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16
15화 축하 파티
검붉은 숯불이 은색 불판을 뜨겁게 달궜다.
그 위로 빨갛고 하얗게 마블링 된 소고기가 올라가자 치익! 기분 좋은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
사냥꾼처럼 젓가락을 든 이정환은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익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본 민영이 그의 등을 쿵 내려쳤다.
“누가 보면 너 굶긴 줄 알겠어!”
“배고파요.”
정환이 입을 삐죽이자 옆에 앉은 영심 할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많이 먹어, 많이 먹어!”
그녀는 정환의 새까만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많이 먹어야 쑥쑥 크지.”
“아유, 그만 커도 돼요. 이제 볼 때마다 징그러워 죽겠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영심 할머니의 말을 들은 정영주는 고기를 추가했다.
“여기 고기 좋은 거로 좀 더 줘요. 넉넉하게. 얘한테 너무 그러지 말아요. 저 나이엔 돌도 씹어 먹을 나이잖아요. 게다가 오늘은 정환이 수석 합격 축하 파티잖아요.”
“이러다 진짜 돌까지 씹어 먹을 것 같은데요?”
젓가락을 들고 있던 진수도 거들었다.
“그래. 너무 뭐라 하지 마. 나도 어렸을 땐 정환이만큼 먹었어.”
민영이 도끼눈을 뜨자 진수는 다시 불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영심 할머니는 잘 먹는 정환이 예뻐 보이기만 하는지 연신 잘 익은 고기를 접시에 놔주고 있었다.
정환도 새끼 새처럼 그 고기를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그나저나 영심 할머니도 얼굴 많이 좋아지셨어요. 이러다 밖에서 만나면 못 알아보겠는걸요?”
“그렇죠? 언니가 어렸을 땐 정말 예쁘고 귀여웠는데, 도대체 무슨 고생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실 수도 있죠. 할머니, 아!”
민영이 작게 싼 쌈을 영심 할머니의 입에 넣었다.
그때, 문이 드르륵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입 주변에 수염이 덥수룩한 그는 사계절 미술 학원 원장 박수현이었다.
“아이고, 늦었습니다!”
“원장님!”
수현이 민영과 진수, 그리고 영심 할머니에게 인사하며 자리에 앉자 영주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왜 이렇게 늦었어? 정환이 수석 합격했다고 현수막이라도 대문짝만하게 뽑았나 봐?”
“아, 정확하십니다. 사계절 미술 학원 이정환 한국예고 수석 합격! 대문짝이 아니라 건물만큼 크게 뽑았습니다. 한번 보시죠.”
박수현은 건물에 걸어둔 현수막 사진을 민영과 진수에게 보여 줬다.
현수막은 4층짜리 학원 건물 벽을 전부 가릴 만큼 어마어마하게 컸다.
“세상에. 정말 이렇게 뽑으신 거예요? 합성이 아니고?”
“이렇게 크게 뽑으셨으면 돈도 만만찮게 들었을 텐데요.”
민영과 진수의 걱정에도 수현은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가질 않았다.
“저도 학원 운영하면서 이렇게 큰 합격자 현수막은 처음 뽑아 봅니다. 으하하핫!”
수현은 말없이 고기만 씹고 있는 정환의 등을 탁! 치며 소리쳤다.
“고맙다. 우리 수석 합격자, 이정환!”
“이참에 다들 건배하시죠! 정환이도 맥주 한잔할래?”
진수가 잔을 들자 박수현 원장도 맞장구쳤다.
“아, 정환이도 이제 열일곱 아닙니까? 다 컸죠. 아버님께 술 한 잔 받아도 됩니다!”
“다들 왜 이래, 정말!”
잔과 잔이 오가고 고기가 쉬지 않고 구워졌다.
정환에겐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축하 파티.
식사 자리가 끝날 무렵, 영주가 자연스럽게 계산서를 집어 들었다.
“잠깐!”
누군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민영이었다.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
“아유, 됐어요.”
“아니에요! 저희 아들 축하 자리였잖아요. 그러잖아도 선생님께 음식 대접 한번 해야겠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진수도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저랑 아내도 좋은 일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성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시고 받아 주세요.”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말하자 영주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한 끼 얻어먹어도 괜찮겠죠?”
정영주가 계산서를 건네고 먼저 가게를 빠져나갔다.
두 손으로 계산서를 가리고 있던 민영은 마치 복권 당첨을 확인하듯 아주 천천히 손을 내렸다.
“헐.”
“허얼.”
민영과 진수가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식대가 꽤 나왔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계산서에 찍힌 금액은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저, 정환이가 엄청 먹었네.”
