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78
76화 딥 윈드 (1)
정환이 김민주를 채용한 이유.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김민주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어드림 동아리 시절, 김민주는 새로운 옷을 만들어야 할 때마다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다른 부원들이 만든 옷을 수정하고 조합하는 부분에서는 누구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래서 부원들은 항상 작업을 마무리하기 전, 김민주에게 옷을 보여 줘 의견을 구하곤 했다.
김민주와 함께 옷을 고치면 그 퀄리티가 몇 배는 상승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환은 김민주의 이러한 면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팀으로서 활약할 수 있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발휘될 수 있는 재능이었으니까.’
그래서 김민주가 회사에 면접을 보러 왔을 때 정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디자인 수정, 조합에 뛰어난 능력이 있는 김민주라면 회사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으니까.
물론 이동기가 채용 과정을 미심쩍게 여긴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정 때문에 실력 없는 사람을 채용한 거라 생각했겠지. 솔직히 김민주의 면접은… 평범한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정환은 굳이 이동기의 오해를 풀지 않았다.
섣부른 변명을 했다간 오해가 더 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설명하지 않아도 가까운 시일 내에 김민주가 직접 자기 능력을 증명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김민주가 로고 시안 콜라주를 통해 자기 능력을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김민주는 정환의 로고가 가진 미니멀한 특징을 살리는 동시에 역동적인 표현을 추가해 브랜드의 이미지를 형상화해 냈다.
정환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콜라주한 로고에 만족하고 있는 김민주를 보며 생각했다.
‘최근 일이 바빠서 완벽한 로고 시안을 만들 수 없었던 게 오히려 다행이군.’
사실 정환은 이 로고 시안을 오늘 아침에 급히 만들었다.
향수 제작 때문에 너무 바빠서 로고 시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하게 시안을 넘기고 추후에 디자인을 보완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정환이 회의실에서 생각하고 있던 디자인 보완 방향도 역동성을 더하는 쪽이었는데, 김민주가 타이밍 좋게 활약해 준 덕분에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정환은 김민주가 완성한 로고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훌륭한 로고였지만 이대로 마무리 짓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정환이 김민주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제가 좀 노트북을 사용해도 될까요?”
“아, 네.”
노트북을 건네받은 정환은 마우스를 움직여 김민주가 만든 로고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음?”
모니터를 지켜보던 이진영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분명 김민주가 방금 완성한 로고는 완벽해 보였다.
그런데 정환은 그 로고에서 모두가 놓쳤던 자그마한 흠결 몇 가지를 찾아내 고치고 있었다.
이를 본 이동기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김민주 역시 흥미를 느끼는 듯 눈을 반짝이며 수정 과정을 지켜봤다.
“확실히 이 부분이 조금 튀네요. 미처 못 봤는데.”
“디테일이 달라요.”
그런데 정환의 손은 단순히 김민주의 로고를 고치는 것에 멈추지 않았다.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곧장 새로운 파일을 열었다.
그러고는 손을 분주히 움직여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그러자 화면 위에 심플한 형태의 향수병이 뚝딱 만들어졌다.
정환은 그 향수병 안에 또 다른 곡선들을 채워 넣었다.
시원하게 뻗은 곡선들.
이는 마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는 시원한 바람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그랬다.
정환이 만들고 있는 것.
그것은 향수 브랜드에 쓸 새로운 로고 디자인이었다.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말없이 로고 제작 작업 과정을 지켜봤다.
특히 이진영과 김민주는 정환의 솜씨를 모두 흡수하려는 듯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정환이 마침내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노트북을 돌려 완성된 로고를 모두에게 보여 줬다.
곡선으로 표현된 미니멀한 향수병.
그 안에는 뚜껑이 열리면 금방이라도 세차게 휘몰아칠 것 같은 바람이 담겨 있었다.
향수 브랜드 로고로 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디자인이었다.
무엇보다 김민주가 콜라주하고 정환이 최종적으로 수정한 블랙해머의 로고와 전체적인 선의 느낌이나 톤이 비슷해 묘한 통일감을 주고 있었다.
차츰 이 사실을 깨달으며 모두가 감탄하고 있던 때였다.
정환이 나지막이 말했다.
“딥 윈드.”
“네?”
“저희 향수 브랜드 이름입니다. 딥 윈드.”
“딥 윈드, 딥 윈드…….”
이동기는 딥 윈드라는 브랜드 이름을 몇 번이나 읊조렸다.
브랜드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딥 윈드. 우리 향수랑 굉장히 잘 어울리는데요?”
이동기뿐만이 아니었다.
회의실에 있던 인원들 역시 딥 윈드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향수 브랜드의 이름과 로고까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
딥 윈드 출시일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정환과 회사 직원들의 업무량이 늘어났다.
특히 이동기와 판매유통팀 직원들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화장품 기준법에 따른 안전 검사 기준이 무척 까다로웠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팀원 중에서 화장품 관련 업종에서 일했던 인원이 있었기에 이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딥 윈드 출시 작업은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었다.
이동기가 정환의 방으로 들어와 진행 상황에 대해서 보고했다.
“신제품 세 종이 전부 안전 검사를 통과했습니다. 또한 대표님의 향수병 시안을 공장에 전달했고 본격적으로 제품을 생산 중입니다. 앞쪽에 놓인 것이 향수병 공장에서 전달한 샘플입니다.”
이동기의 보고에 정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향수병의 샘플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향수병은 정환이 요구한 대로 정교하게 완성이 돼 있었다.
향수병의 디자인이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향수병의 디자인 또한 특별하게 진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향수병의 불량률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코스트가 너무 부담스러워졌다.
