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rporate Underling Who Excels at Work RAW novel - Chapter (213)
대기업 말단이 일을 잘함-213화(213/357)
213화. 홍보팀 (4)
홍보팀장은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
사장에게서 직접 내려온 명령 때문이었다.
아파트 재건축, 그리고 정부의 전수 조사가 있을 경우 태성 건설의 이미지 전략에 대해 보고서를 제출하라.
이것은 원래 새로 온 팀장, 채경준의 프로젝트였다.
그건 즉 채경준의 의견을 사장이 받아들였다는 뜻이 된다.
그 프로젝트가 원래 채경준의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채경준이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를 사장이 통째로 빼앗아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두 가지 감정이 휘몰아쳤다.
하나는 ‘잘난 척하더니 쌤통이다’.
또 하나는 그럼에도 몰려오는 불안감이었다.
사장이 프로젝트를 채갔다는 얘기는 결국 채경준이 옳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채경준의 프로젝트가 그만큼 가치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다.
게다가 말이 빼앗긴 거지 이건 결국 회사 차원에서 마무리를 짓겠다는 소리였다.
‘내가 왜 그놈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데!’
홍보팀장은 투덜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마침 경영지원본부장의 호출이 있었다.
아마 사장에게서 내려온 명령의 구체적인 설명 때문이겠지.
그러니 홍보팀장의 마음이 좋을 수가 없었다.
‘사장님도 그냥 무시하시면 되는데.’
홍보팀은 경영지원본부에 속해 있긴 하지만, 사장의 총애를 받는다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해왔다.
대내외 PR을 담당한다는 이유에서 권한이 강하기도 하고.
그러니 본부장이 뭐라 하든 버틸 자신이 있었다.
사장이 마음을 바꾸지만 않았다면.
반대로 말하면 그 프로젝트가 그만큼 먹음직스러웠다는 뜻도 된다.
‘재건축이면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갈 텐데. 그걸 사장님이 허락하셨다고?’
여러모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따르는 수밖에.
“본부장님, 부르셨습니까.”
홍보팀장은 본부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얼굴을 구겼다.
안에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벌써 와서 자리하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그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어서 오세요, 홍보팀장님.”
홍보팀장은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마치 자신의 사무실인 양 자연스럽게 손님을 맞이하는 게 본부장과 꽤 친해 보였다.
“본부장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본부장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차를 후룩 마셨다.
둘이 각각 따로 앉아 있는 걸 보아하니 홍보팀장을 기다린 게 틀림없었다.
앉을 자리도 채경준의 건너편 소파밖에 없다.
홍보팀장이 쉽사리 앉지 못하는 이유였다.
“어떻게 되긴, 일 이야기나 하려고 불렀죠. 인수인계는 받아야 할 것 아닙니까.”
홍보팀장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기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던 사람이 채경준이니 본부장의 말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 건에 한해서는 인수인계 받을 것이 없었다.
이미지 전략은 채경준 쪽에서 아예 시작도 안 했으니까.
다른 부서의 진행 상황도 사장실을 통해서 연계하면 된다.
TF팀도 이미 사장실에 자료를 다 넘겼다고 들었다.
이제 와서 자신과 한자리에 부른 이유가 뭐란 말인가.
“저는 인수인계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홍보팀장이 뒤돌아 나가려고 하자 본부장이 불러 세웠다.
“내가 불렀는데 그냥 가려고요? 거참 너무하네. 아무리 사장님이 예뻐하신다고 해도 직속상사를 이렇게 푸대접하면 쓰나.”
본부장의 온화한 말투에는 은근한 분노가 배어 있었다.
홍보팀장이 무례하긴 했다.
꼭 필요한 일이라면 모를까, 여기서 쓸데없이 직속 상사와 척을 질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홍보팀장은 본부장에 대한 존중의 뜻으로 소파에 앉았다.
불만스러운 기색을 잔뜩 내비치는 건 잊지 않았다.
“내가 말한 인수인계는 홍보팀장 쪽이 아닙니다.”
본부장이 찻잔을 들고 소파 쪽으로 다가왔고 채경준이 포트에서 빈 잔에 차를 따랐다.
