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62
60화 첫 번째 개인전 (1)
Q. ‘완벽한 빈틈’이 서울 국제 아트페어 경매에서 신진 작가 기준으로 최고 낙찰가를 갱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로써 안소영 작가의 기록을 아득히 뛰어넘게 됐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아트페어 참가는 처음이라 여러모로 걱정했는데 생각한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둬서 기쁩니다.
제 그림이 부디 완벽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그런 빈틈 같은 작품이 되면 좋겠습니다.
Q. 경매 금액도 금액이지만 이정환 작가님의 독특한 이력 덕분에 더 화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 LE의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 지오미아의 수석 디자이너셨잖아요? 수석 디자이너직을 사임하는 것은 물론, 해외 유명 브랜드의 러브콜까지 모두 거절하고 회화 작가의 길을 택하게 된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A. 예술가로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 꿈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려면 패션이라는 분야에 한정해 작품 활동을 이어 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패션 디자인도 여전히 매력 있는 분야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다시 만들고 싶은 옷이 생긴다면 작가 이정환이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 이정환으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Q. 그렇다면 화가로서의 이정환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이번 여름, 대산 백화점 본점에서 개인전을 열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러 갤러리 중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작가님의 작품 ‘완벽한 빈틈’을 낙찰받은 이한용 부회장님과의 관계 때문일까요?
A.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이 작용한 것도 있죠. 어쨌든 이를 계기로 대산 백화점 본점에서 개인전을 열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이 들어왔으니까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대산 백화점 외에 여러 갤러리에서도 개인전 제안을 받았습니다. 꼭 대산 백화점 본점에서 개인전을 열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거죠.
그런데도 그곳에서 개인전을 열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 그것은 최근 대산, 명진 등 주요 백화점들이 미술 시장의 성장과 소비 확대를 반영해 관련 사업을 강화하는 추세라는 점 때문입니다.
과거엔 미술을 프리미엄 마케팅의 일부나 단발성 이벤트로 활용했다면 이제는 사업 아이템으로 인식하고 있는 거죠. 저는 이 부분에서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Q. 상당히 많은 의미가 함축된 답변이네요. 이 답변이 앞으로 작가님께서 나아갈 방향을 암시한다고 봐도 될까요?
A. 절 화가라고 불러 주셨지만 제 정체성은 단순히 화가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패션 디자이너의 이력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죠.
저는 예술과 접목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에 관심이 있고 이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합니다.
너무 다양한 분야를 깊이 없이 파고든다는 비판이 따를지도 모르지만 그게 곧 제 정체성이 되겠죠. 아마 대산 백화점 본점에서의 개인전은 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Q. 답변 잘 들었습니다. 작가님의 말대로라면 확실히 화가가 아닌 아티스트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네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대산 백화점 갤러리는 현재 해외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들이 한 번씩 거쳐 갔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개인전을 언제 여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자세한 일정은 갤러리 측과 상의해야겠지만 개인전은 8월 중순에 열릴 것 같습니다.
화가로서의 첫 개인전을 대산 백화점에서 개최할 수 있다는 걸 무척이나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기운이 좋은 것 같으니 저도 그 기운을 받아서 열심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지켜봐 주세요.
정환의 작업실.
방금 정환과의 인터뷰를 끝낸 백수정은 인터뷰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역시 정환의 답변은 딱히 그녀가 손을 보지 않아도 될 만큼 깔끔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작가님. 인터뷰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말씀을 참 잘하시네요.”
“그런가요? 칭찬 감사합니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에요. 제가 지금까지 만난 인터뷰이만 50명이 넘는데 이렇게 편집도 거의 안 해도 될 정도로 깔끔한 답변을 바로바로 내놓는 분은 작가님이 유일해요.”
이는 과언이 아니었다.
백수정과의 첫 인터뷰에서도 정환은 모든 걸 예상한 것처럼 잘 정리된 답변을 내놓았다.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말하는 모습만 봐도 정환에겐 숨길 수 없는 스타성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확실히 타고났어. 예술 쪽이 아니었다면 연예계나 다른 방면에서 이름을 날렸을 거야.’
이런 생각 때문에 백수정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정환이 패션 디자이너를 그만두고 회화 작가로 돌아섰을 때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고등학생 무렵부터 패션계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니, 다른 길에 관심을 두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화가로서 자신을 증명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신진 작가 경매 신기록 경신에 이어,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대산 백화점 본점에서 개인전을 열게 됐다니.
백수정으로선 정환이 도대체 어디까지 성장할지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아까 인터뷰에서 이게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는 거야.’
물론 표면적으로 보기엔 정환이 회화 작가로서 더 높은 지점까지 올라가 보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백수정은 여러 차례 인터뷰를 진행해본 사람답게 정환의 뉘앙스에서 다른 뜻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예술과 접목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어쩌면 이정환이란 이름 세 글자를 예술계 전반에서 중요하게 다룰 날이 올지도 모르겠어.’
이번 인터뷰를 통해 백수정은 정환에게 품은 기대감이 한층 높아졌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백수정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렇게 정환의 인터뷰 기사가 세상으로 뻗어 나갔다.
