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19
18화 특강 (1)
문이 드르륵 열리며 이홍림 교수가 입장했다.
“힛!”
몇몇 학생들이 땅딸막한 이홍림 교수를 보곤 눈치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예의 없고 무례한 행동이었다.
구철웅이 곧장 주의를 시키려 했지만, 이홍림 교수가 한발 빨랐다.
그녀는 웃음을 터뜨린 학생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형형한 눈빛을 받은 학생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해지고 이내 울상으로 바뀌었다.
‘쯧쯧.’
구철웅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가 신입생으로 입학했을 때도 이홍림 교수를 보고 저렇게 웃었던 학생이 있었다.
구철웅은 그때 처음 알았다.
저렇게 작은 체구에서도 어마어마한 성량이 나온다는 사실을.
이홍림 교수의 사자후를 들었던 학생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었는데.
“음.”
이홍림 교수는 교단에 섰다.
그녀는 실기실 의자에 앉은 학생들의 얼굴을 차례차례 응시했다.
2, 3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의 눈 맞춤.
학생 대부분이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홍림의 그 강렬한 눈빛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는 학생도 있었다.
정환이었다.
‘저 녀석 좀 보게?’
정환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었다.
그는 이홍림 교수의 눈빛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거인이다.’
거인.
정환이 이홍림 교수를 보자마자 느낀 첫인상이었다.
이홍림 교수는 분명 난쟁이처럼 키가 작았지만, 내면에는 분명 엄청나게 큰 거인이 있었다.
이홍림 교수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다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홍림입니다.”
이홍림 교수가 짤막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홍림이라는 인물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했다.
학생들은 고작해야 열일곱 살이니까.
“몇 달 전이죠? 전 여러분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그렸던 그림을 직접 심사했습니다. 즉, 어떻게 보면 여러분들은 제 선택을 받은 학생들이라는 뜻이죠.”
그녀는 자신이 한국예고 외부 심사위원이었다는 사실을 살짝 돌려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의 얼굴에 경외심이 생겼다.
심사위원은 대부분 명망 있는 교수, 혹은 권위 있는 작가들이다.
즉, 심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홍림 교수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증명되는 것이었다.
“자. 다들 특강이라고 하니 긴장한 것 같네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좀 해 보죠. 제가 한국 대학교 회화과 교수로 재직했을 때, 여기 구철웅 선생님이 제자였습니다.”
“네? 진짜요?”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어른들의 뒷이야기는 항상 재미있는 법이었다.
특히 그 대상이 눈앞에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그랬다.
“그때 구철웅 선생님이 저한테 혹평을 받은 날이면 한국대 포장마차 앞에서 막걸리를 마셨답니다. 저를 씹으면서 말이죠. 귀가 얼마나 간지러웠는지, 참.”
“엑?”
구철웅이 당황한 듯 쇠 긁는 소리를 냈다.
“그, 그걸 어떻게…….”
“거기 포장마차 주인이 나랑 중학교 동창이야.”
“어잉…….”
구철웅이 손만 꼼지락거렸다.
당황한 표정을 보니 포장마차에서 정말 이홍림 교수 욕을 했던 모양이었다.
학생들이 그 사실을 깨닫고 와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젠장, 망했다.
구철웅의 카리스마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다행히 이홍림 교수는 그를 더 민망하게 만들지 않았다.
“잡설은 여기까지. 갑자기 특강을 한다고 해서 많이 놀랐죠?”
이홍림 교수가 부드럽게 묻자 학생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합니다. 특강이라고 해서 여러분들에게 대단한 걸 가르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만한 재주도 없고. 하지만 여러분들을 위해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80년대 중반, 함부르크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티만이라는 분이 지도 교수님이셨어요. 지금은 작고하셨는데, 티만 교수님이 첫 수업에 했던 말씀을 오늘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이홍림 교수는 농담으로 가볍게 분위기를 풀면서도 은연중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고 있었다.
역시 노련한 교수다웠다.
그녀는 칠판 위에 분필로 어떤 문장을 썼다.
바로 ‘너 자신을 알라’였다.
“많이 본 말이죠?”
“소크라테스요!”
이홍림 교수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던 학생에게 윙크를 보냈다.
“그래요. 하지만 사실은 그리스 델포이 신전 기둥에 새겨져 있는 격언입니다. 뭐, 이 격언을 누가 언급했는가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옆에서 수업을 같이 듣던 구철웅도 눈을 크게 떴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었어?’
이홍림 교수는 손을 들어 앞에 앉은 학생들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여러분들은 졸업 후 수많은 곳에서 일하게 될 겁니다. 개똥이는 광고 회사, 말순이는 순수 미술, 복동이는 영화사에 다닐 수도 있죠. 꼭 예술 계통이 아니더라도 여러분들은 인생을 살아가며 각자의 작품을 만들게 될 겁니다.”
학생들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길어야 몇 년 후에 그들에게 일어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훌륭하게 해내려면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먼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도 모르는데 타인의 감정을 움직일 작품을 만들어 낼 순 없겠죠?”
이홍림 교수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쓴 문장 아래에 또 다른 단어를 썼다.
바로 Self-portrait였다.
그녀는 portrait에 밑줄을 좍 그었다.
“자화상이라는 뜻을 가진 Self-portrait. 여기서 portrait는 라틴어 portrahere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밝히다’, ‘끄집어내다’라는 뜻이죠. 즉 자아라는 의미의 Self를 앞에 붙이면 ‘자기 자신을 밝힌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홍림 교수는 학생들을 다시 응시했다.
