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rt spoon's way to escape debt RAW novel - Chapter 37
37
출발(1)
그렇게 디어가 체스의 방에서 한창 열을 내고 있었을 무렵.
체스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자적 어디론가로 향하는 중이었다.
지나온 길을 힐끗 돌아보니 어느 새 엘윈 마을은 점이 되어 있었다.
휘유~
설렁설렁 걸어가던 체스.
엇-!
갑자기 그가 걸음을 멈췄다.
후비적 후비적-
“…누가 내 욕을 하나 본데?”
불현듯 귀가 몹시도 가려워진 체스였다.
“뭐 보나마나 디어겠지…? 그래도 편지는 남겨놨으니.”
대수롭지 않은 투로 체스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걸음을 이어가는 체스.
그가 지금 향하는 곳은 라이손 성이었다.
그 곳은 자신이 나고 자란 엘윈 마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도시이자 이 근방에 있는 도시 중 제일 큰 도시이기도 했다.
하지만 단지 크다는 이유 하나만이었다면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을 터.
체스가 그 곳으로 향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이유인즉슨 거기에 있는 어떤 것들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엘윈 마을과는 감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의뢰소와 마수 사냥꾼 조합이 있다는 것.
그리고 더 큰 이유는 그것 뿐만이 아니라 지금껏 미뤄왔던 승급 시험도 가능한 곳이기도 했다.
라이손 성은 평소 자신의 걸음으로 일주일 정도?
천천히 가면 말이다.
멀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가깝다고도 할 수 없는 거리다.
“후~”
체스는 습관처럼 이마로 소매를 가져갔다.
땀을 닦으로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지금껏 걸어왔음에도 반들반들한 피부에서는 윤기만 좔좔 흐른다.
땀을 닦으려던 소매 대신 자신의 손으로 잠시 얼굴을 여기저기 만져보는 체스.
글쎄… 이 정도면 디어보다 피부가 더 좋은 것 같은데?
으흐흐흐흐-
“그나저나 이해할 수가 없네. 이 정도면 땀이 나야 정상인데… 오히려 몸이 안 좋아진 거 아냐? 기가 허해진 건가. 얼굴이 창백해진 것 같기도 하고.”
체스는 자신의 맑고 투명하고 자신있는 피부를 톡톡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솔직히 아무리 자신이 체력이 좋다한들 이 정도는 아니었지 않나.
되레 다른 의미로 자신의 몸이 걱정이 되는 그였다.
심지어 한 걸음 한 걸음의 속도도 체감상 매우 빨라진 느낌이다.
이전의 걸음걸이가 거북이가 잠에서 갓 깨어난 수준이라면 지금은 완전 거북이가 전력질주하는 느낌이랄까.
비유가 조금 그렇지만 그만큼 몸이 쭉쭉 나아간다는 말이다.
머리를 갸웃거려봐도 뭐 구체적인 영문을 알 수가 없으니.
그래도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쁜 것 만도 아닌 것 같다.
어디 아픈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정말 몸이 좋아진 것이라는 가정 하에 말이다.
그는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도 봐라.
딱히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는 참 빛을 발하는 엘윈 마을 최고의 긍정왕이다.
“에이 몰라. 아픈 데도 없는데 좋은 거지 뭐.”
체스는 엘윈 마을을 뒤로 한 채 걸음을 조금 더 빨리 옮겼다.
그 곳은 예전에 잠시 살았던 적도 있고 해서 이미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길도 잘 닦여 있는 탓에 걸음 자체도 쉽고 하니.
라이손 성에 가는 것 정도야.
“뭐 어쨌거나 가기만 하면 되지~”
그렇게 산길을 걸어가는 그의 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
얼마나 더 걸어갔는지 모르겠다.
그는 이미 꽤나 먼 거리를 와 있었다.
대충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시간은 어느덧 점심을 가리키고 있었다.
체스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이내 아무렇게나 철퍼덕 주저앉았다.
“어유. 배도 채울 겸 잠시 쉬었다가 가야겠다.”
가방을 주섬주섬 뒤진 그가 꺼낸 것은 육포.
딱 허기를 느낄 즈음이기도 하고 끼니를 때우기 위함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디어가 만들어 준 것이었네. 짜식.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네 늘었어. 이제 시집 가도 되겠네.”
디어가 이 말을 들었다면 아마 볼을 감싸고 꺄아아 비명을 질러댔겠지.
아니다.
쥐어팼으려나?
디어의 성격대로라면 주먹을 날린다에 한 표를 주고 싶다.
둘이 있을 때는 그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그들이었으니.
뭐 방금 체스가 한 말도 떨어져 있으니 가능한 것이겠지 아마도.
여하튼 질겅질겅 육포를 씹어대며 자신 만의 생각에 잠긴 체스.
휘이이익-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든다.
체스는 앉은 그대로 육포를 씹던 입을 멈추고는 자신의 몰골을 빤히 내려다 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참 없이 살았다.
그 흔한 보호구 하나 없고 가슴팍에 다 해진 경량갑옷 하나가 전부인 자신이다.
그렇게 5년을 뼈빠지게 일을 했는데 남아있는 게 참 고작 이것 밖에 없나.
그걸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갑자기 뭔가 쓸쓸하다고 해야할 지 처량하다고 해야할 지 모를 애매모호한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참 왜 이리도 인생에 굴곡이 많은지 원.
그러고 보니 몇 년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네.
그 거지 같은 녀석들도 그렇고.
좋게 생각하면 그 녀석들 덕분에 이런 생각까지 가지게 되었으니 한켠으로는 고맙긴 하다만은.
문득 마을 사람들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디어도 아침에 온댔는데 얼굴을 보고 올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아니야. 아니야.
괜히 얼굴을 보면 또 마음이 약해질 수도 있지.
“안돼. 나약해지면 안돼. 잘 해야지. 빚도 갚고 연애도 하고 장가도 가야지.”
오히려 잘 된 거야.
짝-짝-
체스는 자신의 볼을 탁탁 두드리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생김새가 저래서 그렇지 알고 보면 참 여린 심성을 가진 체스였다.
다만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몰라서 문제지.
고개를 세차게 내저으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털어낸 체스는 다른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라이손 성에 가서 해야할 일들 말이다.
하나하나 정리를 해나가는 체스.
우선은 자신의 등급을 새로 측정을 하고…
그 다음은 라이손 성에 있는 의뢰소에서 당연히 등급에 맞춘 의뢰를 받는 것이겠지.
아무래도 현재 등급이 등급이다보니.
그렇게 되면 다음에 받는 의뢰는 당연히 거기에 따라서 결정이 되겠지?
어떻게 해서든 브론즈 등급 이상은 받아야 하는데.
“하. 이것 참. 승급 시험이라.”
체스는 자신의 검을 살짝 꺼내 휭휭 돌려 보았다.
남들은 제대로 들기도 힘들어 보이는 대검을 참 어찌 저리도 쉽게 돌린단 말인가.
아마 다른 사람들이 저런 모습을 보면 저게 무슨 아이언 등급이냐며 기겁을 하겠지.
정작 본인은 이 정도는 기본이라며 아주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브론즈 등급 정도는 받겠지. 아무렴. 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