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warf in his previous life, but an artistic genius in his current life RAW novel - Chapter 97
95화 사옥 건설 (1)
[블랙해머, 그린 미스틱과의 인수 합병 선언] [콜라보에서 인수 합병까지… 그린 미스틱 인수 사가 정리] [(칼럼) 과연 블랙해머는 한국의 LVMH로 거듭날 수 있을까?]블랙해머가 그린 미스틱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언론에 공론화됐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부터 그린 미스틱을 탐냈던 LE나 제일 패션은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셔야만 했다.
그렇게 블랙해머가 그린 미스틱을 인수하긴 했지만 회사 구조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블랙해머 패션사업부 산하에 그린 미스틱이라는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가 추가된 것뿐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린 미스틱의 수장 역시 여전히 유아림이었다.
하지만 두 회사가 합쳐지는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겨났다.
그것은 바로 사무실 문제였다.
정환이 그린 미스틱을 인수하기 전, 가장 크게 고민한 것 역시 바로 이 부분이었다.
정환은 이 문제를 두고 긴밀하게 상의하기 위해 이동기와 유아림을 한자리에 모았다.
“지금 서울숲 블랙해머 본사는 거의 포화 상태죠?”
정환의 질문에 이동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직원들이 계속 확충됐으니까요. 물론, 가까운 사무실을 미리 대여한 덕분에 아직 여유가 좀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 가까운 사무실을 임대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죠. 수용 인원의 문제를 떠나서 사무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게 된다면 결국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무엇보다도 당장 그린 미스틱의 직원을 서울숲 근처로 데려올 만한 가까운 사무실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인수 합병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이동기의 이야기에 유아림은 이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 그러면 그린 미스틱은 한동안 원래 자리에 있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정환의 표정은 유아림의 이야기를 듣고도 여전히 좋지 않았다.
정환이 느끼기에 그린 미스틱의 작업실 상황은 상당히 열악했기 때문이다.
당장은 괜찮을 수 있어도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했다.
정환이 고민하자 이동기가 눈치를 살피다가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면 회사 사옥으로 쓸 만한 건물을 하나 통으로 임대하는 건 어떨까요? 잘 찾아보면 괜찮은 건물이 있을 겁니다.”
“아, 그 방법도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가 일반적인 회사랑은 조금 다르잖아요? 저희가 원하는 규모의 작업실을 회사 내부에 갖추려면 결국 리모델링을 해야 할 텐데 이 부분에서 건물주와 협의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임대료도 계속 높아질 거고요.”
“그것도 그렇네요.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 가지 방법뿐인 거 같죠?”
“네. 더 늦기 전에 회사 사옥을 짓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유아림의 경우 정환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3년간 그린 미스틱이 작업실을 옮기지 못한 것은 서울의 말도 안 되는 사무실 임대료와 땅값 때문이었으니까.
그렇게 유아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경기도도 아니고 서울이잖아요. 서울에 땅을 사고 사옥까지 지으려면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닐 텐데, 괜찮을까요?”
하지만 정환은 이미 결심을 굳힌 듯 대답했다.
“괜찮을 겁니다. 만에 하나 번 돈을 모두 투자하고 한동안 새 사업을 벌일 수 없을 만큼 힘들어지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때를 늦는다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오래 직원들이 좋지 못한 환경에서 일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처럼 정환이 굳은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이동기와 유아림 또한 땅을 구입해 사옥을 짓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저는 은행 대출을 알아보고 가까운 부동산에 괜찮은 매물이 있는지 연락을 돌려 보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그렇게 이동기가 먼저 사무실을 떠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정환이 유아림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그린 미스틱 작업실이 많이 좁죠? 제가 그쪽 근처로 작업실을 알아볼게요. 사옥이 건설될 때까지만 참아 주세요.”
“어휴, 그래 주면 저야 고맙죠. 다만 너무 부담은 갖지 말아 주세요. 저희는 정말 괜찮으니까요.”
***
블랙해머의 사옥 건설이 확정된 후.
이동기는 여러 부동산을 수소문해 부지를 보러 다녔다.
정환 역시 급한 일을 처리하면서 괜찮은 부지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으면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확실히 서울에서 사옥을 지을 만한 부지를 확보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정환과 이동기가 한 달 넘게 발품을 팔았음 무렵, 부동산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아주 좋은 땅이 적당한 가격에 매물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정환과 이동기는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 부지는 의외로 서울숲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부동산 중개인과 대화를 나누던 이동기가 정환에게 말했다.
“원래 땅 주인이 여기에 건물을 세우려다가 돈이 너무 많이 드는 바람에 그냥 포기했다네요. 원자재 가격이 너무 올랐다던가….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역이랑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고 땅 가격도 비싼 편이지만 다른 매물에 비해서는 확실히 좋아 보이는데요.”
“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이 매물이 마음에 드는 점은 서울숲이 가까이 있다는 점이었다.
정환으로서는 계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좋습니다. 여기로 하죠.”
그렇게 정환이 부동산에서 매매 계약을 마치자 이동기가 이야기했다.
“이제 설계 사무소를 알아봐야겠군요. 저희가 사옥을 짓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사무소 몇 군데에서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괜찮은 업체도 있는 것 같던데, 미팅을 준비할까요?”
“아.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정환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설계는 제가 직접 할 거니까요.”
***
사흘 후.
이동기는 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했다.
