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54
52화 숨겨둔 힘 (3)
인챈트.
마나를 써서 무기나 도구를 마법 아티팩트로 만드는 기술.
칼로스 대륙에서 인챈트는 마법사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오러를 익힌 숙련된 장인이라면 모두 인챈트를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평생 자기 작업에만 몰두하는 장인들은 오러까지 익힐 시간이 없었기에 인챈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그렇기에 인챈트는 마나의 축복을 타고난 드워프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로 여겨지는 편이었다.
인챈트가 걸린 물건 역시 그 등급에 따라 비싼 값에 거래되곤 했다.
정환 역시 드워프였으므로 인챈트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마나 감응력이 뛰어난 엘프 어머니의 피까지 물려받은 덕분에 정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나가 자연스레 몸에 축적되는 편이었다.
타고난 마나에 대한 친화력, 그리고 예술을 향한 집요한 노력.
이 두 가지가 결합해 정환은 남들보다 빠르게 대륙 최고의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환이 이 몸에 빙의한 후 모든 게 달라졌다.
우선, 전생과 달리 이곳엔 마나가 그리 풍족하지 않았다.
또한 정환이 빙의한 신체도 전생처럼 마나의 축복을 받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리 애를 써도 마나가 잘 모이지 않았다.
‘인챈트는 사용할 수 없는 건가?’
예술의 끝을 바라보고 있던 정환이 잠시 좌절했다.
물론, 인챈트 없이도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인챈트를 사용한 작품과 사용하지 않은 작품의 수준 차이는 하늘과 땅이었다.
그런 까닭에 정환은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잠깐.’
정환의 머릿속에 대륙 최고의 소드 마스터 로랑에게 배웠던 오러 연공법이 떠올랐다.
무골 기질을 타고나지 않았던 로랑을 소드 마스터로 만들어 줬던 바로 그 오러 연공법.
이 오러 연공법이라면 마나를 축적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정환의 예상대로 오러 연공법을 쓸 수 있었다.
‘블랙해머 시절에는 마나가 자연스럽게 축적돼 거의 쓸 일이 없었던 오러 연공법이 이렇게 쓰게 되네…….’
다만 확실히 마나가 흔하지 않은 세상이라서 그런지 오러 연공법으로 마나를 축적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그나마 하루 중 마나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침에 오러 연공법을 사용해야 마나를 간신히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정환은 드디어 오러 1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민영이 출근 전 밥을 먹으라며 목소리를 높이던 바로 그날의 일이었다.
‘굳이 1성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마나가 쌓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인챈트를 사용하려면 할 수 있었지.’
그러나 앞서 말했듯 지금까지는 딱히 인챈트를 사용해야 할 만큼의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어서라도 어떻게든 메인의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정환은 처음으로 이번 옷에 인챈트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옷은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인 만큼 다른 옷처럼 대량 생산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고작해야 몇 벌의 옷을 만들 뿐이었고 이 정도라면 정환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인챈트를 건 옷을 쇼에 올려 홍보하고 그렇지 않은 옷을 판매한다면 그건 사기나 다름없으니까.’
그렇게 인챈트의 사용을 마음먹은 정환은 자연스럽게 손끝에 룬어를 일으켰다.
이제 이 룬어를 규칙에 맞춰서 배열해 옷에 새긴다면 인챈트를 완료할 수 있었다.
참고로 룬어는 마나 사용자가 아니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이윽고, 룬어를 새기기 위해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던 정환이 우뚝 동작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아직 어떤 효과를 피코트에 새길지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뭘 새겨야 하지?’
정환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파이어 볼트였다.
원래 정환이 살던 세계에서 인챈트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술이었는데, 파이어 볼트를 새기는 것은 몇 번을 생각해도 무리였다.
이곳은 총기 소지조차 불가능한 대한민국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파이어 볼트만큼이나 자주 사용되는 쉴드도 그다지 의미가 없어. 회복류의 효과도 마찬가지야. 뭘 알아야 그걸 쓰지.’
이런 식으로 피코트에 새길 수 있는 효과를 하나씩 소거하다 보니 몇 가지 사용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조건이 추려졌다.
먼저, 시동어가 필요한 효과는 인챈트가 불가능했다.
시동어로 뭔가가 발동되려면 필연적으로 마나의 존재를 밝혀야 했는데 그건 너무 위험성이 컸다.
자신이 빙의자라는 사실 또한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용자가 즉각적으로 그 효과를 알아차릴 수 없는 기능 또한 그다지 필요가 없었다.
아이템의 효과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게 당연했으니까.
결국 조건에 맞춰 효과를 간추리다 보니 정환의 머릿속에 인챈트를 할 만한 게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변신 효과.’
물론 정환이 사용하려는 것은 늑대나 곰으로 변신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
애초에 그 정도의 효과는 3성부터 인챈트가 가능하기도 하거니와, 현대 사회에서 굳이 늑대나 곰으로 변신할 필요도 없었다.
정환이 인챈트하려는 변신 효과.
그것은 바로 옷을 착용하자마자 옷을 입은 사람의 외모와 분위기를 살짝 바꾸는 것이었다.
