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70
68화 K-컬쳐 페스티벌 (1)
정환의 작업실.
TV에서 앵커의 단조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산 백화점에 이어, 대산 호텔을 맡아 운영 능력을 입증한 이한용 부회장은 후계 구도에서도 확실한 입지를 다졌으며 차후…….] [여기엔 대산 갤러리와 제주 대산 호텔 ‘엘프의 숲’의 흥행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다음 뉴스입니다. 매년 큰 화제를 일으켰던 K-컬쳐 페스티벌이 올해에도 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페스티벌 위원회는…….]툭, TV가 꺼졌다.
정환은 리모컨을 내려놓고 다시 책상으로 눈을 돌렸다.
책상 위에는 은행 앱이 켜진 핸드폰, 그리고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정환은 은행 앱에 찍힌 숫자를 물끄러미 확인했다.
약 300억에 가까운 금액.
개인전에서 팔았던 그림과 엘프의 숲에 들어간 조각의 대금에서 세금을 제한 금액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장 눈에 튀어나올 만한 굉장한 돈이었지만 정환은 무덤덤했다.
정환에게 300억은 잘 마른 장작더미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시작할 사업에 불을 지필 장작더미.
서울 국제 아트페어에서 엘프의 숲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최우선적인 목표로 잡았던 사업 자금을 어느 정도 확보한 상태였다.
그랬으니 이제 정환에게 남은 것은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정환은 며칠 동안 법인 설립과 브랜드 런칭을 위해 진땀을 뺐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서류 작업만 해도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네.’
하나의 사업체를 만든다는 건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생각한 것보다 자잘하게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순수하게 사업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브랜드 런칭이라는 걸 예술의 끝을 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생각하는 정환으로서는 이 과정이 전부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정환은 전생에서조차 사업체를 직접 운영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자신을 대신해서 사업체를 대신 운영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결국 정환이 제대로 사업을 벌이려면 귀찮은 일이 대신 처리해 줄 전문가를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누가 있지?’
그렇게 고민이 한창 계속될 때였다.
문득 대산 갤러리에서 정환에게 전달한 그림 구매처 중 눈에 익은 이름이 있었던 게 떠올랐다.
영 아틀리에.
바로 정영주가 운영하는 아틀리에였다.
정영주는 정환을 지켜보겠다는 오래된 약속을 이렇게 지키고 있었다.
‘인사를 한번 드리긴 해야 하는데.’
정환은 지오미아의 수석 디자이너가 된 이후로 자주 교류하지 못했던 정영주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이쪽에 전문 경영인을 소개해 달라고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영주라면 정환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국내 예술계에서 정영주만큼 발이 넓은 사람도 드무니까.’
정영주 말고도 정환에게는 전문 경영인을 소개해 줄 만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이한용이었다.
어찌 보면 정영주보다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이한용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정환이 사업 자금을 남들보다 빠르게 마련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한용 덕분이었으니까.
대산의 차기 회장으로 입지를 굳힌 이한용.
이러한 이한용이라면 정환에게 괜찮은 전문 경영인을 소개해 줄 만했다.
‘이한용과 인연이 닿다니…. 생각해 보면 여러모로 운이 좋았어.’
이한용의 존재는 정환에게 있어서 일종의 든든한 보험과 같았다.
이한용이 운영하는 갤러리를 통해 개인전을 진행하면 금방 수십억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엘프의 숲 작업이 끝나자마자 개인전을 또 열자고 얘기를 꺼내서 정중히 사양한 일을 잠시 회상하며 정환이 생각했다.
‘깊게 고민할 것 없어. 두 사람 모두에게 메시지를 보내 놓자.’
그렇게 정환은 정영주와 이한용에게 각각 전문 경영인을 소개받고 싶은데 괜찮은 사람이 있는지 묻기 위해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 뒤 정환은 고민의 방향을 바꿨다.
그것은 브랜드를 런칭한다면 가장 먼저 어떤 사업을 벌이는 게 좋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첫 사업인 만큼 대중에게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킬 만한 그런 것이 필요했다.
패션, 그림, 조각.
세 가지 모두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었다.
정환의 능력이라면 셋 중 어떤 것에 손을 대도 수익성은 물론, 대중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겠다는 목적까지 충분히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중 하나를 골라서 그것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왠지 시간이 아깝고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예 새로운 분야로 브랜드 런칭할까?’
정환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지잉, 진동 소리를 냈다.
화면을 확인해 보니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정환은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고민한 뒤 전화를 받았다.
“이정환 작가님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K-컬쳐 페스티벌 운영 팀장, 박정혁이라고 합니다. 잠시 통화 괜찮으실까요?”
K-컬쳐 페스티벌.
정환은 익숙한 이름을 듣고 안심하며 통화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K-컬쳐 페스티벌 운영 팀장의 제안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얼마 전 엘프의 숲에서 큰 감명을 받은 이동기는 노트북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밝게 켜진 화면에는 정환의 활약상이 실린 기사들이 빼곡했다.
패션 디자인, 회화, 조각에 이르기까지.
고작해야 스무 살 청년이 이뤘다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운 성과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많은 작품 중 이동기의 높은 기준에 못 미치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모든 작품이 최고 수준이었고 심지어 매번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정환의 작품을 모두 확인한 이동기는 긴 휴가를 보냈던 걸 처음으로 후회했다.
정환의 첫 번째 개인전 ‘숲으로의 초대’ 초청장이 A&K 전시기획 팀장인 자신에게 왔었다는 걸 뒤늦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젠장. 이정환의 실제 작품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동기는 정환의 작품을 사진이 전부 못 담아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속이 쓰렸다.
