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83
81화 장인을 찾아서 (1)
가방 사업을 공식화한 정환은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먼저 짚어야 할 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방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시간 정도야.’
이탈리아 장인들이 가죽 가방 하나를 만드는 데 18시간에서 23시간 정도가 걸린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빠른 속도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환은 이 10시간이 무척 지루하고 아까웠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전생에서 이런 제작 과정에 통달한 상태였으니까.
그러니 컨셉을 짜거나 디자인을 하는 것 이외의 제작 과정은 정환에게는 10시간짜리 단순노동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1,000개의 가방을 만들어야 한다면? 잠자는 시간을 빼더라도 1년 넘게 일해야 해.’
아무 의미 없는 단순노동을 1년 넘게 반복해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다행히 정환에겐 이 지루한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방법이 있었다.
사실, 그리 특별한 방법은 아니었다.
모든 가방 브랜드가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바로 정환이 가방을 디자인하고 솜씨 좋은 장인이 이것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아주 빤하고 당연한 방법이었지만 정환이 이 생각을 하지 못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지금까지 모든 작품이 내 손을 거쳐서 완성됐으니까.’
그림이 그랬고, 옷이 그랬고, 조각이 그랬다.
그래서 새로 시작할 가방 사업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최근까지 직원들의 가방을 하나하나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정환은 이런 생각을 확고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생각을 전환하게 된 계기는 바로 블랙해머의 주력 브랜드인 딥 윈드였다.
향수는 인챈트가 부여된 향수석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작업이 정환의 손을 직접 거치지 않고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방을 만드는 과정에도 똑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향수를 생산했던 것처럼 여러 장인을 동원해서 가방을 제작한다면 생산성을 몇 배는 더 향상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정환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정환은 아티스트로서 디자이너와 장인의 역할을 겸해 오고 있었다.
이제는 그 두 가지 역할을 분리해야 할 때였다.
‘뛰어난 장인? 그건 이미 전생에서 이뤘어.’
한 번 이뤄 봤던 꿈을 다시 이룰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정환은 지금도 장인으로서 이미 엄청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을 뛰어넘을 만한 장인이 존재할 거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칼로스 대륙에서는 자타공인 최고의 장인이었으니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인으로서 예술의 끝을 보겠다는 꿈은 이루기 힘든 것이었다.
특히 사업을 시작한 이상,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직접 만든 작품을 하나하나 판매하는 건 몸이 백 개라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결국 이 모든 것이 뜻하는 것은 하나였다.
‘나는 장인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되어야 해.’
디자이너가 된다면 생산, 제작에 쓰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장인들이 그 일을 대신해 주는 동안 정환은 디자이너로서 오롯이 예술의 끝을 보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장인을 구한다고 해서 정환이 제작에서 아예 손을 뗄 순 없었다.
장인들에게 단순히 디자인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 직접 시제품을 만들어 보여 줘야 했으니까.
그리고 필요에 따라선 가방 컬렉션도 선보여야 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 컬렉션에서는 정환이 힘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정환이 디자이너 역할에만 집중한다고 해도 장인으로서의 솜씨가 전방위적으로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다만 실력이 확실한 장인과 함께 작업한다면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제작에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아도 돼.’
하지만 이러한 작업 방식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그것은 장인이 생산한 가방 하나하나에 정환이 직접 인챈트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가방이 수천, 수만 개가 제작된다면 인챈트 역시 수천, 수만 번을 반복해야 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애써 장인을 구한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환은 이 부분 역시 대책을 세워 놓은 상태였다.
‘우선 새 가방부터 만들어 보자.’
정환은 크로키북을 뒤로 넘겼다.
그러곤 끝이 둥글둥글한 연필을 쥐고 새로운 스케치를 시작했다.
사각, 사각 소리와 함께 하얀 종이 위에 그려지는 새로운 가방 디자인.
그것은 지금까지 정환이 만들었던 것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가방이었다.
정환이 이번에 잡은 컨셉은 바로 선물이었다.
가방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어머니를 위한 선물이었으니, 컨셉 역시 선물로 잡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객을 위한 선물. 선물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리본이지.’
잠깐 고민하던 정환은 마치 선물 상자처럼 각진 사각형의 핸드백 위에 리본 형태를 띤 가방 손잡이를 스케치했다.
가방 손잡이로 리본을 표현하려면 가죽을 굽히고 접어야 해서 손이 많이 갈 게 분명했다.
게다가 손잡이 끝부분이 가늘어지도록 디자인해서 본체와 연결하는 과정이 조금 까다로워 보였다.
자칫 잘못했다간 손잡이와 가방 본체가 쉽게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정환은 이 리본 형태의 손잡이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가방 자체가 하나의 선물이라는 느낌을 주려면 이 방법이 최고였으니까.
그리고 정환에게는 손잡이와 가방 본체를 단단히 연결할 나름의 방법이 있었다.
그렇게 스케치를 마친 정환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시작은 가죽을 고르는 것부터였다.
정환이 선택한 가죽은 스위프트 가죽이었다.
스위프트 가죽은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이었는데, 분홍빛이 도는 크림색을 잘 표현하는 재료였다.
정환은 도면에 맞춰 스위프트 가죽을 재단한 후 가방 본체와 손잡이를 만들었다.
