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32
30화 실습은 현장이 제맛 (1)
고혜정이 손가락을 꼭 쥔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신음했다.
“으…….”
“괜찮으세요?”
정환이 고혜정의 상태를 살폈다.
골무를 꼈는데도 쉬지 않고 바느질을 한 탓에 손가락 끝이 퉁퉁 부어 있었다.
“제가 좀 도와드려도 될까요?”
정환이 이어서 묻자 고혜정의 표정이 마치 구세주를 본 것처럼 환해졌다.
“도와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그런데 괜찮겠어요? 아까 정미 디자이너님 말씀하시는 거 들어 보니 검수만 맡기로 한 것 같던데.”
아마 고혜정은 정환을 검수 아르바이트생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환은 일부러 고혜정에게 가타부타 사정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얼른 작업을 마무리하는 게 더 이득이었다.
“네. 어차피 단추를 달아야 최종 검수도 빨리 마칠 수 있으니까요.”
30분쯤 지났을까?
안정미는 정환의 검수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바쁘게 일하고 있는 유아림 쪽을 바라본 뒤 안정미가 생각했다.
‘아림 디자이너님보단 내가 확인하는 게 더 나을 거야.’
그런데 검수를 하고 있어야 할 정환은 재봉틀 앞에 앉아 합본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고혜정은 검수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
안정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유아림이 이 모습을 보기라도 했다간 난리가 날 게 분명했다.
안정미는 너무 놀라 정환이 합본을 마친 옷을 휙! 낚아챘다.
‘다행이다! 폐기된 옷이야.’
판매 예정인 상품이 아니라 폐기로 작업을 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안정미는 안도감을 뒤로한 채 고혜정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혜정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경험 없는 고등학생한테 재봉틀을 맡기다니…….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요?”
고등학생?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고등학생?
고혜정은 재봉틀 앞에 앉은 정환 쪽을 돌아보며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그러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고등학생이요? 경력자가 아니고요?”
경력자?
안정미가 고혜정의 대답을 듣고 의아함을 느끼며 정환이 합본했던 옷을 다시 훑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호주머니며, 밴딩 등 부속품을 조립한 솜씨가 생초짜의 것이 아니었다.
얼핏 보면 자신이나 유아림 디자이너가 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이거, 설마 정말 정환 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합본한 거예요?”
안정미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합본 자체는 경력자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만들어진 부속품을 꼼꼼하게 합치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정환은 고작해야 고등학생이었다.
재봉틀을 만져 보긴커녕, 바느질 한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을 게 분명했다.
‘요즘 애들도 학교 가정 시간에 바느질을 배우나? 아니, 애초에 아직 가정 과목이 남아 있긴 해?’
하지만 두 눈을 씻고 봐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렇게 안정미가 할 말을 잃은 채 놀라고 있을 때.
고혜정이 재봉틀 앞에 앉은 정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누구세요?”
“이정환입니다.”
“어? 어? 혹시 한수영 대타로 컬렉션 찍은 모델?”
고혜정은 무릎을 탁! 쳤다.
어쩐지, 생긴 게 범상치 않더라니.
그런데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모델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말이 안 되잖아요.”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이네요. 혜정 씨는 단추를 달고 있어야 할 텐데, 왜 검수를 하고 있어요?”
안정미가 질문을 가로채자 고혜정이 퉁퉁 부은 손가락을 보여 줬다.
“제 손이 이래서 정환 씨랑 교대했어요.”
안정미는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하긴, 며칠 동안 작업해야 할 몫을 사흘 동안 혼자서 몰아서 하고 있으니 고혜정의 손가락이 남아날 리 없었다.
“여기 정환 씨가 단추 작업을 도와줬어요. 그런데 너무 빨리 끝나서 기다리다가 폐기된 옷에 합본을 한번 해 봐도 되냐고 묻길래…. 어차피 버리는 옷이니까 안 될 것도 없잖아요.”
“혜정 씨가 정환 씨한테 재봉틀 다루는 방법을 알려 줬어요?”
“아뇨. 그냥 앉아서 바로 재봉틀을 만지던 데요? 그래서 경력이 있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착각한 거였어요.”
안정미가 놀라움을 감춘 채 정환에게 물었다.
