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71
69화 K-컬쳐 페스티벌 (2)
한국 국제문화 교류 진흥원 회의실.
운영 팀장 박정혁은 정환을 만나 미팅 중이었다.
“K-컬쳐 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세계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축제입니다. 작가님도 잘 아시겠지만 요 몇 년 사이 K-POP, K-드라마, K-영화가 흥행하면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숫자가 급증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류 진흥원에서도 여기에 발맞춰 한국의 고유문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행사를 기획하게 됐죠. 이것이 바로 K-컬쳐 페스티벌입니다.”
박정혁이 다음 서류를 가리키며 말했다.
서류 위에는 광화문과 잠실 경기장의 지도와 함께 여기에서 진행됐던 여러 행사들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주요 행사는 광화문과 잠실 경기장에서 진행됩니다. 광화문 행사에서는 작품 전시와 퍼레이드가 진행되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서브 디렉터로서 이 광화문 행사의 연출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
정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광화문 행사와 관련된 자료를 신중히 살폈다.
그리고 박정혁은 이런 정환을 힐끔, 쳐다봤다.
‘정말 괜찮으려나…….’
이동기가 총괄 디렉터 자리를 수락하는 조건으로 정환을 광화문 행사 서브 디렉터로 써 달라고 한 이후.
운영 팀장 박정혁은 정환에 대해서 소상히 알아봤다.
그렇게 정환의 이력과 작품을 살펴보면서 박정혁의 걱정은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정환 작가의 능력은 뛰어나.’
단순히 작가로서의 능력만이 아니었다.
훌륭한 작품을 어떻게 하면 눈에 띄게 할지 연출하는 능력 또한 뛰어난 사람이었다.
다만 이러한 능력과는 별개로 박정혁이 이대로 괜찮을까, 걱정하는 부분은 정환이 지금까지 보여 준 행보 때문이었다.
경력만 놓고 봤을 때 정환은 대중문화와 상당히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니까.
하이패션 브랜드를 이끌고, 순수 미술 개인전을 열고, 상징성이 뚜렷한 엘프의 정원을 기획한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런 까닭에 박정혁은 정환이 자칫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연출을 선보이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뭐, 물론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이동기가 먼저 나서겠지만…. 잠실 경기장에서 열릴 K-POP 콘서트가 이번 행사의 모든 이슈를 독점할 테고.’
한편, 찬찬히 서류를 살펴보던 정환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K-컬쳐 페스티벌의 서브 디렉터가 된다면 패션, 그림, 조각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작업에 집중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K-컬쳐 페스티벌은 세 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프로젝트야. 무엇보다도 내 영역을 연출 분야까지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이 정도면 자신의 연락을 받고 한창 전문 경영인을 수소문 중인 정영주와 이한용이 답변을 주기 전까지 작업을 진행하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을 정리한 정환이 연출 계약서에 사인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서명은 어디에……?”
정환의 물음을 듣고 뒤늦게 상념에서 깨어난 박정혁이 서둘러 대답했다.
“아. 여기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계약서 쪽으로 펜을 쥔 채 손을 움직이던 정환이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그런 뒤 박정혁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이번 행사 총괄 디렉터 말이에요…….”
“네.”
“이름이 어떻게 되죠?”
박정혁은 정환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질문이 정환의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박정혁이 의아함을 갖는 이유.
그것은 정환을 서브 디렉터 자리에 추천한 사람이 이동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박정혁으로서는 정환이 이동기의 이름을 모르는 게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동기는 어떻게 이정환을 서브 디렉터로 추천한 거지?’
박정혁은 의아했지만 그게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정환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이동기 총괄 디렉터입니다. 몇 년째 K-컬쳐 페스티벌의 일을 봐주신 분이죠.”
정환은 박정혁의 대답을 듣고 몇 초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런 뒤 더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대로 계약서에 사인했다.
***
이틀 후.
이동기는 거울 앞에서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전시 기획자로 일하면서 수십, 수백 번 미팅을 진행했지만 오늘처럼 설레는 건 처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고대하던 정환과의 첫 미팅이 있는 날이었으니까.
