했다.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고마워요, 채인하 씨.’
채경준은 옆자리에서 나서준 채인하에게 살짝 눈짓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지금 둘의 위치는 양 전무를 둘로 나눠둔 것에 가까웠다.
직책과 위계.
직책은 채경준이 맡았으니 위계는 채인하가 맡아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충분한 역할을 해줬다.
“나참. 알았어요, 알았어. 대신 나중에 후회나 하지 마요. 우리 회사랑 손을 안 잡은 걸 두고두고 떠올릴 테니까.”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채인하의 매몰찬 말을 끝으로 둘은 사장실을 나섰다.
비서실에서 대기하던 이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으로 둘을 보았지만 별수 없었다.
태성 건설을 나와 충분히 멀어지자 채경준이 입을 떼었다.
“제가 너무 딱 잘라서 거절했나요? 혹시 모르니 여지를 남겨뒀어야 했는데.”
“아뇨. 잘하셨어요. 저도 저런 제안은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뻔뻔하게 회사를 이용해서 저런 짓을 할 수가 있어요?”
둘은 화나는 포인트가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선 안 된다.
“태성 건설과 태성 백화점 사이가 나빠질지도 모르는데요?”
“아, 그런가요?”
채인하가 당황했다.
“아뇨, 장난입니다. 원래 사이가 나쁜 곳이라 더 나빠질 것도 없어요.”
“응? 원래 사이가 나쁘다뇨?”
“아, 모르셨나요?”
태성 계열사끼리의 서열 싸움을 모른다니 정말 귀하게도 자란 따님이었다.
아니, 부모님이 재혼을 했으니 오히려 귀한 딸만큼은 그런 더러운 꼴을 보지 않기를 바란 것인지도 모른다.
“태성 건설 모태가 전 사모님 쪽 회사잖습니까.”
“아아. 그렇구나…… 생각도 못 했어요.”
“윗분들께는 제가 잘 설명하겠습니다. 혼날지도 모르겠지만요.”
“혼나긴요. 그럴 것 같으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편들어 드릴게요!”
채인하가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채경준이 하하 웃었다.
둘은 나란히 서서 태성 백화점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이제 정말 제대로 된 건설사를 찾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