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ighter Pilot's Love RAW novel - chapter 11
지윤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자신하는 그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든 그렇게 자신만만해요?”
“………”
“당신은 왜 모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틀릴 수도 있는데 당신 생각과 틀리다고 해서 왜 상대방이 거짓말을 했다고 단정 지어요? 됐어요. 그만해요.”
우혁은 과하게 흥분하며 자신의 말만 쏟아내고 고개를 돌리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러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고? 그걸 나한테 믿으라는 건가?”
“…….”
우혁은 여전히 말없이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를 다시 한 번 응시한 후 자동차를 출발시켰다.
‘이지윤. 넌 정말 유치해.’
지윤은 운전대를 잡고 앞만 바라보고 있는 그의 표정 없는 얼굴을 힐끗 쳐다보며 자신을 탓했다. 따지고 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가만히 있는 그와 어울릴 것 같다며 간호장교를 이어 주려고 했던 김 대위도 별 다른 악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우혁과 자신의 관계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 탓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지윤은 여전히 앞만 보고 운전을 하고 있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바보, 이지윤…….. 넌 질투했던 거야.’
간호장교와 정우혁 중령이 어울릴 것 같다는 소령의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은 질투에 빠졌던 것이다. 앞 뒤 생각 없이 그 간호장교를 향한 질투와 우혁을 향한 알수 없는 배신감에 괜히 그에게 억지를 부린 것이다.
지윤은 달리는 자동차의 창으로 보이는 시내의 정경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태운 차가 어느새 기지를 벗어나 시내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윤은 그제서야 자신이 가는 목적지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길은 그의 아파트나 그녀의 숙소, 어느 쪽으로 가는 길도 아니었다.
지윤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어딜 가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 없는 얼굴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구더러 고집쟁이라더니 자기는 더한 고집불통이면서………
지윤은 점점 무거워지는 차안의 공기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와의 둘만의 시간을 이런 식으로 보내는 것도 싫었다.
“……..미안해요…….내가 괜한 억지를 부렸어요.”
그녀의 입에서 사과의 말이 나오자 우혁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그녀에게 잠시 눈길을 주더니 곧이어 차의 방향을 틀어 도로가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야?”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알았다. 그럼 말 하고 싶을 때 해.”
지윤은 다시 굳어지려는 그의 말투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창피하다고요. 꼭 내입으로 질투했다고 말해야 해요?”
그녀의 뽀로통한 말에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응시했다.
“질투? 무슨 질투?”
지윤은 끝내 진실을 알아내려는 그로 인해 속으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 대위가……..당신과 어떤 간호장교를 연결시켜 주려 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그 간호장교와 당신이 어울린다고………”
지윤은 결국 말을 끝내지 못하고 눈길을 창밖으로 돌리고 말았다.
우혁은 지윤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곧이어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무엇을 질투했다는 것에 생각에 미치자 얼굴 가득 나타나는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KF-16기의 여자 전투조종사님께서 간호장교를 질투하셨다? 그리고 나에 대한 배신감도 느꼈을 테고……..그런가?”
우혁의 능글거리는 말투에 지윤은 더욱 입을 굳게 다문 채 그의 시선을 피했다.
우혁은 자신의 눈길을 피한 채 창밖만 바라보는 지윤을 한동안 응시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 크게 고민해 본적은 없었다. 자신의 마음이 그녀에게 끌리고 있었고, 그 마음을 인정하면서부터 주체할 수 없는 욕망과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한 욕심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녀를 가져야 했고 그녀가 온전히 자신에게 오게 하고픈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이젠 알 것 같았다. 고집스럽고 당돌하며 꿈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자신을 불태울 줄 아는 이 정렬적인 여자 이지윤은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자신의 미래였고 자신의 사랑이었고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였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인생에 부족한 무언가를 느낀 적이 없었다. 전투조종사가 되는 것 외에는 크게 다른 무언가를 욕심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여자가 욕심났다. 그 어느 때보다, 그 어떤 것보다 이 여자의 모든 것이 욕심났다.
