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ortune-telling Princess RAW novel - Chapter (123)
‘아이 나이도 잘 모르던 인간에게 뭘 바라겠어.’
그렇다고 자신이 의사도 아니고,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
‘그래, 신경 끄자. 몽유병이 죽는 병도 아니잖아?’
그냥 밤에 좀 돌아다니는 게 뭔 대수라고.
“…….”
…젠장.
“어제 산책하러 나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원을 정처 없이 거닐던 아이의 공허한 모습이, 차가운 땅을 밟고 있던 아이의 맨발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저 까칠한 꼬맹이와 친해지는 건 영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일단 좀 가까워져야 이런저런 말이라도 붙여 볼 거 아닌가.
[규우?]연신 혀를 차자 킹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위로를 하듯 자신의 손등을 살짝 핥았다.
그 모습에 뒤에 서 있던 고용인들이 입을 급히 손으로 틀어막았다. 다이브 역시 스푼을 든 채 멍하니 그런 킹을 바라봤다.
“흐음.”
그 모습을 확인한 카밀라의 입가에 순간 묘한 미소가 걸렸다.
* * *
사각사각.
도서관 안에 펜촉이 움직이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커다란 도서관에 홀로 앉아 책을 보며 필기를 하고 있는 이는 바로 다이브였다.
벌써 한 시간째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조금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투욱.
“으허억!”
언제나처럼 그렇게 필기를 하며 책을 외우고 있던 다이브는 순간 자신의 발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흠칫했다.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아주 작은 생명체가 자신의 발 위에 올라와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굳어진 얼굴로, 잔뜩 두려운 눈빛으로 다이브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혹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쥐라도 올라와 있는 게 아닐까?
[규우.]“……!”
발밑을 본 다이브의 눈이 순식간에 동그래졌다. 작은 생명체가 자신의 발 위에 앉아 있는 건 맞았다.
정말 다행히도 쥐가 아니라 식당에서 봤던 바로 그 신수였다.
“킹?”
오늘 식당에서 카밀라가 신수를 부르던 걸 얼핏 들었던 아이는 바로 킹의 이름을 불렀다.
[규!]맞는다며 앞발로 자신의 발을 툭툭 치는 킹의 행동에 굳어 있던 아이의 얼굴이 스르륵 풀어졌다.
잠시 주변을 살핀 다이브는 손을 뻗어 킹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자신의 양손에 올라와 있는 새하얀 생명체에 아이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할짝.
“하……!”
킹이 순간 자신의 손을 핥자 아이는 저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터트리다 급히 입을 다물었다. 도서관에서는 늘 정숙해야 한다고 배웠으니까.
“너 왜 여기 있어?”
[규우?]아이의 물음에 킹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연신 갸웃거렸다. 다이브의 입꼬리가 다시 스르륵 올라갔다.
“킹?”
하지만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여기 있었네.”
카밀라였다. 그녀의 등장에 아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며 언제나와 같은 차가운 표정이 자리를 잡았다.
스윽.
아이는 아무런 말 없이 킹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행동과 달리 그 두 눈은 킹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이대로 킹을 보내는 것이 무척 아쉽다는 듯이.
[규우…….]자신을 정말 버리는 거냐는 듯 애처롭게 우는 킹의 모습에, 촉촉한 킹의 눈동자에 아이의 눈빛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신기하네.”
“…뭐가요?”
아이가 처음으로 카밀라를 보며 입을 열었다.
“킹이 이렇게 사람을 따르는 건 처음 봐.”
“원래… 사람을 안 따라요?”
“아버지와 나 말고는 전혀 안 따라. 으르렁거리기 바쁘지.”
그 말에 아이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킹을 바라봤다.
킹이 다시 아이의 손을 살짝 핥았다. 그러자 다이브의 표정이 저도 모르게 부드러워지고 만다.
‘그렇지.’
그런 아이를 보며 카밀라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눈빛으로 킹을 아주 열심히 칭찬했다.
조금 전 아이가 도서관에 있는 걸 본 카밀라는 킹에게 임무를 내렸다.
‘킹.’
[규!]‘가서 꼬셔.’
[규우우?]‘꼬시는 게 뭐냐고?’
[규우.]‘나한테 하듯이 하면 돼.’
[규규!]임무를 완벽히 완수했다며 고개를 빳빳이 드는 킹을 향해 카밀라는 잘했다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공부하는 중이었나 보네.”
그 말에 아이가 흠칫하더니 킹을 바닥에 빠르게 내려놓았다. 그러곤 급히 다시 자리로 가 앉더니 펜을 집어 들었다.
“좀 쉬지?”
“오늘 중으로 이거 다 외워야 해요.”
아이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카밀라가 슬쩍 킹의 엉덩이를 발로 밀었다. 그 뜻을 알아들은 킹이 총총 다시 아이에게 다가갔다.
툭툭.
[규우?]발을 톡톡 건드리며 울음소리를 내자 아이의 시선이 단박에 킹에게 다시 향했다.
고개를 들어 그런 아이와 눈을 맞춘 킹이 아예 아이의 발 위에 배를 깔고 누웠다.
“자, 잠시라면…….”
결국 아이는 다시 킹을 안아 들었다.
* * *
카밀라와 다이브는 도서관을 나와 잠시 산책에 나섰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킹을 보며 아이는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잘 웃네.’
아이가 너무 쉽게 마음을 열어서 좀 의외였다. 여전히 자신과 눈이 마주치면 멈칫멈칫하긴 하지만 전처럼 표정이 굳어지지는 않았다.