학생들은 이미 이홍림 교수의 말솜씨에 빠져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티만 교수님은 첫 수업 과제로 자화상을 그리라고 하셨습니다. 본인들의 얼굴에 불을 밝히고,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라고 하셨죠. 여러분. 이게 어려웠을까요, 쉬웠을까요?”
“어려워요!”
합창처럼 들려오는 소리.
이홍림 교수가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빙그레 웃었다.
“맞아요. 무척 어려웠습니다. 저도 이 과제를 받았을 땐 뭘 어쩌란 건지 알 수 없어서 방을 데굴데굴 굴러다녔어요.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났죠. 다들 어렸을 때, 그림일기를 써 본 적은 있죠? 그게 어려웠나요?”
학생들이 고개를 저었다.
글자만 채워 넣어야 하는 일기와 달리, 그림일기는 훨씬 더 수월했다.
그날, 그날 보고 느낀 걸 축약해서 그리면 되니까.
“자화상은 그림일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기에 어떤 내용을 쓰죠? 솔직한 내용을 쓸 때도 있습니다. 내 상황이 이러이러해서 개판이고 최악이다. 죽을 것 같다. 이런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그림으로 풀어낸 사람이 누구일까요?”
“반 고흐?”
“그렇죠.”
역시 대표적인 화가는 반 고흐였다.
특히 그는 자신의 귀를 잘라 내던 시절에도 마치 셀카를 찍듯 자화상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반 고흐도 일종의 그림일기를 그린 겁니다. 반대로 내가 되고 싶은 모습, 마음속 이상을 투영해서 그릴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자화상은 ‘자기 자신을 밝힌다’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된다고 했죠? 그러니까 일기처럼 내가 보여 주고 싶은 부분만을 밝혀서 보여 주는 게 자화상인 겁니다.”
학생들은 앞으로 이어질 특강 내용이 자화상 그리기라는 것을 눈치챘다.
자화상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고 이젤에 거울이 붙어 있었다.
몇몇 학생들이 특강 내용은 귀담아듣지 않고 거울로 자기 얼굴을 훔쳐봤다.
그들은 어떻게 그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홍림 교수는 손목에 찬 작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여러분에게 30분을 드리겠습니다. 30분 동안 여러분은 간단한 스케치로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그림일기를 그리면 됩니다. 잘 그리거나, 못 그리는 건 없습니다. 평가하는 것도 아니니 부담 갖지 말고 편안하게 그리세요.”
이홍림 교수는 분명 그림일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화상을 그리라는 소리였다.
이를 들은 학생들의 표정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이마에 내 이름 쓰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내 얼굴이 되는 거잖아.”
“네가 이말년이냐?”
학생들 사이로 시답잖은 농담들이 오갔다.
하지만 웃음기는 전혀 없었다.
간단한 스케치라고 해도 이홍림 교수가 직접 보는 앞에서 거울을 보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긴장을 안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신호에 맞춰 학생들이 마치 경주마처럼 연필을 잡았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한국예고에 입학한 학생들답게 다들 집중력이 상당했다.
구철웅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심스럽게 이홍림 교수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교수님. 근데 정말 포장마차 주인아저씨가 동창이에요?”
“뻥이지. 너 진짜 내 욕 살벌하게 한 모양이구나?”
젠장, 낚였다.
구철웅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학생들을 쳐다봤다.
“그런 적 없어요. 그나저나 너무 어려운 과제를 낸 것 같은데요. 특강이라고 하셔서 그냥 수업하듯이 말씀만 하실 줄 알았어요.”
학생들 또한 무척 당황한 눈치였다.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손바닥만 한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마주 보며 그림을 그리는 건 건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잘 그리거나, 못 그리는 건 없다고 했잖아. 게다가 난 자화상 그리라는 말은 안 했어. 그림일기를 그리라고 했지.”
구철웅은 입을 삐죽였다.
‘그게 그건데.’
이홍림 교수는 입을 삐죽이는 구철웅 쪽으로 관심을 두지 않고 학생들의 그림을 찬찬히 살폈다.
대부분 어떻게든 선을 그어 가며 자기 얼굴을 그리고 있었다.
학생들 뒤를 천천히 걷던 이홍림 교수의 발이 멈췄다.
아까, 그녀의 시선을 끝까지 피하지 않았던 학생의 뒷자리였다.
그런데 그는 연필을 쥐지 않았고 선도 하나 긋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있었다.
포기한 건가?
아니다. 분명 생각에 잠겨 있다.
그것도 거울을 뚫어지게 보며 아주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렇지!’
이홍림 교수가 원한 건, 다른 학생들처럼 자신의 얼굴을 열심히 그리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거울을 마주 보고 하는 진지한 고민을 원한 것이었다.
정환은 옆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이홍림 교수가 마치 레이저를 쏘듯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눈빛이 격렬히 부딪혔다.
마치 불꽃이 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놈 보게?’
이홍림 교수는 감탄했다.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는 것도 대단했지만 그의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뭔가 다른 게 느껴졌다.
‘깊다.’
이홍림 교수가 느낀 첫인상이었다.
평소 다른 학생에게서는 쉽게 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이정환의 눈동자는 깊었다.
심해처럼 새카맣고 어두운 눈동자는 마치 몇백 년 묵은 용의 눈 같았는데 그 속에서 분명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홍림 교수는 직감했다.
자신이 수석으로 뽑았던 그림의 주인이 바로 이 녀석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