“그럼 무슨 말씀이시죠?”
소파의 상석에 앉은 본부장이 찻잔을 달그락 내려놓고는 홍보팀장을 가리켰다.
“홍보팀에 일 새로 들어간 거 있잖습니까. 회사 차원에서 꽤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잖아요.”
“그렇습니다만…….”
일이 떨어진 이상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홍보팀의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어쩐지 불안해졌다.
여기서 채경준까지 불러다 놓고 저런 말을 하다니.
그 불안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당분간 다른 데는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것 아닙니까. 홍보팀에서 급한 일 있으면 TF팀에 넘겨요.”
“네에? 지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까?”
당연히 홍보팀장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본부장이 가볍게 받아넘겼다.
“사람 손이 모자라잖아요. TF팀의 일을 홍보팀이 이어서 하고 있으니 TF팀도 놀지 말고 홍보팀을 도와줘야죠.”
말이 돕는 거지 두 팀이 협조하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홍보팀장이 눈을 부릅떴다.
“그냥 차라리 저희 팀이 야근하겠습니다.”
“야근을 팀장이 하나? 팀원이 하지. 팀원들이 일 다 쳐내기 벅찰 텐데.”
아무리 그래도 TF팀과 협력하는 건 죽어도 싫었다.
본부장의 말대로 어차피 일하는 건 팀원이다.
팀원을 갈아 넣으면 된다.
그 생각을 눈치챈 채경준이 조금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저희가 멋대로 끼어들거나 일을 채가겠다는 게 아닙니다. 당분간 홍보팀이 고생하실 텐데 그게 결국 저희 때문이잖아요. 저희가 최소한의 도움은 드리겠다는 겁니다.”
거기에 본부장이 거들었다.
“어차피 TF팀은 노는데 뭐 하러 놀게 시킵니까. 바쁜데 도와주면 좋지. 어떤 일이든 부서 상관없이 하는 게 TF팀 아닙니까.”
말은 된다.
그러나 홍보팀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눈앞에 있는 차를 마실 생각도 들지 않았다.
홍보팀장의 반응이 없자 채경준이 말했다.
“마음에 안 드신다면 사장님께 정식으로 허락받고 오겠습니다. 그러면 될까요?”
사장의 명령이라면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채경준은 사장이 지금 이 상황에서 TF팀이 홍보팀을 돕겠다는데 굳이 거절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홍보팀이 바빠지는 건 사실이고, 다른 일이 뒤로 밀리는 것도 사실인데 뭐 하러 거절하겠는가.
홍보팀장도 그걸 알고 있어서인지 단숨에 얼굴이 구겨졌다.
“내가 고집이 세다고 생각하죠?”
홍보팀장이 꺼낸 것은 의외의 말이었다.
본부장은 저도 모르게 ‘잘 알고 있네’라는 말을 하려다가 가까스로 참았다.
“회사에서는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겁니다. 우리는 톱니바퀴고 윗선의 명령에 움직이기만 하면 돼요. 톱니바퀴는 맡은 자리에서 잘 굴러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당신 같은 사람은 그 톱니를 마음대로 어그러뜨려요.”
홍보팀장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본부장이 놀란 표정을 했다.
지금껏 사장의 충견이라고만 생각했던 홍보팀장이 속마음을 얘기한 건 처음이었다.
“머리는 사장님, 우리는 손발.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요. 회사에서 당신의 존재는 이질적입니다.”
평생을 틀에 박혀 살아온 홍보팀장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 채경준은 자신과 정반대였다.
틀에 박혔다고 해서 나쁜 건 아니다.
그의 말대로 맡은 자리에서 맡은 일을 잘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
“당장 우리 회사만 해도 그래요. 당신이 오고 나서부터 매일매일 쳇바퀴 같던 일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현장 조사에 나가질 않나, 사장님의 마음을 돌리질 않나. 모든 사람이 당신 같을 수는 없어요. 그래서도 안 되고.”
모든 직원들이 채경준 같았다면 회사는 제 모습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홍보팀장은 그걸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난 당신 같은 사람이 싫어요. 사장님에 대한 내 충성과는 별개로.”
