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rporate Underling Who Excels at Work RAW novel - Chapter (271)
대기업 말단이 일을 잘함-271화(271/357)
271화. 입찰 경쟁 (2)
회의에 참가한 직원들은 조용히 입을 닫고 눈알만 데록데록 굴렸다.
원래 사전에 협의한 내용은 이게 아니었다.
-첫 단계. 채경준을 압박한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든 건설 본부가 실제로 피해를 본 건 사실이다.
피해를 보지 않았더라도 한 번 따질 필요는 있는 일이었다.
업계인도 아닌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들어오자마자 타깃으로 잡은 게 건설 본부라니.
한마디로 실력 보여주려고 만만한 놈 잡아다 팼다는 소리 아닌가.
본부장으로서 절대 가만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존심과 직원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두 번째. 달랜다.
채찍과 당근이었다.
첫 단계로 채경준을 압박하면 분명히 분위기가 살벌해질 것이다.
상대는 업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만 상대가 미친놈이라면 같은 회사 본부 하나 정도는 개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 건설 본부에 기회가 주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달랜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계획대로 왔다.
그런데 세 번째부터 틀어졌다.
-세 번째. 본격적인 회의. 다만 건설 본부가 주도권을 잡는다.
사장의 부탁으로 끼워주기는 하지만 이 회의는 건설 본부의 앞날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그 외인이 능력 있는 팀장에 오너 패밀리인 팀원이라 할지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업계도 잘 모르는 문외한에게 함부로 중요한 결정을 맡길 수 없다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존심도 남아 있었다.
수십 년간 업계에 종사하고 이 자리까지 올라온 부장과 팀장들의 자존심 말이다.
채경준의 능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주도권은 이쪽이 잡는다.
‘그런 계획 아니었나……?’
직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본부장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채경준과 맞상대를 하고 있었다.
싸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주도권을 가져오려고 물밑 싸움을 벌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대화가 즐거워 보였다.
“미래 건설이 끼어들 건 예상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빨리 부딪힐 줄은 몰랐네요.”
애초에 미래 건설의 시장 진입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작전을 짠 게 채경준이다.
하지만 탁희민이라는 예상 밖의 존재가 끼어드는 바람에 조금 시간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미 설립된 회사를 방치하거나 폐업하지는 않겠지만 미래 그룹 회장이 진노한 만큼 바로 회복하지는 못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미래 건설이 휘청이는 건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기회라고 생각했거든요. 경쟁 업체가 없으니 일감 독식하기 딱이다, 이랬는데.”
본부장의 말에 채경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미래 건설 입장에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긴 하네요. 내부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밖으로 눈을 돌리는 게 가장 편합니다.”
본부장이 바로 알아듣고 말을 받았다.
“원래 안에 문제가 생기면 밖의 문제를 끌어들이는 게 결속에 도움이 되죠. 그것말고도 지금이 기회기도 하고요.”
“네. 경쟁 업체가 없는 건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부를 안정시킨답시고 시간을 허비했다간 그사이 회복한 다른 업체들을 상대해야 해요. 이미 노하우와 경력을 갖춘 알박 회사들이죠.”
“이 시기에 경쟁자는 우리 태성 건설과 미래 건설, 딱 둘뿐이니까요.”
죽이 아주 착착 맞았다.
본부장이야 밥 먹고 이런 분석만 하는 사람이니 업계 정황을 알고 있는 게 당연하다.
그걸 따박따박 받고 있는 채경준이 의외라면 의외였다.
누가 저 어린 팀장을 보고 2년 차라고 생각하겠는가.
본부장과 나누는 대화를 봐서는 상황을 빠삭하게 꿰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분석까지 하고 있었다.
저런 대화는 단순히 정보만 알고 있다고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왜 이렇게 됐는지 앞뒤 이해관계까지 파악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확실히 어린데 제법이야.’
채경준이 회의에 참가한 모습을 처음 보는 팀장들은 다시 봤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이미 그를 겪어본 부장들은 그럼 그렇지, 하며 둘의 결론을 기다렸다.
이젠 주도권이고 뭐고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 수 있는 대화가 아니란 뜻이다.
윗사람의 결정을 기다리는 부하 직원처럼, 부장과 팀장들은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들었다.
“건설 본부에서는 이미 어느 건을 수주하고 입찰할지 다 결정하신 것 같은데 그 얘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아, 순서대로 설명드리는 게 맞겠군요.”