그리고 이 부담은 그대로 고객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향수의 핵심은 향 그 자체야.’
정환은 이러한 생각으로 욕심을 버렸고 그렇게 딥 윈드의 향수병은 유려한 곡선이 심플하게 표현된 형태로 디자인됐다.
정환은 향수병을 꼼꼼하게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향수병의 품질이 괜찮은 것 같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이제 슬슬 향수의 대량 생산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아직도 보류일까요?”
“아아. 이제 거의 작업이 막바지입니다. 곧 ‘향수석’을 전달하겠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동기가 보고를 마치고 정환의 방을 떠났다.
그와 동시에 정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한쪽에 놓여 있는 커다란 상자를 열었다.
그곳에는 주먹만 한 돌이 잔뜩 들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향수석이었다.
향수석은 정환이 향수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준비한 물건이었다.
정환의 다른 작품이 그러하듯 향수 또한 인챈트가 되어야 완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향수가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정환이 인챈트를 하는 것은 무척이나 비효율적인 작업이었다.
그런 까닭에 정환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것은 향수석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완성된 향수 원액에 인챈트 효과를 심는 일이었다.
그렇게 정환은 실험에 돌입했고 실험 끝에 향수석을 만드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향수석 하나로 10L의 향수 원액에 인챈트 효과를 심을 수 있어.’
사용 방법 또한 간단했다.
완성된 향수 원액에 향수석을 넣어 놓고 만 하루를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우리가 사용하는 향수병의 용량은 125ml. 그러니까 하나의 향수석으로 80병의 향수를 만드는 게 가능해.’
물론 향수석을 만드는 게 간단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최소 3성급의 경지가 필요한 ‘용해’라는 효과를 향수석에 새겨야 했으니까.
그동안 정환이 바빴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일종의 초벌 작업으로 현재 300개의 향수석에 용해 효과를 인챈트했어.’
이제 남은 것은 이 향수석에 진짜 향수에 부여할 인챈트 효과를 새기는 것이었다.
다만 아직 정환은 초벌 작업을 하느라 향수에 어떤 인챈트 효과를 부여하는 게 좋을지 답을 내지 못했다.
‘어떤 효과가 좋을까…….’
그때 정환의 머릿속에 번뜩,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매혹’ 효과였다.
시전자의 매력을 증폭시키고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효과가 있는 매혹.
그야말로 향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인챈트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환은 조금 망설였다.
그 이유는 매혹 효과가 칼로스 대륙에서 사용이 금지된 인챈트였기 때문이다.
‘서큐버스들이 매혹을 즐겨 썼으니까.’
정환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마족들은 2차 전쟁 이후,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몇 년 동안 통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마족을 완전히 물리친 줄 알았으나 이는 착각이었다.
마족들이 중간계에서 슬금슬금 득세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변방의 방비가 엄중했는데도 마족들이 다시 설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서큐버스가 있었다.
서큐버스들은 꿈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을 매혹해 자신의 수족으로 삼았다.
그러고는 이 수족의 몸을 완전히 빼앗아 중간계에 직접 강림했다.
변방을 거치지 않고 중간계에 침투할 수 있는 나름의 효과적인 전략을 펼친 셈이었다.
그 결과, 나름 번성했던 도시 한 곳이 완전히 파괴돼 초토화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파악한 각국의 정상들은 블랙해머에게 서큐버스의 매혹을 막을 방법을 마련해 달라는 의뢰를 보냈다.
블랙해머는 여러 장인들과 함께 힘을 합쳐 매혹을 막을 방법을 연구했고 마침내 미몽 드림캐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블랙해머가 만든 미몽 드림캐처는 그 성능이 무척 뛰어났다.
그냥 침대 머리맡에 달아 놓기만 해도 서큐버스의 매혹을 원천 차단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블랙해머의 미몽 드림캐처가 널리 보급된 덕분에 서큐버스들을 중간계에서 완전히 쫓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드림캐처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매혹을 인챈트하는 방법을 알게 된 드워프 장인들은 이를 응용한 여러 물건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본래 의도와 달리 악용되는 사례가 생겨나면서 매혹을 인챈트하는 일 자체가 아예 법으로 금지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환은 매혹 효과를 인챈트하는 방법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것을 어떻게 하면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선 효과는 1성급으로 맞춰야 해. 그러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또 향수의 효과가 중첩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해.’
1성급 인챈트는 단순히 시전자의 매력을 조금 더 돋보이게 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생에도 1성급 이상의 매혹 효과를 중첩해 사용하는 일로 인해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그러니 1성급으로 효과를 고정하는 것은 물론, 중첩이 되지 않게 하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렇게 정환은 유의 사항을 떠올리면서 1성급 매혹 효과를 인챈트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향수석에 하나씩 룬어가 새겨졌다.
다행히 1성급이라 용해를 새길 때보다 마나도 많이 필요하지 않았고 작업 속도도 빨랐다.
며칠 후.
‘됐다.’
정환은 모든 향수석에 룬어를 새겼고 그것을 향수 원액을 만드는 공장으로 보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향수를 홍보하는 일.’
하지만 정환에게는 이미 향수를 홍보하기 위한 전략이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핸드폰 너머로 상대방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이, 이게 누구야?”
반가운 목소리를 들은 정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대리님. 잘 지내셨죠? 그러잖아도 전화 한번 드리려 했는데 바빠서 정신이 없었네요.”
“네가 나온 뉴스 전부 보고 있었어. 그리고 나 이제 대리 아니야! 차장이다. 승진했어.”
그랬다.
정환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TN의 염석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