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109
107화 돌아온 보물
완벽하게 복원된 바덴 프린지 티아라가 스웨덴 국립 미술관에서 공개된다는 소식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이 소식을 접한 하이 주얼리 브랜드들은 평소보다 더욱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들이 실패했던 복원을 누군가 해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하이 주얼리 브랜드의 명예에 금이 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심과 환희 속에서 공개 행사 당일이 밝았다.
스톡홀름의 국립 미술관 앞은 이 행사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과 시민들로 이미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먼저 미술관에 입장했던 리암은 목을 죄고 있던 턱시도의 나비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리암이 로메에서 맹도르로 일해 온 세월만 20여 년.
그동안 수많은 주얼리를 런칭해 왔다.
그 가운데 몇몇 주얼리는 대중과 언론의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전 유럽이 주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스웨덴의 각종 언론은 물론이고, 프랑스와 영국의 대형 언론사까지 미술관 주변에서 이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다.
로메의 런칭 행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관심이었기에 리암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미스터 리가 올 때가 됐는데.’
리암이 미술관 앞을 기웃거릴 무렵, 그 앞을 새까맣게 메우고 있던 인파가 한순간에 갈라졌다.
그렇게 갈라진 인파 한가운데에는 멋들어진 턱시도를 입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를 본 리암은 눈을 크게 떴다.
인파 속에서 모델처럼 당당하게 서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정환이었다.
정환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과 카메라가 익숙한 듯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미술관으로 입장했다.
리암은 헛웃음을 지으며 정환에게 말했다.
“턱시도가 정말 잘 어울리네요.”
“감사합니다. 턱시도가 없어서 그냥 가까운 가게에서 산 건데 다행히 몸에 잘 맞네요.”
“하하…….”
리암이 모델 뺨치는 정환의 옷태에 감탄하는 사이, 정환은 스웨덴 국립 미술관을 천천히 훑었다.
다른 건물에 비해 층고가 낮은 미술관은 찬란한 태양 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리암이 정환에게 물었다.
“날씨 좋네요. 하늘도 사라졌던 왕가의 보물이 다시 돌아오는 걸 알고 있나 봅니다.”
“그렇네요. 이제 들어갈까요?”
정환은 리암과 함께 국립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아트숍으로 쓰이던 1층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넓은 홀처럼 변해 있었다.
홀 가운데에는 바덴 프린지 티아라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고 두 명의 근위병이 그 주변을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리암은 먼저 홀에 입장한 몇몇 사람을 알아보고 정환에게 속삭였다.
“저 사람들 전부 하이 주얼리 브랜드의 높으신 분들이네요. 세상에, 외부 행사에 절대 참석 안 하기로 유명한 맹도르들도 있네요?”
“아마 바덴 프린지 티아라가 정말 완벽하게 복원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만족할 만한 수준인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겠죠.”
“긴장되네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결과가 말해 줄 테니까요.”
행사의 시작을 알린 것은 칼 16세였다.
칼 16세가 단상에 서자 시끌벅적하던 넓은 홀이 조용해졌다.
카메라 플래시가 간간이 터지긴 했지만 이마저도 차츰차츰 잦아들었다.
칼 16세는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댔다.
“신사 숙녀 여러분. 먼저 이 자리를 빛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드로트닝홀름 궁전이 아니라 국립 미술관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스웨덴 국립 미술관은 1792년, 구스타프 3세가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1866년 왕립 미술관에서 국립 미술관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지금의 건물로 옮겨졌습니다.”
칼 16세가 단상 위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아시다시피 스웨덴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무척 높은 세금으로 유명합니다. 이 높은 조세 정책이 유지될 수 있는 배경에는 국민의 믿음이 있습니다. 내가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일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스웨덴 국립 미술관에서 국민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칼 16세는 뒷자리에 앉아 있는 실비아 왕비와 빅토리아 공주를 쳐다봤다.
두 사람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칼 16세는 보다 큰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왕가에서 보관하고 있는 모든 보물을 차례대로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돌려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복원된 바덴 프린지 티아라가 그 시작이 될 겁니다.”
인사말을 마친 칼 16세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주변을 밝히고 있던 조명이 어두워졌고 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위에 어떤 영상이 재생됐다.
그 영상 속에는 그간 복원에 실패했던 티아라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것을 본 하이 주얼리 브랜드 관계자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소곤거렸다.
“이거, 우리가 복원에 실패했다고 대놓고 망신 주려는 거 아냐?”
“그러니까. 아무리 왕가라 해도 이건 좀…….”
하지만 영상이 이어지면서 이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복원에 실패한 티아라들이 하나씩 합쳐지면서 어떤 티아라의 실루엣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하이 주얼리 브랜드 관계자들과 맹도르들은 단번에 그것이 바로 복원된 바덴 프린지 티아라의 실루엣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굴을 붉혔다.
그동안 티아라 복원 작업에 참여했던 하이 주얼리 브랜드와 맹도르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찬사가 담긴 영상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그렇게 3분 남짓한 영상이 끝나면서 곧 공개될 바덴 프린지 티아라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칼 16세가 다시 단상에 섰다.
“바덴 프린지 티아라를 공개하겠습니다.”
칼 16세의 신호에 맞춰 근위병들은 동시에 바덴 프린지 티아라를 가리고 있던 천의 끝단을 잡았다.
그러고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그 천을 휙 잡아당겼다.