가방 본체는 금방 만들어졌지만 처음 예상대로 리본 형태의 손잡이를 만드는 것에서 시간이 조금 걸렸다.
다행히 그동안 가방 작업을 하면서 손을 충분히 풀었던 터라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이제는 이 리본 형태의 손잡이를 가방 본체에 단단히 꿰맬 차례였다.
먼저 바늘이 들어가기 쉽도록 구멍을 뚫어야 했는데, 쇠스랑처럼 생긴 그리프라는 도구가 필요했다.
정환은 작고 뾰족한 송곳이 박힌 그리프로 가죽에 여러 개의 구멍을 동시에 뚫었다.
그러고는 실을 문 두 바늘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교차시키며 가죽을 바느질했다.
왼쪽 바늘은 오른쪽으로, 오른쪽 바늘은 왼쪽으로 보낸 뒤에 두 손으로 실을 잡아 양쪽으로 팽팽하게 당겨 매듭지었다.
정환은 가죽을 단단히 여미고 있는 스티치를 손으로 만지며 생각했다.
‘전생에서는 말 안장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하던 바느질 법이었지. 여기서는 새들 스티치라고 부르던데.’
이 새들 스티치는 실 한 올이 풀리더라도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가방 모양이 오래 유지되고 흠이 생겨도 수선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만 한 땀씩 같은 강도와 사이즈로 만들어져야 했기에 높은 숙련도가 요구되는 바느질법이었다.
물론 이런 새들 스티치 대신 재봉틀을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새들 스티치는 기계 박음질보다 훨씬 더 튼튼했다.
게다가 앞면과 뒷면이 같은 모양으로 나오기 때문에 안과 겉이 모두 아름답다는 장점이 있었다.
‘아름다움과 실용성. 둘 중 하나도 놓칠 수 없으니까.’
그렇게 정환은 몇 가지 마무리 과정을 더 거쳐서 최종적으로 완성된 시제품과 디자인 도면을 이동기에게 전달하며 말했다.
“이 가방과 똑같이 만들 수 있는 장인을 섭외해 주세요. 특히, 이 리본 형태의 손잡이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동기는 정환이 시제품으로 만든 가방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
평소 같았으면 감탄사가 먼저 나왔겠지만 이번에는 걱정이 앞섰다.
이만한 핸드백을 만들 실력을 가진 장인을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동기는 자신의 인맥을 한 번 더 총동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네. 찾아보겠습니다.”
이동기가 나간 후 정환은 곧장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인챈트였다.
‘가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챈트… 역시 경량화 인챈트가 좋겠군.’
정환은 자연스레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칼로스 대륙에서 경량화 인챈트를 누구보다 자주 애용한 이는 다름 아닌 트레저 헌터였다.
트레저 헌터가 탐험하는 깊은 던전은 깨끗한 물과 식량을 구하기가 어려운 곳이었다.
그래서 트레저 헌터는 던전에 들어가기 전, 며칠 분량의 식량과 물을 배낭에 넣어 다녀야 했다.
그런데 그 식량 무게가 어마어마했기에, 트레저 헌터 사이에서는 경량화 인챈트가 새겨진 배낭이 필수였다.
하지만 트레저 헌터들이 반드시 경량화 인챈트가 새겨진 배낭을 챙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던전에서 찾을 수 있는 막대한 보물이었다.
트레저 헌터가 던전을 탐험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던전 깊은 곳에 숨겨진 보물 때문이었다.
함정을 피하고 몬스터들을 물리쳐 가며 보물을 간신히 찾아냈는데, 그 보물이 너무 무거워서 절반도 못 챙기고 돌아오는 트레저 헌터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명한 트레저 헌터들은 돈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자신들의 배낭에 3성, 4성급 경량화 인챈트를 새겨 달라는 의뢰를 자주 보내곤 했다.
그래야만 던전에 숨겨진 막대한 보물을 챙겨와 떼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만든 핸드백에 굳이 3성, 4성급 경량화 인챈트를 걸 필요는 없었다.
‘여성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의 평균 무게는 3~4kg. 1성급 경량화 인챈트라면 1.5kg 정도로 느껴지게 할 수 있어.’
정환은 정신을 집중한 후 조그마한 블랙해머 로고에 1성급 경량화 인챈트를 새겼다.
5분쯤 지났을까?
정환은 인챈트가 끝난 로고를 미리 준비해 둔 가방에 붙였다.
그 가방 속에는 4kg 정도의 내용물이 적당히 들어가 있었다.
정환은 로고를 붙인 가방을 한 손으로 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가방 무게보다 확실히 가볍게 느껴졌다.
인챈트 효과가 있다는 뜻이었다.
정환은 큰 고비 중 하나를 넘었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작업대 아래에는 미리 주문해 뒀던 수백 개의 블랙해머 로고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랬다.
정환이 가방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준비한 마지막 방법.
그것은 바로 로고에 인챈트를 거는 것이었다.
***
정환이 대량 주문했던 블랙해머 로고에 경량화 인챈트를 새기는 동안 이동기는 장인을 찾아 말 그대로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정환의 인챈트가 마무리될 무렵.
이동기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런데 이동기는 평소보다 몇 배는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전국을 이 잡듯이 뒤졌는데도 장인을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