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124
122화 오뜨 꾸뛰르 (1)
로메의 사내 변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앙투안의 비서는 변호사들에게 자크마르 미술관과 얽힌 이야기를 설명했다.
다들 로메에 스카우트되기 전까지 대형 로펌에서 한가락 했던 변호사들이었기에 금세 말귀를 알아듣고 대책을 내놓았다.
“로베르 관장이 일방적으로 대표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한 거군요.”
“그 배경에는 분명히 에테르눔이 있겠네요. 로메가 겨울 정원에서 오뜨 꾸뛰르를 진행하게 되면 결국 에테르눔만 피해를 보니까요.”
“맞습니다. 그러니 훼방을 놓은 거죠.”
“미스터 리라는 사람과 로베르 관장 사이의 구두 계약이 먼저 있었다는데 이걸 붙잡고 늘어져 보죠.”
“맡겨 주십시오.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면 결국 상대 쪽에서 먼저 포기할 겁니다.”
특히 몇몇 변호사는 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는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앙투안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표님?”
비서가 부르자 앙투안은 변호사들의 방법을 모두 알아들은 척하며 물었다.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겠어요?”
변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우선 에테르눔이 겨울 정원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발부터 묶어 두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대표님께서 로베르 관장과 작성한 독점 대관 계약서를 저희에게…….”
변호사의 말은 앙투안의 귀에 닿지 않았다.
지금 앙투안은 계속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겨울 정원을 그대로 날려버리기에는 아까운데.’
앙투안은 겨울 정원에 미련이 남아 있었다.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로메의 오뜨 꾸뛰르 컬렉션은 아직 약한 편이었다.
그리고 앙투안은 남은 기간 안에 그 컬렉션의 퀄리티를 높이 끌어 올릴 자신이 없었다.
이를 도맡아왔던 수석 맹도르가 에테르눔으로 이직하면서 생긴 빈틈을 아직 메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 정원이라면 그런 포인트의 부재를 감출 수 있었다.
쇼를 최대한 화려하게 꾸미고 이목을 끌어줄 연예인을 세워서 대중과 평론가의 눈을 가리면 되니까.
앙투안은 고민 끝에 변호사들에게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오뜨 꾸뛰르를 앞둔 상황이니 에테르눔은 법정 싸움을 피하려 할 겁니다. 브랜드 이미지에 흠집이 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것을 빌미 삼아 에테르눔을 최대한 압박하세요. 그리고 시청으로 가서 안전 검사도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요. 분명 털면 먼지가 나올 겁니다.”
“맡겨 주십시오.”
***
같은 시각.
정환은 에테르눔 공방에서 오뜨 꾸뛰르 쇼를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리고 리암을 비롯한 맹도르 역시 훨씬 활기찬 표정으로 컬렉션 준비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때, 공방 인터폰이 울렸다.
-로메의 변호사라고 합니다. 대표님을 바로 만나기를 청하는데요.
“네. 알겠습니다.”
인터폰을 내려놓은 정환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피에르가 서 있었다.
피에르는 오늘 아침부터 그곳에 서서 정환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변호사님. 제가 지금 물에 빠졌네요. 가라앉기 전에 구해 주셔야 할 듯한데 가능할까요?”
“혹시 제가 떠밀었습니까? 꼭 말투가 그런 느낌이네요. 제 눈에는 미스터 리가 스스로 뛰어든 것처럼 보이는데.”
정환은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피에르는 그 미소를 마주하며 말을 질문했다.
“제가 건져드리면 뭘 내놓으라고 하실 겁니까?”
“글쎄요. 보따리는 물론, 그 어떤 것도 내놓으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 드릴 게 있습니다.”
“뭡니까?”
“도적놈이 빼앗은 산해진미죠. 물론 다 같이 나눠 먹어야겠지만.”
피에르는 한마디도 지지 않는 정환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피에르는 어제까지만 해도 정환을 턱도 없는 만용을 부리는 녀석으로 생각했다.
겨울 정원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시청 담당자를 구워삶는 방법밖에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정환은 이러한 방법 대신에 정공법을 택했다.