이와 동시에 천장에 매달려 있던 밝은 핀 조명이 티아라를 비췄다.
바덴 프린지 티아라가 마침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카메라 플래시는 전혀 반짝이지 않았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아야 할 기자들이 그저 멍하니 티아라를 감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넋을 놓는 게 당연할 만큼 복원된 바덴 프린지 티아라는 아름다웠다.
스칸디나비아산맥을 형상화한 듯 하늘 위로 높게 솟은 프린지.
그리고 그 프린지 사이에 알알이 박힌 다이아몬드는 마치 은하수를 그대로 옮겨 담은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바덴 프린지 티아라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왕가의 보물이자 상징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품격과 위엄을 뿜어내고 있었다.
티아라를 감상하던 하이 주얼리 브랜드 관계자들과 맹도르들은 깊은 탄식을 뱉었다.
자신들이 복원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헌에 남아 있지 않았기에 복원할 수 없었던 공백.
누구도 채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 공백이 너무 훌륭하게 채워져 있었다.
이것을 본 맹도르들의 가슴속에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이런 것을 만들어 냈단 말인가?’
이런 질문을 품은 것은 맹도르들뿐만이 아니었다.
기자들은 칼 16세에게 폭풍처럼 질문을 쏟아 냈다.
이번 복원 작업을 주도한 것이 누구냐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질문을 받은 칼 16세는 대답 대신 맨 앞에 앉아 있던 정환을 가리켰다.
기자들과 맹도르들의 시선이 마치 비수처럼 쏟아지자 리암이 정환에게 속삭였다.
“오늘 밤이 길어지겠네요. 진한 커피라도 준비할까요?”
“그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정환과 리암은 벌 떼처럼 몰려든 기자들과 하이 주얼리 업계 관계자들을 하나하나 상대하느라 종일 진땀을 빼야 했다.
***
이 행사가 끝난 후, 빅토리아 공주를 괴롭혔던 루머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칼 16세가 국립 미술관에서 했던 선언과 빅토리아 공주가 그동안 보여 왔던 서민적인 행보가 겹치면서 발생한 효과였다.
그렇게 모두의 축복 속에서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이 스톡홀름 대성당에서 열렸다.
빅토리아 공주는 약속했던 것처럼 정환이 만든 티아라를 머리에 쓰고 버진 로드에 섰다.
그리고 이 티아라는 또 한 번 큰 화제를 낳았다.
빅토리아 공주의 티아라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사람이 바로 정환이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들은 정환이 블랙해머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번에는 티아라를 단순히 복원한 것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블랙해머가 북유럽에 하이 주얼리 브랜드를 런칭하는 것이 아니냐는 보도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정환은 기자들의 이러한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유럽 하이 주얼리 브랜드들은 또다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
며칠 후, 드로트닝홀름 궁전.
정환은 칼 16세와 함께 오밀조밀하게 꾸며진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폐하. 복원한 티아라를 다시 박물관에 보관한 게 아깝지 않습니까? 몇 달 정도는 왕궁에 보관해도 될 텐데요.”
“나는 이미 왕족으로서 많은 특혜를 누렸다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이 정원에서 이렇게 산책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네. 물론 이 정원 역시 곧 개방할 예정이지만.”
칼 16세는 정환을 보며 말했다.
“자네가 복원한 티아라를 제일 먼저 확인했고 그것을 어머니의 무덤 위에 올려놨지 않나? 난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네. 이미 소원을 이뤘어.”
칼 16세의 표정은 무척 후련해 보였다.
평생 가슴속에 지고 살아왔던 한을 시원하게 풀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실비아 왕비께선 섭섭해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내도 그 티아라를 머리에 한 번 써 본 것으로 만족했네. 아내 역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했어.”
한동안 산책하던 칼 16세가 정환에게 물었다.
“그래. 출국은 언제인가?”
“내일 오전 비행기입니다.”
칼 16세는 정환이 생각보다 빨리 떠난다는 것에 무척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마음 같아선 며칠 더 머무르게 하고 싶지만 회사 일 때문에 바쁘겠군.”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히 지내십시오.”
다음 날, 스톡홀름 알란다 국제공항.
정환은 벤슨의 배웅을 받으며 출국 수속을 마쳤다.
공항 라운지에 들어선 정환은 그동안 꺼 놨던 핸드폰을 켰다.
전원이 켜지자마자 핸드폰 홈 화면 위로 수많은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 알림이 쏟아졌다.
전부 이동기가 보낸 것이었다.
-대표님. 언제 귀국하세요?
-대표님. 귀국 안 하세요? 비행기 놓치셨습니까?
-대표님. 지금 신문에 난 거, 이거 뭐예요?
-대표님? 빅토리아 공주 결혼식 사진에 대표님 얼굴이 보이는데요. 지금 제가 뭘 보고 있는 겁니까?
-전화 받으세요. 빨리.
-저, 지금 스웨덴 갑니다?
정환은 이동기에게 귀국 티켓 사진을 찍어 보낸 후 전원을 다시 껐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간만이라도 조용히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환에게는 이 휴식이 허락되지 않았다.
한참 전부터 한 남자가 계속 정환을 뒤쫓아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환은 기둥 뒤에 숨어 있던 사내를 향해 말했다.
“그냥 나오세요. 그 덩치가 가려진다고 가려질 것 같습니까?”
정환의 말에 목이 구부정한 사내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리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