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56
54화 힘을 드러내다 (2)
정환의 날카로운 지적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김형태였다.
분명 김형태가 봤을 때 김효빈의 디자인은 비판할 구석이 없는 완벽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정환이 자신도 미처 짚어내지 못한 부분을 정확히 찌르는 모습을 보니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플레이에서 보여 줬던 뉴트로를 뛰어넘는 클래식은 역시 요행이 아니라 실력이었나.’
지금껏 정환을 눈여겨본 적 없었던 최성원과 하은영은 더 놀란 듯했다.
‘애송이가 이 완벽한 디자인의 단점을 잡아냈다고?’
‘일리 있어. 결국 옷은 사람이 입는 거니까. 나는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가장 놀란 사람은 역시 김효빈이었다.
이번 발표에서 선보인 자신의 옷은 지금껏 완성한 것 중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단 한마디의 비판을 듣지 않은 자신이 있었고 이러한 완벽함이 김효빈이 준비한 비장의 무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정환은 한마디 질문으로 비장의 무기를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그랬기에 김효빈은 정환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
“아, 그게…….”
말이 늘어지는 시간만큼 김효빈의 생각 또한 함께 복잡해졌다.
그렇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이 계속되고 있을 때.
김효빈은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정환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와 동시에 김효빈은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와서 물러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랬다간 모두를 찍어 눌러 한 팀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수포가 돌아갈 거야. 어떻게든 대답을 해야 해.’
때마침 김효빈의 머릿속에 한 가지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김효빈은 깊게 고민하지 않고 그것을 입 밖으로 뱉어 냈다.
“저는 고객이 그다지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네. 물론입니다. 하이엔드 패션의 핵심은 고객의 편의에 맞추는 데 있지 않으니까요. 그보다 중요한 건 옷 한 벌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고객은 완벽함의 일부가 되는 것을 꿈꾸니까요.”
김효빈의 대답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확실히 콧대 높은 하이엔드 브랜드 중에선 고객의 편의를 무시하고 디자인만을 강요하는 경우가 존재했다.
그리고 충성도 높은 고객들은 오히려 그것을 하이엔드 브랜드에서만 즐길 수 있는 일종의 특권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김형태도 비슷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지만 모두가 여기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최성원, 하은영은 고객의 편의를 배제해도 상관없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다양한 옷이 존재하듯 하이엔드 패션이 나아가야 할 길 역시 다양했다.
결국 김효빈의 의견은 하나의 제안에 불과했다.
하이엔드 패션은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제안.
그리고 정환은 김효빈의 어떤 이유에서 이런 제안을 했는지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김효빈은 정말 고객의 편의를 맞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야. 그냥 어떻게든 이 논쟁에서 승리해 다른 사람들의 우위에 서고 싶을 뿐.’
애써 여유로운 척하고 있었지만 정환의 미소를 확인한 김효빈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눈치챈 건가?’
미소를 확인함과 동시에 자신의 의도가 간파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의도가 간파된 것이라면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정환이 추가 질문을 하는 순간, 김효빈은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김효빈이 뱉은 말에는 큰 위험성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권위가 추락할 수도 있는 위험성.
김효빈 역시 자신의 발언에 담긴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김효빈은 더 이상 정환의 입에서 질문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김효빈의 바람대로 정환은 추가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게 실장님이 가진 하이엔드 패션에 대한 철학이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정환의 대답을 들은 김효빈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발표를 이어 가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답이 됐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이제 Bring new wind에 대한 세부적인 발표를 진행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새바람이란…….’
그렇게 발표를 진행하는 김효빈에겐 처음 느꼈던 만족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김효빈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번 발표만으로는 TF팀을 하나로 만들겠다는 자신의 계획이 이뤄지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
“마지막으로 이정환 디자이너님.”
“네.”
“준비됐으면 발표 시작해 주시죠.”
발표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김효빈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와 동시에 모두의 이목이 정환에게 집중됐다.