“박수현 원장님도 지분이 상당한데……. 박 원장님 몫은 따로 받을까?”
하지만 박수현 원장은 진작에 불길한 낌새를 알아차린 듯 이미 신발을 신고 밖으로 휑 나가 버린 후였다.
“됐어. 그냥 계산하자.”
“그래.”
비용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 영주가 그들에게 베풀어 준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이런 걸 아까워할 이유가 없었다.
민영은 떨리는 손으로 점원에게 계산서와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이요.”
점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4번 매화 방에서 식사하셨죠? 아까 나가신 분이 계산하셨는데요.”
“네? 누, 누가요?”
“여자분이요. 키 크고 머리 하얀…….”
계산을 한 사람은 바로 정영주였다.
민영과 진수는 얼빠진 표정으로 서로를 멍하니 쳐다봤다.
한편, 고깃집 밖에선 박수현 원장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정환과 영심을 차에 먼저 태운 정영주가 수현에게 물었다.
“아, 다른 게 아니라 정환이 그림 때문에요.”
“정환이 그림? 왜?”
수현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자갈을 툭 차며 말했다.
“선생님도 정환이 재현작 보셨잖아요. 한국예고가 학생들의 창의성을 중시하긴 하지만 정환이 그림을 받아들이긴 어려웠을 거예요.”
“결국, 입시니까.”
“네. 분명 교사들은 미완성으로 판단하고 불합격으로 분류했을 거예요. 그 판단을 뒤집을 만한 사람은 외부 심사위원뿐인데…….”
박수현 원장도 입시 미술 학원 원장이다.
그렇기에 외부 심사위원일지라 해도 한국예고 교사들의 합격, 불합격 판단을 쉽게 번복하지 않는다는 관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관례가 깨졌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두 가지였다.
콧대 높은 한국예고 교사들이 모두 이해할 만큼 외부 심사위원의 권위와 명예가 대단했다는 것, 그리고 외부 심사위원이 정환의 그림을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것이었다.
“짐작 가는 사람이라도 있어?”
정영주가 물었다.
박수현 원장이 아는 사람 중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교사들이 모두 이해할 만큼 명예가 있는 자, 그리고 이정환의 그림을 제대로 평가할 만한 자.
바로 이홍림 교수였다.
하지만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홍림 교수님이 예고 심사위원을 맡을 리가 없지. 아니면 철웅이한테 물어볼까?’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회화과 동기이긴 하지만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다.
게다가 입시 미술 학원 원장이 예고 교사에게 따로 연락했다가 괜한 오해를 부를 수도 있었다.
그때, 누군가 박수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진수였다.
“선생님. 계산을 방금 하고 왔는데 꽤 많이 드셨더군요.”
“아, 그게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뒤따라온 민영도 정영주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계산을 먼저 하시면 어떻게 해요! 저희가 산다고 했잖아요!”
민영이 아우성치자 영주는 귀를 틀어막았다.
“아유, 시끄러워. 됐고. 다음에 더 비싼 거로 사. 커피나 한잔하러 가요. 정환이 조각 케이크 좋아하잖아.”
“케이크, 아!”
박수현 원장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친 후 허둥지둥 주차해 둔 자신의 경차로 뛰어갔다.
그는 차 뒷좌석에서 네모난 상자를 꺼내 정환에게 건넸다.
상자 속에는 새까만 초콜릿 케이크가 영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고기 먹느라 이걸 깜빡했네. 합격 축하 선물! 초코케이크야. 이거 주문 제작한 거야.”
“케이크, 아!”
정환도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깜빡했던 약속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민영이 쯧쯧, 혀를 찼다.
“박 원장님 밑에서 이상한 거만 배운 것 같지 않아?”
“그러게. 학원을 옮겨야 하나…….”
한동안 호주머니 속을 뒤지던 정환은 어떤 명함을 꺼냈다.
염석봉 대리가 건넸던 바로 그 명함이었다.
그는 명함에 적힌 번호를 누른 뒤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
“안녕하세요. 저 이정환이에요.”
***
커다란 고급 저택들이 즐비한 골목.
파란색 철제 대문 앞에 선 수연은 초조한 듯 제자리를 빙빙 맴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앞으로 커다란 차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수연은 조수석에서 내린 여자에게 냅다 달려가 안겼다.
“정 실장님!”
정민주 실장은 품에 쏙 안긴 수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안에서 기다리지 그랬어?”
뒤이어 기사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
거기서 내린 노년의 여자.
화려한 명품 따윈 하나도 걸치지 않았는데도 우아한 기품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했다.
수연이 그녀에게 인사했다.
