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rt spoon's way to escape debt RAW novel - Chapter 226
225
하르무(1)
공간의 일그러짐.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자.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자는 하르무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자다.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냐? 으흐흐흐.”
그는 피로 칠갑을 한 얼굴을 아무렇게나 스윽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후훗-
하르무의 입가에 미소가 스르륵 번져갔다.
웃음에 날카롭게 자라난 송곳니가 유난히 두드러져 보인다.
훠이~
샤샤삭-
하르무가 손을 스윽 젓자 그의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빠르게 자리를 떠나간다.
주인과 주인의 대화를 듣지 말라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뭐 부하들이 있어도 되는데 왜 물리셨어요? 에헤헤.”
“하하하하하. 배코. 네가 왔는데 당연히 뭔가 할 얘기가 있어서겠지. 네가 괜히 온 것이겠냐?”
“아하하하. 하긴 그래요. 그건 맞는 말이죠.”
뒤로 깍지를 낀 채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며 총총 하르무에게 다가가는 배코.
털썩-
그런 그를 부며 하르무가 아무렇게나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시체의 위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저기 보이지?”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
키린과 부르사이가 있는 곳이다.
그들은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배코.
“네가 준 것 완전 장난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이지? 그렇게나 좋은 걸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다니. 앞으로도 또 부탁하마.”
하르무의 말.
아마 배코가 그걸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바닥에 누워있는 것은 자신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게 있어서 이들을 이길 수 있었다.
무려 2명의 주인을 말이다.
“그거 별 거 아니에요~ 뭘 그런 걸로 그렇게까지 칭찬을 하고 그러세요. 에헤헤헤.”
“아니지.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것은 오히려 나였겠지.”
“다 하르무 님이 잘해서 그런 거에요~”
그런 소리 말라며 손을 내젓는 배코.
부끄럽게스리.
배코는 몸을 배배 꼬며 그렇지는 않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나저나 그건 더 있나? 네가 만든 것.”
“뭐 더 있기는 하죠. 만드는 것도 어차피 제 머릿속 안에 다 있고 하니 완전 금방일 걸요?”
“그래? 그럼 다 좀 가져와라. 내가 다 사지. 다른 녀석들에게 이 좋은 걸 알려줄 수 없지.”
약효는 슬슬 떨어져 가는 중이었다.
몸 안의 미세혈관들의 혈류가 격해지며 점점 커지는 심장박동.
확실하게 복용 전과 복용 후의 느낌이 너무나 다르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하르무.
주인인 자신의 몸조차 이 정도로 격하게 변화가 느껴질 정도라면 다른 녀석들은 감히 어림도 없을 것 같다.
‘후우. 이 정도인가.’
그래도 이건 정말이지 너무나 좋은 것 아닌가.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배코가 만든 약 하나를 복용했을 뿐인데 주인 2명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손에 넣게 될 줄이야.
하르무의 입가에서는 연신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 그건 뭐냐? 네가 웬일이냐? 뒤에 뭐를 주렁주렁 달고 오고.”
배코와 이야기를 하던 중.
육체의 내부에서부터 벌어진 변화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새로운 존재의 등장을 잊어버렸다.
“환수 같은데?”
낯이 익다.
자신이 모르는 환수는 없으니.
자이앤트…?
그래. 비슷해.
저건 자이앤트와 비슷하다.
헌데 미묘하게 다르다.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이 들었다.
“…자이앤트…?”
짝짝짝-
하르무의 그 말에 배코가 박수를 쳤다.
“와~ 역시~ 하르무 님이라면 바로 알아볼 줄 알았어요. 맞아요. 자이앤트.”
“…자이앤트라면 퀸까지 모두 사라진 것 아니었나?”
자이앤트를 바라보는 하르무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그게 딱 지금 하르무가 느끼는 심정이었다.
“사라졌죠~ 사라졌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런데 그걸 왜?”
“하지만 제가 살렸죠~ 새끼만.”
한없이 사랑스러운 미소를 띤 채 자이앤트의 머리를 쓰다듬는 배코.
그가 머리를 쓰다듬자 기분이 격하게 좋아진 듯 더듬이를 파르르 떨었다.
머리에 달린 날카로운 턱을 연신 부딪혀가며 기쁨의 울음소리를 터뜨리는 자이앤트.
흐음…
하르무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팔짱을 낀 채 한 손으로 턱을 긁적이는 그.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녀석이 이걸 살렸다라…?
왜?
왜?
왜?
무슨 꿍꿍이지?
배코.
이 녀석은 주인들 중에서 가장 색이 흐릿한 녀석이었다.
뭘 원하는지도 뭘 하려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배코의 행보는 언제나 불투명했다.
하지만 굳이 서로의 영역을 간섭할 필요는 없었기에 지금까지야 그냥 가만히 두었지만…
“무슨 생각이지? 그걸 왜 굳이 살린 것이지?”
“아하하하. 자이앤트의 종족 특성은 잘 아시죠?”
“자이앤트의 특성은 당연히 알지.”
모를 리가 없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며 하르무가 팔짱을 풀었다.
“에이~ 아뇨~ 아뇨~ 퀸 말이에요. 퀸.”
“…퀸…? 퀸도 알지. 자신이 섭취한 먹이가 강한 자일수록 더 강한 종을 낳는다는 것 정도…?”
아!
설마…
화들짝 놀란 하르무.
“너 설마…! 배…코…”
“역시~ 아하하하하하하하.”
잠시 후 있을 상황이 너무나도 기대된다는 듯 배코가 박장대소를 했다.
“아. 잠깐만 잠깐만. 내가 지금 상황이 정리가 아직 안 되어서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는 거야?”
“제가 지금 하르무 님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무 분명히 하르무 님이 생각하시는 그게 맞을 거에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이 놈이……”
배코의 생각은 분명했다.
이 녀석…
자신과 자이앤트를 한 번 붙일 생각이다.
“…미친…놈. 그게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냐?”
“후후훗. 당연하죠. 그게 안 될 리가 없죠~”
자신감이 가득 찬 배코의 얼굴.
[저…거. 먹어도 돼…?] “우~~~웅~~~ 당연하지. 먹어도 되지. 저건 아마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최고가 될 거야~”하악. 하악.
군침을 흘리며 언제라도 돌진 태세를 갖추고 있는 자이앤트.
“아. 잠깐.”
바아아아아앙-
배코가 손을 살짝 저어 결계를 만들었다.
“결계까지 친다고?”
“당연하죠~ 아무리 그래도 주인이 먹히는 모습을 하르무 님의 부하들이 보게 된다면 충격을 받지 않겠어요?”
“그래. 네가 요즘 감을 좀 잃었나 보군. 내가 네깟 녀석들 하나 못 이길 것 같단 말이지?”
아직 가능하다.
약을 복용한 후 후유증이 자신의 몸을 맴돌긴 했지만 여분의 힘은 충분히 남겨두었다.
“후후후. 못 이길 거에요. 그리고 하르무 님을 먹고 나면 나머지 주인들도 다 먹어치워야죠. 이히힛.”
행복한 상상에 잠긴 배코였다.
“오냐. 내 그 도전을 받아주마. 으하하하하.”
그오오오오.
하르무가 전투 태세로 돌입하기 시작하며 결계 안은 순식간에 전투의 냄새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