우혁이 지윤의 팔을 잡고 자신 쪽으로 힘껏 끌어당기자 그녀의 몸이 곧바로 그의 품속으로 떨어졌다. 우혁은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힘껏 입술을 밀어붙였다.
“………흡.”
지윤은 갑자기 자신을 끌어당기는 그의 힘에 끌려 남자의 품속에 가두어지자마자 곧바로 다가오는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빼앗겼다.
그녀의 작은 저항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을 입술을 훑어 내리는 그의 키스에 지윤은 속수무책으로 그의 손에 잡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지윤. 내 눈에는 너에게 한없이 미쳐 있는 내가 보이지 않나?”
지윤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에게 한없이 빠져있는 두 사람의 눈에 다른 누군가를 담을 마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를 담기에도 부족하고 또 부족했다.
지윤은 자신의 얼굴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살며시 떼어내며 속삭였다.
“알았어요. 잘못했어요. 하지만 여긴 사람들이 다니는 대로변이라고요.”
이미 어둠이 내려 자동차 안이 잘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사람들이 오가는 대로변의 차 안에서 남자와 키스를 했다는 것이 지윤은 못내 부끄러웠다.
지윤은 그가 다시 한 번 그녀에게 짧은 키스를 한 뒤 차를 출발시키자 줄곧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그 간호장교 봤어요?”
“음.”
“……예뻐요?”
지윤은 결국 그 질문을 하고야 말았다. 김 소령에게조차 차마 물을 수 없었던 질문을 그에게 하고 말았다. 그녀의 망설이는 질문에 우혁이 진지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예쁘더군. 하지만 내 눈엔 네가 훨씬 더 이뻐.”
자신의 유치한 질문에 똑같이 유치한 답을 하는 그를 바라보며 지윤은 결국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았다.
“풋. 푸후후훗.”
그녀의 웃음에 진지하던 그의 표정에도 웃음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동차 안을 가득 채우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지금 선물 사러 가는 거예요?”
지윤은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 차를 진입시키는 우혁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곧 추석이니 지윤의 조부모님께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겠다는 그의 말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가 이런 작은 일에 신경을 썼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왠지 우혁은 누구를 위해 선물을 사고 어떤 날을 기념하는 것은 못할 것 같아 보였다.
“왜?”
그녀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 그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그냥. 당신이 무슨 날을 기억해서 누구를 위해 선물을 산다는 것이 신기해서요…….”
“그래? 난 너에게도 선물을 줬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한테요?”
“음.”
우혁이 그녀에게 기억해 보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자 지윤은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으며 그가 무엇을 주었는지 생각하려 애썼다.
“!”
“…….”
“풋……머리핀.”
“쯧. 내가 준 첫 선물이었는데 말해 주지 않으면 기억도 못하는군.”
“미안해요…… 정말…… 그땐 당신과 이런 관계가 될지 몰라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언제 그 머리핀을 할지 두고 보지.”
지윤은 마지막 말을 마치고 곧바로 운전석에서 내리는 그를 놀라운 눈동자로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녀가 꼼짝없이 앉아 있는 동안 그가 조수석으로 돌아와 문을 열어 주었다. 지윤은 그제야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뭐예요? 정우혁 중령님께서…… 설마 당신이 준 머리핀을 내가 하나 안 하나 매일 체크했다는 뜻이에요.”
“…… 내려.”
지윤의 팔을 잡고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우며 우혁이 말하자 지윤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자동차에서 내렸다.
“귀여워…….”
“뭐?”
“당신. 귀엽다고요.”
우혁은 그녀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다 결국 그녀의 웃는 얼굴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띠우고 말았다.
“잘하는군. 요즘 군대에서는 부하가 자신의 상관을 놀리기도 하나 보지?”
“때에 따라서는요.”
“이런. 아주 건방진 부하님이시군.”
