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ighter Pilot's Love RAW novel - chapter 20
2005년 7월 20일 13:58:08. 제20전투비행단 교육실.
교육실에는 F-15K 기종변경 조종사로 선발된 각 대대의 전투조종사들이 앉아 있었다. 올해 말 추가로 수입되는 F-15K 의 2개 편대 조직에 소속될 7명의 조종사들은 옆에 앉은 동료와 가벼운 농담을 하며 F-15K 이론을 강의할 교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뒷문이 열리며 마지막 남은 교육생 한명이 서둘러 뛰어 들어왔다.
“야! 김 대위. 넌 교육 첫날인 오늘도 지각이야?”
“야야. 말도 마. 처갓집 갔다가 어제 밤에 도착했다. 어찌나 차가 막히던지…….”
“처갓집이 어딘데?”
“통영.”
“헉! 부산에서도 더 들어가는 그 통영?”
“어.”
“멀긴 뭐네.”
“교관님 아직 안 왔지?”
“어…….”
김 대위의 질문에 박 대위가 대답하려는 찰나 다시 뒷문이 조용히 열렸다. 전방을 응시하고 있던 대원들 모두는 궁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기종변경 조종사는 모두 8명이고 그 8명 모두가 교육실에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 다시 뒷문으로 들어올 사람은 없는 상황이었다.
“!”
“필승.”
앉아 있던 모든 조종사들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교육실로 들어서는 정우혁 중령을 향해 거수경례를 붙였다.
“음. 모두 자리에 앉아.”
맨 뒷좌석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은 중령을 향해 8명의 조종사들이 의문의 눈빛을 던졌다.
“중령님. 지금은 F-15K 기종변경 이론 교육 시간입니다.”
방금 전 복도에서 인사를 나눴던 중령이 F-15K 교육실로 들어온 이유를 아는 김 대위가 놀리듯 물었다.
“안다.”
“그런데 중령님께서…….”
김 대위가 다시 질문을 하려는 순간, 앞문이 열렸다. 그리고 조용한 걸음으로 들어서는 여자를 바라보며 모두들 놀란 숨을 들이켰다.
“맙소사!”
“뭐야?”
“어…….”
조종사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놀라운 탄식을 내뱉는 사람,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머리만 긁적이는 사람…… 김 대위를 제외한 모든 조종사들이 놀라워하고 있었다.
김 대위는 앞에 서 있는 대위 계급의 여자를 머리끝에서부터 찬찬히 살펴보다 그녀의 배 부근에 서서는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둥글게 부풀어 오른 배의 실루엣이 남색 원피스 아래로 그대로 보이고 있는 모습을 실제로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요즘은 공군에서도 늘어나는 여자 공군들을 위해 따라 임신복이 지원되고 있었다.
“야. 저 정도면 애 낳을 때 된 거 아냐? 저 몸으로 무슨 교육?”
뒤쪽에서 들려오는 한 조종사의 목소리에 김 대위는 속으로 그 조종사에게 말없는 애도를 표했다. 정우혁 중령이 있는 자리에서 이지윤 대위에게 불손한 태도를 보인 저 조종사의 앞날이, 김 대위는 훤히 들여다보였다.
쯧쯧.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
다른 조종사들도 한마디씩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맨 뒤에 버티고 앉아 있는 정우혁 중령을 의식해서인지 교관을 향한 놀림을 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번 F-15K 이론 교육을 담당한 이지윤 대위입니다. 앞으로 2개월간 F-15K의 성공적인 기종변경을 위해 열심히 교육에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윤은 교육받을 조종사들을 둘러보다 맨 끝자리에 앉아 있는 우혁을 발견했다. 순간 지윤이 살짝 눈을 치켜뜨며 그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슬쩍 그녀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오며 이론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지윤 대위의 이론 수업을 통과하지 못하면 F-15K 실전 교육에는 참가할 수 없다. 아울러 이지윤 대위는 이론 테스트 결과와 수업 태도를 개개인별로 모두 작성해서 내게 보고하도록.”
할 말을 끝낸 우혁은 그녀에게 슬쩍 윙크를 해보이고 앞문을 열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뭐야. 이거 우리가 대위한테 교육을 받아야 되는 거야? 거기다가 대위한테 못 보이면 탈락이라는 얘기 아냐?”
그동안 정우혁 중령 때문에 조용히 있던 소령 한 명이 중령이 사라지자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게요…… 거기다 언제 애를 낳을지도 모르는데 2개월간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소령의 불만에 덩달아 불만을 터트리는 대위도 있었다.
“교관님으로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이지윤 교관님.”
김 대위가 좌석에서 술렁이는 목소리를 단숨에 잠재우며 커다란 목소리로 지윤에게 아는 체를 했다.
“네. 김 대위님. 반가워요.”
“하하하. 산달은 언제십니까?”
“2개월하고 좀 더 남았습니다.”
