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rporate Underling Who Excels at Work RAW novel - Chapter (158)
대기업 말단이 일을 잘함-158화(158/357)
158화. 첫 삽 (4)
“다들 마지막으로 점검 부탁드립니다! 현수막 방향 확인하신 거죠?”
“네, 팀장님!”
기공식 현장을 여러 명의 직원들이 바쁘게 돌아다녔다.
이제 정말 기공식만 남았다.
그런데 정말 특이한 것은 이들의 지휘 체계였다.
가장 젊어 보이는 한 청년이 중앙에 서서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고 나머지 직원들이 그의 명령을 따르는 형태였다.
미리 도착해 한쪽 구석에 서 있던 시공사 참석자들이 특이하다는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저 사람이 팀장인가 본데요.”
“그러네요. 굉장히 특이하네.”
팀장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젊은 청년이었다.
이제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청년이 지휘를 도맡아 하고 있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눈길을 끌었다.
“저 사람이 신지점 프로젝트 아이디어부터 실행까지 다 맡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모든 건 준비되어 있었다.
일처리 하나하나에서 세심한 배려를 느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우리 같은 중견 기업을 끼워주다니.”
하춘식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정말 보고 있자면 신기했다.
어떻게 자식뻘인 청년이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맡아서 총지휘를 하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제 기공식만 끝나면 책임은 건설사로 넘어간다.
청년의 차례는 끝나는 것이다.
무사히 배턴 터치를 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정도 규모의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내는 것도 신기했고 저렇게 젊은 나이에 현장을 잘 아는 것도 신기했다.
세심하고 배려 깊은 일 처리는 아마 현장 경험에서 나온 거겠지.
“일부러 깨끗한 회사로 골랐다고 하더군요.”
옆자리에 있던 또 다른 중견 기업의 사장이 말했다.
그 역시 이런 큰 규모의 공사에 참가한다는 뿌듯함과 설렘이 담긴 얼굴로 기공식 준비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회사는 이번 일 덕분에 빚을 다 갚게 생겼습니다. 공사비는 넉넉하게 줄 테니 튼튼하게만 지어달라고 했거든요.”
“우리 회사도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선정해 준 게 감사해서라도 열심히 해야죠. 암요.”
“저도요. 팀장이라는 저분이 직접 선정했다고 하시던데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깨끗한 회사만 모아놨기 때문인지 빼먹겠다는 생각을 하는 회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태성 건설의 임직원들도 가만히 차례를 기다렸다.
“에잉, 이번에는 텄군, 텄어.”
회장 채항필이 직접 신경 쓰고 있는 큰 프로젝트니 함부로 빼먹을 수도 없었다.
에이, 식구인데 설마 건드리겠냐는 마음으로 빼먹었다간 무슨 경을 칠지 몰랐다.
회장은 그러고도 충분히 남을 사람이었다.
“이번엔 최대한 가라 치지 말고 해. 저기 저놈이 엄청나게 까다로운 놈이야.”
태성 건설의 사장은 옆에 서 있던 이사에게 저 멀리 한가운데서 이리저리 손짓하는 청년을 가리켜 보였다.
이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태성 건설까지 찾아와 그 난리를 피웠는데 얼굴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심지어 회장이 직접 중재까지 했는데.
“세무사 출신이라 장부도 잘 본대. 평소 하던 대로 가라 쳤다간 바로 들킬 거야.”
“주의하겠습니다.”
업계에 만연한 가라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줄일 수는 있겠지.
그것이 채경준이 의도하는 바였다.
“기자님들 들어오십니다!”
기공식 현장 입구에 서서 손님을 체크하던 채인하가 모두에게 소리쳤다.
하나둘 방송 자재를 든 기자들이 흙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삼대 일간지에 더불어 공중파까지 왔다.
이 정도면 알짜배기는 다 왔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젠 손님의 라인업이 궁금해졌다.
기공식의 규모는 손님의 사회적 위치와 직급에 따라 달라진다.
과연 어디까지 초대했을 것인가.
“시장님 들어오십니다!”
마치 중세시대의 문장관 같았다.
유명 인사가 입장할 때마다 입구에 서 있던 채인하가 체크와 함께 일일이 외쳐서 알렸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시장에 이어 지역구 국회의원, 구청장까지 들어섰다.
