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rporate Underling Who Excels at Work RAW novel - Chapter (276)
대기업 말단이 일을 잘함-276화(276/357)
276화. 입찰 경쟁 (7)
채경준의 질문은 시의 적절했다.
LTV를 150% 준다는 건 전대미문이었고, 금융권에서 받아들였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보증을 선 미래 건설은 이제 막 신설된 회사다.
검증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실적도 없다.
아무리 미래 그룹의 이름을 등에 업고 있다 해도 손해 보는 장사를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당사자인 조합원들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일이다.
물론 지금 당장 조합원들은 150%라는 숫자에 정신이 팔려 중요한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채경준은 그걸 상기시킨 것이다.
끼어들기에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읽은 건 채경준만이 아니었다.
탁재민 역시 채경준이 끼어들 거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채경준이라고 탁재민이 눈치챈 걸 모르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아까와는 다르다.
함정도 아니었고 탁재민이 유도한 대로 끌려가는 것도 아니다.
공격에 들어가야 한다.
“하하, 좋은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물론 조건은 있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채경준은 은근히 강조하는 걸 잊지 않았다.
‘어디 혜택을 베푸는 척 기만질이야. 똑바로 말 안 해?’
채경준이 으르렁거리듯 눈을 부라렸다.
‘그럼 그렇지. 어김없이 물어뜯는군. 그래도 이 정도는 예상했어.’
탁재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
“확실히 저희가 보증하는 건 주택 가격의 150%까지입니다. 하지만 그 금액을 모조리 현금으로 지급해 드리는 건 아닙니다.”
“현금이 아니면요?”
마음이 급한 누군가 재촉하듯 물었다.
“임차인에게 보증금 반환의 형태로 지급됩니다.”
“엥?”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 지역에 알 박기를 해놓은 투기꾼들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역시 무조건적으로 현금으로 주는 건 아니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나는 이해가 잘 안 가는데 누가 설명 좀 해줘요.”
“주거 목적으로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은 상관없는 이야기고요. 세입자가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걸 어쩌겠다는 건데요?”
“세입자한테 전세금이나 보증금 돌려줘야 할 것 아니에요. 그걸 LTV로 해주겠다는 소리예요. 그니까 실질적으로 우리 손에 떨어지는 돈은 없는 거죠.”
“아, 우리 대신 보증금을 내준다고요?”
채경준이 나설 것까지도 없었다.
아니, 일부러 채경준은 나서는 것을 자제하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자신이 직접 따지고 들면 태성 건설이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미래 건설의 꼬투리를 잡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이해 당사자이자 결정권자인 조합원들이 스스로 말하는 게 가장 좋았다.
다행히 설명회에 참석한 조합원들 사이에는 이미 이런 상황을 겪어본 듯한 투기꾼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빠르게 이해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줬다.
“뭐야, 이거 거짓말한 거 아니야?”
“우리가 받는 게 아니잖아요.”
바람잡이들이 당황한 듯 우물거렸다.
“거짓말한 건 아니지. 조건은 솔직하게 다 말했잖아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뭐 이런 거예요? 말하면 다예요? 이건 눈 가리고 아웅이지!”
돈이 걸린 문제다 보니 여론이 뒤집히는 건 금방이었다.
바람잡이들이 슬그머니 탁재민 쪽을 보았다.
그들 역시 은근히 속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탁재민은 아직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에이, 아실 만한 분들이 왜 이러실까. 그럼 LTV 150%가 거저 나오는 줄 아셨습니까?”
탁재민이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조합원들이 당황하며 입을 꾹 다물자 탁재민이 당당하게 말했다.
“저희도 안전하게 다른 회사들처럼 LTV 60%, 70% 충분히 가져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150%를 따낸 건 조금이라도 더 혜택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조건이 걸렸다고요? 그게 어때서요? 은행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들이 무조건적으로 현금을 내줄 리가 없잖습니까.”
채경준이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남들이 봐서는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채인하는 바로 알아보았다.
채경준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있다는 걸.