“그럼요. 난 블랙울프 대대의 대대장 정우혁 중령의 아주 건방진 부하예요. 그리고 내가 아무리 건방져도 우리 대대장님께서는 날 혼내지 못하시죠.”
“아닐 걸? 난 건방진 부하는 절대 못 봐주거든.”
“그래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한데요?”
그녀의 장난기 있는 대답에 그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서 보여 달라는 뜻은 아니겠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데…….”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주차장에 막 주차를 하는 사람과 주차장을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로 다가가는 사람들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그제야 지윤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리고 기겁을 했다.
“아뇨. 알고 싶지 않아요. 여기선 절대 알고 싶지 않아요.”
“훗. 그래? 다행이군. 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네게 키스하려니 조금 망설여졌거든.”
그의 뻔뻔한 말에 지윤은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사람들은 알까요? 당신이 이렇게 능글맞은 남자인 걸?”
지윤은 그에게 팔짱을 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훗. 시커먼 남자들에게 능글맞을 필요는 없지.”
“하긴. 그러네요.”
그의 말에 지윤은 무슨 선물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윤은 커다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우혁과 마주앉아 있었다. 곧이어 종업원이 다가와 그녀와 그의 앞에 커다란 냉면 기를 내려놓고 사라지자 지윤은 맛있어 보이는 냉면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여름도 다 갔는데 냉면이 먹고 싶나?”
“그러게요. 사실은 이번 여름에 냉면을 한 번도 못 먹었어요.”
“군 식당에서 냉면 메뉴가 몇 번 나왔던 것 같은데?”
“사실 군 식당에서 주는 냉면은 너무 맛이 없어요. 그냥 쫄깃한 국수 같아.”
“냉면을 좋아하나 보군.”
“아마 그럴걸요. 할머니 말씀이 제가 어릴 때부터 냉면을 좋아했대요.”
“그리고 뭘 또 좋아하지?”
지윤은 젓가락 짓을 잠시 멈추고 맞은편의 그를 쳐다보았다.
“다 말해야 해요? 많은데…… 아주 많아서 오늘내로 다 말하기 힘든데…….”
그녀의 장난에 그가 쿡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알았어. 먹기나 해. 하루에 하나씩 말하면 되겠군.”
지윤은 그의 말에 웃음을 지으며 다시 냉면을 먹기 시작했다.
거의 냉면 그릇이 비워질 즈음 그가 그녀에게 지나가는 투로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국군의 날 행사 축하 비행 쇼에 너도 참가한다.”
지윤은 마지막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마시다 급히 들린 사례에 기침을 내뱉었다. 그가 내미는 냅킨으로 입술을 닦고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국군의 날 행사에 제20전투비행단의 블랙울프 편대가 축하 비행을 하게 될 거야. 전반부에 한 번. 후반부에는 3대의 팰컨이 비행 예정이고 그중 한 대에 네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축하 비행 쇼에 너의 단독비행 계획이 있다.”
지윤은 그가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바로 앞에서 방금 전 그가 명확한 어조로 직접 한 말인데도 지윤은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 자신이 잘못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이 모든 사실에 진실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국군의 날 행사에 참가하는 축하 비행 팀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조종사만 참가하는 걸로 아는데…….”
“우리 편대가 최고야.”
“하지만 난…… 이제 겨우 KF-16 기종 변환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조종사예요…….”
지윤은 갑자기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자신이 어떻게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여자 전투조종사이기 때문이군요.”
“대한민국에 여자 전투조종사는 너 하나가 아니야. 네가 여자 전투조종사든 아니든 실력이 없었다면 추천도 없었을 것이고 공군본부에서도 허락을 하지 않았겠지.”
“…… 당신이 날 추천했어요?”
“아니. 이영훈 준장님이 추천하셨더군. 얼마 전 국군의 날 행사 진행 건으로 공군본부회의에 다녀오셨는데 그때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네가 단독 비행 쇼를 하도록 결정이 났다는군. 그 전에 내게 의견을 물으셨고 난 거기에 동의한 것뿐이야.”