“정환 씨. 혹시 집에서 어머니가 재봉틀로 옷을 만든 적이 있나요? 그걸 보고 배웠어요?”
그러자 정환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다.
“아뇨. 그냥 직원분들이 작업하는 걸 뒤에서 지켜보고 익혔어요.”
“그냥 보고 따라 한 거라고요?”
“음, 네.”
그의 대답을 들은 안정미도, 고혜정도 입을 떡 벌렸다.
재봉질이라는 게 그냥 보고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 놀라운 일을 직접 목격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놀라기를 한참,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안정미가 정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정환 씨. 잠깐 이쪽으로 와 봐요. 혜정 씨는 손가락에 밴드라도 붙이고, 검수하고 계세요.”
“네!”
정환과 함께 자리를 옮긴 뒤 안정미는 뭔가 기대감을 품고 합본해야 할 옷을 건네줬다.
“이건 폐기가 아니라 상품으로 판매될 옷들이에요. 아까 했던 것처럼 똑같이 할 수 있겠어요?”
정환이 안정미가 건넨 옷을 받아 들며 고개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어요.”
“좋아요. 실수하지 마세요.”
***
한편, 전쟁터의 장군처럼 정신없이 현장을 지휘하던 유아림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작업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이런 경우, 원인은 둘 중 하나였다.
일손이 늘어났거나, 누군가 대충 작업하고 있거나.
일손이야 변함은 없었으니 원인은 후자가 분명했다.
그 원인을 찾아 나선 유아림은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아연실색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옷을 검수하고 있어야 할 정환이 재봉틀 앞에 앉아 합본하고 있었다.
“정미야.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니?”
안정미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유아림은 너무 놀라 팔에 잔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직원이 작업하는 걸 보고 그대로 흡수했다고?’
안정미가 핫핫,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웃으며 덧붙였다.
“눈썰미가 제법 좋은가 봐요.”
안정미의 말대로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이렇게 빨리 제작 과정을 흡수하고 실행한다는 건 범상치 않은 재주였다.
하지만 유아림이 놀란 건 이러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합본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지만 재봉질은 한 번 다뤄 본 적 없는 초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단순히 뒤에서 지켜본 것만으로도 능숙하게 따라 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안정미가 연신 핫핫, 소리를 내며 어이없다는 듯 웃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미친 관찰력…. 역시 정환이의 재능이 여기서 비롯되는 것일까?’
유아림은 이렇게 생각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한 가지 가정을 떠올랐다.
그것은 만약 정환이 자신의 디자인 작업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봤더라면 어떤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는 뭔가가 나올 게 확실했다.
그게 유아림이 정환에게 방학 중 아르바이트를 부탁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 재능의 수준이 자신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지만.
유아림이 안정미에게 물었다.
“정환이 부모님께 계약서 받았다고 했지?”
“네. 메일로 받았어요.”
“석봉이한테 꽃다발이라도 보내야겠는데.”
“염 대리님이요?”
“응. 덕분에 이렇게 복덩어리가 넝쿨째로 굴러 들어왔잖아.”
유아림은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염석봉이 먼저 정환의 부모님을 빠르게 설득해 준 덕분에 오늘 계약서도 손쉽게 쓸 수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애초에 유아림이 정환을 만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염석봉 대리 덕분이었다.
“그럼 정환 씨한테 이대로 합본 작업을 맡겨도 괜찮겠죠?”
“응. 중간중간 잘하고 있나 확인만 해.”
유아림도 인정했으니 남은 건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것뿐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경쾌한 재봉틀 소리가 작업실을 가득 메웠다.
사람이 한 명 더 붙은 덕에 길고 지루했던 합본 작업도 드디어 마무리됐다.
“합본 작업은 이제 다 끝났지?”
“네. 정환 씨랑 혜정 씨 쪽도 일이 잘 마무리됐어요. 제가 확인했으니까 디자이너님이 따로 안 보셔도 될 거예요.”
유아림은 붉게 충혈된 눈을 손으로 문질렀다.
“어디 보자. 이제 남은 게 다림질하고, 태그 붙이고 포장만 하면 끝이네?”
“끝이 보이네요. 다만 다들 좀 쉬어야 할 것 같은데요? 전부 지쳤어요.”
안정미의 말대로 직원들의 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몇몇 직원들은 재봉틀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전부 사흘 넘게 밤을 꼬박 새웠지?”