채인하는 평소보다 더 눈에 힘을 주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르는 체 남아 있을 순 없었다.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모조리 뇌에 집어넣는다.
그래야 나중에 생각할 기회라도 얻으니까.
채인하가 집중하고 있는데 채경준이 슬그머니 팔을 쳤다.
“긴장하지 마요. 아직 싸울 거리는 많이 남아 있으니까.”
채경준의 표정은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채인하는 자신이 은근히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근데 왜 안 끼어드세요?”
채인하가 속삭이듯 물었다.
아까부터 채경준이 이 상황을 못마땅해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탁재민이 유리하게 끌고 가는 것 같아 보였다.
채경준은 상황이 안 좋다고 입을 다무는 사람이 아니다.
평소 같으면 진작 열 마디는 더 했을 것이다.
그렇게 분위기를 자기 앞으로 끌어왔겠지.
그런데 오늘의 채경준은 유독 말이 없었다.
바람잡이에 투기꾼, 1세대 1주택 소유자, 임대인까지 합쳐 아우성을 치는 장내를 바라보던 채경준이 속삭였다.
“어설프게 공격하면 더 불리해져요. 상대는 만만한 놈이 아니거든요.”
채인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 있어 채경준은 큰 산이었다.
넘어야 할 상대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야말로 거목,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 누구보다 강해 보였고 듬직했다.
그를 무너뜨릴 사람은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 채경준이 이렇게 어려워하는 건 처음 보았다.
물론 채경준 입장에서는 탁희민을 상대했을 때도 이런 기분이긴 했지만, 그땐 채인하가 옆에 없었으니.
채인하의 놀란 얼굴을 흘끗 본 채경준이 덧붙였다.
“걱정 말아요. 제가 또 앉아서 당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사이 탁재민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돈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당장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을 정도의 현금을 보유한 분은 흔치 않을 겁니다. 그만한 돈은 보유하는 게 아니라 굴려야죠.”
지극히 기업가적인 말이었지만 여기 있는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증금 같은 거액을 현금으로 들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차피 여러분이 돌려주셔야 하는 돈입니다. 갖고 계신 자산을 현금화하든 대출을 받든 마련해야 하는 자금이라 이거죠. 그 과정을 생략해 드리겠다는 겁니다. 어차피 나갈 돈, 저희가 대신 드리는 거예요. 시장 최저 금리로 말이죠.”
그렇게 말하니 또 그럴듯했다.
어차피 마련해야 하는 돈이다.
무엇보다 현금으로 돌려줘야 하니 그 돈을 만드는 과정이 귀찮았다.
게다가 똑같은 대출이라면 시장 최저 금리로 조합을 통해 빌리는 게 더 낫다.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명 이 혜택이 필요하신 분이 계실 겁니다.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겠지만 이건 다른 회사에서는 드릴 수 없는 저희만의 혜택입니다. 저희는 임대인의 보증금까지 고려한 겁니다.”
자신들은 좀 더 친화적이고 섬세하다.
탁재민은 그런 어필을 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그는 또다시 채경준 쪽을 돌아보았다.
예상대로라면 이쯤에서 다시 끼어들 때가 됐는데.
이대로 가면 자신의 압승이기 때문이다.
채경준이 미세하게 혀를 차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그 역시 지금 끼어들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탁재민의 예상대로 움직이는 것이라기보다는 둘 다 시류를 정확히 읽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번에 미래 건설에서 정말 준비를 많이 해오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당하실 수 있는 게 맞습니까? 은행에서 조건부로 대출해 준다지만 결국 지급 보증을 서는 것은 미래 건설입니다. 제가 알기로 미래 건설은 신생 회사인데요.”
무슨 말인지 알아먹은 사람도 많겠지만 채경준은 일부러 조금 노골적으로 덧붙였다.
“미래 건설이 지급 보증 능력을 갖고 있는 게 확실합니까?”
“좋은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태성 건설에서 이렇게 저희 회사를 걱정해 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네요.”