이동기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애들이 왜 연예인한테 열광하는지 이해가 가네.’
이동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정 연예인의 열렬한 팬이 되고 나서 우울증을 극복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이동기에게 정환은 지독한 매너리즘을 한 방에 깨뜨려 준 아이돌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동기가 이렇게까지 옷매무시에 신경을 쓰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약간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날 알아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이동기는 정환이 첫 만남에서 바로 자신을 알아볼 거라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영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전시 기획자로서 이동기의 명성은 이미 국내를 넘어서서 세계 무대에서까지 뻗어 나가 있었으니까.
어지간한 작가보다 인터뷰도 더 많이 진행했고 조그만 교양 방송 프로그램의 패널로서 고정 출연을 한 적도 있었다.
즉, 예술계에서 이동기는 얼굴이 나름 알려진 명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정환이 이동기를 알아볼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다.
‘안녕하세요. 전시 기획자 이동기입니다. 아니야. 이건 별로 임팩트가 없어.’
이동기는 정환에게 어떤 인사말을 건넬까, 고민하며 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했다.
‘20분이나 일찍 와 버렸네. 어디에 앉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카페 내부를 둘러보던 이동기의 눈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휘둥그레 커졌다.
창가 옆의 4인석, 그곳에 앉아 있는 정환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환의 실물을 처음 마주한 이동기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 기사 등에서 봤던 사진보다 실물이 몇 배는 더 잘생겼으니까.
그야말로 압도적인 외모였다.
‘카메라가 이정환의 작품만 왜곡되게 담아낸 게 아니었구나.’
자신도 어딜 가서 못생겼다는 이야기를 듣는 얼굴이 아니었지만 정환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저런 얼굴로 어째서 연예인이 되지 않았는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왜긴 왜겠어? 연예인을 할 필요도 없을 만큼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니까 그렇지!’
지나치게 흥분한 이동기는 혼자 북 치고 장구를 치더니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런 뒤 자신의 걸음이 조금 부자연스럽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정환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정환 작가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동기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동기가 이 사실에 감사하는 사이, 정환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올려다봤다.
그렇게 정환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확인하게 된 이동기는 지금껏 고심했던 인사말을 모두 잊은 채 무난하게 자신을 소개하며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동기입니다.”
그러자 정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저는 이정환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맞잡게 된 손.
이동기는 악수를 한 상태로 정환이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정환으로부터 별다른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고 이러한 사실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알고 있다면 놀라지는 않더라도 반가운 기색 같은 것은 보일 만했는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환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제야 이동기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정환의 손을 놓아줬다.
“아. 죄송합니다. 이쪽 자리에 앉으면 될까요?”
“네.”
정환의 대답을 듣고 맞은편 자리에 앉은 이동기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설마 날 모르는 건가?’
하지만 대놓고 자신을 혹시 모르는 거냐고 물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동기는 분위기를 풀 겸, 정환과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미팅에 앞서서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푸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분위기가 풀렸다 싶었을 때 이동기가 먼저 정환의 개인전 이야기를 꺼냈다.
이런 식으로 알은체를 하면 상대방도 예의상 비슷한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으니까.
“작가님의 개인전은 잘 봤습니다. ‘숲으로의 초대’의 두 번째 섹션 그림이 무척 빼어나더군요.”
일부러 자세한 감상은 덧붙이지 않았다.
정환이 자신을 먼저 알아봐 주기 전까지는 괜히 호들갑을 떨기 싫었기 때문이다.
‘칭찬을 더 듣고 싶으면 나를 알고 있다고 말해…. 어서!’
하지만 마침내 돌아온 정환의 대답에 이동기는 큰 절망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짧은 대답.
이 대답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정환은 자신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내 인지도가… 이렇게 낮았나?’
이동기는 시무룩했다.
그와 동시에 잠깐 정환을 괜히 추천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동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환이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이쯤에서 슬슬 K-컬쳐 페스티벌의 기획안을 봤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아. 네. 물론이죠.”
이동기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가방에서 기획안을 꺼냈다.
