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ortune-telling Princess RAW novel - Chapter (137)
“어서 오세요.”
창구로 다가서자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나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에스크라 공작과 알트온 백작을 알아본 그가 살짝 긴장하는 기색을 잠시 내비쳤지만 이내 다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금고를 열고 명의를 바꾸고 싶어요.”
“금고 열쇠를 보여 주시겠습니까?”
카밀라는 미리 챙겨 온 황금 열쇠를 그에게 건넸다.
개인 금고를 확인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이 열쇠다. 열쇠는 에스크라 공작이 잘 갖고 있었다.
“동행이 있으시군요. 함께 가시는 건가요?”
순간적으로 주변에 서 있던 직원들의 기운이 일제히 강해졌다. 상대가 마스터인 에스크라 공작과 대마법사인 알트온 백작임을 알면서도 그들은 경계의 뜻을 감추지 않았다.
“네.”
하지만 이어진 카밀라의 짧은 대답에 그 기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에스크라 공작과 알트온 백작은 이미 익숙한 일인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저쪽 마법진 위에 서 주십시오. 총 세 분이 이동합니다.”
카밀라와 다른 두 사람이 지정된 공간에 서자 직원이 열쇠를 벽에 뚫려 있는 구멍에 집어넣었다.
후우욱!
그러자 세 사람이 선 자리에 마법진이 발동하였고 순식간에 빛에 휩싸이며 어딘가로 이동했다.
밝은 빛에 잠시 눈을 감았던 카밀라는 곧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긴…….”
눈을 뜨자 낯선 공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다섯 평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공간이었는데 문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건 단 하나였다. 벽 한쪽에 붙어 있는 새하얀 판.
신기한 건 판 안에 마치 호수처럼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는 거다.
“이게…….”
“네, 거기에 암호를 적으시면 됩니다.”
알트온 백작의 말에 카밀라는 벽에 가까이 다가섰다.
“경보가 울리면 바로 구속인데, 일단 카밀라 님이 잡힌 뒤에 일을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아니. 저 아이가 끌려가는 꼴은 못 보지.”
“그럼 일단 직원들을 제압하고 일을 처리해야겠군요.”
“폐하께는 내가 윤허를 받도록 하지.”
…이 인간들이.
두 사람의 대화 소리에 카밀라는 뒤돌아 그들을 지그시 노려봤다. 알트온 백작이 환하게 웃으며 파이팅 포즈를 취한다.
짧은 한숨을 내쉰 카밀라는 다시 벽을 바라봤다.
우우웅-
그녀가 물결치고 있는 하얀 판에 손을 뻗자 빛이 모여들더니 새하얀 깃털 펜 하나가 생성됐다.
“그 펜으로 적으시면 됩니다.”
공중에 둥둥 떠 있는 펜을 잠시 신기하게 바라보던 카밀라는 천천히 펜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하얀 판 위에 암호를 적어 갔다.
325 12 04 07 50
샤루아가 알려 준 암호는 숫자였다.
[그분을 제일 처음 본 날이에요.]에스크라 공작을 처음 본 날.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그와 눈인사조차 주고받은 것도 아니란다. 정말 말 그대로 멀리서 그녀가 그를 처음 본 날.
제국력 325년 12월 4일 오후 7시 50분.
[꺄아! 제가 첫눈에 반해 버렸지 뭐예요.]‘…아, 예.’
화아악!
암호를 다 새겨 넣자 새하얀 판 안에서 일렁이던 물결이 더욱 거세졌다. 그러더니 순간 거기서 아주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도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뜨자 눈앞의 벽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바닥에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는 마법진이 생겨났다.
알 수 없는 도형으로 가득한 마법진을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빛이 참으로 신기하고 예뻤다.
“와……. 정말 암호를 푸셨네요.”
알트온 백작의 감탄사에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카밀라는 뒤를 돌아봤다.
“저 마법진 위에는 암호를 푼 자만이 설 수 있다.”
에스크라 공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카밀라는 천천히 마법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완전히 마법진 위에 올라서자 희미했던 빛이 빠르게 밝아지며 순식간에 그녀를 감쌌다.
잠시 후 그녀의 눈앞에 또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헐…….”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설마 저게 다 돈이야?”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직업이 있다. 바로… 돈 많은 백수.
“나 이제 돈 많은 백수 되는 거야?”
족히 백 평은 넘을 듯한 공간에 수많은 산이 만들어져 있었다.
금과 보석으로 이루어진 산이.
설마 이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귀족가의 여식이었으니 어느 정도의 재산이 쌓여 있을 줄은 알았지만, 저게 대체 다 얼마야?
카밀라는 한동안 황금산을 황홀한 눈빛으로 감상했다.
* * *
“이게 뭐예요, 누나?”
“금고 열쇠.”
“금고요?”
눈을 동그랗게 뜨는 다이브의 손에 황금 열쇠를 쥐여 줬다.
‘에스크라 공작가 못지않은 자산가였다니.’
샤루아가 남긴 금고를 확인하고 나온 카밀라는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알트온 백작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샤루아가, 그녀의 가문이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던 곳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제가 금고를 열겠다는 걸 그냥 내버려 뒀어요?’
‘그냥 안 두면?’