***
대산 백화점 본점 갤러리.
갤러리 담당 상무 이유경은 초조한 기색으로 정환을 기다렸다.
이유경은 이한용이 8월 전시를 신진 작가에게 맡기겠다고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를 떠올렸다.
‘상무님.’
‘네.’
‘혹시 이정환이라는 신진 작가를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부회장님께서 이번에 구입한 그림의 작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그것도 아십니까? 이정환 작가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오미아의 수석 디자이너였다는 거?’
‘…그게 정말입니까?’
‘역시 이 상무님도 모르셨군요.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저도 참 운이 나쁘지 않은 게 그런 상황에서도 이정환 작가에게 대산 백화점 본점에서 개인전을 열어 보겠냐 제안을 했다는 겁니다.’
‘아. 다행이네요. 그만한 경력을 가진 분이라면 대산의 이름을 먹칠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아니요. 완벽한 빈틈. 그 그림만 봐도 먹칠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전을 제안한 것이고 저는 이 개인전을 통해서 이정환 작가의 그림을 몇 점 더 구입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정환 작가의 이력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아직까지는 직감에 가까운 생각이지만 이정환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면 생각한 것보다 판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미리 준비해 주세요.’
그렇게 이한용의 당부를 들은 이유경으로서는 정환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초조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한용은 대산 그룹의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였다.
이한용을 그렇게 만든 건, 평범한 이들에겐 없는 남다른 직감과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 때문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누군가 그랬지? 부회장님의 직감은 무서울 정도라고? 이번에도 그 직감으로 뭔가를 해낼까? 부회장님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유경의 생각이 깊어지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이유경 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유경 상무님?”
“아, 작가님. 안녕하세요.”
이유경은 정환과 인사했다.
정환이 스무 살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역시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물도 좋네.’
이유경은 정환을 갤러리 내부 사무실로 안내했다.
잠깐 담소를 나눈 뒤 이유경이 정환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작가님. 전시 컨셉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셨을까요?”
“네. 전시 컨셉은 ‘휴식과 예술’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화점이 복잡하고 시끄러운 공간이 아니라 편안한 휴식도 누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고객들에게 각인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환의 말을 이해한 이유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의 성격을 바꾸는 전시를 원하시는 거군요.”
“그게 완벽한 빈틈이 가지고 있는 테마의 연장선이기도 하고요.”
이유경은 정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감탄했다.
첫 전시를 여는 신인 작가라면 전시 컨셉도 못 잡고 우왕좌왕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컨셉을 잡더라도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만을 내세우는 게 태반이었다.
정환처럼 첫 전시에서 히트한 작가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환은 달랐다.
자신의 강점을 강조하면서도 갤러리가 필요로 하는 전시까지 동시에 기획하고 있었다.
“이건 작품 컨셉 스케치입니다. 완성작은 다른 모습이겠지만 느낌은 그대로일 겁니다. 미리 알고 계시면 상무님께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 이렇게 공유해 주시면 저희는 감사하죠. 한번 보겠습니다.”
이유경은 정환이 건넨 크로키북을 한 장씩 천천히 넘겼다.
“…….”
이유경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컨셉 크로키일 뿐이었지만 왜 이한용이 경매에서 그렇게 큰 금액을 질렀는지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분명 이번 전시회는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확신이.
게다가 정환의 스케치 덕분에 이유경의 머릿속에는 갤러리를 어떻게 알맞게 재탄생시켜야 할지 그림이 쉽게 그려졌다.
“이 갤러리에는 보통 몇 점의 그림이 걸리나요?”
정환의 질문에 이유경이 대답했다.
“항상 숫자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단독 전시의 경우엔 50점 정도를 걸고 있습니다. 물론 전시 컨셉에 따라 조율도 가능합니다.”
“50점이라…. 나쁘지 않은 숫자네요.”
이유경은 지갑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정환에게 건넸다.
“제 명함입니다. 이쪽으로 연락을 주시면 작업에 필요한 것을 최선을 다해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작업 공간부터 재료와 식비 같은 소소한 부분까지, 생각나는 게 있으면 전부 말씀해 주세요.”
이유경은 명동 한복판에 넓은 작업실이나, 필요하다면 대산 호텔 스위트룸을 내주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대산 그룹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정환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라는 이한용의 오더까지 내려온 상황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정환의 대답은 이유경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작업실로 쓸 만한 공간 중 가장 산속 깊숙이 처박혀 있는 곳이 어디일까요?”
***
며칠 후, 5성급 호텔 라운지.
한지성은 핸드폰으로 뉴스를 쭉 훑어보다 얼굴을 찌푸렸다.
바로 정환의 인터뷰 기사 때문이었다.
‘지오미아? 수석 디자이너?’
한지성은 곧장 정환의 이름을 검색했다.
3년 연속 DDP 패션 위크 우승, 4대 패션 위크 초청.
런웨이에 서서 모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정환의 모습.
이 화려한 이력을 확인한 한지성은 다른 사람이 힐끔거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발, 역시 인맥을 써서 경매 기록을 갈아 치운 거였어!”
한지성은 정환과 함께 서울 국제 아트페어 참가한 신진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