긴장될 법도 했지만 정환의 표정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환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섰고 리모컨 버튼을 딸깍, 누르자 하얀 스크린 위에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흑백으로 촬영된 사진이었는데, 거기엔 배 한 척은 우습게 집어삼킬 만큼 거칠고 높은 파도가 찍혀 있었다.
정환이 리모컨 버튼을 한 번 더 누르자 파도 이미지가 어두워지며 ‘뉴 웨이브’라는 노란색 밝은 글자가 떠올랐다.
이를 본 모두의 시선이 김효빈에게로 향했다.
언뜻 보기에도 뉴 웨이브라는 주제가 김효빈의 Bring new wind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정환과 김효빈의 정면 대결이라고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재밌겠네.’
‘뉴 웨이브라고? 정말?’
김효빈 또한 충격을 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와 동시에 어째서 정환이 자신에게 그렇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었는지 깨달았다.
‘주제가 비슷했으니 그럴 수밖에.’
정환의 주제를 곱씹던 김효빈의 가슴에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그것은 호승심이었다.
주제까지 엇비슷하게 겹쳤으니, 이제 더더욱 정환과의 정면 대결에서 단 한 발짝도 물러날 수 없었다.
여기서 물러나는 순간, 실력으로 찍어 눌러 TF팀을 하나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물론 자신이 지금껏 쌓아 올린 명예까지 실추될 수 있었다.
그렇게 주제가 공개되는 것만으로도 회의실의 분위기는 묘하게 달아올랐다
정환은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발표를 이어 나갔다.
“제 주제는 ‘뉴 웨이브’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디자이너님들이 말씀하셨듯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움입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새로움을 선사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답을 거센 파도에서 찾았습니다.”
정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최성원이 질문을 던졌다.
“이정환 디자이너님이 뉴 웨이브, 김효빈 디자이너님이 Bring new wind. 두 분이 비슷한 주제를 떠올리고 그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구체화했다는 게 참 흥미롭네요. 한편으로는 주제가 겹친다는 부분이 좀 아쉽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하나만 여쭤보죠. 이정환 디자이너도 하이엔드 패션의 정수가 고객을 완벽함의 일부로 만드는 데 있다고 보시나요?”
꽤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하이엔드 패션에 대한 철학.
만약 그것마저도 김효빈과 겹친다면 실망하겠다는 의도가 대놓고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정환에게 하이엔드 패션 철학을 묻다니.
하은영은 상당히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환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효빈과 김형태가 바로 그랬다.
그리고 그 기대에 충족하듯 정환이 곧장 입을 열었다.
“아뇨. 저는 고객이 완벽함의 일부가 되는 하이엔드 패션은 결국 진정한 의미의 패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환의 대답은 TF팀 디자이너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대놓고 저격을 당한 김효빈은 기분이 약간 상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하은영도 정환의 솔직한 대답에 당황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그럼…. 어떤 게 진정한 의미의 하이엔드 패션이죠?”
“직접 보여 드리죠.”
정환이 여유롭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고 그와 동시에 미리 제작해 두었던 피코트를 꺼냈다.
그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시원하게 자기 몸에 툭, 피코트를 걸쳤다.
그냥 시제품을 보여 줄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는 꽤 신선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신선함은 곧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피코트를 몸에 걸치자마자 부드럽게 보이던 정환의 이미지가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바다와 오래 싸움을 벌인 사람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거친 선원의 이미지.
그 이미지가 정환에게 투영됐던 것이다.
심지어 정환의 이미지는 단순히 거칠기만 한 게 아니었다.
거칠면서도 세련됐고 그 안에서 어떠한 깊이 같은 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극적인 변화.
그 변화를 눈앞에서 확인한 모두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피코트를 몸에 걸치는 순간, 정환이 어째서 김효빈의 패션 철학을 정면으로 부정했는지 단번에 깨달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김효빈의 라이더 재킷은 그 자체로 완벽한 예술 작품이었다.
반면 정환의 피코트는 옷과 이를 입는 사람까지 한 점의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그런 옷이었다.