한 번 비꼬는 것으로 공격에 대한 인사를 대신한 탁재민이 다시 좌중을 향해 몸을 돌렸다.
“맞습니다. 미래 건설은 생긴 지 몇 달 되지 않은 회사입니다. 아직 신용평가가 나오지도 않았죠. 하지만 이 사실은 금융기관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LTV 150%를 허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탁재민은 질문을 던졌지만 이미 답을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잠시 생각할 여유를 준 탁재민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저는 미래 그룹의 본사 전략실장입니다.”
채경준이 다시 혀를 찼다.
아까 그가 썼던 방법을 탁재민이 똑같이 따라하고 있었다.
아니, 따라한다기보다는 현재 상황에 적합한 대처를 한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탁재민은 신중하게도 이미 이 자리에서 검증된 방법을 쓰는 것을 택했다.
채경준이 성공한 방법 말이다.
“전략실장? 그게 뭐지?”
“아이고, 이 사람아. 전략실장을 모르면 어째? 그거잖아. 대기업에서 엘리트들 모아놓고 회사 방향 정하는 곳.”
“한마디로 머리라는 건가?”
“그렇지. 그런 전략실의 실장이면 그룹 실세여.”
단순히 미래 건설 관계자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아까 채경준이 그랬듯 효과는 확실했다.
“제가 왜 여기까지 나왔겠습니까. 그만큼 저희 미래 건설도 이번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본사에서도 큰 관심을 두고 있죠.”
“그러면……!”
“네. 금융기관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래 건설의 가치를 보고 결정한 게 아닙니다. 다른 걸 보고 결정한 거죠.”
그 이후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못 박아버렸다간 만일의 사태에 빼도 박도 못하고 미래 그룹이 얽히기 때문이다.
미래는 탁재민의 것이 아니다.
손발에 불과한 건설사를 위해 몸통이 희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탁재민 역시 그럴 생각이 없고.
여기서 필요한 건 그저 미래 그룹의 이름이다.
재계 서열 1위라는 대기업의 이름값이.
“그럼 미래 그룹이 보증해 준다는 거야?”
“어휴, 그러면 안심이죠. 미래 그룹은 믿을 수 있으니까.”
“다행이네. 그러면 미래 쪽을 뽑는 게 더 이득 아닌가?”
채인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까부터 옆에서 무시무시한 한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단순히 탁재민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어서라기엔 그 분노가 깊어 보였다.
미래 그룹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믿음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채경준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장내의 분위기가 기울어가자 태성 건설의 부장도 걱정스럽게 채경준을 보았다.
그러다 흠칫했다.
‘어? 일 내겠는데?’
그러나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가 사고를 친 게 뭐 한두 번이던가.
화가 난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노했다고 해서 이성을 잃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다.
그가 사고를 쳤을 땐 항상 좋은 결과를 불러왔다.
적어도 생각 없이 움직이진 않을 것이다.
채경준이 심호흡을 하더니 억누른 듯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그럼 미래 건설이 아닌 미래 그룹을 믿으라는 뜻이네요?”
탁재민이 비웃음을 띄었다.
공격하려면 다른 쪽을 찔렀어야지.
묻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질문의 요지도 빗나간 데다가 꽤 감정적으로 보였다.
채경준의 개인사를 모르는 탁재민으로서는 ‘져서 열받았군’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완전히 승리를 확신하지는 않았다.
탁재민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저희를 평가한 금융기관의 판단을 믿으시라는 겁니다. 금융기관은 잃을 만한 곳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직접적으로 미래 그룹을 믿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조합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이거나 저거나 마찬가지인 말이었으니까.
그러자 채경준이 날카롭게 말했다.
“그럼 확실하게 가시죠. 미래 그룹이 지급 보증을 한다는 각서나 계약서, 입찰 제안서를 작성해 주시면 어떻습니까?”
아하, 이렇게 나오시겠다.
꽤 감정적이 되었는데도 머리는 차갑군.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에 탁재민은 눈을 가늘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