지윤은 그제야 실감이 났다. 국군의 날 행사에는 대한민국의 최고 사령관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였다. 그곳에서 바로 그녀가 축하 비행 쇼를 하고 거기다 단독 비행까지 선보이게 된다.
지윤은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떴다. 꿈인 것 같았다. 생도 시절 교관과 함께 비행하던 단순한 단거리 비행 뒤에 선배들의 화려한 축하 비행 쇼를 보며 언젠가 자신도 저런 비행 쇼를 선보이리라는 각오를 다진 적이 있었다. 그 꿈이 이제야 이루어졌다.
공군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단지 여자 전투조종사이기 때문에 자신이 이런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해도 좋았다. 그들에게 해 보일 것이다. 여자도 얼마든지 훌륭한 전투조종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보여 줄 것이다.
***
“여러분 사열대 왼쪽 상공에서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 KF-16편대가 제20전투비행단 정우혁 중령의 지휘 하에 행사장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제55회 국군의 날 행사가 대전 공군본부 기지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사회자의 멘트에 따라 정우혁 중령이 이끄는 불랙울프 편대는 오색찬란한 연막탄을 내뿜으며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다섯 대의 팰컨은 조금의 대열의 흐트러짐도 없이 똑같은 간격을 유지하며 일정한 속도로 창공을 가로지르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오색 자취를 남기고 있었다.
“로저.”
정우혁 중령이 다시 한 번 대열을 점검하며 목표 지점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윽고 행사장을 벗어난 목표지점에 이르자 지윤의 헤드셋으로 다시 정우혁 중령의 명령이 떨어졌다.
“로저.”
KF-16편대는 행사의 처음에 하늘을 가로지르는 축하 비행을 한 뒤,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다른 편대의 비행이 끝나면 다시 축하 비행을 마무리하는 비행을 선보이게 된다. 그 마지막 축하 비행에 서 지윤은 국군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여자 전투조종사로서 최초의 간단한 단독 비행 쇼를 선보이게 되어 있었다.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온 블랙울프 편대는 자신의 팰컨에서 뛰어내리며 또 한 번 하늘을 가로지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 하늘에서는 이제 막 날아오르는 F-4E편대의 모습이 보이고 행사장에 울려 퍼지는 사회자의 안내멘트가 뒤를 잇고 있었다.
“고성능 광학 및 적외선탐지장비를 장착하고 주야간 정찰임무를 수행하는 F-4E편대가 조명탄을 투발하며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는 적 지역에서 임무 수행시 적의 유도탄 위협을 피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뒤를 잇는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행사장 가득 울려 퍼졌다.
“이지윤 대위. 탑승.”
지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F-4E에서 떨어지는 조명탄을 보다 정우혁 중령의 탑승 명령에 재빨리 자신의 팰컨에 올라탔다.
팰컨에 오르는 그녀의 뒤로 김유영 대위의 응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대위. 잘해!”
지윤은 뒤를 돌아서며 그에게 살짝 웃어 주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 뒤 곧바로 조종석에 앉아 헤드셋을 썼다.
“여기는 팰컨5. 이륙 준비 완료.”
그의 명령에 김 소령이 조종하는 팰컨2와 지윤의 팰컨5에서 새하얀 불기둥이 뿜어져 나오며 팰컨1의 뒤로 동시에 날아올랐다.
조금 전 다섯 대의 팰컨이 하늘을 가로지르던 것과 달리 지금의 세 대의 팰컨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오색의 연막탄을 뿌렸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팰컨2와 팰컨5가 양쪽으로 갈라졌다. 팰컨1이 직선으로 날아오르며 3번의 횡전을 하는 동안 팰컨2는 우측으로, 지윤이 조종하는 팰컨5는 좌측으로 기울어 3번의 연속 횡전을 선보였다. 그들의 팰컨에서 뿌려지는 빨갛고 노란 연막탄이 횡전을 거듭할수록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았고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입에서도 감탄의 탄성이 절로 나오고 있었다.