결국 최성원, 하은영, 김형태가 참지 못하고 육성으로 생각을 쏟아 냈다.
“대박.”
“와. 미쳤나 봐.”
“저걸…. 정말 사람이 만들었다고?”
김효빈의 디자인이 공개됐을 때 이상의 반응이었다.
그만큼 정환이 보여 준 디자인은 놀라운 것이었다.
김효빈 역시 정환의 디자인을 확인하고 생각이 많아진 듯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저 침묵을 지킨 채 정환이 어서 자신의 디자인에 관해 설명해 주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정환은 많은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옷을 입은 채 꽤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그래서인지 조금씩 처음의 충격이 사라지고 점점 피코트의 디테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피코트의 디테일을 발견한 사람은 이전부터 정환의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김형태였다.
“저 라인, 거센 파도를 형상화했군요. 직선이 될 정도로 높이 솟은 파도, 그리고 다시 칼라로 다시 이어지는 미묘한 곡선 부분 말이에요.”
다음으로는 하은영의 차례였다.
앞서 자신의 디자인에서 단추에 포인트를 줬기 때문일까.
하은영은 여러 디테일 중에서도 단추에 주목했다.
“분명 오픈 작업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단추 같은데…. 어?”
하은영이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단추가 왜 달라 보였나 했더니, 바느질의 매듭을 지어 놓은 방식이 특이했다.
단순히 단추를 튼튼하게 달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매듭을 통해서 어떤 모양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졌다.
“독특하네요. 처음 보는 방식이에요. 혹시 이거 선원들이 쓰는 매듭법 같은 건가요?”
정환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하은영이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끝으로 최성원은 피코트의 안감을 꼼꼼하게 손으로 만지며 말했다.
“안감을 통해 볼륨감이랑 전체적으로 구조감을 살린 부분이 인상적이군요. 이 정도면 구조적인 해석을 통해 새로운 사토리얼을 모색했다고도 볼 수 있겠어요.”
디테일을 모두 확인한 디자이너들의 표정에는 더 짙은 놀라움의 감정이 담겼다.
정환의 디자인한 피코트 자체의 완성도 또한 김효빈의 라이더 재킷에 못지않게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몇몇 곳에서는 김효빈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정환의 발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은영 디자이너님.”
“네?”
“괜찮으시면 이 옷을 입어 보시겠습니까?”
정환의 뜬금없는 질문에 하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요? 옷을 입어 보는 거야 상관없는데 그게 뭐 의미가 있겠어요? 어차피 이건 남성복으로 만든 옷이잖아요. 사이즈도 안 맞을 텐데.”
“한번 입어 봐 주세요.”
정환이 피코트를 벗어서 하은영에게 건넸다.
최성원이 입어 보라는 손짓을 하자 하은영이 마지못해 그것을 받아들이고 몸에 걸쳤다.
“어?”
그와 동시에 하은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은영뿐만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사람이 놀랐다.
하은영이 피코트를 걸치는 순간, 마치 그것은 처음부터 하은영의 옷이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몸에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옷의 크기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옷에 담겨 있던 거칠면서도 세련되고 그 깊이가 남다른 이미지가 하은영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정환이 입었을 때와는 또 다른 묘한 매력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디자이너 중 경력이 가장 오래된 최성원조차도 처음 경험해 보는 현상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정환이 최성원의 중얼거림에 답하려고 할 때였다.
정환이 발표를 하는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김효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고객이 ‘완벽함의 일부’가 되는 게 아니라 옷과 함께 ‘완벽함, 그 자체’가 되는 것. 이게 이정환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패션 철학이군요.”
정환은 김효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결국 인간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 중 하나이니까요.”
“인간 또한 아름다운 예술 작품 중 하나다…….”
그렇게 김효빈은 한동안 정환의 말을 되뇌다가 뭔가 후련한 표정으로 후, 하고 한숨을 한 차례 내뱉었다.
그런 뒤 이야기했다.
“DDP 패션 위크의 메인 주제와 디자인은… 이정환 디자이너의 것으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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