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rporate Underling Who Excels at Work RAW novel - Chapter (169)
대기업 말단이 일을 잘함-169화(169/357)
169화. 굴이 제철 (9)
가장 말문을 트기 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 나이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학벌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홍우현 세무사는 가장 먼저 학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어느 학교 나오셨습니까?”
세무사라고 했으니 아마 서울권 4년제 좋은 대학교를 나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학연은 3대 인맥 중 하나다.
같은 학교 후배라면 더욱 좋다.
그렇지 않아도 대화를 끌어나가기에 좋은 화제다.
그런데 홍우현 세무사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고졸입니다. 대학교는 가지 못했습니다.”
“으응? 그래요?”
네 명의 사업가 모두 의외라는 눈빛을 했다.
세무사는 만만한 시험이 아니다.
8대 전문직 중 하나다.
당연히 대학교를 나왔을 것이라 생각했다.
채경준은 담담하게 잔에 남아 있던 식전주를 들이켜며 말을 이었다.
“학벌이 중요한 것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이 겉으로 쓰여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이 사람이 똑똑한지, 일을 잘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직접 일을 시켜보는 수밖에 없죠.”
네 명의 사업가들은 호기심을 가득 가지고 젊은 청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고졸에 세무사, 거기다 태성맨인데 채한익의 디너 자리에 참석할 정도라니.
무언가 뒷사정이 잔뜩 있어 보였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채경준의 진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채인하 역시 귀를 기울였다.
주방에서 다음 요리를 준비하던 채한익 역시 온 신경을 기울였다.
어떤 사람이길래 어머니인 백화승이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지,
그 유명한 권태호 사장이 받아들였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청년은 자신에게 모인 시선을 음미하며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렇다고 직접 사람을 써보고 뽑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러니 일차적으로 거를 수 있는 거름망이 필요합니다. 그게 학벌이고 스펙인 거고요. 즉, 학벌과 스펙은 이 사람이 최소한 어느 정도의 지식과 능력을 갖추었다는 증명인 겁니다.”
사업가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엔 고졸이라고 하길래 학벌 반대파인 줄 알았다.
학벌 따윈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오히려 학벌을 긍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고졸일까.
남은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언뜻 감히 잡히기 시작했다.
“그러니 제가 대학교에 가지 못한 이유는 하나의 변명입니다.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을 하나 놓친 거나 다름없죠. 핑계를 댈 생각은 없습니다. 못 간 건 못 간 거니까요.”
안 간 게 아니다. 못 간 거다.
그의 말에서 대충 배경을 알 수 있었다.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짐작이 갔다.
“혹시 집안 형편 때문에 못 간 겁니까?”
홍우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답이었다.
“네. 세무사 자격증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다니면서 돈을 모아 딴 겁니다.”
“오오, 대단하군요.”
아까 채경준은 학벌을 하나의 증명이라고 했다.
자격, 능력에 대한 증명.
그것이 없는 셈이지만 이젠 아무도 그에게 학벌이 없다고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학벌은 ‘증명’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세무사라는 자격을 얻었다.
이미 그의 지식과 능력에 대한 증명은 세무사라는 자격증 하나로 해결되었다.
더 이상 학벌에 목맬 처지가 아니었다.
주방에서 듣고 있던 채한익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제법인데. 학벌이 없어서 불리할 수 있는데도 그걸 단 한순간에 종식시켰어. 이제 아무도 고졸이라고 무시하지 못할 거야.’
학벌이 중요하지 않다고 아무리 말로 해봐야 소용이 없다.
하지만 채경준은 학벌을 수많은 스펙 중 하나로 끌어내렸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저 무대만 만들어줬을 뿐인데 시작부터 날뛰는군.’
단 몇 마디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유능한지 잘 알 수 있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을 말만으로 설득시키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다들 자신만의 기업가 정신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납득시킨 것이다.
‘제법 하는데.’
채한익은 불 조절을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채경준 씨라고 했던가요? 그 말인 즉슨, 자신에게는 학벌 이외에도 능력을 증명할 만한 수단이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세무사 말고도 증명할 만한 또 다른 수단이 있습니까?”
“그래요. 채경준 씨의 이야기가 궁금하군요.”