맨 마지막으로 태성 그룹의 부회장까지 들어서자 하춘식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와…… 우리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
심지어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사진을 찍게 되어 있었다.
엄연히 시공사였으니 말이다.
하춘식 사장이 손을 덜덜 떨며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두 번째 줄이었지만 바로 앞에 시장이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사회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 다음으로 첫 삽을 뜨는 행사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정신이 멍해서 말소리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가시죠, 하 사장님.”
옆자리 사장의 부추김에 얼결에 일어나 나갔다.
자신이 이런 큰 무대에서 기공식을 하고 있다니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단상 앞에는 흙무더기와 총 열 개의 삽이 준비되어 있었다.
끝자리에 선 하춘식 사장은 삽을 쥐었다.
손에 익숙한 감각이 느껴지자 정신이 돌아왔다.
하춘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함께 나란히 선 인물은 자신을 포함해 모두 열.
시장, 국회의원, 구청장, 부회장, 조미현, 태성 백화점 사장, 태성 건설 사장, 그리고 세 명의 중견 건설사 사장들까지.
열 명의 대표 관계자가 각기 손에 삽을 쥐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려 눈이 아팠다.
그 사이로 저 멀리 한 명의 청년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청년을 중심으로 검은 양복을 입은 남녀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몇 달이나 지속됐던 거대한 프로젝트가 자신의 손을 떠나게 되니까.
이젠 시공사의 일이다.
‘예쁘게 잘 올려 드려야겠구만.’
하춘식은 내심 굳게 다짐하며 삽을 쥐었다.
“첫 삽을 뿌려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말에 열 명의 대표 참석자는 크게 흙 한 삽을 퍼 올렸다.
공사하는 내내 아무런 사고도 없기를.
다들 안전하게 좋은 건물을 올리기를.
염원을 담아 앞으로 삽을 털어냈다.
흙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등 뒤의 단상에서 현수막이 펼쳐졌다.
[경 태성 백화점 여의도점 기공식 축]박수가 터져 나오고 행사가 끝났다.
하지만 진정한 기공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시장이나 국회의원처럼 바쁜 사람이 이왕 시간 내서 온 걸 그냥 돌아가겠는가.
태성 부회장을 붙잡고 대화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하춘식을 비롯한 세 명의 사장은 어색하게 한쪽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세 분 사장님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 건물 예쁘게 잘 올려주십쇼.”
바로 프로젝트장인 채경준이었다.
“암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튼튼하게 잘 올릴 테니 걱정 마십쇼.”
이제 자기 손을 떠나니 당부하러 왔구나.
그런 생각으로 물었다.
“팀장님은 이제 시원섭섭하시겠습니다. 기공식 준비까지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청년의 반응은 어딘지 묘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섭섭하진 않습니다. 제가 계속 챙길 거거든요.”
“……응? 계속 챙겨요?”
시공사로 넘어가는 일을 태성 백화점에서 어떻게 챙긴다는 걸까.
“아, 가끔 들여다보시게요? 그럼 저희야 좋죠.”
“아뇨. 자주 뵙게 될 것 같습니다. 저 내년부터 태성 건설에서 일하거든요.”
“……예?”
세 명의 사장이 일제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기업은 발령이 자주 난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계열사를 휙휙 바꿀 수도 있는 것인가?
하춘식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였다.
“아! 채 팀장! 이쪽으로 잠깐 와볼래요?”
태성 백화점의 사장 백화승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시장과 국회의원, 구청장 등 유력 인사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 때문에 존댓말을 쓰는 것 같았다.
“이야, 살다 보니 우리 사장님한테 존댓말도 다 들어보네.”
중얼거리던 청년이 큰 소리로 외치며 대답했다.
“네! 갑니다!”
후다닥 달려가니 백화승이 채경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참석한 유력자들에게 말했다.
“이번 신지점 프로젝트를 도맡아 한 팀장입니다. 다들 얼굴은 알고 계시죠?”
일부러 채경준을 소개시켜 주기 위해 부른 것이었다.
채경준은 재킷 단추를 잠근 후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다들 아는 얼굴이다.
실제로 초청장을 주기 위해 만났던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백화승이 소개해 주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이번 일의 총책임자가 누구인지 확인시켜 줌과 동시에 모두에게 각인시켜 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팀장 채경준입니다.”
