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94
92화 콜라보 (3)
앤드클럽의 패딩은 출시와 동시에 한일 양국에서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이번에 앤드클럽이 콜라보한 디자이너가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 니콜슨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 돌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앤드클럽은 이렇게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니콜슨이 한국과 일본에서 인지도 있는 디자이너라는 점을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선보인 것이었다.
패딩을 직접 디자인하고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제작하는 니콜슨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광고가 한일 양국에 동시 송출되자 판매량은 급상승했다.
니콜슨의 콜라보 패딩은 지금까지 앤드클럽이 출시했던 패딩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었지만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앤드클럽 대표 카즈미는 급상승한 매출을 보고받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보시다시피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매출이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니콜슨의 이름값이 톡톡히 먹혀들어 간 모양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이번 시즌 안에 니콜슨에게 준 막대한 개런티도 충분히 회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좋아. 오리진의 겨울 신상은 아직인가?”
“아. 이걸 보시죠.”
카즈미에게 판매량을 보고하던 임원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그 태블릿에는 오리진의 패션쇼 초대장이 떠 있었다.
카즈미는 패션쇼가 개최되는 장소를 보곤 코웃음을 쳤다.
“뭐야? 삿포로에서 패션쇼를 개최하겠다고?”
“삿포로는 일본에서도 가장 추운 지역 중 한 군데 아닙니까? 아마 겨울옷을 홍보하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오리진 홍보팀에서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모양이군.”
카즈미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오랜만에 삿포로에 눈 구경이나 하러 가지.”
***
며칠 후 삿포로 야외 패션쇼장의 백스테이지.
정환과 유아림은 길게 줄지어 선 모델들의 옷매무시를 마지막으로 손보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양민준이 이재철에게 말했다.
“안 되겠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뭐? 방금 다녀왔잖아?”
“날씨가 추워서 그런 건지, 긴장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어. 같이 갈래?”
양민준은 잔뜩 긴장한 듯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렇게 긴장한 건 양민준만이 아니었다.
사실 이재철 역시 티를 내지 않았지만 양민준만큼이나 긴장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앤드클럽이 니콜슨과 콜라보해서 내놓은 패딩이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앤드클럽 때문에 그래?”
이재철이 묻자 양민준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렇잖아. 다른 브랜드도 아니고 루이비통 수석 디자이너가 콜라보해서 만든 제품이잖아.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양민준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그린 미스틱이 홍콩과 도쿄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루이비통의 디자이너 니콜슨의 이름값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양민준이 이렇게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재철은 마지막까지 모델들의 옷태를 다듬는 정환과 유아림을 쳐다봤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심지어 유아림은 입가에 작은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이재철은 유아림이 어떤 상황에서 이런 미소를 짓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승리를 확신했을 때만 보이는 미소였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이길 거니까.”
***
삿포로 패션쇼장에 자리 잡은 카즈미는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눈의 고장이라 불리는 홋카이도의 삿포로답게 패션쇼장 주변에는 눈으로 만든 화려한 조각들이 가득했다.
“흠…….”
카즈미는 오리진이 삿포로를 패션쇼장으로 선택한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삿포로가 눈의 고장인 만큼 여기서 겨울옷을 선보인다면 추위에 강한 옷이라는 상징성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션쇼 무대로 굳이 야외를 선택한 이유만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눈이 주는 상징성 하나만 보고 이런 선택을 한 것 같은데 확실한 패착이야.’
삿포로는 해가 지면 영하 10도까지는 우습게 떨어지는 곳이었다.
그러니 야외무대에서 패션쇼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대형 난로와 같은 방한 대책이 완벽히 마련되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들이 추위 때문에 패션쇼에 전혀 집중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야외무대 그 어디에도 난로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카즈미 주변에 앉은 관객들 역시 꽁꽁 얼어붙은 두 손을 싹싹 비비고 있었다.
“너무 추운데?”
“그러니까. 따뜻한 실내를 두고 왜 하필 야외에서 진행하는 거야?”
“두고 봐. 제대로 된 작품이 안 나오면 악플을 확 달아 버릴 거니까.”
카즈미는 관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혀를 끌끌 찼다.
이미 오리진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관객들에게 점수를 잃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주최 측에서 나온 직원들이 자리 잡은 관객들에게 담요를 나눠 줬다.
카즈미는 그 담요를 덮지 않고 유심히 살폈다.
담요에 박힌 패턴이 무척 독특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응용한다면 다른 의류를 만드는 데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담요에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패턴인데?’
카즈미는 뒤늦게 담요에 박혀 있는 블랙해머 로고를 발견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이 적의 디자인을 인정했다는 사실이 조금 짜증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씨가 추웠기에 카즈미는 그 담요를 무릎 위에 덮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 설치된 검은색 스피커에서 패션쇼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런웨이 뒤편에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에서 새하얀 눈발이 날렸다.
그 눈발이 점점 거세지면서 고조되던 음악 소리도 점점 커졌다.
마침내 모델이 런웨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스크린에 세차게 불던 눈바람이 한순간에 멈췄다.
런웨이에 선 모델을 본 카즈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 모델은 마치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도사처럼 가벼운 헌팅 재킷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델이 사뿐사뿐 워킹을 시작하자 카즈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미친 거 아냐? 저렇게 얇은 헌팅 재킷을 겨울옷으로 내놓는다고?’
카즈미는 눈을 부릅뜨고 모델이 걸친 재킷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분명 옷감 내부에 두꺼운 누빔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그 재킷에는 누빔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미쳤어.’
이렇게 놀란 건 카즈미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앉은 임원과 다른 관객들 역시 토끼 눈을 뜨고 있었다.
