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rt spoon's way to escape debt RAW novel - Chapter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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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여자(1)
후하.
짧은 숨소리.
분위기는 이미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았다.
덜덜덜-
달라진 분위기를 느낀 듯 몸이 절로 떨려온다.
“저… 저게 뭐야…?”
겨우 말을 더듬거리며 입을 뗴는 부르사이.
그녀가 지금껏 본 그 어떤 존재들보다 저것은…
무섭다.
아니 끔찍하다.
정신마저 아득해질 정도로 강력한 존재.
환수란 존재는 본디 이성보다는 본능에 더욱 좌우되는 존재들.
그렇기에 체스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체스를 바라본 감정은 너무나 강렬했다.
“…먹혀버린 것 같다.”
키린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부르사이보다는 정신을 잘 붙잡고 있는 듯하다.
체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계속 시선을 이어가는 키린.
그래도 자신을 비롯한 주인들은 저마다 기운을 끌어올려 열쇠와 하나가 된 관여자의 기운에 대항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막시멈은 어느 새 손을 멈춘 채 곧이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사아아-
“후. 정신을 잃으면 먹힌다.”
말을 하며 막시멈에게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는 키린.
헉-
몸이 얼어 붙을 것만 같은 냉기가 자신의 온 몸을 휘감자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든 막시멈이었다.
“…그…글을 쓸 수가 없어. 기록해야 하는데.”
“그럴 만도 하지. 기억이라도 해둬.”
“어…어…? 어…”
겨우 정신을 차린 막시멈은 그래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다시 펜을 들었다.
****
캬아아아아아아-!!!
갑자기 괴성이 울려 퍼진다.
엄청나게 몰아붙이는 압박을 못 이긴 나머지 자이앤트가 괴성을 지른 것이었다.
“우쭈쭈. 진정해. 진정해.”
아직 움직일 때가 아니다.
적어도 관여자가 두 세계를 합치기 시작하면 그때가 움직일 때다.
압박을 못 견딘 건 이해하겠으나 아직이다.
배코가 자이앤트의 딱딱한 갑각을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허나 잠시 진정을 찾는가 싶던 자이앤트가 배코의 손을 강하게 튕겨냈다.
“어…?”
일순 당황한 배코의 표정.
그의 양 끝 처진 눈꼬리가 꿈틀 올라갔다.
지금껏 자신의 모든 행동을 거절한 적이 없던 자이앤트였다.
그런 아이가 지금 자신에게 반항을 한단 말이야?
자이앤트가 반응한 이유.
체스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그에게서 흘러나와 자신을 압박하는 무형의 기운.
순간 관여자의 몸에서 흘러 나오던 기운이 눈에 보일 정도로 더욱 강하게 일렁거린다.
스윽-
고개를 슬쩍 돌리는 체스.
이미 눈동자조차 사람의 형색을 잃어버린 지 오래.
그의 눈은 온통 암흑으로 뒤덮여 있었다.
허나.
이내 관심이 없다는 듯 다시 걸음을 옮기는 체스.
바로 그때.
달려들었다.
도저히 압박을 견디지 못한 자이앤트가 체스에게 빠르게 달려든 것이었다.
하지만 체스는 뒤돌아 보지도 않는다.
대신 손을 슬쩍 들어 올릴 뿐.
그 사이 어느 새 체스의 지척까지 뛰어 들어간 자이앤트.
자이앤트의 날이 잔뜩 선 집게가 양껏 벌려졌다.
곧이라도 체스의 목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바로 그 순간.
체스의 올려진 팔에서 뻗어나간 무언가.
퍼버버버버벅-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배코의 비명.
“안돼!!!!!!”
배코가 정성 들여 키운 자이앤트.
말 그대로 곤죽이 되어 버렸다.
곧이라도 체스의 목을 떨어뜨려버릴 듯한 기세로 달려들던 자이앤트.
허나 열쇠와 하나가 되어 버린 관여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자이앤트 따위는 한 마리 날파리 만도 못한 존재.
그렇지 않은가.
주변에 날파리가 성가시게 날아다니면 손으로 가볍게 쳐내는 동작을 할 뿐.
관여자에게 있어 자이앤트는 그러한 존재였다.
살기?
그딴 살기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그저 스윽.
단지 그것 뿐이었다.
허나 자이앤트가 관여자에게 달려들 때부터 이어진 일련의 동작.
그리고 거기에 연속된 자이앤트의 죽음.
아니 해체.
지금껏 본 적 없는 배코의 표정이 드러났다.
한없이 일그러진 그의 얼굴.
이이이이익……
분노를 참을 수 없던 배코가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일렁거리는 기운을 두 손에 머금은 배코.
“감히 나의 계획을 방해해??? 이건 내 계획과는 아예 다르단 말이다!!!”
다섯 주인 중 한 명.
배코의 공격이 관여자에게 쏟아졌다.
****
“호오~”
어느 정도 압박에서 벗어난 키린이 나지막이 탄성을 자아냈다.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부르사이 또한 마찬가지.
그녀도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을 살짝 벌린 채 놀라움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배코.
그 실력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유일한 존재.
잡기에 능하다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 제대로 아는 이는 없었다.
단지 확실한 건 주인이라는 자리에 걸맞는 존재라는 것 정도?
그런 그가 움직였다.
분노에 가득 찬 얼굴을 한 채.
“에헤헤헷. 관여자고 나발이고.”
그의 손이 춤을 춘다.
10개의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간 배코의 기운들.
하지만 전혀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나풀나풀 춤을 추듯 관여자에게 날아가는 10가닥의 기운들이었다.
사라락-
가라앉는다.
배코가 뿜어낸 기운이 체스의 몸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지금은 오로지 둘의 세계.
“어디 한 번 느껴봐라. 내가 저 아이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 감히 그걸 없애??? 그럼 그대로 되갚아줘야지.”
비릿한 웃음이 잔뜩 머문 배코의 입가.
전혀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으흐흐흐-
배코의 천진난만한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
그가 시도한 공격은 정신을 헤집는 공격.
그가 가장 잘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정신계 공격.
지금처럼 말이다.
상대방을 현혹하고 지배하여 자신의 뜻대로 상대방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는 것.
이미 배코의 공격은 먹혀 들어가는 중이었다.
‘좋아.’
자신의 손에서 뿜어낸 기운은 이미 관여자에게 스며 들어갔다.
그럼 이제 하나씩 차근차근 조종할 차례지.
배코의 열 손가락 중 하나가 꿈틀거렸다.
그러자 스르르 올라가는 체스의 한쪽 팔.
그것은 체스의 어깨 정도까지 올라가더니 그대로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퍽 쳤다.
‘후후후. 어떠냐?’
역시 효과가 있다.
먹힐 줄 알았다.
관여자가 어딘가에 반응하는 것은 자신을 향한 살기에 한정된 듯하다.
아까 자이앤트를 죽일 때를 보면 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공격이 통할 줄 알았다.
그리고 이것이 통한다면…
저 녀석은 천적을 만난 셈이지.
이번에는 반대팔.
퍼어어억-
역시 통한다.
모든 사지에 자신의 기운이 스며든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최종 관문만 남았다.
스르르륵-
배코가 자신의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10개의 손가락들.
“자~ 이 대신 잇몸이지. 그렇다면 난 널 가지겠다.”
배코의 얼굴에 기쁘기 그지없는 웃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