이제야 본부장의 이야기가 본궤도로 들어왔다.
무작정 채경준을 기다릴 만큼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건설 본부는 이미 결론을 낸 상태였다.
채경준이 어떤 과정으로 추론했는지 이젠 물어보지도 않았다.
본부장에게 있어 채경준은 이제 동등한 위치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쯤 되면 이 정도 상황 분석력은 당연히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수주 건은 사실 크게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는 각 부문에 들어온 건마다 다 사업 평가를 하거든요.”
채경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건설은 특히나 수익 비용의 단위가 다른 사업이다.
몇십억, 몇백억이 들어가는 사업을 회의 몇 번으로 결정할 리가 없다.
이미 팀마다 사업성 평가는 끝나 있을 것이다.
회의는 그 사업이 정말 타당한지 검증해 보는 자리이고.
“문제는 말씀하신 입찰이군요. 어딥니까?”
말했듯 중요한 것은 입찰 경쟁이었다.
수주는 회사에 의뢰가 들어온 것이라면 입찰은 반대의 경우다.
회사 측에서 상대에게 ‘우리가 공사하겠습니다’라고 사업 타당성을 어필하고 적정가를 제시해 공사를 따내야 한다.
당연히 수익성이 큰 사업이 분명하다.
“요즘 재개발 열풍이지 않습니까.”
본부장의 말에 채경준은 기억을 더듬었다.
사실 채경준은 정치 쪽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정치인들이야 다 그놈이 그놈이지.
그러나 부동산은 그 어느 업계보다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부동산 규제가 많이 풀렸다는 것을 떠올렸다.
“재개발도 지역에 따라 다를 텐데요. ……설마.”
채경준의 말에 본부장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노량진입니다.”
“와.”
단번에 납득했다.
자고로 한강을 끼고 올라가는 아파트들은 초고가를 찍는다.
대표적으로 반포가 그랬다.
노량진은 지금이야 학원가로 무시받고 허름한 건물이 많지만 위치는 알짜배기였다.
채경준은 목구멍까지 치솟은 ‘미쳤군’이라는 말을 억지로 끄집어 내렸다.
부동산에 관심 없던 채경준마저 이해할 정도로 좋은 지역이었다.
“예전부터 용산하고 노량진을 누가 개발하느냐를 두고 뒤에서 싸움이 엄청나게 벌어졌거든요.”
본부장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용산은 이미 결정됐으니 어쩔 수 없는데, 노량진은 마침 시기적절하게 시공사를 정하는 중이라 이 말이죠.”
채경준의 입에서 경탄이 새어 나왔다.
이건 될놈될이다.
용산을 놓친 게 아깝다고 통탄할 때가 아니었다.
노량진이라는 대어가 남아 있었으니.
재건축도 아닌 재개발이다.
재건축은 건물만 부수고 다시 짓는 걸 말하고 재개발은 도시 기반시설을 포함해 그 지역 모든 것을 다시 짓는 걸 말한다.
당연히 재개발이 훨씬 사업 규모가 크다.
“쟁쟁한 업체들이 노리고 있었겠네요.”
“그럼요. 제가 알기로 시공사만 두 번을 엎어졌습니다.”
재개발 과정은 대충 조합이 설립된 후, 그들이 시공사를 선정해야 작업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시간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조합이 허다했다.
정비 구역 지정이 된 건 오래전인데 10년 넘게 시공사 선정을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막상 정해놓고도 부정이 있었다며 엎어지는 일도 있었다.
애초에 조합 안에서부터 먹이 싸움이 엄청났다.
“다들 세 번째엔 자기 회사가 될 거라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마침 업계가 개판이 났지 뭡니까!”
본부장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큭큭거렸다.
본부장 입장에서도 즐거울 만했다.
아무리 태성 건설이 업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해도 경쟁은 힘든 법이다.
그중 쟁쟁한 업체들이 알아서 떨어져 나갔으니 얼마나 편한가.
“경쟁 상대가 미래 건설 하나뿐이라면 해볼 만합니다.”
채경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미래 건설은 노하우도 경력도 없는 신생 회사니 조합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없겠네요.”
“그럼요. 우리가 이상한 짓만 안 하면 거의 이긴다고 봐야죠.”
본부장이 예뻐 죽겠다는 얼굴로 채경준을 보았다.
