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ortune-telling Princess RAW novel - Chapter (142)
“흐읍!”
“으……!”
그와 눈이 마주친 두 여학생은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그러더니 자신들도 모르게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차갑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온몸을 헤집는 느낌에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
아르시안은 입술을 짓씹었다. 이 시간이면 아카데미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 저들이 저런 반응을 하는 이유를 아르시안도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겁을 먹은 것이다.
흑마법을 이용한 살인 사건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세프라 공작은 직접 이번 일을 처리하려 했지만, 가문의 원로들이 아르시안의 능력을 보고 싶어 했다.
그들의 강경한 주장에 결국 아르시안이 이번 일에 직접 나서게 되었고 방금 그 일을 모두 해결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제길.”
살인을 저지른 흑마법사들은 모두 처단하였지만, 그 과정이 예상대로 순탄치 않았다.
무구한 자들을 흑마법을 쓰는 도구로 이용하는 바람에 수많은 이들의 피를 손에 묻혀야만 했다.
“하아.”
단 한 명도 구할 수가 없었다. 이미 영혼에 깊게 각인된 흑마법을 지울 방법이 전혀 없었으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죽음으로 고통을 덜어 주는 것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번 일의 주범인 흑마법사들을 다 처리한 후에도 기분이 너무도 더러웠다.
살기와 오러가 마구 뒤섞여 쉽게 잠재워지지 않았다. 이렇게 통제가 되지 않은 적은 처음이었다.
일을 모두 마쳤음에도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유 역시 이 기운 때문이다. 혹여 리오가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두려움에 떨지도 몰랐으니까.
“꺄아악!”
“아파… 아파요!”
“아아악!”
“사, 살려……!”
아직도 그들의 비명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사람들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면서 정신은 그대로 남겨 놓은 것이다.
자기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에 사람들은 두려워했고 입으로는 연신 자신을 향해 살려 달라 외쳤다.
“빌어먹을.”
아르시안은 습관처럼 걸음을 옮겨 한 곳으로 향했다.
정령의 숲. 언젠가부터 그가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인적이 없는 호수 근처에 도착한 그는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누웠다.
바닥에 누운 그의 입에서 다시 거친 욕설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손에 죽어 간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 기분을 다운시켰다. 그럴수록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이 더욱 진득해지며 주변을 빠르게 잠식해 갔다.
어떻게든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을 청해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바스락.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선뜻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그는 순간 들려오는 인기척에 저도 모르게 짙은 살기를 다시 훅 내뿜었다.
짜증 어린 마음으로 몸을 일으킨 그는 순간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앞에 너무도 익숙한 이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카밀라.”
놀란 눈빛을 한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
무심코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서던 그의 몸이 멈칫 굳어졌다. 자신의 살기 어린 기운이 일렁거리는 게 여전히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혹여 그녀가 다칠까, 아르시안은 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아.’
너 또 무슨 일이니?
그 모습을 본 카밀라는 긴 한숨을 속으로 내쉬었다. 온몸을 잠식해 오는 한기를 빠르게 털어 내기 위해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는 조금 전 아카데미에 도착한 후 바로 아르시안이 있는 교실을 찾았다.
그라시아 제국에 있을 때 누구보다 자신에게 많은 신경을 써 준 이가 그였으니까. 자신이 돌아온 사실을 제일 먼저 그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하지만 교실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 와 본 정령의 숲에서 다행히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선뜻 그에게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오싹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기 때문이다. 그게 살기라는 걸 카밀라도 잘 알고 있었다.
“아르시안.”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그를 카밀라가 불렀다.
“어디 가?”
어느새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여전히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그의 기운이 주변에 진득하게 깔려 있었지만, 카밀라는 한 걸음 더 그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몇 번 숨을 고른 그녀의 몸에선 잔떨림조차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는 아니까.’
그가, 아르시안이 자신을 다치게 할 이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나 왔어.”
오히려 그가 왜 이리 날카로워져 있는 건지 그 이유가 더 궁금했다. 자신이 없는 사이 그에게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카밀라의 걱정 어린 시선과 마주한 그의 눈빛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카밀라를 보며 그의 입에서 긴 숨이 토해졌다.
스륵.
가까이 다가온 그녀를 끌어안은 그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가 이런 자신을 보고도 도망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그녀의 온기에, 체향에 더러웠던 기분이 점점 사라져 갔다.