“네. 일정이 너무 촉박해서 쪽잠도 못 잤어요.”
“어휴. 다들 너무 고생했다. 부족하겠지만 특근비라도 두둑하게 챙겨 줘야겠어.”
유아림이 직원들에게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나머지 작업은 내가 내일 아르바이트생 추가로 불러서 끝낼 테니까 따로 연락하기 전까지 푹 쉬어요.”
작업 종료 선언을 들은 직원들은 기뻐할 기운도 없다는 듯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유아림과 안정미는 여전히 작업실에 남아 있었다.
“퇴근 안 하니?”
“디자이너님은요?”
유아림은 소파를 대충 치운 뒤 그 위에 풀썩 앉으며 말했다.
“난 여기서 자고 내일 마무리 작업까지 확인해야지. 업체에는 내가 전화해서 아르바이트생을 구할게. 정미, 너도 걱정 말고 얼른 들어가.”
안정미가 유아림의 퇴근 명령을 듣고도 눈을 가늘게 떴다.
“거짓말. 제가 그냥 가면 안 쉬고 혼자서 마무리 작업할 생각이죠? 그럼 저도 안 가요.”
두 사람이 같이 일한 지도 벌써 3년.
안정미는 유아림의 속내를 모두 꿰뚫고 있었다.
유아림은 코앞에 일거리를 놔두고 누워서 잠을 잘 사람이 아니었다.
“디자이너님은 요 며칠 너무 과로하셨어요. 컬렉션 촬영 때도 계속 못 주무셨잖아요. 그러다 진짜 쓰러져요. 디자이너님 쓰러지면 제 월급은 누가 줘요?”
안정미의 반협박에 유아림도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알았어, 알았어. 쉴 테니까 업체에 전화나 해.”
안정미는 그제야 만족하며 핸드폰을 들고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기 그린 미스틱 작업실인데요. 내일 간단한 마무리 작업해 줄 사람 대여섯 명 정도 가능할까요? 다림질이랑 포장만 하면 돼요.”
하지만 업체에 전화를 건 안정미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네? 내일 아르바이트할 사람이 없다고요?”
***
같은 시각, 에이플 미술 학원.
2학년 교실에선 전임 강사의 훈계가 이어지고 있었다.
“다들 정신 좀 차리자. 전체적으로 뒷심이 너무 부족해. 당장 다음 달 중순이 전국 연합 평가인데, 그때도 이렇게 그림 그릴 거니? 양민준! 너 집중 안 할래?”
“죄송합니다.”
이재철은 먼 산만 쳐다보고 있는 양민준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저 녀석, 마음이 콩밭에 가 있네.’
동아리 활동이 끝난 직후부터 양민준은 계속 저 상태였다.
“재철아. 민준이 왜 저러니? 애가 정신을 못 차리네.”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사실 재철은 민준이 왜 저러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에휴. 10분 쉬고 다시 수업 시작한다.”
강사가 밖으로 나가자 양민준은 고개를 푹 숙이고 SNS에 접속했다.
SNS 피드에는 다른 동아리 부장들이 올린 사진이 가득했다.
이희건은 연기동 부원들과 함께 대학로에서 연극을 관람하는 사진을 찍어 올렸는데, 커튼콜 이후 분장실에서 배우들과 대화하는 모습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진우와 서미동 부원들은 관장의 인솔하에 도슨트 투어를 진행 중이었고, 다른 동아리들도 첫 외부 실습을 찍어서 신나게 SNS에 올리고 있었다.
이렇다 할 만한 실습 활동을 못 한 동아리는 역시 유어드림뿐이었다.
“너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이재철은 양민준에게 물었다.
“내가 뭘.”
“이렇게 기죽은 채로 있을 거냐고.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유어드림이 신생 동아리라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러다 7월 예술제도 망하면 어쩌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 걱정하지 마. 성격 참 소심하다니까.”
그때, 양민준의 핸드폰에 윙 알림이 왔다.
정환의 문자 메시지였다.
그 메시지를 확인한 양민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어? 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양민준은 놀란 표정으로 핸드폰을 이재철에게 보여 줬다.
-민준 선배. 혹시 내일 동아리 부원들이랑 다 같이 유아림 디자이너님의 작업실로 오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