“할머니. 다녀오셨어요?”
차에서 내린 여자.
그녀는 바로 제일 패션 그룹의 대표이자 수연의 할머니인 박옥정이었다.
그녀는 수연에게 두 손을 쭉 뻗었다.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할머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저도 보고 싶었어요.”
수연은 정민주 실장에게 안겼던 것처럼 옥정의 품에도 똑같이 안겼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엔 뭔가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포옹이 끝난 후 할머니 품에서 떨어진 수연이 먼저 선수를 쳤다.
“할머니. 죄송해요. 열심히 했는데…….”
맥락 없는 말.
하지만 옥정은 수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수연아. 할머니는 네가 한국예고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쁜지 몰라. 게다가 차석이잖니. 그거 쉬운 일 아니다.”
옥정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수연을 위로했다.
정민주 실장도 윙크를 보내자 수연은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올라가자. 할머니가 우리 수연이 주려고 선물 사 왔어.”
“네!”
집으로 들어선 옥정은 수연에게 환한 미소를 보냈다.
그러고는 정민주 실장과 함께 서재로 들어섰다.
“후.”
옥정의 표정이 한순간에 싸늘하게 바뀌었다.
“수연이가 차석이라.”
“죄송합니다. 올해 외부 심사위원은 교사들에게도 전혀 알리질 않아서 손을 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누구야?”
“이홍림 교수입니다.”
“이홍림? 그 함부르크…….”
박옥정이 눈썹을 살짝 찡그리자 정민주 실장이 덧붙였다.
“함부르크 조형 미술 대학.”
“그 사람이 한국예고에 심사위원으로 왔다고?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주변엔 아무도 없었지만 정민주 실장은 목소리를 낮췄다.
“작년 전국 중학생 미술 대회 건과 관련해서 미술 학원 원장들 사이에 소문이 퍼진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예고 이사장 귀에도 자연스럽게 들어갔을 테고, 구설수를 막으려고 이홍림 교수를 조용히 초빙한 것 같습니다.”
박옥정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수석은 누구야?”
“이정환입니다.”
“이정환?”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이었다.
정민주 실장이 그녀의 기억을 일깨웠다.
“작년 전국 중학 미술 대회에서…….”
정민주 실장은 일부러 ‘대상’이라는 단어를 생략했다.
괜히 박옥정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었으니까.
“좀 더 알아볼까요?”
박옥정은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들을 뺐다.
반지에는 빛나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아냐, 됐어. 나가 봐.”
정민주 실장은 박옥정이 화장대 위에 올려 둔 반지들을 무심하게 치우는 모습을 보며 밖으로 나왔다.
정환이 아무리 보석처럼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저 반지처럼 한쪽 구석으로 치워질 운명이었다.
게다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손녀의 앞을 가로막았으니 그의 운명은 불 보듯 뻔했다.
***
오현섭은 이어폰 볼륨을 높였다.
하지만 밖에선 그의 부모님이 거세게 싸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당신 너무한 거 아냐? 애가 합격했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축하한다는 말도 안 해?”
“축하? 무슨 축하? 에이플 미술 학원 원장 아들이 당연히 수석, 차석은 해야 하는 거 아냐? 그것도 못 했다고 하면 학부모들이 우리 학원에 애들을 보내겠어?”
현섭의 아버지가 기가 막힌 듯 말까지 더듬었다.
“다, 당신 그게 엄마라는 사람이 할 소리야?”
“당신이야말로 모르는 소리 하지 마! 학부모들 말 한마디에 학원이 얼마나 휘청거리는데!”
고성이 오가던 사이, 현관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좀처럼 집에 안 들어오던 형이었다.
“분위기 왜 이래?”
형이 들어오자 부모님이 말싸움을 멈췄다.
어머니는 한동안 씩씩거리다 한마디를 뱉었다.
“그나마 현수라도 멀쩡하니 다행이지.”
“당신 자꾸 말 그렇게 할 거야?”
현섭은 이어폰을 귓구멍에 있는 힘껏 밀어 넣었다.
그가 쥔 핸드폰에선 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한 학생이 리어카를 밀던 할아버지를 멋지게 구하고, 뒤이어 시비를 걸던 오토바이 운전자와도 맞서고 있었다.
[문신육수충 참교육 꺼어어억!] [더럽게 잘생겼네. 이거 바이럴이냐?] [쟤 용감한 시민상 받았던 놈 아냐? 오졌다.]영상이 끝나고 핸드폰 화면이 검게 변하자 현섭의 얼굴이 반사됐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모델 활동을 시작한 형과 달라도 너무 다른 얼굴이었다.
현섭은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