그 결과, 겨울 정원은 안전 검사를 완벽하게 통과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왕 여사가 정환에게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지금 피에르 역시 정환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도움을 청할 때조차도 이렇게나 당당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피에르는 정환의 스케치를 가만히 쳐다봤다.
오뜨 꾸뛰르 쇼의 기승전결이 완벽히 담긴 스케치였다.
정환의 당당함은 바로 이 실력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러니 왕 여사님에게도 이거 내놔라, 저거 내놔라 요구할 수 있는 거지. 왕 여사님도 그것을 알고 있으니 끌려다닐 수밖에 없고.’
피에르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왕 여사가 가진 모든 것을 정환에게 아낌없이 주면 그것이 몇 배로 불어나리란 일종의 직감이었다.
왕 여사를 모시고 재산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해선 안 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번 떠오른 생각은 지우려 할수록 더욱 진해졌다.
피에르는 코트를 챙기며 말했다.
“잠을 설쳤더니 머리가 아프네요. 커피 한잔 마시고 오겠습니다.”
로메의 변호사들을 상대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정환은 창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앞 에스프레소 바 괜찮습니다. 거기서 드세요.”
로메의 변호사들은 정환을 기다리며 각자의 전략을 다시 확인했다.
“변호인은 선임하지 못했을 거야. 하루아침에 일을 저질렀으니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겠지. 그러니까 살살 긁어주다가 틈을 보이면 바로 쑤시고 들어가자고.”
“좋아. 시작은 로베르 관장과 구두 계약을 어떻게…….”
그때, 뒤에서 들린 구두 소리에 변호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계단을 내려온 사람은 정환이 아니라 피에르였다.
피에르를 본 변호사들이 뻣뻣하게 굳었다.
피에르는 이들을 잘 모르지만 이들은 피에르를 잘 알고 있다.
프랑스 최고의 로펌인 요르댕 프라트에서 최고의 몸값을 자랑했던 파트너 변호사가 바로 피에르였으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그마한 로펌에 불과했던 요르댕 프라트를 프랑스 1위 로펌으로 만든 사람도 바로 피에르였다.
물론 피에르는 요르댕 프라트를 1위로 만들어 놓은 후 훌쩍 떠나버렸다.
지금은 어느 대부호의 고문 변호사로 조용히 일하고 있다는 소문만이 전부였다.
그런 피에르가 갑자기 이런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다니.
로메의 변호사들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이 도대체 왜 여기에?’
눈을 좌우로 데굴데굴 굴리는 변호사들과 달리 피에르는 여유가 넘쳤다.
“좋은 아침입니다. 의뢰인을 잘못 만나서 그런지 다들 고생이네요.”
피에르가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이야기했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 이미 시작된 것으로 착각하고 움찔했다.
피에르는 이들의 착각을 굳이 바로 잡아주지 않았다.
상대방이 착각할수록 일은 더 쉬워지는 법이니까.
“미스터 리를 만나러 오신 거죠? 미스터 리와 에테르눔의 법정대리인은 접니다. 그러니 미스터 리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제게 해 주세요.”
“아, 그게 말입니다…….”
서로 눈을 마주친 로메 변호사들이 뒤로 물러섰다.
상대가 피에르라면 지금까지 세운 전략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니 다시 전략을 세워야 했다.
물론 그 전략이 피에르에게 먹힐 가능성은 없었지만 당장 피에르와 맞서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피에르는 상대방이 재정비할 틈을 주지 않았다.
“여기 바로 앞에 에스프레소 바 있어요. 미스터 리가 그러는데 커피 맛이 기가 막힌답니다. 거기서 천천히 이야기 나누죠.”
***
그날 저녁.
비서에게 진행 상황을 보고 받은 앙투안은 헛웃음을 지었다.
“뭐라고요? 이길 수 있다고 그렇게 큰소리 뻥뻥 쳐놓고는 한마디도 못 하고 돌아왔다고요?”
“상대를 잘못 만났답니다. 거기서 요르댕 프라트의 전 파트너 변호사를 만날 줄은 미처 몰랐다고…….”