한 달 가까이 애를 먹었던 부지 계약이 드디어 끝났기 때문이다.
‘커피나 한잔할까.’
이동기는 생각하며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그런데 카페테리아에는 먼저 출근한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제 강원도 출장 다녀온 건 어땠어요?”
“아휴. 말도 마세요. 정신없이 일만 하다 왔다니까요.”
“일본에서도 발주량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거 들었어요?”
남자 직원 하나가 말을 꺼냈다.
“우리 이번에 사옥 건설하는 거… 대표님이 직접 설계하신대요.”
“진짜요? 대표님이 직접?”
직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흐음…. 괜찮으려나…….”
“아무리 그래도 건축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조금 그렇지 않을까요? 이런 건 설계 사무소에 맡기는 게 일반적인데.”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동기가 일부러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직원들에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 오셨어요?”
이동기는 커피를 내리며 근처에 서 있던 남자 직원에게 물었다.
“대표님이 사옥 설계하는 것 때문에 걱정이 많은가 봐요.”
서로 눈치를 주고받던 남자 직원이 이동기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 그게…. 그런 부분은 그냥 전문가한테 맡기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무래도 건축은 좀 다른 분야잖아요.”
이동기는 남자 직원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저희 대표님이 언제 패션이나 가방 디자인을 전공하셨던가요?”
정곡을 찔린 남자 직원이 말끝을 흐렸다.
“그건 아니지만…….”
이동기는 더 쏘아붙이지 않고 남자 직원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 줬다.
확실히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 직원으로서는 정환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대표님을 믿고 한번 기다려 보세요. 아마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
그렇게 이동기는 커피 한 잔을 더 뽑은 후 대표실로 향했다.
사실 이동기 또한 정환이 건축 설계에 재능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환을 향한 이동기의 신뢰는 굳건했다.
지금껏 정환이 자신만만하게 뭔가를 도전해서 실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 대표님이 어떤 설계를 보여 줄지…….’
이동기는 커피를 들고 정환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정환은 이동기가 찾아온 것도 모른 채 책상에 고개를 박고 설계에 집중하고 있었다.
“대표님!”
이동기가 살짝 목소리를 높이자 그제야 정환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 오셨습니까?”
이동기는 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정환에게 건넸다.
“커피 아직 안 드셨죠?”
“고맙습니다.”
그렇게 정환과 이동기는 자연스럽게 티타임을 가졌고 이동기가 힐끔, 설계도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작업은 잘돼 가십니까?”
정환은 궁금증이 가득한 이동기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본 후 피식, 웃었다.
뭔가를 눈치챈 기색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환이 이동기를 향해 물었다.
“제가 직접 사옥을 설계하는 것에 대해서 직원들이 걱정이 많은가 보죠?”
이동기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대답했다.
“제 표정이 그렇게 티가 났습니까?”
“조금요.”
“…주의하겠습니다.”
“아니요. 그럴 것 있나요. 누구라도 의심이 되고 걱정이 될 만한 상황인데.”
“하지만…….”
“이렇게 하죠. 조만간 설계 전문가 한 분을 초빙해 제 설계를 보여 드리는 겁니다. 어떤가요? 이 정도면 의심과 걱정이 조금 잦아들까요?”
정환의 이야기를 들은 이동기는 내심 감탄했다.
직원 중심의 명쾌한 해법을 간단히 내놓은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시공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은 거쳐야 할 단계니까요. 이참에 직원들도 자신들이 일할 사옥을 미리 볼 수 있다면 좋을 거고요.”
***
그렇게 일주일 후.
이동기는 회사 앞에서 무테안경을 쓴 한 남자와 반갑게 인사했다.
“오 교수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가워요. 몇 년 만이죠? 거의 5년 만이네요.”
이동기가 맞이한 남자는 스페이스 디자인이라는 대형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는 오현준이었다.
이동기가 A&K 코리아에서 전시 기획자로 일했을 때 오현준이 전시관 설계를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던 인물이었다.
“요즘 많이 바쁘실 텐데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이동기와 함께 회사로 들어온 오현준은 사무실 곳곳을 물끄러미 훑어봤다.
“사무실도 대표님이 직접 리모델링하셨다고 했죠?”
“아, 그렇습니다.”
“흠.”
오현준이 사무실을 구경하는 사이 정환이 다가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정환과 오현준이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스페이스 디자인의 대표 오현준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블랙해머 대표 이정환입니다.”
정환과 악수를 나눈 오현준이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보통 외부 미팅 나갔을 때 이런 말은 잘 안 하는 편인데 여기 사무실 공간이 무척 세련됐네요. 대표님만 괜찮으시다면 레퍼런스로 삼고 싶을 정도예요.”
“별말씀을요. 칭찬 감사합니다.”
“이거, 서로 이야기를 먼저 나누는 게 순서인데 사무실 풍경을 보고 나니 대표님이 설계도가 너무 궁금해지네요. 이야기는 좀 미뤄 두고, 설계도부터 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정환은 오현준과 함께 대회의실로 향했다.
대회의실 책상 위에는 정환이 직접 만든 설계도가 펼쳐져 있었다.
“음.”
오현준은 팔짱을 낀 채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모습을 본 직원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대회의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오현준이 매서운 눈빛으로 설계도를 하나씩 살피자 이동기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정환은 전혀 긴장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참 설계도를 확인하던 오현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