“오호, 그래요.”
“젊은 나이에 팀장이라니 대단하네요.”
“반가워요. 채경준 팀장.”
다들 만난 적이 있음에도 처음 소개받는 것처럼 굴었다.
특히 시장의 경우에는 말싸움까지 했음에도 이 자리에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시치미를 뚝 떼고 악수를 건네고 있었다.
채경준은 왼손으로 오른손 팔꿈치를 받치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시장의 악수를 받았다.
군더더기 없는 자세였다.
“채 팀장이 신경을 많이 써줬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이 프로젝트 자체가 채 팀장이 낸 아이디어랍니다.”
“어, 그래요?”
“굉장히 수완이 좋은 젊은입니다. 태성엔 어쩜 이런 인재가 모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굉장히 탐이 나는데요.”
빈말이라도 좋았다.
채경준이라는 사람을 각인시키는 데는 최고였으니까.
무조건 빈말이라고 보기도 힘든 게, 이미 세 정치인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재계 2위인 태성 그룹은 무시하기 힘든 곳이다.
그런 곳의 현 부인이 직접 소개하는 직원이라니.
앞으로 더 크기 전에 알아둬야 하는 인재인 것은 확실했다.
“어머, 무슨 얘기를 하고 계시나 했더니 채 팀장 이야기였어요?”
흙밭에 어울리지 않는 흰 옷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조미현이 무리에 다가오고 있었다.
단번에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까부터 신경 쓰였다.
전처와 현처가 한자리에 모이다니.
태성 그룹의 복잡한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일제히 둘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
특히나 채경준은 둘의 눈치를 살피고서는 재빨리 백화승의 대각선 앞에 섰다.
둘 사이에 끼어드는 모양새였다.
일부러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둘의 싸움을 말릴 수 있는 것은 채경준과 부회장뿐이다.
그런데 부회장은 말릴 생각이 없는지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었다.
둘 사이에 끼고 싶지 않은 듯했다.
이 자리에는 시장을 비롯한 각계 유명 인사들이 있다.
그들에게 집안싸움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채경준의 머리털이 바짝 섰다.
“며칠 전에 봤었죠? 채 팀장, 반가워요.”
채경준과 백화승은 한껏 경계심을 올렸다.
손님들이 계신 자리에서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걸까.
아무리 앞뒤 가리지 않는 조미현이어도 이런 자리라는 자각은 있겠지.
그런데 잔뜩 긴장한 게 무색하게도 조미현은 채경준에게 친한 척 굴었다.
“채 팀장이 일을 아주 잘해서 회장님께서도 독대를 하실 정도랍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경계하던 백화승이 아차 했다.
그러나 막을 틈도 없이 조미현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인재를 이제 태성 건설에서 맡기로 했답니다. 그렇죠? 내년부터 태성 건설로 오잖아요.”
태성 건설은 조미현의 입김이 미치는 곳이다.
한마디로 조미현 밑으로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남이 키운 인재를 제가 꿀꺽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는 않네요. 오호호. 그래도 어쩌겠어요. 저희 태성 건설이 더 큰 인재를 품을 수 있는 곳인데.”
“오, 그렇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집안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은 유력자들은 입에 발린 인사를 건넸다.
어느 한쪽 편에 섰다가 다른 한쪽에게 미움받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슬슬 빠져야 할 때다 그렇게 느낄 때였다.
씩씩대며 콧김을 뿜던 백화승이 소리를 질렀다.
“그쪽이 뺏어가는 거 아니거든요? 채 팀장은 태성 건설의 인재가 아니라 태성 그룹이 키우는 인재거든요?”
유치한 말싸움이었지만 절대 조미현에게 지고 싶지 않은 백화승이었다.
백화승은 시장을 향해 돌아보며 살기 어린 웃음을 짓고는 이렇게 말했다.
“채 팀장은 그룹 차원에서 키우는 인재랍니다. 무려 권태호 사장의 후계자예요.”
“허억!”
“권태호 사장이라고요?!”
권태호 사장이 누구인가.
회장의 복심이라 불리는 두 사장 중 한 명 아닌가.
그런 인물의 후계자라면 태성의 권력 구도가 바뀔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백화승 말대로 태성 건설의 인재 왈가왈부할 때가 아닌 것이다.
조미현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