“로저.”
팰컨2의 대답 뒤로 지윤은 그에게 알았다는 대답을 하고 다시 하늘로 솟아올라 행사장이 있는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제부터는 국군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여자 전투조종사의 최초의 단독 비행 쇼였다.
지윤은 생도 시절 여자 전투조종사 후보라는 이유로 각종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아직 생도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했었다. 물론 2인이 탑승하는 교육용 전투기에 교관과 함께 비행해 자신이 크게 기여한 바는 없었지만 언젠가는 멋진 비행을 선보이는 선배 조종사들처럼 자신도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할 수 있기를 소원했었다.
이제 그때의 꿈이 이루어졌다. 그것도 편대비행만이 아닌 자신의 단독 비행 쇼를 하는 지윤의 감회는 남달랐다.
“지금 보시는 KF-16 전투기의 조종사는 제20전투비행단 최초의 여자 전투조종사입니다.”
지윤은 조종간을 최대한 밀어 급하강하기 시작했다. 거의 목표로 한 고도까지 다다르자 다시 조종간을 최대로 당겨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하늘로 날아오르며 우측 횡전 2번과 좌측 횡전 2번을 연속해서 선보이며 전투기의 꼬리부분에서 뿌려지는 연막탄을 이용해 용수철 모양의 띠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지그재그로 비행하며 하늘 가득 아름다운 오색 띠를 만들어 보였다.
하늘에서는 남자들만의 성역이었던 공군 전투조종사에 도전하여 결국 훌륭한 전투조종사가 된 여자 전투조종사 이지윤 대위가 아름다운 비행 쇼를 선보이고 있었고 행사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치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중에는 국가의 최고 원수인 대통령과 정치권에 내노라하는 국회의원 및 공군의 최고 사령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윤은 팰컨5를 무사히 착륙시키고 지상으로 내려섰다.
“이 대위. 진짜 끝내줬어. 연습때 보다 더 잘했어.”
“감사합니다. 김 대위님.”
지윤은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김 대위와 최 대위, 김 소령의 칭찬을 받아들였다. 자신도 만족스러웠다. 더 이상 잘할 수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비행이었다. 지윤은 이 모든 사람들의 칭찬 속에서도 단 한사람의 칭찬이 절실했다. 그가 해 주는 칭찬을 들어야 오늘의 성공적인 비행이 완성될 것 같았다. 지윤은 주변을 둘러보며 우혁을 찾기 시작했다. 제20전투비행단장인 이영훈 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가 보였다. 지윤의 눈길을 느꼈는지 우혁은 순간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윤은 보았다. 그의 눈빛에 담긴 그녀의 대한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을…….
지윤은 그에게 기쁨의 눈빛을 보낸 후 김 대위의 뒤를 따라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행사장의 한편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 조종사들이 모여 간단한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공군의 특수 비행 팀인 블랙이글스의 에어쇼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고 행사장의 입구에서 군악대가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윤은 사람들과 떨어진 한쪽 구석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름다운 에어쇼를 감상하고 있었다. 다섯 대의 A-37B가 일사불란한 고난도의 묘기를 선보이며 공군의 단결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날렵한 비행기체에 빨간색과 파란색의 물결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곡예비행을 수행하는 블랙이글스는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야함과 동시에 무엇보다 편대의 팀워크를 가장 중요시 여겼다. 단 한순간의 실수로 동료 전투기와 부딪쳐 폭발할 수도 있었고 곡예비행에서 빠질 수 없는 크로스 같은 고난도의 곡예를 선보일 때는 전투기와의 간격에 오차가 발생해도 비참한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특히 지금과 같이 바다나 들판 위가 아닌, 사람들이 가득 몰려 있는 행사장에서 전투기의 추락은 여러 명의 인명 피해를 낼 수도 있었다. 그만큼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것이 곡예비행이었다.