그런 뒤 한 장, 한 장 기획안을 넘기며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잔뜩 실망했기 때문인지 이동기의 말투가 점점 틱틱거리는 느낌으로 바뀌었지만 정작 정환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이동기가 기획안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했다.
“아마 이번 작업은 작가님께서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는 아주 다를 겁니다. 패션, 회화, 조각을 모두 아우르면서도 대중문화적 요소를 가미해 다양한 사람들의 호응을 끌어내야 할 테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작가님께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부탁이요?”
“부탁이 아니라 디렉터로서 요청에 가깝겠군요. 저는 작가님께서 패션계에서 보여 주셨던 능력을 발휘해 이번 잠실 콘서트의 무대 의상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
이동기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정환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확실히 정환으로서는 지금의 이야기가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박정혁에게도 무대 의상을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테니까.
박정혁이 정환에게 무대 의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동기가 정환에게 무대 의상을 맡길 거라는 이야기를 미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동기는 정환이 갑작스러운 요청을 어떻게 처리할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정환이 대중문화 쪽으로도 자신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지 확실히 판가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정환이 무대 의상 제작을 거절하거나, 말도 안 되는 컨셉을 제안한다면 이동기는 정환에게 품고 있던 열렬한 짝사랑은 과감히 포기할 생각이었다.
결국 이동기에게 중요한 것은 정환이 이후로도 계속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으니까.
‘겨우 대중문화 따위에 좌절한다면 이정환 작가가 계속 한계를 뛰어넘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어.’
자신의 한계 앞에서 좌절하고 붓을 꺾는 작가.
대중문화에 굴복한다면 결국 정환 또한 이 부류에 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라면 여기서 더 길게 대화를 나눠 봐야 의미가 없었다.
심지어 여기서 정환이 빠진다 한들,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이동기 혼자 K-컬쳐 페스티벌을 컨트롤하더라도 충분히 행사를 완벽히 마무리할 수 있을 테니까.
이동기는 입을 다문 채 기획안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정환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를 못 알아봤으니 꼭 실력이 있어야 할 거다, 이정환.’
그사이 유심히 기획안을 훑어보고 있던 정환이 종이 몇 장을 손에 들더니 뒷면을 보이면서 물었다.
“혹시 여기에 제가 좀 낙서 같은 걸 해도 괜찮을까요?”
이동기는 정환의 질문이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크게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메모를 하시려고요? 뭐, 상관없습니다. 편한 대로 이용하세요. 프린트는 또 하면 되는 거니까.”
“감사합니다.”
그렇게 정환이 미소를 지어 보인 뒤 펜을 손에 들고 종이 뒷면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입을 삐죽이고 있던 이동기의 표정에 점점 놀라움의 감정이 깃들었다.
잠시 후, 종이 뒷면에는 도저히 지금 막 그려 냈다고 믿을 수 없는 그림 몇 장이 완성됐다.
‘……!’
정환이 완성한 것.
그것은 놀랍게도 이동기가 불과 몇 분 전에 요청한 무대 의상의 스케치였다.
심지어 스케치는 한 장이 아니었다.
총 다섯 장이었고 이동기는 정환이 어째서 다섯 장의 스케치를 그린 것인지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역대 K-컬쳐 페스티벌의 컨셉에 맞게 무대의상을 스케치했어!’
이 사실을 파악한 이동기는 체면조차 잊은 채 정신없이 정환이 완성한 스케치를 자세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이동기의 표정은 놀라움을 넘어서 경악으로 물들었다.
정환의 스케치는 단순히 역대 K-컬쳐 페스티벌의 컨셉에 맞게 무대 의상을 형상화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 이상의 주제와 대중적인 감각을 선사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어떻게?’
이동기가 이런 생각을 할 때였다.
정환이 덤덤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대충 무대 의상의 초안을 그려 봤습니다. 이번 K-컬쳐 페스티벌도 이런 방향으로 업무를 진행하면 될까요?”
이게 무대 의상의 초안이라니.
이동기는 잠깐이나마 정환에게 품었던 서운함이 싹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인 실력 앞에서 자존심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