홍보팀장은 그렇게 퍼붓고 난 후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뭐라 말해도 듣지 않겠다는 듯 찻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본부장은 일이 이렇게 될지 몰랐던 터라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채경준이 선수를 쳤다.
“어느 조직이든 밑을 받치는 기둥과 돌이 중요하죠. 돌 하나하나가 제자리에 들어가 있어야 건물이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거구요.”
홍보팀장의 시선이 채경준에게 향했다.
쉽게 수긍하는 것이 의아한 것이다.
“하지만 현상 유지만 해서는 언젠가 무너집니다. 건물에는 감가상각이라는 게 있잖아요.”
본부장과 홍보팀장 모두 엥? 하고 되물었다.
‘여기서 감가상각이 나온다고? 하긴, 세무사 출신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이해했다.
기업이 괜히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아니다.
혁신이네 뭐네 하는 그런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거나 연구개발에 큰돈을 쏟는 것 말이다.
채경준은 홍보팀장의 빈 잔에 차를 쪼르르 따라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까 각자 맡은 역할이 있다고 하셨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맡은 역할이 이거예요. 고여 있는 공기를 환기시키는 것, 새로운 곳을 찔러보는 것.”
여전히 홍보팀장은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반박은 하지 않았다.
가만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 항상 리스크가 따라오죠. 그 리스크는 제가 책임집니다. 그러니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위에서도 그런 의도로 TF팀을 만들어준 것 아니겠어요?”
홍보팀장은 얼굴을 펴지 않은 채 차를 꿀꺽꿀꺽 삼켰다.
조금이라도 더 같은 자리에 있기 싫다는 티를 팍팍 냈다.
“그런 말 한두 마디로 내 사고방식이 바뀌진 않습니다. 하지만 본부장님의 명령은 받아들이죠. 내가 지금 거절하면 사장님한테 진짜 갈 것 같으니까.”
사장을 거쳐 명령이 돌아오면 괜히 복잡하기만 할 뿐이다.
홍보팀장 입장에서는 사장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따 일거리 메일로 보내둘 테니까 알아서 하세요.”
홍보팀장은 여전히 툴툴댔지만 아까보다는 꽤 협조적인 태도였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누구 덕분에 우리 팀 바쁠 것 같으니까 모르는 거 있다고 물어보러 오지 마세요.”
홍보팀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채경준은 그가 그어둔 선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그다음은 저희가 노력해보겠습니다.”
“우리가 관리하던 거니까 노력 갖고는 안 돼요. 잘 해야지. 괜히 손댔다가 잘할 자신 없으면 차라리 놔두든가.”
“걱정 끼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채경준의 대답을 듣고도 뭔가 미심쩍은지 홍보팀장이 미적댔다.
그러나 결국 더 말을 하지 않고 본부장실을 나갔다.
채경준은 본부장에게 웃으며 말했다.
“홍보팀장님을 뵌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것 같은데요. 맞죠?”
본부장 역시 웃으며 답했다.
“잘 파악했네요. 맞습니다. 저 사람, 앞뒤 꽉 막힌 충견이거든요. 꽤 양보한 겁니다.”
“무슨 일을 넘겨주실지 기대되네요.”
“아마 저렇게까지 말했으니 그동안 진행 중이던 PR 중에 하나를 주지 않을까 싶은데요.”
팀장은 설득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물어보러 오지 말라고 엄포를 놨으니 조금 걱정이긴 하네요. 아시다시피 저희 팀이 딱 둘이라 아는 게 없어서.”
“모르는 건 물어보면 된다면서요. 바로 근처에 좋은 사람이 하나 있잖아요.”
“네?”
채경준이 되물었다.
바로 근처라면 태성 건설 내부 인물일 텐데, 그가 만난 사람 중에 PR 일을 잘 아는 사람은 짐작 가는 게 없었다.
“전에 기획본부가 따로 있을 때 홍보팀이 기획본부 소속이었거든요. 그 기획본부장이 누군지 알아요?”
“설마.”
채경준은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떠올렸다.
“조인찬 상무. 전 기획본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