심지어 ‘숲으로의 초대’에 전시됐던 그림은 단 한 점도 빠짐이 없이 다른 사람에게 판매가 된 상황이었다.
‘전부 팔리다니…. 그림이 얼마나 좋았던 거야…. 주변 사람 중 이정환의 그림을 구입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야겠어.’
그렇게 이동기는 며칠간 정환의 그림을 구입했을 만한 사람에게 연락을 돌렸다.
다행히 몇몇 사람이 정환의 그림을 구입한 상태였다.
심지어 개중에는 구하기 힘들다는 정환의 피코트를 소장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덕분에 이동기는 정환의 그림과 의상을 모두 실물로 감상할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큰 감동을 받았다.
‘회화는 물론 패션까지 이렇게 완벽하다니…. 이정환은 진짜 천재인 건가?’
패션, 회화, 조각을 모두 실물로 감상한 이동기는 정환의 재능이 진짜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 세 가지의 실물을 확인하고 나자 정환의 재능이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짧은 시간 여러 분야를 옮겨 다니며 최고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었을 테니까.
‘분명 패션, 회화, 조각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에도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을 거야.’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자 이동기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정환이 패션, 회화, 조각에만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자신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동기는 다시 한번 노트북으로 정환의 작품을 살펴봤고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동기가 생각하기에 작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자신의 한계 앞에서 좌절하고 붓을 꺾는 작가.
혹은, 그 한계마저 예술로 승화시켜 버리는 작가.
이동기가 지금까지 만난 작가들은 모두 전자에 속했고 후자에 속하는 작가는 아직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동기는 후자에 속하는 작가가 세상에 존재할 리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정환의 작품을 모두 확인한 이동기의 믿음이 지금 이 순간, 흔들리고 있었다.
‘이정환이 만약 한계마저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가라면……?’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이동기가 하나의 답을 내렸다.
답은 명확했다.
이동기는 그 즉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정환에게 아낌없이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에서 자신의 한계마저 극복하고 창작의 샘을 뿜어내는 작가와 함께할 수 있다면 세계 최고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는 자신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켜 줄 테니까.
‘이정환 작가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그것은 정환이 정말 패션, 회화, 조각 외의 다른 장르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동기는 자신의 모든 걸 정환에게 걸기 전에 이 부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를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지.’
이동기는 곧장 노트북을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동기가 확인하기 시작한 것은 회사의 전시 일정이었다.
‘서울 신진 작가 기획전? 이건 아냐. 연말 전시 기획? 이것도 아냐.’
이동기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정환이 정말 다른 장르에서도 실력을 뽐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판이 필요했는데 마땅찮은 게 없었다.
‘해외 전시라도 알아봐야 하나?’
한동안 스크롤을 내리던 이동기의 노트북에 메일 알람이 울렸다.
무심코 메일을 확인해 보니 K-컬쳐 페스티벌 운영위원회에서 보낸 것이었다.
‘벌써 이렇게 됐나…….’
이동기는 생각하며 달력을 쳐다봤다.
K-컬쳐 페스티벌은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로 한국 관광공사에서 처음 기획한 행사였다.
그리고 이동기가 근무하고 있는 A&K는 이 페스티벌을 첫 행사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하고 있었다.
특히 매년 전시 및 공연 파트를 맡았던 이동기의 경우 행사 전반에 걸쳐 큰 활약을 했다.
그 덕분에 K-컬쳐 페스티벌은 서울시의 1년 계획 중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이동기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서 작년, K-컬쳐 페스티벌의 총괄 디렉터 역할까지 맡았다.
그리고 K-컬쳐 페스티벌 위원회의 제안은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메일을 읽어 보니 올해에도 이동기에게 K-컬쳐 페스티벌의 총괄 디렉터 역할을 맡기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흠.’
하지만 메일의 내용을 전부 확인한 이동기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작년이었다면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K-컬쳐 열풍 때문이라도 이 제안을 매력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동기는 지금 별 관심이 없었다.
이동기의 관심은 오로지 정환과의 접점을 만드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위원회의 메일을 보관함에 넣으려던 이동기의 머리에 번뜩,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바로 정환을 K-컬쳐 페스티벌에 끌어당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정환은 패션, 회화, 조각을 모두 할 줄 아는 작가잖아. 그러니까 이 행사에도 분명 잘 어울릴 거야. K-컬쳐 페스티벌에는 이런 예술 분야까지 전부 포함되니까.’
무엇보다 이동기가 주목한 점은 정환이 지금까지 선보였던 행보와 K-컬쳐 페스티벌의 결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K-컬쳐 페스티벌은 지금껏 ‘대중문화’에 초점을 맞춰서 행사를 진행했다.
반면에 정환의 행보는 진지한 예술 분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정환이 지오미아에서 하이패션을 선보인 것이 그랬고, 개인전과 대산 호텔의 정원에서 자연 친화적인 회화와 조각을 보여 준 것이 그랬다.
‘이정환이 과연 대중문화 쪽에서도 실력을 선보일 수 있을까?’
눈을 감고 가만히 이러한 상상을 하던 이동기는 곧장 핸드폰을 들어 K-컬쳐 페스티벌 운영 팀장, 박정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팀장님? 네. 접니다. K-컬쳐 페스티벌과 관련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총괄 디렉터 자리를 맡는 것에는 관심이 있긴 한데, 혹시 이정환이라는 신진 작가를 알고 계십니까? 아, 그렇다면 이야기가 더 빨라지겠네요.”
이동기는 잠깐 숨을 고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서브 디렉터 자리에 이정환 작가를 넣어 주실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도 이번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불과 몇 분 전, 정환이 K-컬쳐 페스티벌 위원회의 전화를 받게 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