이 정도라면 효과로 충분할 것 같았다.
‘좋아. 시작해 보자.’
정환은 옷 안감을 펼친 후 손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마나가 충분히 모였음을 느낀 정환이 안감 위에 손끝으로 룬어를 한 글자, 한 글자 새기기 시작했다.
이 모습은 마치 글씨에 통달한 서예가가 먹물 대신 깨끗한 물로 글자를 써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환의 콧등에 땀이 살짝 맺혔다.
‘전생에서 1성 인챈트는 일도 아니었건만.’
그리고 작업이 끝난 피코트를 옷걸이에 걸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정환의 눈에만 보이는 룬어가 안감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였다.
이를 본 정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
TF팀의 새로운 회의 날이 밝았다.
김효빈은 개인 작업실에서 공들여 만든 옷을 꺼냈다.
자기가 만들었지만 시제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내가 지금껏 완성한 여러 작품 중에서도 완성도는 단연 탑이다.’
김효빈은 이번 작품에 강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이 정도라면 김형태, 하은영, 그리고 최성원까지 입을 꾹 다물 게 분명했다.
다만 정환이 마음에 걸렸다.
오픈 작업실에서 정환의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플레이에서 보여 줬던 클래식한 디자인이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 중도에 포기한 게 분명해 보였다.
물론 김효빈은 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패션 위크 준비는 더 플레이에서 했던 일과 사이즈 자체가 다르니 경험이 부족한 정환이 손을 놓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쓰라린 경험을 하겠지만 내년에는 이를 통해 더 훌륭한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잠깐 정환에 대한 생각까지 끝낸 김효빈은 옷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미 회의실에는 TF팀 디자이너들이 먼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효빈은 서로 눈인사를 주고받은 후 발표 순서를 짰다.
발표 순서는 최성원, 하은영, 김형태, 그리고 자신과 정환 순이었다.
김효빈이 자기 다음으로 정환의 순서를 배치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어차피 자신의 옷이 선정될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승자가 결정되고 난 다음이면 이정환 디자이너도 부담 없이 발표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발표 준비가 끝났고 첫 순서인 최성원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섰다.
PPT 화면이 떠오름과 동시에 최성원이 손뼉을 짝! 치며 디자이너들의 이목을 모았다.
“자! 보시다시피 제가 정한 주제는 ‘우리가 모두 지켜야 하는 것, 엘레강스’입니다. 그리고 이 주제에 맞게 모피 코트를 준비했죠.”
최성원이 어깨에서 몸체로 이어지는 라인이 이브닝 웨어 연상시키는 모피 코트를 꺼내 보였다.
엘레강스라는 표현에 딱 걸맞은 느낌의 모피 코트였다.
선 하나 함부로 튀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는 게 느껴졌다.
“아시다시피 결국 소비자는 익숙한 것에서 뛰어남을 찾습니다. 그런데 LE는 안타깝게도 이런 부분에서 스테디하게 매출을 견인하는 작품이 없는 게 현실이죠.”
최성원이 이렇게 말하며 자신감 넘치게 눈썹을 위로 들어 올렸다.
자기 생각이 옳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도 확인받고 싶은 눈치였다.
“그래서 저는 스테디하게 매출을 견인할 수 있으면서도 LE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바로 이 모피 코트입니다.”
확실히 최성원의 작품은 기대 이상으로 수준이 높았다.
발표 또한 너무 자신만만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크게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최성원은 그것이 자신의 작품이 너무나도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침묵을 뚫고 김효빈이 입을 열면서 최성원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김효빈이 안타까움이 담겨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테디한 매출 좋죠. 하지만 그게 과연 메인 주제와 디자인이 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어떤 주제에도 끼워 맞출 수 있는 전형적인 디자인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야 스테디한 매출을 추구하니까…….”
“변명을 덧붙이기 전에 다른 분들의 표정부터 제대로 확인해 주시죠.”
김효빈의 말대로 최성원은 천천히 다른 디자이너들의 표정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 최성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이 모피 코트의 단점을 지적하고 싶어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성원이 이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김효빈이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맞습니다. 다들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스테디한 매출을 올릴 만한 디자인은 패션 위크에서 절대 먹히지 않습니다. 패션 위크에는 다른 브랜드를 누르고 모두의 시선을 독차지할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최성원 디자이너님의 디자인에는 아무런 야망이 보이질 않네요. 그저 위험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안전이 보장된 길만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결국 이러한 디자인으로는 제일 패션을 꺾고 1위 자리에 올라서겠다는 우리의 야망도, 고객들의 요구 사항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발표는 여기까지 듣는 것으로 하죠.”
그렇게 마지막까지 강한 비판에 직면해야 했던 최성원은 멍한 표정으로 모피 코트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김효빈이 이렇게까지 날카로운 지적을 쉬지 않고 퍼부으리란 예상을 미처 못해 더 큰 충격에 빠진 듯했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하은영이 생각했다.
‘김효빈도 우리만큼 디자인을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깜빡했어…….’
하은영뿐만이 아니라 김형태 또한 김효빈의 비판에 놀란 듯 긴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회의의 분위기가 점점 더 극단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