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96
94화 그린 미스틱 인수 합병
그렇게 한참 동안 이동기는 그린 미스틱 인수 이야기가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모두 전해 들었다.
사실 정환에게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이동기의 머릿속에는 의문점이 무척 많았다.
그중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바로 유아림이 그린 미스틱을 내놓았다는 사실이었다.
‘어째서?’
이동기가 이런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했다.
그린 미스틱은 3년 연속 홍콩, 도쿄 패션 위크에 작품을 출품하며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 나가고 있었으니까.
특히 이것은 대기업의 투자 없이 유아림을 비롯한 다른 디자이너들의 실력만으로 이뤄 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이런 성장세로 미뤄 봤을 때 몇 년 안에 유럽에 진출하는 것 역시 무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 가지 아쉬운 점도 분명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중의 인지도였다.
그린 미스틱이 전체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하이엔드 패션 제품을 판매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일이었는데, 현재는 이러한 인지도마저도 오리진과의 콜라보를 통해 꽤 많이 끌어올린 상태였다.
그러니 그린 미스틱은 굳이 블랙해머와 인수 합병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생할 수 있는 회사가 된 셈이었다.
“그런데도 정말 유아림 디자이너님이 인수 합병에 동의하셨다고요?”
이동기가 묻자 정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사실 유아림 디자이너님께서 먼저 인수 합병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는 저도 좀 의아하더라고요.”
“자, 잠깐만요.”
이동기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반문했다.
“대표님이 아니라 유 디자이너님이 인수 합병 이야기를 먼저 꺼내셨다고요?”
“네.”
“도대체 왜요?”
***
얼마 전, 그린 미스틱 사무실.
유아림은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이번 콜라보 성과를 되새겼다.
확실히 오리진과의 콜라보는 유아림과 그린 미스틱에 큰 수확을 안겨 준 사업이었다.
3년은 죽어라 일해야 벌 수 있는 막대한 거금을 단 몇 개월 만에 벌어들였으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린 미스틱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인지도 역시 크게 높아졌다.
지금까지의 그린 미스틱이 아는 사람만 아는 패션 브랜드였다면 지금은 모든 국민이 이름을 아는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었다.
하지만 유아림이 이런 수익이나 인지도보다 더욱 가치 있게 여기는 수확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시야가 무척 편협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다는 것이었다.
‘정환이가 아니었다면 절대 못 깨달았을 거야.’
정환은 이번 콜라보를 진행하기 전 한 가지 규칙을 정했다.
그것은 의상의 미학적인 부분을 전적으로 유아림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이 디자인을 실용적으로 고치는 것에만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작업 초반에만 해도 유아림은 왜 굳이 이런 방식을 가져가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환은 자신보다 미학적인 감각이 몇 배나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아림은 정환의 미학적인 감각이 지난 몇 년 동안 다양한 예술 활동을 거치면서 더욱더 예리해졌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봤을 때 정환 역시 자신과 함께 디자인의 미학적인 부분에 관여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면 당연히 몇 배는 더 훌륭한 옷이 만들어졌을 테니까.’
하지만 정환은 어쩐 일인지 몇 번이나 이와 관련된 부분을 이야기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처음 정한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그렇게 제작된 콜라보 제품은 출시 직후, 한일 양국의 매장에서 연일 품절 행진을 이어 갔다.
강원도의 오리진 공장이 24시간 풀로 가동됐는데도 그 물량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렇게 콜라보 제품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유아림은 그제야 정환이 어째서 미학성만큼이나 실용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는지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실용성과 미학성의 중간에 있는 옷.
이런 옷이야말로 대중이 가장 원하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이를 깨달은 유아림은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유아림이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을 품었던 이유였다.
‘내가 디자인한 옷을 수많은 사람이 입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지.’
돌이켜 보니 확실히 그린 미스틱에는 이러한 방향성이 부족했다.
지금껏 소수를 위한 하이엔드 패션 디자인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중의 소중함을 잊게 된 것이었다.
유아림은 자신이 패션 디자이너가 된 이유를 다시 일깨워 준 정환에게 무척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당장 내년에 출시해야 할 신상에 대한 걱정이 눈덩이처럼 커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콜라보를 통해 대중성과 실용성의 균형을 좀 잡긴 했지만…….’
솔직히 유아림은 이번 콜라보만큼이나 균형이 잘 잡힌 의상을 내년에 출시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정환 덕분에 미학성과 실용성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지만 유아림은 이것이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전처럼 혼자서 작업하다간, 분명 예전 고집이 불쑥 튀어나와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릴 가능성이 컸다.
‘앤드클럽이 그랬던 것처럼 분명히 내게도 그런 관성이 남아 있을 테니까.’