‘암호만 내놓으라고 하든가… 아니, 그게 아니고, 그 많은 재산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면 어째요!’
‘…넌 가끔 우리 가문을 아주 가난하게 보는 것 같아. 그 돈 없어도 지금껏 잘 살았다.’
‘그래도…….’
‘애초에 나는 암호도 모르고 관심도 없던 금고야. 암호를 알아낸 네가 주인이 되겠다는데 왜 말려야 하지?’
나만 속물인 거야? 나만 돈 좋아하는 거냐고!
에스크라 공작도 그렇고 알트온 백작 역시, 자신이 금고를 연 것에 딱히 아쉽거나 아까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도 뭐, 딱히 가질 생각은 없었거든.’
카밀라 역시 샤루아가 자신에게 준 선물이 금고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그걸 가질 생각이 없었다.
생각보다 큰 금액에 잠시 혹하긴 했지만 애초에 금고를 다이브에게 줄 계획으로 연 것이다.
“너희 어머니가 네게 남긴 거야.”
“어머니요?”
눈이 더욱 커다래지는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지금 암호는 내가 알려 줄 테니 나중에 가서 다시 설정해.”
다이브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눈만 연신 깜박였다.
[카밀라…….]반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샤루아는 감동과 아쉬움이 뒤섞인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저건 제가 카밀라에게 주는 선물인데.]그녀의 말에 카밀라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자신이 가질 게 아니었으니까.
[고마워요. 정말…….]환하게 웃는 샤루아를 보며 카밀라 역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놀랍습니다. 설마 진짜 금고까지 여실 줄은 몰랐네요.”
알트온 백작은 연신 감탄했다.
당사자인 카밀라 앞에서야 나름 덤덤한 척 했지만, 그녀가 금고의 암호를 단박에 풀어냈을 땐 탄성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진짜로 꿈에서 보신 걸까요?”
“그렇다잖아.”
“그런 걸 예지몽이라고 하나? 아닌가? 신의 계시?”
“신은 무슨.”
“왜요? 저쪽 신전에선 카밀라 님을 데려가고 싶어 난리라던데요.”
“하여튼 옛날부터 신전 것들은 다 마음에 안 들었어.”
“아마 그쪽도 공작님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을걸요?”
“시끄러워.”
작게 웃음을 터트린 알트온 백작이 다시 말을 이었다.
“에르쉬 님의 횡령을 점칠 때부터 알아봤지만……. 우리 아가씨, 정말 대단하시네요.”
“대단하긴 하지.”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에스크라 공작을 보며 알트온 백작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본인을 칭찬하는 말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 인간이 딸에 대한 작은 칭찬에는 기분이 좋은가 보다.
“참! 3차 주문서가 다 완성됐습니다.”
“…벌써?”
“벌써라니요? 꼼꼼하게 작성하라고 유독 강조하시는 바람에 생각보다 더 늦었는걸요.”
“다시 작성해.”
“예?”
“한 자 한 자 꼼꼼하게 확인해. 시간이 오래 걸려도 괜찮으니까 더 철저히 작성하라고.”
“벌써 수십 번을 확인한 거라니까요.”
“고작 수십 번? 더 검토해.”
“아니, 왜요?”
이건 또 뭔 신종 괴롭힘이랍니까?
알트온 백작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에스크라 공작은 물러설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돌아간다잖아.”
“뭐가… 아!”
알트온 백작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바로 돌아가는 건 아니지?’
‘3차 주문서까진 확인하고 돌아가려고요.’
‘다행이네. 새로 생긴 동생이 금방 떠난다고 했으면 엄청 섭섭했을 것 같거든.’
전에 카밀라와 제이너가 나누던 대화가 떠오른 것이다. 3차 주문서가 완성되면 돌아가겠다고 했던 그녀의 말이.
‘설마 그래서?’
알트온 백작은 잠시 어이없는 눈빛으로 에스크라 공작을 바라봤다.
“최대한 늦게.”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내 알트온 백작 역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더니 3차 주문서를 찌익- 찢었다.
“저만 믿으세요.”
* * *
톡톡.
“으음.”
톡톡톡.
“흐으음.”
톡톡톡톡.
“으음… 흐음…….”
“그냥 먼저 연락하시죠?”
“뭐가?”
“그렇게 통신 구슬만 보지 말고 먼저 연락하시라고요.”
아까부터 통신 구슬이 놓여 있는 탁자를 계속 손가락으로 톡톡 치고 있는 카밀라를 보다 못한 도르만이 한마디 했다.
“괜히 방해하고 싶지 않다니까.”
카밀라는 그제야 통신 구슬을 쳐다보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집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사실에 무의식중에 구슬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넌 가끔 보면 참 쓸데없는 부분에서 소심해지더라.]옆에 있던 제노 역시 한마디를 거든다. 매사에 감탄이 나올 정도로 행동에 거침이 없고 일 해결도 빠른 녀석이 가끔 엉뚱한 부분에서 주춤할 때가 있었다.
“제가 뭘요? 전 그저 남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가족이 남이냐?
제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본인은 정말 모르는 건가? 그 민폐라는 단어를 유독 가족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하는 자기의 모습을?
기본적으로 남에게 도와 달라는 소리를 잘하지 않는 녀석이지만, 가족에게는 더더욱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