지윤은 하늘을 수놓은 에어쇼에 빠져 그녀의 옆으로 다가오는 우혁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훌륭했어.”
지윤은 옆에서 들려오는 우혁의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전 저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아니. 저들은 저들대로 넌 너대로 훌륭한 비행이었다.”
지윤은 그의 칭찬에 다시 얼굴 가득 웃음이 피어오르자 누가 볼까 두려워 얼른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성공적인 단독 비행 쇼를 한 소감이 어때?”
“글쎄요. 음…… 사실 비행 때는 별 생각 없이 비행에만 신경 썼는데 착륙하고 나서는 공군참모총장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공군참모총장?”
“네. 공군 최고 사령관이신 참모총장님이 인정하는 실력이면 여자 조종사도 여자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고 그냥 조종사로 불리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아서요.”
“참모총장님을 봤나?”
“아까 잠깐 멀리서 봤어요. 워낙 높으신 분들에 가려져서 얼굴도 제대로 못 봤지만.”
“훗. 참모총장님을 한번 만나 뵙고 싶은가?”
“제가 어떻게요? 그런 높으신 분이 저를 만나 주기나 하시겠어요?”
“글쎄. 아마 언젠가 기회가 올 것 같은데?”
지윤은 의미심장한 우혁의 말에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게 무슨……?”
“저기 준장님이 날 찾으시는군. 가봐야겠다.”
우혁은 급히 그녀의 손을 한 번 꼭 쥐고는 그대로 행사장으로 급히 걸음을 옮겼다. 지윤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자신의 손을 가만히 입술로 가져갔다.
다른 누구의 칭찬보다도 그의 칭찬이 기뻤다. 다른 누구의 보다도 그가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이 기뻤고, 가슴 가득 뿌듯함을 느꼈다.
이렇게 한 발 한 발 꿈을 향해 나아가나 보다. 처음엔 그저 전투 조종사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꿈이었다. 여자 전투조종사라는 타이틀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최초든 두 번째든 그런 것은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단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버텨내는 것만이 중요했다. 이젠 모두들 여자라는 수식어보다는 전투조종사 이지윤 대위로 인정해 주는 그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 목표를 향한 첫걸음이 오늘의 행사에서 이루어졌다. 그녀는 성공적으로 비행 쇼를 끝냈고 그들의 박수를 받아냈다. 이젠 그 누구도 여자가 전투기를 조종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윤은 그 사실이 무엇보다 기뻤다.
지윤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에어쇼도 끝나고 하늘에 남아 있는 것은 연한 연막탄의 잔해만이 다였지만 지윤은 그 잔해 속에서 자신이 비행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작은 목소리로 잘했다 칭찬해 주었다.
‘잘했어, 이지윤.’
***
김유영 대위는 기지 내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 자신이 탄 버스가 갑자기 급정거를 하자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슨 일인가?”
김 대위는 운전을 하고 있던 운전병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앞의 차가 무슨 사고가 난 것 같습니다.”
“뭐?”
이미 날이 많이 어두워져 숙소로 가는 길가에 보이는 군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버스만 해도 김 대위 혼자만 탑승하고 있었다.
“위치가 어디쯤인가?”
김 대위는 그대로 차에서 내려 운전병이 지목한 방향으로 뛰어갔다. 운전병의 말대로 길가의 난간이 부서져 있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심하게 손상된 군인 차량이 보였다. 그쪽을 한 번 힐끗본 김 대위는 곧바로 난간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짐작대로였다. 아래에 난간을 박고 떨어진 또 다른 차량 한 대가 보였다.
김 유영 대위는 다시 몸을 돌려 길위에 전복된 차량으로 달려갔다. 안을 살펴보던 김 대위는 운전석에 앉아 정신을 잃은 사람을 확인하고 운전석 문을 열어젖혔다.
“이병.”
“네. 대위님.”
김 대위는 바로 뒤로 따라온 운전병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