게다가 그린 미스틱의 최종 디자인을 컨펌하는 사람은 결국 유아림 한 명뿐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디자이너들이 훌륭하게 성장하긴 했지만 아직 이러한 관성까지 전부 깨닫고 제어하기는 미숙한 면이 많았다.
그래서 유아림은 정환이 있는 블랙해머와 합병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블랙해머와 합병한다면 이런 불상사가 일어날 일은 없으니까.
물론 유아림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단순히 방향성 때문만이 아니었다.
정환과 함께 일하면서 그린 미스틱이라는 회사 자체가 너무 작고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유아림은 유리 벽 너머 그린 미스틱의 작업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작업대 위에는 조금 전까지 디자이너들이 작업한 잘린 원단 따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유아림은 이 모습을 보며 초짜 디자이너였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의 작업실 환경은 무척 열악했다.
‘그땐 정말 어떻게 버텼는지…….’
숨도 못 쉴 만큼 좁은 작업실에는 재봉틀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벽에는 원단이 가득 차 있었다.
원단에서는 날마다 먼지가 떨어졌는데 창문은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직원들은 매일같이 기침을 달고 살았고 이런 환경을 견디다 못해 며칠 만에 퇴사하는 이들이 허다했다.
유아림은 독자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이런 부분들을 최대한 개선하려 노력했다.
예산이 허락하는 선에서 최대한 넓은 작업실을 구했고 직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래서 유아림은 그린 미스틱이 일하기에 괜찮은 회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블랙해머의 사무실을 보고 나니 그게 아니었지. 말 그대로 난 우물 안 개구리였어.’
확실히 블랙해머 본사는 그린 미스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깔끔했다.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쾌적한 작업실을 갖추고 있는 것은 물론, 이들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줄 다양한 장비 또한 구비돼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디자이너들의 시제품을 즉각 제작할 수 있는 공장을 비롯한 여러 하청 업체와의 연계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블랙해머 패션사업부는 그야말로 패션 디자이너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반면, 그린 미스틱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린 미스틱의 사무실과 작업실은 파티션으로 엉성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넓었던 작업실 역시 디자이너들이 하나둘 확충되면서 점점 좁아졌다.
유아림은 작업실을 더 넓은 곳으로 옮기려 했지만 주변 부동산의 시세가 너무 비싸진 탓에 포기해야만 했다.
‘내년에는 더 넓은 곳으로 옮겨야지, 이렇게 생각만 한 게 벌써 3년.’
3년 동안 유아림과 디자이너들은 작업실 공간을 겨우겨우 쥐어짜서 재봉틀과 작업대를 콩나물시루처럼 욱여넣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이제는 한계였다.
‘이렇게 운영해선 안 돼.’
확실히 그린 미스틱에는 커다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회사를 확장하고 변화시키기에는 겁이 났다.
유아림은 어디까지나 패션 디자이너일 뿐, 전문 경영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다른 회사와의 인수 합병이었다.
규모 있는 회사와 합병한다면 이런 문제를 더욱 쉽게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사실 그린 미스틱이 꾸준히 성공을 거두면서 여러 굵직한 패션 회사에서 인수 합병을 제안했다.
이들은 인수 합병 제안과 함께 작업실 확장, 넉넉한 예산 지원, 디자이너 월급 인상 등의 달콤한 미끼를 흔들었다.
하지만 유아림은 이런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린 미스틱은 외부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수 합병 과정에서 브랜드 고유의 색채가 사라질까, 두려움이 앞섰다.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었어. 결국 인수 합병이 진행된다면 언젠가 그린 미스틱만의 색채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니까.’
하지만 블랙해머와 인수 합병을 하게 된다면 이러한 부분에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그만큼은 유아림은 정환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컸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최근 작업을 함께 진행하면서 믿음이 더 커진 상태였다.
심지어 블랙해머와의 인수 합병을 진행하면 유아림이 그린 미스틱에서 부족하다고 여기는 모든 부분이 충족될 수 있었다.
‘사업적인 부분은 물론, 디자인적인 부분에서도 정환이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정환이 인수 합병 제안을 거절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정환의 능력이라면 굳이 그린 미스틱을 인수할 필요 없이 그냥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를 새로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그 브랜드는 그린 미스틱보다 훨씬 대단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니 유아림으로서는 부디 정환이 긍정적인 답변을 전해 주기를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렇게 유아림이 한창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핸드폰에서 윙, 하고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해 보니 정환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네, 디자이너님. 저예요.”
유아림이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전에 말씀하셨던 인수 합병 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어요.”
정환의 대답을 듣고 유아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정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환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문제? 무슨 문제? 혹시 지분을 양보해야 하는 것이라면…….”
유아림이 조금 긴장한 채로 이야기하려는데 정환이 다른 말을 꺼냈다.
“아. 그게 아니라 지금 사옥이 좀 좁아서요. 잘하면 사옥을 새로 지어야 할 것 같아요.”
그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