“그럼 요르댕 프라트 쪽에 일을 맡기면 되겠네요? 수임료가 문제입니까?”
비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닙니다. 변호사들이 말하기론 요르댕 프라트에서도 이번 일을 절대 수임하지 않을 거랍니다. 오히려 그 변호사를 적으로 뒀다간 요르댕 프라트 전체가 에테르눔을 변호할 수도 있다고…….”
앙투안은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에테르눔이 뭐라고 프랑스 1위 로펌이 발 벗고 나선단 말인가?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상황에서 요르댕 프라트까지 적으로 돌릴 수 없었다.
겨우 이성을 되찾은 앙투안이 말했다.
“그럼 그쪽은 내버려 두세요. 여기서 문제 더 키워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시청에 보낸 변호사들은 어떻게 됐어요?”
비서는 다시 한번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가장 보고하기 싫은 내용을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변호사들이 검사 진단서를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답니다. 그리고 시청 담당자가 이렇게 악의적인 민원을 자꾸 넣으면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하겠다고…….”
“조처? 뭐, 우리 로메를 조사하겠다는 뜻입니까?”
비서가 고개를 떨구자 앙투안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요르댕 프라트에 이어 시청까지, 고작 하루아침에 상대방의 체급이 말도 안 되게 커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컸던 건지, 아니면 커진 것인지 앙투안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걸 좀 보셔야…….”
비서가 앙투안에게 신문을 건넸다.
거기에 적힌 헤드라인을 읽은 앙투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1월, 겨울 정원에서 열릴 에테르눔의 오뜨 꾸뛰르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자크마르 미술관에서도 가장 유명한 겨울 정원은 최근 자진해서 시청 안전 검사까지 받아…….
“이, 이게 뭡니까? 벌써 발행된 겁니까?”
“아닙니다. 내일 나올 신문인데 대표님의 형님께서 먼저 입수한 겁니다. 지금 대표님이 보셔야 할 것 같으니 꼭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앙투안은 맥이 빠졌다.
앙투안이 침묵하자 비서가 조심스레 물었다.
“일단 이 기사를 막아 달라고 부탁해야 하지 않을까요?”
“부탁? 씨알도 안 먹힐 소리. 형님이 이걸 보낸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물론 비서의 눈에는 착한 형님이 곤경에 빠진 동생을 돕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형이 앙투안에게 이것을 보낸 목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자신이 준 카드를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날려 먹은 동생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미가 더 담겨 있었다.
오뜨 꾸뛰르에서 에테르눔을 누를 뭔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로메는 자신이 꿀꺽 삼켜 버리겠다는 경고였다.
그 경고에 간담이 서늘해진 앙투안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
“자크마르 박물관, 그리고 에테르눔과 관련된 건은 전부 손 떼라고 하세요. 오뜨 꾸뛰르가 열릴 명소 리스트 셋업 다시 하고 10분 후에 오뜨 꾸뛰르팀 작업 확인하러 갈 겁니다. 준비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앙투안은 허둥지둥 움직이는 비서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일이 의도치 않게 꼬이긴 했지만 로메가 프랑스 최고의 하이 주얼리 브랜드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앙투안은 로메의 대표로서 그 영광의 역사를 이어갈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이 그나마 유일하게 능력을 보였던 것이 시계와 주얼리였고 아버지 역시 그 재능 하나만을 높게 샀기에 로메를 물려줬으니까.
그러니 어떻게든 로메를 지켜서 자기의 능력을 아버지와 형에게 다시 한번 입증해야 했다.
고작 에테르눔 따위에 밀릴 수 없었다.
비서가 앙투안에게 말했다.
“준비됐습니다. 내려가시죠.”
앙투안은 그날부터 오뜨 꾸뛰르 컬렉션에 말 그대로 전력을 다했다.
컬렉션의 부족한 퀄리티를 한껏 끌어 올리고 쇼의 구성을 알차게 꾸몄다.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형이 보낸 경고장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바람은 더욱 차가워졌고 오뜨 꾸뛰르가 성큼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