청년의 굴곡 있는 이야기는 젊은 사업가들의 호기심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딱 봐도 젊은 나이에 저런 생각을 가지려면 온갖 평지풍파를 겪어왔을 것이다.
게다가 채한익의 디너 자리에 초대될 정도니 자신들에게 소개할 만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젊다고 얕볼 일이 아닌 것이다.
그들 역시 젊은 나이 때부터 온갖 고생을 하며 한 기업을 일구어온 사람들이다.
점점 더 이 젊은이에 대한 것이 궁금해졌다.
채경준은 게살 스프를 한 입 떠먹고는 말을 이었다.
“태성 웰빙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처음 듣는 회사군요. 태성의 계열사입니까?”
“네. 태성의 아주 자그마한 계열사입니다. 저는 회장님의 지시로 태성 웰빙을 정상화시킨 적이 있습니다.”
“오오, 정상화라고요? 그것 참 궁금하군요.”
이제 음식은 뒷전이었다.
청년이 푸는 썰이 점점 더 흥미진진해졌다.
정상화라면 회사가 비정상이었다는 말이다.
태성에 그런 회사가 있었다니.
그리고 그걸 정상화시켰다니.
듣기만 해도 재밌어 보이는 이야기였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태성 웰빙은 직원들이 태만한 회사였습니다. 횡령과 배임도 일어났죠.”
“태성인데도요?”
“태성이니까요. 거대한 공룡 아닙니까. 발톱에 무좀이 생길 수도 있죠.”
“아아.”
각자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사업가들인지라 뭔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업은 힘들었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온갖 희한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자신들의 회사에서도 그러는 판국에 태성처럼 커다란 회사는 어떻겠는가.
“어떻게 정상화시켰습니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직원들을 전부 물갈이하지 않는 한 그런 건 정상화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역시 사업가인지라 문제점을 금방 파악했다.
채경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횡령과 배임을 잡아내는 건 쉽습니다. 재발 방지가 어렵죠. 하지만 직원을 전부 물갈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원들의 마인드를 바꿨습니다.”
“네? 뭐라고요?”
“어떻게 하셨다고요?”
물갈이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방법이 나왔다.
사업가들이 다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청년을 바라보았다.
“가장 기본적인 것 말입니다. 잘하면 보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것이요. 신상필벌을 확실히 했습니다. 해이함은 상과 벌이 없을 때 발생합니다. 일한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일한다. 그게 제 신조거든요.”
“아주 좋은 말이네요.”
사업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우현이 말했다.
“요즘엔 받은 만큼도 일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죠. 적어도 월급값은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 말을 채경준이 받았다.
“그러니 일을 잘하면 반드시 보상을 줘야 합니다. 그래야 동기 부여가 되죠.”
신상필벌에는 또 한 가지의 의미가 있다.
공로가 있으면 상을 내리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즉, 공정한 판단과 규율 준수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주춧돌과 기둥을 바로 세우겠다는 뜻이다.
“정말 해냈습니까?”
“네. 다들 나쁜 분들은 아니라서요. 잘 설명하니 이해하고 정상적인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했지만 이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사업가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이렇게 젊은 친구한테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회사 역시 기본을 세워야죠.”
그사이에 채한익이 사용인과 함께 쟁반을 받쳐 들고 나타났다.
“누룽지탕입니다. 가볍게 드세요.”
두 번째 음식은 누룽지탕이었다.
바삭한 누룽지가 부드럽게 녹아 감칠맛을 더했다.
각자의 앞에 놓인 그릇이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채경준의 이야기를 듣는 데 여념이 없었다.
자신의 음식이 홀대받고 있었지만 채한익은 흐뭇하게 웃었다.
‘오호라, 아버지가 했다는 경영제안서 대회가 그거였구나.’
경영에 관심이 없는 척하지만 태성 내에 도는 소문은 귀에 들어왔던 채한익이다.
회장의 눈에 들었다는 그 이번 기수의 톱이 바로 눈앞에 있는 채경준임을 깨닫게 되었다.
채한익은 자신의 막내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채인하는 숟가락을 든 사실도 잊은 것처럼 멍하니 채경준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푹 빠져 있네. 정말 인하가 저 친구를 좋아하는 건가?’
