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ortune-telling Princess RAW novel - Chapter (138)
지금도 그렇다. 연락 한 번 먼저 하는 게 뭐 큰일이라고…….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제이너였다.
“시간 괜찮아?”
“왜? 무슨 일 있어?”
“오랜만에 시장이 열렸다는데, 같이 나가 보는 건 어떨까 해서.”
“시장?”
“저번에 축제 구경도 제대로 못 했잖아.”
“…그게 누구 때문이었더라?”
“그래서 내가 맛있는 식당에라도 데려갈까 하는데, 어때?”
잠시 고민하던 카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이러고 있어 봐야 계속 통신 구슬만 신경 쓸 것 같고, 저번에 못다 한 거리 구경이나 나가는 게 나을 듯했다.
“좋아.”
카밀라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1차로 주문했던 물건들이 이미 들어온 건 알지?”
“어.”
에스크라 공작에게 직접 들었다.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물건이 들어왔다고. 빠른 처리에 에스크라 공작도 매우 만족하는 눈치였다.
‘다른 두 공작가의 도움을 받을 거라더니.’
이쪽 상황이 급하다고 했더니 소르펠 공작 역시 최대한 납품 일을 앞당겨 보겠다고 했었고 다른 두 공작가의 도움도 받을 거라고 했다.
확실히 시장에 나와 보니 새로운 물건들을 사고파는 이들이 무척 많았다. 얇은 옷감부터 계절에 맞는 장신구까지.
“3차 주문서만 확인하면 정말 돌아갈 거야?”
“그래야지.”
“흐음.”
제이너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섭섭할 것 같아서.”
“누가? 네가?”
“처음으로 생긴 여동생이 떠난다는데 당연히 섭섭해야 하는 거 아냐?”
뭐, 장난감 하나 없어지는 아쉬움? 그 정도의 섭섭함인가?
이미 그가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는 카밀라는 실소를 흘렀다.
투욱!
“조심.”
그때 누군가가 급히 뛰어가다 카밀라와 부딪쳤다. 비틀거리는 그녀의 어깨를 제이너가 빠르게 감쌌다.
“아! 죄송합니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남자가 카밀라를 향해 급히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뭔가 다급한 일이 있는 듯 남자는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내뱉으며 급히 그 자리를 떠나갔다.
“기사인가?”
살짝 부딪쳤을 뿐인데 비틀거릴 정도로 힘이 강했다.
“……?”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카밀라는 의아한 눈빛으로 제이너를 바라봤다. 그가 여전히 멀어져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아는 사람이야?”
“…친구.”
“친구? 그런데 왜 아는 척 안 했어?”
저 사람도 딱히 제이너를 알아보는 것 같지 않았는데? 급해 보이더니, 얼굴을 제대로 못 본 건가?
“첫 번째 삶에서 사귄 친구지.”
“아…….”
그제야 카밀라는 무슨 상황인지 알았다.
“많이 친했나 봐?”
저놈의 성격에 그냥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있을 텐데, 저리 아련히 쳐다보는 걸 보면 말이다.
“친했지. 전장에서 등을 맡길 정도로.”
“그런데 왜…….”
아무리 전의 삶이라지만 그렇게 친했다면서 지금은 왜 아무 사이도 아니지? 보통은 친했던 이를 다시 찾지 않나?
“의미 없잖아.”
제이너의 입가의 미소가 짙어졌다.
“친해져 봐야 죽으면 끝인걸.”
“…….”
“두 번째 삶까지는 저 녀석과 아주 친했지. 하지만 세 번째가 되니 허탈하더군.”
‘마이안!’
‘누구? 날 알아?’
‘…….’
“죽으면 또 나 혼자만 기억해야 하는데, 쓸데없는 짓이잖아.”
빙긋 웃는 그를 보며 카밀라는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그가 왜 그토록 사람들을 장난감 보듯, 물건 보듯 하는지 조금은 그 이유를 알 듯했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매번 의미가 없어지니…….
“외로웠겠네.”
“…뭐?”
“쓸쓸했겠다고.”
카밀라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의 세상은 뭐가 이리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놈들이 많은지.
저 또한 이시아로 살 때 사람과의 관계를 절대 깊게 갖지 않았다.
깊어지면 상대가 먼저 마음의 벽을 쌓는다는 사실을 잘 알았으니까. 그래서 먼저 척을 두었고 거리를 벌렸었다.
‘그게 가끔 사람을 미치도록 외롭게 만들거든.’
세상에 홀로 동떨어져 있다는 기분, 그게 썩 유쾌하지는 않으니까.
“저쪽으로 가 보자.”
하지만 그녀는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멈춰야만 했다. 동행자의 기척이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보니 제이너가 조금은 멍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뭐 해? 안 가?”
그제야 그가 표정을 풀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방해하고 싶네.”
“뭘?”
“주문서.”
“갑자기 뭔 소리야?”
뜬금없는 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지만 그는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시장을 돌아다녔다.
“어?!”
얼마 후 카밀라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게 있었다.
“왜? 뭐 마음에 드는 거라도 있어?”
“향기…….”
“향기?”
어디선가 풍겨 오는 아주 익숙한 향에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이 세계로 넘어와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 향.
제이너의 물음에도 카밀라는 향이 흘러나오는 가게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작은 소품들을 파는 가게였다.
그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아주머니, 혹시 여기서 커피를 파나요?”
“커피요?”
카밀라가 이끌린 향은 바로 커피, 원두 특유의 고소하면서도 향긋한 향이었다.
