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101
99화 레드 라벨 (3)
[(단독 보도) 블랙해머 프리미엄 라인업 출시 예고! 무엇이 다른가?] [토종 브랜드 블랙해머… 레드 라벨 프로젝트로 다시 한번 잭팟 터뜨리나?] [블랙해머, 프리미엄화를 통한 ‘新성장동력’을 움켜쥐다!]블랙해머에서 출시를 예고한 레드 라벨.
그것이 한정판 프리미엄 라인이라는 소식을 듣고 모두가 주목했다.
레드 라벨에 대한 기대감이 이렇게 커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것은 여태껏 블랙해머가 출시한 상품들이 어지간한 프리미엄 브랜드와 견줄 만한 퀄리티를 보여 줬기 때문이다.
그런 블랙해머에서 두 팔을 걷어붙이고 한정판 프리미엄을 선보인다니, 대중으로서는 기대감이 높아지는 게 당연했다.
이러한 기대와 관심 속에서 레드 라벨의 테마가 공개됐다.
그 테마는 바로 ‘협력이라는 이름의 독립’이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의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정환이 ‘협력’과 ‘독립’이라는 상반되는 키워드를 레드 라벨에 어떻게 녹여 냈을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테마에 대한 호기심은 며칠 후 딥 윈드의 레드 라벨 제품이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되며 일부 충족됐다.
마치 장인이 보석을 하나하나 깎아 만든 것처럼 유려한 선을 지닌 레드 라벨 향수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과 같았다.
여기에 강렬한 레드 톤의 누벅 가죽으로 마감한 헤드 커버는 레드 라벨이라는 이름을 더욱 강조하고 있었다.
이러한 포인트는 딥 윈드의 레드 라벨 제품과 함께 실루엣만 공개된 오리진, 그린 미스틱, 디오센드의 제품에도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몇몇 눈썰미 좋은 이들은 이 실루엣을 통해 각 브랜드의 디자인 레벨이 몇 단계나 더 진화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레드 라벨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기대감만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몇몇 사람들은 레드 라벨 자체에 대한 따가운 의심의 시선을 보냈다.
블랙해머가 짧은 시간 안에 급격한 성장을 한 만큼 그 내실이 탄탄하지 않을 거라 여겼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회 수에 목숨을 거는 일부 유튜버들 또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레드 라벨에 관한 부정적인 영상을 쏟아 냈다.
별다른 내용도, 근거도 없는 동영상이었지만 블랙해머의 승승장구에 질투의 마음을 품고 있던 일부 대중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블랙해머 레드 라벨이 실패할 거란 여론이 온라인을 빠르게 잠식했다.
하지만 딥 윈드의 레드 라벨 제품이 마침내 출시되면서 여론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실제 향수를 구매한 사람들의 긍정적인 후기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출시 일주일 전부터 오픈 런을 하기 위해 매장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든 것도 여론을 뒤집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픈 런 줄 실화냐? 일주일 남았는데 텐트까지 들고 온 사람이 있더라;;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님?
-일본은 2주 전부터 오픈 런 대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음ㅋㅋㅋㅋ
-저는 그냥 포기했습니다ㅠㅠ 리셀 마켓에서 살 생각임ㅠㅠ
-웬 리셀? 지금 리셀 마켓에도 매물 없는 거 모름?
-오픈 런 성공했음ㅋㅋㅋ 일주일 개고생한 보람 있네
-와! 진짜 너무 부럽다 후기 좀 알려 주세요 어때요?
-처음에는 레인 우디랑 만다린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싶었는데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루네요ㅋㅋ 진짜 상상도 못 했음ㅋㅋ 더 신기한 거 알려 드릴까요? 딥 윈드에서 먼저 출시했던 향수랑도 잘 어울려요
-진짜요? 그게 믹스 매치가 되나? 신기하네;;
-뜸 들이지 말고 그냥 레드 라벨 전체 공개 빨리해 주면 안 되나? 진짜 못 기다리겠는데
-그러니까요 진짜 웃돈 주고라도 살 테니까 빨리 공개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딥 윈드 레드 라벨의 성공으로 다음 레드 라벨의 제품 출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늘었다.
그와 동시에 이번에도 엄청난 성공을 이끈 정환이 이와 관련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귀추가 주목됐다.
***
딥 윈드의 레드 라벨 제품 출시 이후.
기자들은 정환과의 인터뷰 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정환의 인터뷰 기사를 실을 수 없었다.
어쩐 일인지 정환이 외부에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정환은 원래 언론을 통한 홍보에 그리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할 정도도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기자들은 의아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블랙해머의 공식적인 인터뷰는 부대표인 이동기가 전부 대신 진행하고 있었다.
다만 기자들이 원하는 건 이동기와의 인터뷰가 아니라 정환과의 인터뷰였고 기자들은 그 기회를 얻기 위해 블랙해머 사옥 앞에서 무작정 정환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심지어 그 숫자는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 온다.”
기자 중 누군가가 이렇게 외쳤고 일제히 그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출근하는 블랙해머 직원들이 있었다.
기자들은 줄지어 출근하는 블랙해머 직원들에게 반사적으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댔다.
직원들은 기자들이 어색한 듯 가방으로 얼굴을 가리며 출근했다.
그렇게 기자들이 직원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렌즈로 훑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정환의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기자 한 명이 실망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내리며 중얼거렸다.
“이 대표 얼굴이 안 보이는데. 혹시 오늘은 출근 안 하나?”
“기자들 피해서 지하 주차장으로 출근하는 거 아니야?”
핸드폰을 확인한 기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닌 거 같애. 우리 쪽 애가 지하 주차장도 조용하대.”
