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137
135화 VIP (2)
아우룸루스의 런칭 쇼가 시작되기도 전이었지만 워치 플로어의 공기는 무척 뜨거웠다.
모두가 애타게 쇼를 기다리던 그때, 누군가 단상으로 올라갔다.
다들 정환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단상에 올라선 사람은 바로 리카싱이었다.
리카싱이 마이크를 쥐자 VIP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 리카싱 대표가 직접 진행하는 거야?”
“에이, 설마?”
VIP들의 시선이 리카싱에게 꽂혔다.
다른 사람도 아닌 SKA 클래식의 대표가 갓 입점한 신생 브랜드의 런칭 행사를 맡는다는 것.
즉, 이것은 리카싱이 아우룸루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세간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VIP들의 시선은 더욱 큰 기대감으로 물들었다.
단상에 서 있던 리카싱은 VIP들이 보인 거대한 기대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무리수를 둔 건 아니겠지?’
사실 리카싱은 아우룸루스의 완성된 시계를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왜 이렇게 나섰냐고 누군가 이유를 묻는다면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생각한 게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한 거라고.
조금 전, 워치 플로어의 모든 VIP는 정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아우룸루스를 런칭하는 것이 리카싱 본인이었다면 그 시선을 피해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렇게 단상 위에 섰다.
정환에게 미약한 힘을 보태기로 마음먹었으니, 처음부터 확실하게 그것을 VIP들에게 제대로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리카싱은 일부러 정환과 눈을 마주쳤다.
말도 없이 저지른 실례를 용서해 달라는 뜻을 전할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정환의 눈빛에는 여유가 가득 흘러넘치고 있었으니까.
의례적인 소개 멘트가 끝나고 마침내 그 순간이 다가왔다.
“아우룸루스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치익,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천으로 덮인 네 개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보아하니 아우룸루스의 시계가 저 천 안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을 본 VIP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뭔가 놀라운 쇼가 펼쳐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쇼는 펼쳐지지 않았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시계.
이게 전부였다.
지금까지 정환이 선보여 왔던 화려한 연출 없이 너무 정직하게 시계가 공개되자 VIP들은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특별한 건 없는 모양이네요.”
“그렇네요. 아쉬운걸요? 미스터 리가 오뜨 꾸뛰르에서 보여 줬던 그런 쇼를 기대했는데.”
“이젠 더 보여 줄 게 없다는 뜻일까요?”
“하긴, 아이디어가 바닥날 때도 됐죠. 일단 가서 봅시다.”
VIP들이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이며 기둥 가까이 모여들었고 진행 요원은 정환을 쳐다봤다.
정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신호를 받은 네 명의 진행 요원들이 시계 케이스를 덮고 있던 천을 아래로 휙 벗겼다.
“…….”
긴 정적이 흘렀다.
SKA 클래식 건물 밖을 날아다니는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릴 정도의 정적이었다.
그러나 그 정적은 전혀 공허하지 않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 기쁨, 놀라움의 감정이 VIP들의 표정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단상에서 후다닥 내려온 리카싱은 VIP들 사이로 간신히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우룸루스의 시계와 마주했다.
“아!”
리카싱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기둥 위에서 빛나고 있는 시계.
그것들은 지난번 정환이 선보였던 시제품에서 몇 단계는 더 발전된 모습을 띠고 있었다.
‘더 발전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리카싱은 그제야 정환이 아우룸루스의 런칭 쇼를 거창하게 준비하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 이것 하나로 충분해!’
리카싱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신이 걸었던 수가 무리수가 아니라 제대로 된 수였음을 확인받았기 때문이다.
“이, 이…….”
“이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VIP들이 말을 더듬었다.
제대로 된 감탄사를 나오지 않을 만큼 시계는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저 바디 보여요? 세상에…. 어떻게 세공해야 저런 느낌을 주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반 노출된 무브먼트의 움직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해요. 게다가 저기 박힌 주얼리까지!”
몇몇 VIP들은 갈증을 참지 못하고 진행 요원에게 물었다.
“이거 만져 볼 순 없습니까? 이렇게 구경만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요! 사람 애태우지 말고…….”
그때, 뒤편에서 다른 진행 요원이 크게 소리쳤다.
“시계 시착은 이쪽에서 가능합니다!”
VIP들이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늑대처럼 한달음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마음만 먹으면 몇천만 원짜리 시계는 그냥 골라 찰 수 있는 VIP들이 시착을 위해 달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VIP는 바로 리우였다.
리우는 떨리는 손으로 가장 눈에 띄었던 은색 시계를 손목에 찼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아날로그 시계만이 주는 묵직함이었다.
“음.”
리우는 시계를 찬 손목을 좌우로 흔들었다.
거슬리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시계를 벗으면 손목이 허전할 것 같았다.
리우의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이 꽂혔다.
시착을 기다리는 VIP들이 보낸 눈빛이었다.
하지만 리우는 시계를 벗지 않았다.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1분이라도 더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리우는 시계를 귀에 갖다 댔다.
째깍, 째깍.
무브먼트에서 울려 퍼지는 청아한 소리를 듣고 있으니 리우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요 며칠 동안 쌓였던 피로감이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이 변화를 느낀 것은 바로 리우의 아내였다.