“지금 이 냄새요.”
“아, 저 검은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주인아주머니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주자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검은 액체가 보였다.
‘커피다!’
색이 무척 짙긴 했지만 저건 분명 커피였다. 이곳엔 커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얼마나 속이 쓰렸는지!
예상치 못한 만남에 카밀라는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저 방향제는 파는 게 아닌데…….”
“방향제요?”
“네. 제가 좋아해서 가끔 저렇게 향을 피워요.”
“마시는 게 아니고요?”
“마셔요? 저걸요?”
주인아주머니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저거 엄청 써요. 향이 좋다고 맛이 좋진 않아요. 절대 마시면 안 돼요.”
“아…….”
확실히 마시려고 끓인 건 아닌 듯 분쇄된 원두가 여과지도 없이 그대로 뜨거운 물에 담겨 있었다.
아주머니 말대로 그냥 향을 즐기기 위해 물을 부어 놓은 듯했다.
“원두… 아니, 저 콩 저도 구할 수 있을까요?”
카밀라의 물음에 아주머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뒤에 서 있던 제이너 역시 피식 웃는다.
“아가씨, 그라시아 사람이 아니군요.”
“어떻게 아셨어요?”
“검은콩을 모르니까요.”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제이너가 설명을 해 줬다.
“그라시아에선 아주 흔한 열매야. 먹지는 않지만… 나무가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 가구 재료로 많이 쓰이지.”
“가구?”
내가 아는 나무가 아닌가? 이런 추운 겨울에선 잘 자라지 못하는 걸로 아는데? 하지만 분명히 커피 향인데.
“그럼 열매는 다 버려?”
“그렇지.”
“저처럼 볶아서 방향제로 쓰는 이들도 가끔 있죠.”
두 사람의 말에 카밀라의 입꼬리가 점점 위로 올라갔다.
“그럼 내가 저걸 구매하려고 한다면 거저 가져갈 수 있겠네?”
“구매한다고? 그걸 가져다 뭐 하려고?”
뭐 하긴? 먹으려고!
저 쓴물이 한 번 맛 들이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거 아니겠어.
‘라일라, 나 새 메뉴 들고 간다!’
머릿속에 해야 할 일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분쇄기도 만들어야 하고 로스팅 기계도 제작해야겠지?
화아악!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카밀라가 서 있는 주변에서 빛이 흘러나오더니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흠칫하는 카밀라와 달리 제이너는 그 빛의 주인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는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카밀라 님!”
알트온 백작이었다.
“카이스 님이 찾으십니다!”
평소와 달리 다급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뭔가 일이 생겼음을 짐작한 카밀라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 * *
“와…….”
“너도 느꼈지?”
“마나가 완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공간에 들어선 이들의 입에서 연신 감탄이 흘러나왔다.
온몸으로 밀려드는 깨끗한 마나를 느끼며 다들 벌어진 입을 쉬이 다물지 못했다.
“여기가 바로 수호의 탑이다.”
넋을 놓고 주변을 살피는 이들의 가장 앞에 서서 라비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오래전, 대마법사 아미알드 님께서 만드신 곳이지.”
마탑에 신입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그들을 데리고 이곳, 수호의 탑을 방문하는 거였다.
이번 그 인솔자로 선출된 이가 바로 라비였다. 그의 스승인 부수장 카도르가 반강제적으로 맡긴 일이지만 라비는 별말 없이 그의 명에 따랐다.
방구석에 처박혀 궁상떠는 짓 좀 그만하라는 그의 뜻을 받아들인 거다.
“원리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곳에 퍼져 있는 마나는 농도가 짙고 그 어떤 곳보다 맑아 마법사들의 수련에 아주 큰 도움이 되지.”
그래서 마탑에 소속된 이들 중 주기적으로 이곳에 들어와 수련하는 자들이 많았다.
“마나의 근원지라고 불리는 이곳은 마탑에 소속된 이들에게만 출입이 허용되고 있다.”
라비의 그 말에 신입들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 차올랐다. 자신들이 그 마탑에 소속되었다는 것에 새삼 뿌듯한 것이다.
“선생님!”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선배님이라고 불러.”
이번 마탑에 들어온 이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지만, 실력은 가장 좋았다. 타고난 마나의 크기도 엄청났고, 머리도 뛰어났다.
“오늘부터 당장 여기서 수련해도 돼요?”
“아니. 신입은 한동안 주어진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칫.”
여자아이는 바로 입을 삐죽거렸다. 다른 이들의 시선 따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선배님, 그러면 저쪽으로는 가 봐도 돼요?”
하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방실방실 웃으며 또 다른 요구를 해 온다. 순간 묘한 기분이 든 라비가 짧게 허락의 말을 내뱉었다.
“그래.”
“와!”
여자아이는 바로 도도도- 달려 나갔다.
‘누굴 똑 닮았네.’
원하는 게 있을 땐 여우처럼 표정부터 달라지는 것이 그 녀석을 똑 닮았다. 카밀라가 어려지면 딱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어릴 땐 말도 제대로 못 하던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어릴 때의 모습을 전혀 떠올릴 수가 없다.
“라비 선배님! 저쪽에는 뭐가 있어요?”
“거긴 개인 수련실로…….”
콰아앙!
걸음을 옮기며 대답하던 그 순간,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앙! 콰아아아앙!
“꺄아아악!”
“으아악! 뭐, 뭐야?”
폭발음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후두둑!
“……!”
“꺄아악!”
곧 천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