옹기종기 모인 기자들은 오늘도 허탕 쳤다는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이 가운데 섞여 있던 백수정 역시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 블랙해머가 새롭게 출시한 레드 라벨은 말 그대로 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런 만큼 정환과 인터뷰를 진행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점이었다.
그래서 백수정은 정환에게 여러 번 인터뷰 요청 문자를 보냈지만 정환은 그 메시지만 읽기만 할 뿐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아무리 바빠도 답장은 하던 사람이었는데…. 왜지?’
그때 기자 중 누군가가 백수정에게 물었다.
“백 기자님. 원래 이정환 대표가 언론 피하는 스타일인가? 그런 느낌은 못 받았는데.”
“혹시 백 기자 혼자 단독 인터뷰 따려는 건 아니죠?”
몇몇 기자들은 아예 대놓고 백수정을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수정은 여기 있는 사람 중 거의 유일하게 정환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백수정 역시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저도 몰라요. 알면 제가 선배님들이랑 여기서 죽치고 있겠어요? 벌써 기사 썼지.”
그 말이 사실이라는 듯 무심코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기사 한 사람이 외쳤다.
“어! 이정환이다!”
그쪽을 바라보니 정말 정환이 이동기와 함께 회사로 걸어오고 있었다.
기자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자 이동기가 이들을 진정시키며 얘기했다.
“30분 후. 컨퍼런스 룸에서 이정환 대표님의 공식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때까지만 참아 주세요.”
***
기자들이 컨퍼런스 룸에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환이 이동기와 함께 입장했다.
사방에서 플래시 세례가 터지면서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 냈다.
“대표님! 그간 두문불출하셨던 이유가 뭡니까?”
“혹시 다른 계획을 세우고 계신 겁니까? 다른 브랜드를 런칭하거나 혹시 회사를 매각할 생각이십니까?”
정환과 이동기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기자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두 사람이 침묵을 지키자 다른 기자들이 성급하게 질문한 사람들을 매섭게 쏘아봤다.
“…죄송합니다.”
컨퍼런스 룸이 잠잠해지자 이동기가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갖다 댔다.
“질문권은 앞에 계신 기자님부터 차례대로 드리겠습니다. 질서를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동기는 맨 앞자리에 앉은 기자에게 마이크를 전달했다.
“안녕하십니까. 패션 투데이 김민지 기자입니다. 먼저 레드 라벨의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레드 라벨 출시 이후 대표님께서 계속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백수정은 노트북 자판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정환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백수정 역시 정환이 두문불출했던 이유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정말 항간에 도는 소문처럼 회사를 매각하고 은퇴할 생각인가…. 설마?’
하지만 정환의 답변은 백수정을 비롯한 모든 기자의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음…. 사실 제가 곧 군대에 갑니다. 몇 달 전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았고 현역으로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정환의 대답을 듣고 앞에 앉아 있던 몇몇 남자 기자들이 아! 하고 탄식을 뱉었다.
그동안 대성한 사업가의 모습만 봐 왔다 보니 정환이 입대를 앞둔 20대 초반의 청년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정환은 기자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간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던 것도 입대 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바쁘게 지내는 바람에 여유가 통 없었거든요.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정환이 기자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백수정은 그 모습을 보며 ‘역시 은퇴 소문은 루머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백수정이 정환에게 질문했다.
“앞선 질문처럼 레드 라벨은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조만간 블랙해머가 패션 기업으로서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고요. 그런데도 조금 빠르게 입대를 결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현재 블랙해머의 상황을 따져 봤을 때 굳이 입대를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 같거든요.”
백수정이 이런 질문을 한 이유.
그것은 블랙해머가 이정환의 원 맨 기업이라 해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백수정은 정환의 부재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딥 윈드, 디오센드, 오리진 같은 브랜드가 모두 이정환의 손끝에서 탄생했어. 심지어 그린 미스틱의 성장 배경에도 이정환이 있었지. 이런 상황에서 이정환이 1년 6개월이나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야. 군 생활을 하면서 회사 업무를 볼 순 없으니까.’
백수정은 최소한 레드 라벨이 모두 공개될 때까지라도 입대를 미루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정환을 대신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을 충분히 키우면서 브랜드 내실을 다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정환은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실히 선을 그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아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었는데 마침 좋은 질문이 나왔네요. 모두의 생각대로 이번 레드 라벨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분명 접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전적으로 주도한 것은 제가 아니라 각 브랜드의 총괄 담당자들이었습니다. 전 그저 최종 결재만 맡았을 뿐이죠. 그러니 제가 길게 자리를 비우더라도 레드 라벨의 출시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겁니다.”
이 답변을 들은 백수정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정환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더 이상 블랙해머는 이정환의 원 맨 기업으로 볼 수 없었으니까.
‘설마 이번 레드 라벨 프로젝트를 통해서 내부의 역량을 기른 건가? 이렇게 단시간에? 말도 안 돼…….’
하지만 정환이라면 그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수정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닌지 다른 기자들 또한 정환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유일한 위험 요소마저 제거된 블랙해머가 어떤 파급력을 지닌 회사로 거듭날지 기대감이 피어났다.
그렇게 한동안 다른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던 정환이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제 입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기 참 민망합니다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입대와 관련된 일정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이 부분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야기를 마친 정환이 컨퍼런스 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백수정이 손을 번쩍, 들고 모든 기자가 놓쳤던 질문을 던졌다.
“언제 전역하십니까? 그것만 말씀해 주시죠!”
발을 멈춘 정환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정확한 날짜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사옥이 완공되고 레드 라벨의 라인업이 모두 공개됐을 때…. 그때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