채한익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며 생각에 잠겼다.
다음 요리를 준비하며 채한익은 채경준이 한 말을 생각했다.
여느 직원과는 달랐다.
마인드도 직원보다는 경영가의 것에 어울렸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채경준을 마음에 들어 한다.
채인하 역시 푹 빠져 있는 듯했다.
‘잠깐, 정말로 저 친구를 우리 집 사위로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
채한익은 설마, 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직 시기상조인 얘기다.
채인하의 마음도 확인하지 못했을뿐더러 채경준은 일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으니까.
공사 구분 못 할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 오늘 채인하를 데려온 것도 흑심이 있다기보다는 다른 속셈이 있는 게 분명했다.
아까 추궁하려다 말았지만.
흑심이 있었다면 채인하를 바라보는 눈길이 끈적했겠지만 그의 눈빛은 깨끗하고 차가웠다.
오히려 형형하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인하의 짝사랑으로 끝나지만 않았으면 좋겠네.’
아끼는 막냇동생이다.
실연의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채한익은 속으로 채인하를 응원했다.
‘인하야, 힘내라.’
그사이 사업가들과 채경준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지금은 태성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만 혹시 저희 백화점에서 신점 내기로 한 것 알고 계십니까?”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네. 얼마 전에 기공식 하셨죠?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받은 뒤 채경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신점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젝트를 맡은 게 접니다.”
또다시 탄성이 이어졌다.
사업가들은 문득 자신들이 한 대화를 곱씹어 보았다.
‘잠깐, 이거 그냥 평범한 직원이 아니었잖아?’
‘직급만 없는 거지 거의 임원급 아냐?’
홍우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실례지만 현재 입사 몇 년 차이신지…….”
“올해 입사했습니다.”
“예에?”
사업가들이 뒤집어질 듯 놀랐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올해 입사한 신입 사원이 임원급 프로젝트를 맡는다고?’
‘뭐야, 혹시 태성 회장의 숨겨둔 아들 아니야?’
사업가들은 혼란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의 상식선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투성이였다.
올해 입사했단다.
그런데 회사 하나를 정상화시키고 신점 프로젝트까지 맡았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들이 알기로는 공채 공고가 있은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입사한 지 몇 개월 만에 회사 정상화 프로젝트를 맡았다는 소린데.
그것 또한 임원급 프로젝트 아닌가.
태성이 아무에게나 프로젝트를 맡기는 회사였던가?
아니다.
대기업일수록 더 상하관계는 엄격하고 폐쇄적이다.
절대 아무에게나 일을 맡기지 않는다.
기회를 얻는 것조차 험난하다.
그런데 이 청년은 기회 정도가 아니라 한 회사를 좌지우지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들도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보니 잘 알았다.
만약 자신이라면 똑같은 상황에서 고졸의 신입 사원에게 중대한 프로젝트를 맡기겠는가?
아무리 세무사라 해도 그건 아니다.
어느 정도 능력이 증명된 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능력을 증명했다는 것인데.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젊은 친구가 대체 어디서 어떻게 능력을 증명했다는 것인가.
사업가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무언가가 더 있음을 알아챘다.
“더 말씀해 주세요. 아주 흥미진진하네요.”
“채경준 씨 이야기가 참 재밌네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채경준은 근 1년간 있었던 일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사업가들은 특히 연수원에서 있었던 도미노 게임 이야기에서 까무러칠 듯 좋아했다.
어느덧 디너 코스가 끝나가고 있었다.
반주로 나온 와인 덕에 얼큰하게 취해 있을 때, 박종연 대표가 흐뭇하게 말했다.
그는 젊을 적 고생을 많이 하고 자수성가를 한 사람이라 채경준의 이야기를 특히나 좋아했다.
“이런 분이 태성에 있다니 태성은 정말 좋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 회사로 납치라도 하고 싶네요.”
“하하, 참아주십시오. 우리 소중한 인재입니다.”
채한익이 익살스럽게 받아쳤다.
“정말 부럽습니다. 채경준 씨, 나중에 혹시 이직할 생각 있으면 나 찾아와요. 같이 사업하면 참 좋겠네.”
바라던 바였다.
드디어 입질이 왔다.
채경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대표님, 요즘 굴이 제철이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