[다이브가 저리 밝게 웃는 건 처음 봐요!]어느새 따라붙은 샤루아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이가 웃는 모습이 좋은 듯 다이브가 웃을 때마다 그녀 역시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귀엽긴 하네요.”
[그죠, 그죠?]열 살치곤 참 어른스럽다고 여겼는데, 킹과 뛰어노는 지금의 모습은 딱 제 나이대의 아이로 보였다.
“어? 여기…….”
한참을 그렇게 정원을 뛰어놀던 아이가 순간 걸음을 멈췄다.
‘설마 기억하는 건가?’
아이가 주변을 연신 둘러보고 있는 곳은 바로 그 자리다. 샤루아와 처음 대화를 나누었던 곳.
딱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살피는 아이의 모습에 카밀라는 혹시나 했다. 아이가 간밤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왜? 여기에 뭐 있어?”
카밀라가 짐짓 모르는 척 묻자 아이가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아이의 고개가 위로 향했다.
“여기서 보는 별이 참 예쁘대요.”
“별?”
“저 나무에 달이 걸릴 때가 별이 제일 예쁘게 빛나는 시간이래요.”
아이는 의자에 앉아서 봤을 때 일직선에 놓여 있는 나무 한 그루를 가리켰다.
“그래서…….”
잠시 말을 멈춘 아이는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여기서 별 보는 걸 무척 좋아하셨대요.”
[다이브…….]그 말에 샤루아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니.]그녀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 여기서 일했던 시녀가 아이한테 지나가듯 해 준 말이에요. 제가 여길 좋아했다고.]아주 어릴 때였는데…….
샤루아는 새삼 애달픈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킹! 저쪽으로 가 보자!”
아이는 킹을 데리고 다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카밀라와 샤루아는 그런 아이의 뒤를 다시 조용히 따랐다.
* * *
“허억… 허억!”
정원을 나와 거처로 향하는 아이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숨이 가빠 왔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다이브, 그러다 넘어져.]샤루아가 그런 아이의 뒤를 따르며 연신 걱정 어린 말을 내뱉어 보지만 들릴 리가 만무한 일. 결국 아이는 자신의 거처에 도착할 때까지 속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벌컥!
“하아… 하아…….”
급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아이는 허리를 굽힌 채 가쁜 숨을 연신 토해 냈다.
한참 후에야 천천히 고개를 든 아이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 의자에 앉아 있는 유모 세빈느를 발견한 것이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아이의 눈빛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결국 아이의 고개가 다시 푹 숙여진다.
“30분이나 늦으셨네요.”
“그게…….”
“수업에 30분이나 늦으시다니.”
“…잘못했어.”
그제야 세빈느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이브에게 다가섰다.
“맞아요. 잘못하셨죠.”
그녀의 음성이 더욱 부드러워지고 조곤조곤해졌지만, 그와 반대로 아이의 눈빛은 눈에 띄게 흔들렸다.
“잘못하셨으면 벌을 받으셔야죠.”
[세빈느! 한 번만 봐줘!]샤루아가 그런 세빈느의 앞을 막아섰다.
[아이가 오랜만에 즐거워했어. 정말 밝게 웃었다고. 그러니 제발……!]아주 간절히 소리쳐 아이를 변호해 보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 목소리가 상대방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소매 걷어 올리세요.”
[세빈느!]그녀의 말에 아이는 힘없이 소매를 걷어 올렸다.
[제발… 제발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줘!]그런 아이의 팔에는 이미 상처가 가득했다. 오래되어 보이는 것도 있었고 최근에 생긴 듯한 것도 있었다.
상처를 보고 울먹이는 샤루아와 달리 유모 세빈느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들고 있던 얇은 회초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
휘익! 짜악!
날카로운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미 익숙한 일인 듯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는 이가 없었다.
짜악!
여린 아이의 살이 금세 붉게 부어올랐다. 그렇지만 세빈느의 매질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이어졌다.
[아가, 다이브…….]샤루아만이 더욱 구슬프게 흐느낄 뿐이었다.
“저도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도련님.”
회초리를 내려놓은 세빈느의 음성은 방금까지 그걸 휘두른 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너그러웠다.
“이게 다 도련님이 잘되기를 바라는 저의 충성 어린 마음이에요. 아시죠?”
“…응.”
“다음부터는 절대 늦으시면 안 됩니다.”
“알았어.”
“올라가시죠.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셔요.”
“응.”
“소매 내리시고.”
붉게 부어오른 팔을 감추듯 소매를 직접 내려 준 세빈느는 싱긋 웃으며 아이를 2층으로 올려 보냈다.
[세빈느, 정말 내 아들이 잘되라고 하는 거지?]“다 도련님을 위해서예요.”
[믿어, 널. 친구니까…….]“전 언제나 도련님 편이랍니다.”
[응. 넌 언제나 다이브의 편이야. 다… 다 우리 다이브를 위해서야.]샤루아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급히 닦아 내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 * *
“배후가 잡혔다는군.”
에스크라 공작의 부름에 카밀라는 그의 집무실을 찾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뜻밖의 소식을 들려줬다.
“저번에 절 공격한 이들의 배후요?”
“가브엘 후작이라던데. 누군지 아나?”
알지. 너무 잘 알아서 문제다.
“그가 절 죽이려 했다는 건가요?”
“그래.”
“헐.”
혹시 가짜 라니아를 만들었던, 그 이상한 조직이 자신을 죽이려 한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배후가 그자였다니!
카밀라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그의 성질을 좀 건드리긴 했지만 그게 죽임을 당해야 할 정도였나?
“죽었다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