“정우혁 중령님 잘해 주시죠? 저번에 김 소령님이 한 번 뵈었었는데 중령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으신다더라고요. 늦었지만 두 분 사이에 2세가 생긴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김 대위의 마지막 말에 다른 대원들 모두가 입을 딱 벌리고 놀란 표정으로 지윤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실에 모인 거의 모든 조종사들이 다른 전투비행단에서 교육을 받으로 온 조종사들이고, 따라서 그들이 정우혁 중령과 지윤의 관계를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지윤은 김 대위의 표정에서, 그녀를 위해 그가 일부러 정우혁 중령을 운운하는 것을 알아챘다. 우혁이 오늘 일부러 여기 교육실에 나타났던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그녀를 바라보는 대원들의 눈빛은 달라졌고, 수업을 받으려는 태도 역시 달라지고 있었다.
이건 모두 우혁의 힘이긴 했지만 앞으로의 이론 교육이 수월해질 것을 생각한다면 딱히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네. 감사합니다. 사적인 이야기는 수업이 끝나면 다시 하기로 하죠. 그럼 지금부터 F-15K의 특징과 장점, 단점에 대해 교육하겠습니다…….”
이후의 교육 시간은 지윤에 대한 불만이나 불순한 태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지윤은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차가 세워져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려는지 주변의 공기가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배에 한손을 얹고 뒤뚱뒤뚱 걸음을 옮겼다. 공군에서 지급한 파란색 원피스는 가슴에서부터 잡힌 주름으로 풍성하게 무릎으로 떨어져 살짝 부는 바람에도 다리 아래로 시원함이 느껴졌다.
지윤이 주차장에 도착해 차가 있는 곳으로 향하자 우혁이 차에서 내려 그녀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끝났나?”
“네. 비행 없어요?”
“음.”
우혁은 대답하며 지윤이 들고 있는 가방을 받아 들고는, 그녀의 허리를 부축하며 익숙함 솜씨로 차로 데려가 차에 타도록 도왔다.
“별 문제 없었지?”
운전석에 앉으며 우혁이 묻자 그제야 교육실의 일이 떠오른 지윤이 그를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어요.”
“알아.”
“그런데요?”
“좀 더 쉬운 방법을 택한 것뿐이야.”
우혁이 차를 출발시키며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자 지윤이 살짝 웃음을 머금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점점 약해지고 있어요. 이러다 당신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되면 어떡해요?”
“그런 걱정을 왜 해?”
“난 항상 네 곁에 있을 텐데.”
아예 다른 모든 말을 차단시켜 버리는 우혁의 단정적인 말에 지윤은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들었다.
우혁은 그녀를 위해 차를 부드럽게 몰며 자신들의 집으로 향했다.
“다음 달에 어머니께서 와 계시면 어때?”
“어머님이요?”
“음. 너에게 어떨지 물어보라 하시던데…… 다음 달이면 임신 9개월이고 언제 아기가 나올지도 모르니 내 생각에도 그게 좋을 것 같다.”
“글쎄요. 어머님만 괜찮으시다면 전 좋은데…….”
그녀의 망설이는 대답에 우혁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왜?”
“어머님이 우리한테 와 계시면 아버님이 괜찮으실까요?”
“훗. 글쎄, 모르지. 어머니 생각만 언뜻 말씀하신 거니까 아버지 동의도 있어야겠지.”
지윤은 살짝 웃음을 머금는 우혁의 표정을 바라보며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버님이 원래 그렇게 어머님에게 애정표현이 많으신 거 아니죠?”
“훗. 애정표현? 그 무뚝뚝하신 분이?”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제가 봤을 때는 아버님이 어머님께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았어요.”
“그래. 많이 변하셨지. 하지만 이 정도 가지고는 아직 멀었어.”
“그게 무슨 말이예요?”
“20년을 넘게 아버지를 짝사랑해 오신 분이 어머니야. 그런데 겨우 몇 년 정도 어머니에게 애정을 보이시는 아버지가 어머니 성에 차시겠나?”
“풋. 그럼 어머님께서 지금 아버님께 복수하고 계신건가요?”
“아마도.”
지윤은 그러고 보니 짚이는 바가 있었다. 평소 어머님은 아버님을 깍듯하게 가장으로서 대우해 주고 존경했지만, 가끔 이렇게 한 번씩 자식들을 핑계로, 또는 나이가 드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이유로 아버님을 혼자 두고는 했다. 아마도 그 모든 것이 계산된 행동인 듯했다. 젊은 시절 많은 시간을 혼자 지내며 자식들을 길러낸 당신의 아버님에 대한 복수라고나 할까. 하지만 지윤은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아버님에 대한 변함없는 어머님의 사랑을…….
지윤은 부부란 게 무엇인지 아직까지 잘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을 살아내면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부부가 되고 싶은지는 알 것 같았다. 함께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나이 들어 서로 수고했다 칭찬해 주며, 살아온 시간의 익숙함으로 남을 시간을 편안한 동반자로 살 수 있는 그런 부부. 그런 부부가 되고 싶었다. 지금의 시부모님처럼…….
지윤은 옆자리에 앉아 운전하고 있는, 이젠 자신의 남편이 된 우혁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라면 가능할 것이다. 항상 그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사랑해 주는 그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자신이 원하는 그런 부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윤은 그와 자신의 집으로 가는 길을 차장너머로 바라보았다. 지윤은 자신이 부풀어 오른 배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이제 식구가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와 함께 소중한 가족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먼 훗날 그와 함께 어깨 두드릴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갈 것이다.
우혁과 지윤은 그렇게 햇살이 아름다운 날, 그들의 행복한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끝)
526첫줄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