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rt spoon's way to escape debt RAW novel - Chapter 32
32
돌아온 체스(1)
엘윈 마을의 외곽에 있는 묘지에서는 장례식이 한창이었다.
누구의 장례식인지까지는 알 수 없다.
묘지가 있는 곳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은 장례식이 한창 진행 중인 하나의 묘지.
햇살이 그득 내리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나날이었지만 장례식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가 묘지 전체에 퍼져 있는 듯 그 곳에는 무거운 침묵만 감돌고 있었다.
묘지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무거운 얼굴이었다.
죽은 이는 생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사람인 듯했다.
참석한 모두는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어두운 색의 상복을 입은 채 관을 바라보며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고 있는 중이었다.
“… 그는 약간 험상궂게 생기긴 했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늘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언제나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던 그는 이제 더 이상 우리의 곁에 없습니다. 비록 빚만 갚다 간 짧은 인생이었지만 부디 다음 생은 행복한 삶을…”
장례식을 주관하는 신관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흘러 나온다.
감정이 격앙되지 않은 오히려 슬픔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차분한 신관의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는 지금의 무거운 분위기에 묘하게 어울리며 참석한 모든 이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흑흑-
울음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듯 간간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다.
훌쩍훌쩍-
코를 훌쩍이며 슬픔에 동조하는 사람도 있다.
헤어짐이라는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던지 간에 슬픔이 가득 찬 장례식.
그렇게 신관의 목소리가 널리 퍼져 나갈수록 애도하는 사람들의 슬픔도 한층 깊어져갔다.
****
“휴,,, 이제야 왔네.”
체스의 시야에 엘윈 마을이 들어왔다.
불과 얼마 떠나지 않았던 마을이었지만 눈에 가득 찬 마을을 보니 왠지 반가움이 잔뜩 터져나온다.
중간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돌아온 것은 돌아온 것이니.
지금 그는 고작 의뢰 하나 했을 뿐인데 세상에 있을 법한 고난이란 고난은 모두 경험하고 온 듯했다.
단지 찝찝한 것은 디오스의 검에 찔린 이후부터 깨어나기 전까지 기억이 없다는 것?
하긴 기억이 없는 게 당연한 것이지.
본인은 절대 모를 것이다.
죽다 살아났다는 것을.
누구 하나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말이다.
그의 몸은 별다른 짐이 없는 탓에 아주 가벼워 보였다.
원래대로라면 개선장군 마냥 짐을 잔뜩 들고 돌아왔어야 할 터였지만…
하지만 그가 들고 있는 건 달랑 검 하나.
그것 만으로도 분한 일인데 옷에는 피마저 덕지덕지 묻어있는 게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다.
하지만 옷차림과는 완전 상반된 그의 얼굴.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인물이 없더라도 피부가 좋으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
지금 체스의 얼굴이 딱 그 짝이었다.
그의 얼굴은 예전에 비해 되레 빛이 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꽤나 많이 걸어왔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힘들거나 지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생기가 콸콸 넘치는 느낌이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힘이 넘쳐나는 몸.
마치 그릇 가득 물이 차오른 느낌이랄까.
하지만 짐이 없어 그런 것인가보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체스였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오다보니 어느 새 마을의 입구.
입구에 들어선 체스는 습관처럼 손을 들어 인사를 하려 했다.
그런데.
“응??? 뭐야?”
체스가 당황했다.
그의 반쯤 어색하게 올려진 손은 누구에게 보여야 할 지 모른 채 갈 방향을 잃어버린 듯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
왜 그런고하니 매일 자신의 인사를 받아주던 사람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늘상 그 자리를 지키던 그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마을에는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육점의 토마스도 그의 부인 안나도 꽃집의 마리도 자주 가는 식당의 주인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마을이 조용하지?’
마을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체스.
심지어 상점들도 모두 문을 닫은 듯했다.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걸어가던 체스.
‘서…설마!’
체스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순간 그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어떤 몹시도 쓰잘데기 없을 정도로 불길한 생각이 가득 찼다.
“이런 제길!!!”
생각이 어딘가에 다다른 그는 다짜고짜 칼을 뽑아들더니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갔다.
****
헉헉.
그가 달려간 곳은 순록여관.
눈앞에 웅장한 순록의 머리가 달린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이 삼켜졌다.
그의 불길하기 그지없는 마음에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손에는 땀이 가득 찼다.
아마 체스의 인생 중 제일 불안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벌컥-
여관의 문을 연 체스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보았다.
아…
역시나 아무도 없다.
“누구세요?”
여관 안쪽에서 허리가 살짝 굽은 할머니가 나왔다.
체스가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다들 어디 갔어요! 빨리! 설마 그놈들이!”
체스가 고함을 냅다 질렀다.
“뭐???”
아…
할머니는 귀가 잘 안 들리시지.
“다! 들! 어!디!에! 있!어!요!?”
“아~”
그제야 체스의 말을 이해한 그녀가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이씨!”
체스는 그걸 보자마자 재빨리 밖으로 다시 튀어나갔다.
여관 안에 있던 할머니는 너무나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누구지? 자세히 못 봤는데…? 몸집이 크던데…”
그렇다.
그녀는 노안이었다.
게다가 더 말하려 했는데 썩을 놈이 지 할 말만 하고 사라져 버렸다.
“아이구. 몰라. 궁금한 놈이 다시 오겠지 뭐.”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허리를 두들기며 주방으로 다시 돌아갔다.
****
한편 여관을 뛰쳐나온 체스.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나왔건만 역시나 마을 내부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이런 씨…”
그러고보니 너무 빨리 뛰쳐 나온 듯하다.
좀더 자세히 물어봤어야 했나?
다시 돌아가서 물어보자니 메리 할머니가 짜증을 낼 것도 같고.
그녀가 가리킨 방향은 이쪽이 맞는 듯하긴 한데…
조금 더 시선을 멀리 던지는 체스.
그제야 체스의 시야에 잔뜩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묘지 방향이었다.
“아~ 다행히 별일은 없었나보네. 모두 저기에 있느라 마을에 없었던 거구만. 가만. 저기는 묘지 쪽인데?”
휴…
그제야 좀 진정이 됐다.
다행히 마을에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은 아닌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벌써 마을 전체가 사달이 나도 났겠지.
메리 할머니도 없을 것이고 저렇게 모여있지도 않을 것이니.
그는 이제야 한숨을 놓았다.
처음 마을에 들어온 순간,
매일 보이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체스는 디오스 일행이 엘윈 마을에 해코지를 했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미친 듯이 순록여관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하지만 뭐 그건 아니니 일단은.
한숨 돌린 체스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는 묘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만.
무언가 이상한 것이 체스의 뇌리를 스쳤다.
“…내 눈이 이렇게 좋았나?”
묘지는 마을의 외곽 부분에 위치해 있다.
보일 리가 없는 거리이거늘 체스의 눈에는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똑똑히 보였다.
눈을 비빈 체스는 다시 한 번 묘지 쪽을 다시 보았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인다.
“뭐 잘못된 건 아…니겠지.”
햇살이 워낙 좋은 날씨였다.
아마 날이 좋은 탓이겠지.
별 생각없이 넘긴 체스는 장례식장이 열리고 있는 묘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누가 죽은 거지…? 영감님들인가…”
체스는 마을 사람 모두를 알고 있었다.
자고로 슬픔은 공유해야 하는 법이라고 엄마가 늘 얘기했지 않은가.
괜히 신경이 쓰인 체스는 걸음을 좀더 빨리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