“정말 저게 겨울옷이야?”
“너무 얇아 보이지 않아? 저렇게 입고 나갔다간 그대로 동사할 것 같은데.”
“그러니까. 다음에는 패딩 같은 게 나오겠지?”
카즈미는 런웨이 쪽으로 몸을 바짝 당겨 앉았다.
이다음에 나올 옷이 무척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일부러 이목을 모으려고 이런 옷을 먼저 보여 준 건가? 두 번째에는 두꺼운 패딩 같은 걸 입고 나오겠지?’
하지만 카즈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두 번째 모델이 입고 나온 것은 패딩이 아닌 헌팅 재킷만큼이나 얇은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였다.
세 번째, 네 번째 모델까지 연달아 겨울옷이라고 볼 수 없는 옷들을 입고 나오자 카즈미는 의자에 편하게 기대앉았다.
이미 앤드클럽과 오리진의 대결은 승패가 정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겨울옷의 생명은 누가 뭐라 해도 보온성이었다.
보온성을 놓친 옷은 아무리 디자인이 예쁘다고 한들, 절대 고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었다.
카즈미는 맥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럴 거였으면 애초에 비싼 돈 들여가면서 니콜슨을 섭외할 필요도 없었잖아?’
그렇게 여유가 생긴 카즈미는 두 다리를 꼰 채 편안하게 패션쇼를 관람했다.
확실히 오리진의 디자인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앤드클럽의 대표만 아니었다면 앞서 모델이 입고 나왔던 헌팅 재킷과 맥코트는 한 벌 정도 갖고 싶을 정도였다.
‘하이엔드 패션과 패스트 패션만의 장점만을 정확히 캐치해서 디자인에 녹여 냈군.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을 텐데 아주 훌륭하게 해냈어. 물론 보온성을 놓친 시점에서 모든 게 끝났지만.’
관객들의 반응도 카즈미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디자인은 진짜 너무 예쁘다. 안 그래? 완전 고급스러워.”
“응. 방금 모델이 입었던 플리스 재킷은 진짜 너무 갖고 싶다. 그런데 따뜻하지는 않을 것 같아.”
“그러니까. 예쁘긴 한데 별로 안 따뜻해 보여. 그게 문제야.”
마음 놓고 쇼를 관람하던 카즈미는 문득,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그것은 얇은 외투를 걸친 모델들의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관객들과 달리 모델들이 걸친 것은 얇은 외투가 전부였다.
아무리 프로 모델이라 하더라도 이런 추위 앞에서는 볼이나 코끝이 빨개질 법도 했다.
하지만 모델들의 표정은 너무나도 평온해 보였다.
카즈미는 모델들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그때 관객들의 몸이 휘청일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모델들의 당당한 워킹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카즈미는 무대에 서서 멋진 포즈를 취하는 모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기야? 아니면 정말 옷이 따뜻한 거야?’
그렇게 검은 스크린에 ‘가장 가벼운 겨울’이라는 문구가 올라오며 오리진 패션쇼가 마무리됐다.
이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가장 가벼운 겨울이라…….”
“요즘 나오는 패딩들이 무겁긴 하지. 입고 벗는 것도 일이잖아?”
“그래도 무거운 만큼 따뜻하잖아. 가벼워도 추우면 아무 소용 없지. 안 그래?”
“정말 궁금하네. 쇼에서 보여 준 옷이 정말 따뜻할까?”
카즈미 역시 오리진의 옷이 진짜 따뜻할지 궁금하긴 했다.
오리진이 바보가 아닌 이상 보온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옷을 디자인했을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카즈미의 눈앞에 모델들의 당당한 워킹이 스쳐 갔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모델들의 모습을 떠올린 카즈미는 언뜻 불안해졌다.
‘설마, 어떤 노림수가 있는 것인가? 특별한 소재라도 썼나?’
하지만 카즈미가 아는 한 저렇게 얇으면서 보온성을 가진 신소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카즈미는 고개를 힘차게 지으며 미약하게 남아 있던 의심을 지웠다.
패션쇼장 밖으로 나오자 칼바람이 매섭게 카즈미의 두꺼운 코트를 파고들었다.
이가 딱딱 부딪힐 만큼 어마어마한 강추위였다.
카즈미는 서둘러 준비된 차에 올라탔다.
“공항으로 바로 가지.”
“네.”
히터 바람에 몸을 녹이던 카즈미는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야외 패션쇼장 역시 어마어마하게 추웠지만 거기에서 전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카즈미는 그것이 블랙해머 로고가 박힌 무릎 담요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렇게 패션쇼가 끝난 후, 한일 양국에선 오리진의 삿포로 패션쇼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다.
대부분 오리진 의류의 보온성을 지적하는 기사들이었다.
[(심층 진단) 오리진, 시즌을 착각한 것인가?] [오리진 삿포로 패션쇼 집중 탐구 – 새로운 시도? 무모한 도전?] [이럴 거면 왜 삿포로까지 갔나? 오리진의 안타까운 선택 주목] [추위 걱정 ‘끝’ 텐탑 콜드 제로 컬렉션 공개] [텐탑·파스오, 3년 만에 대규모 할인 행사 시작! 선착순 3,000여 명에게는 온리히트 내의 증정]텐탑과 파스오에서는 이러한 기사가 나오기 무섭게 두꺼운 패딩을 연달아 출시하며 대규모 세일을 시작했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오리진을 저격하는 모양새였다.
여론을 비롯한 여러 상황이 오리진에게 불리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이러한 여론이 의문에서 긍정으로 바뀌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사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