부장들이 입을 떡하니 벌리고 본부장을 보았다.
‘아까 왜 그렇게 질책하나 했더니 우리더러 찍소리 말라는 뜻이었구나.’
본부장이 화해했다는데 누가 감히 채경준을 건드리겠는가.
이제 보니 본부장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였다.
아니, 아예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채경준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렇다고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미래 건설을 만만하게 보면 안 돼요.”
“아이고, 그럼요. 당연한 말씀을. 미래가 괜히 그룹 1위겠습니까. 미래 건설도 나름 칼을 갈고 나왔겠죠. 그거 하나 따면 다른 게 필요가 없는데.”
“현장설명회는 언제입니까? 입찰공고는 떴어요?”
다르게 말하면 시공사가 ‘우리 좀 뽑아주쇼’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자리라고 볼 수 있었다.
재개발의 경우 일반경쟁과 지명경쟁이 있다.
일반경쟁은 다 같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이고, 지명경쟁은 선정하는 측에서 몇몇 회사를 지명해 그들끼리 경쟁하는 식이다.
어느 쪽이든 최소 일주일 전에 입찰공고를 내야 했다.
“이미 떴죠. 설명회 자체는 2주 후인데 이제부터가 중요한 시점입니다.”
“그렇겠네요.”
사실 시공사가 입찰서를 작성할 때는 시공과 관련 없는 금전 등을 제안하면 안 된다.
자재라든가 혜택 등으로 정당하게 경쟁하라는 소린데 누가 그렇게 순진하게 하겠는가.
이미 뒤에서는 이런저런 손을 다 쓰고 있다.
시공사가 두 번이나 엎어진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조합과 부정한 합의가 오간 게 들킨 것이다.
“어떤 식으로 하실 겁니까?”
사업 설명에 대한 걸 묻는 게 아니라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잘 알았다.
본부장은 흘끔 주택 부문 부장을 보았다.
부장이 식은땀을 훔치며 말을 받았다.
채경준과 가장 많이 부딪힌 사람이면서 앞으로도 부딪힐 장본인이다.
그에게 있어 채경준은 역신이면서도 재신이었다.
한마디로 일복이 터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 원래 저희도 뒤로 이것저것 해보는 걸 생각해 봤는데요.”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불편한지, 아니면 채경준이 있는 곳에서 당당하지 못한 얘기를 하려니 불편한지 부장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엔 잡스러운 거 다 빼고 정공법으로 승부를 볼까 합니다.”
“이유가 있나요?”
채경준이 날카롭게 물었다.
그는 회사에서 뒷공작을 한다고 뭐라 할 사람이 아니다.
회사는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부류였으니까.
그러니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불법이라고, 더럽다고 안 할 리는 없을 텐데.
“일단 이 상황에서 움직이기엔 너무 티가 나기도 하고요.”
“다른 회사들도 티 나게 움직였을 텐데요.”
부장은 상사에게 혼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선악을 배제하고 딱 합리적인 이유를 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장의 목소리가 진중해졌다.
“이미 두 번이나 엎어진 상황입니다. 조합원들의 반발심이 커져 있어요. 이번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접촉하면 또다시 엎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우리 회사와 경쟁할 만한 업체가 없기 때문에 정공법으로도 충분한 상황입니다.”
그제야 채경준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왜 내가 보고하는 느낌이 들지?’
부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본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이유로 더더욱 이번엔 긴장해야 돼요. 사전 공작이 없었으니까 조건만 갖고 이겨야 되거든.”
채경준이 바로 대답했다.
“미래 건설은 아마 죽자 사자 파격적인 조건을 들고 나올 겁니다. 그쪽은 이 건을 반드시 따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렇다고 손안에 들어온 떡을 놓칠 순 없죠. 어때요?”
뭘 묻는 건지는 뻔했다.
채경준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죠. 꼭 가고 싶습니다.”
“역시. 그럼 멤버 결정이네. 자세한 건 저기 부장한테 들어요.”
부장이 식은땀을 훔치며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을 보고 채경준은 생각했다.
미래 건설 입장에서는 사활을 건 일이다.
게다가 아직 그쪽엔 체계가 잘 잡혀 있지 않을 것이고.
‘잘하면 탁재민을 볼 수도 있겠네.’
탁희민에 이어 탁재민이라.
긴장보다는 기대가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