“당신, 오늘 정말 달라 보인다. 얼굴이 왜 이렇게 좋아 보이지? 시계 때문인가?”
아내가 칭찬하자 리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이참에 하나 살까?”
“사고 싶어? 그럼 빨리 결정해야 할 거야.”
아내의 말에 리우가 고개를 돌렸다.
몇몇 VIP들은 시착을 포기하고 앞다퉈 시계를 사려 아우룸루스 매장 앞에 줄을 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리우가 황급히 시계를 벗으며 아내를 다그쳤다.
“당신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빨리 가서 줄 서!”
***
알렉산더의 입가에 항상 머물던 미소가 사라졌다.
간결한 아우룸루스의 런칭 쇼에 완전히 몰입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몰입의 깊이는 워치 플로어를 처음 감상했을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알렉산더는 눈앞에서 반짝이는 아우룸루스의 시계를 쳐다봤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워블로 IWB가 쌓아 온 역사가 몇 년인가.
수많은 장인이 헌신한 시간과 돈을 따지자면, 워블로 IWB는 아우룸루스보다 몇 발짝을 앞서 나가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정환이 만든 아우룸루스의 시계는 그 차이를 아득히 무시하고 있었다.
시계의 만듦새와 디자인을 냉정하게 따져 봤을 때는 이 워치 플로어 안에 아우룸루스를 따라잡을 브랜드는 단연코 하나도 없었다.
‘더 짜증 나는 건 미스터 리가 본 실력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거야.’
태어날 때부터 명품을 몸에 휘감았고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지켜봐 온 알렉산더였다.
그 경험 덕분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정환이 이번에 공개한 시계에서 자신의 100%를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래서 초조해졌다.
‘만약 미스터 리가 작정하고 하이엔드급 시계를 만든다면?’
어떤 걸작이 만들어질지 알렉산더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정환이 작정하고 자신의 실력을 전부 발휘한다면 워블로 IWB는 백 년이 지나도 아우룸루스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알렉산더의 시선이 정환에게 향했다.
그런데 정환 옆에는 벌써 수십 명의 VIP가 달라붙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알렉산더 옆에 붙어 있던 인간들이었다.
“미스터 리. 아우룸루스 매장 오픈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SKA 클래식에만 입점할 계획은 아니시죠? 다름이 아니라 제가 잘 알고 있는 곳이 있는데…….”
“예의를 좀 지키는 게 어때요? 당연히 SKA 클래식에만 오픈하겠죠. 그보다 유럽 쪽에 오픈할 계획이라면…….”
알렉산더는 그 인간들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버러지 같은 놈들.’
하지만 여기서 알렉산더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알렉산더는 홀로 워치 플로어를 빠져나왔다.
‘이대로 그냥 둘 수 없다. 방법을 생각해야 해.’
알렉산더가 생각하며 1층 로비를 지나던 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알렉산더 대표님?”
알렉산더가 고개를 돌렸다.
말을 건 사람은 바로 에스떼 바자르의 오너 웨이천이었다.
웨이천이 어색한 프랑스어로 인사했다.
“알렉산더 대표님. 이런 자리에서 만나 뵙네요.”
“웨이천 대표님. 이번에도 SKA 클래식을 벤치마킹하러 오신 겁니까?”
웨이천은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발 주자가 경쟁에서 이기려면 무슨 짓을 못 하겠습니까? 벤치마킹은 당연한 일이죠.”
“벤치마킹이라…. 제가 벤치마킹의 뜻을 잘못 알고 있었나 봅니다.”
알렉산더가 웨이천에게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알렉산더 역시 에스떼 바자르가 SKA 클래식의 모든 것을 통째로 베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말을 듣고도 웨이천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용어 해석에는 항상 차이가 있는 법이죠. 중요한 건 이것을 어떻게 실행하느냐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잘됐습니다. 마침 알렉산더 씨와 사업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었거든요.”
알렉산더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에스떼 바자르와는 사업 이야기를 나눌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웨이천은 끈질기게 알렉산더에게 붙어 말을 걸었다.
“알렉산더 대표님. 10분. 아니,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알렉산더는 웨이천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보아하니, 나를 통해 LAMH 브랜드를 에스떼 바자르에 더 입점시키고 싶은 모양인데.’
에스떼 바자르에 입점한 LAMH 산하의 브랜드 숫자는 고작해야 세 개에 불과했다.
반면, SKA 클래식에 입점한 LAMH 브랜드가 열 개가 훌쩍 넘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다.
SKA 클래식을 따라 하기만 하는 2등 백화점에 최고 명품인 LAMH 브랜드를 입점시킬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에스떼 바자르와 내가 거래해 봐야 남는 게 없지.’
알렉산더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웨이천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만 오늘은 제가 좀 피곤하네요. 나눌 이야기가 있다면 따로 약속을 잡도록 합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렉산더가 다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웨이천이 알렉산더에게 기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마음이 바뀌셨나 봅니다?”
알렉산더는 정환이 있을 SKA 클래식 빌딩을 보며 말했다.
“이런 말이 있잖습니까?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어쩌면 우리가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