그의 행동에 잠시 멈칫하던 카밀라는 거친 숨을 연신 토해 내는 아르시안의 등을 토닥토닥 다독였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그의 날카로웠던 기운이 빠르게 사라지는 걸 알았지만 카밀라는 그를 달래던 손길을 그 후로도 오랫동안 거두지 않았다.
* * *
“와… 진짜 너무하네.”
“그러게요.”
“오전 장사는 오늘도 망한 거지?”
“환장하겠다!”
출근한 직원들의 입에서 연신 탄식 어린 말들이 쏟아졌다. 가게 앞이 아주 난장판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며칠째야!”
가게 앞에 온갖 오물이 버려져 있었다. 동네 쓰레기가 모두 모여 있는 거라 해도 믿을 정도다.
벽과 유리창 역시 멀쩡하지 않았다. 붉은 물감으로 입에 담기도 더러운 욕설이 사방에 잔뜩 적혀 있었다.
스슥!
“점장님…….”
제일 먼저 출근한 라일라는 이미 물걸레를 들고 열심히 붉은 물감을 지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점원들도 투덜거림을 멈추고 서둘러 청소 도구를 들고 와 가게 앞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망할 것들!”
“내 말이!”
하지만 다시 터져 나오는 원망과 욕설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저는 경비병들이 더 짜증 나요.”
“저도요!”
“증거가 없다고 처벌을 못 한다니!”
“범인이 누군지 너무도 확실한데 말이야.”
“심증만 가지고 처벌하기 힘들다잖아.”
“깡패들이 가게에 와 행패 부릴 때가 더 나은 거 같지 않냐? 이러다 가게가 쓰레기통이 될 지경이야.”
“음식 가게에 이딴 짓을 하다니!”
“천벌받을 것들!”
전에 가게에 와 행패를 부리던 이들은 아르시안에게 호되게 당한 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안심했던 것도 잠시, 며칠 지나지 않아 가게 앞에 이렇게 쓰레기를 투척해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젠 다른 직원들도 다 안다. 이 모든 게 저쪽 상가 입구의 가장 큰 디저트 가게인 도랄드에서 꾸민 짓이라는 걸!
하지만 도랄드 가게에서 자기들이 한 짓이 아니라며 딱 잡아떼는 상황이라 처벌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참다못해 가게 안에서 범인이 나타날 때까지 직원들이 돌아가며 잠복도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런 날은 또 어찌 귀신같이 알고 아무런 짓도 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우리도 똑같이 밤에 찾아가서 오물이라도 왕창 던져 주고 올까요?”
“난 찬성!”
“여기 쓰레기 그대로 모아 놔 봐. 내가 오늘 밤에 가서 던져 주고 온다!”
“나도 같이 가!”
청소를 하는 점원들의 입에서 으득으득 이 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아침 이 짓을 하고 있자니 열불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똑같이 복수라도 해 줘야 속이 좀 풀릴 것 같았다.
“그래도 범죄는 안 돼요.”
계속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라일라가 그런 직원들을 만류했다.
하지만 유리창을 박박 닦고 있던 라일라 역시 분한 건 마찬가지인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화는 나지만 똑같은 짓을 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이게 다 뭐야?”
그 순간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아!”
“사, 사장님!”
라일라를 비롯해 직원들 모두 급히 고개를 들었다. 어이없는 눈빛으로 붉게 칠해져 있는 벽을 바라보고 있는 이.
“우리 가게 인테리어가 갑자기 확 바뀌었네?”
카밀라의 등장에 라일라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하지만 곧 그녀의 눈시울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카… 카밀라!”
방금까지 씩씩하게 청소를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녀는 울먹이며 카밀라에게 바로 달려갔다.
‘쯧.’
자신에게 와락 안겨 오는 라일라를 보며 카밀라는 속으로 연신 혀를 찼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녀가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다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에 왜 안 온 건가 했더니.’
곧 있으면 수업이 시작될 시간인데도 라일라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후 그녀가 요즘 계속 수업을 빠지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카밀라는 바로 교실을 나왔다. 라일라에게 뭔가 일이 생겼음을 짐작하고 카페로 온 것이다.
“나 왔어.”
“흐윽!”
카밀라의 인사에 결국 라일라가 소리 내어 울음을 터트렸다.
“고생했어.”
“으… 으… 으아앙!”
그 말이 기폭제가 된 듯 그녀가 더욱 서럽게 울어 댔다. 그런 라일라의 머리를 카밀라는 가볍게 쓰다듬으며 주변을 훑었다.
‘일단 이게 뭔 상황인지 좀 알아볼까?’
누가 자신의 가게를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카밀라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