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ortune-telling Princess RAW novel - Chapter (185)
“…제가요?”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카밀라가 페트로를 쫓아다니기 전에 마음을 주었던 사람이 분명 아비헬 황자였다.
‘완전히 까먹고 있었네.’
그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던지라 기억에서 완벽히 지우고 있었다. 굳이 떠올리고 싶은 기억도 아니었고.
아주 단호히 싫다는 의사를 표했던 아비헬 황자의 태도에 카밀라는 바로 마음을 접었다.
‘그 녀석이 또 은근히 소심하잖아.’
상처받는 건 또 무척 무서워해 자기 싫다는 사람을 계속 좋아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페트로, 그 인간이 더 싫었던 거다.
‘마음을 줄 생각이 없으면 그런 친절도 베풀지 말 것이지.’
상대의 마음을 뻔히 알면서도 꾸준히 여지를 주는 건 기만 아닌가?
차라리 대놓고 싫다고 말해 준 아비헬 황자가 더 나았다.
“그래서 지금 그거 확인하러 오신 거예요?”
에드센 황태자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 특유의 웃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적이라 생각되는 이들에게 늘 지어 주는 미소였으니까.
“난 내게 등 돌리는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알죠. 너무 잘 알죠.
자기를 배신한 이들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
용서하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지만 뒤에선 아주 개박살을 내놓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아서 문제다.
‘그런데 애초에 난 네 사람도 아니잖아!’
억울하다! 돌릴 등도 없거늘!
하지만 그의 싸한 분위기에 카밀라는 그저 어색한 미소만 연신 흘려야 했다.
스윽.
그때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아르시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자기 어디 가는 건가 싶어 빤히 바라보자 그가 나직한 음성으로 묻는다.
“그 인간, 아직 소르펠 저택에 있나?”
“그 인간? 누구?”
“너희 집에 빌붙어 있는 놈.”
“제이너? 아마 집에 있을걸? 왜?”
“의뢰 좀 하게.”
“의……!”
자, 잠깐! 잠깐만! 의뢰라니?
“무, 무슨 의뢰?!”
너 제이너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었던 거야? 언제? 어떻게?
아니, 그보다 그 인간에게 무슨 의뢰를 하겠다는 건데? 암살 집단 칸의 수장에게 할 의뢰라면……?!
“집에 있단 말이지?”
“아르시안! 기다려!”
대체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 * *
“이번에 발견된 마력석은 아주 고가에 내놓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더군.”
“품질이 아주 좋긴 하죠.”
“개인적으로는 우리 가문에서 다 구입하고 싶지만 그건 욕심이겠지.”
“채굴량이 일정 수준으로 오르기 전까진 우선권을 드릴 생각이에요. 다만 그중에서도 최상급은 경매에 붙일 생각이구요.”
“좋은 생각이야.”
카밀라가 건네는 서류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세프라 공작은 잠시 후 그것을 툭 내려놓았다.
“하나가 더 늘었군.”
세프라 공작의 시선이 카밀라 옆에 서 있는 사제 귀신 아레나에게 향했다. 평소 카밀라 곁을 맴돌던 존재들과 형태나 기운이 달랐다.
[진짜네? 이 집 인간들은 정말 유령을 보는 거야?] [말했잖아. 이 집에선 행동거지 조심해야 한다고.]신기해하는 그녀에게 제노가 다시 한번 주의를 줬다.
전에 함부로 집 안을 돌아다니다 아르시안에게 걸려 그대로 소멸될 뻔했다. 카밀라가 마침 와 줘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정말 소멸이었다.
[감히 누가 날 건드려?] [그래, 그래. 너 잘났지.]제노의 심드렁한 동조에 아레나가 눈을 치켜떴지만 역시나 오늘도 쿵짝이 잘 맞는 두 사람… 아니, 두 귀신이다.
“요즘 주변이 시끄럽던데.”
아레나가 딱히 카밀라에게 해가 될 기운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을 내린 세프라 공작이 바로 관심을 끄고 다른 화제를 꺼내 들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조용히 지내고 싶은데 사람들이 절 가만두지를 않네요. 제가 너무 잘나서 그런 걸까요?”
“아마도.”
“…….”
…웃자고 한 얘기인데, 그리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시면 제가 좀 민망한데요.
카밀라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드센 황태자에게서 쟈비엘라 황비가 자신과 아비헬 황자의 혼사를 추진한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 내내 머리가 아팠다.
에드센이 소식을 듣고 찾아올 정도면 소르펠 공작의 귀에도 분명 그 얘기가 들어갔을 테니까.
집안이 또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과 달리 그 후로도 며칠 동안 무척 조용했다.
소르펠 공작도 그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길래, 결국 카밀라가 먼저 아비헬 황자에 대해 슬쩍 운을 뗐다.
‘며칠 전에 에드센 전하께서 찾아오셨어요.’
‘전하께서? 무슨 일로?’
‘아비헬 황자 일로…….’
‘아아.’
역시나 이미 들은 얘기가 있었던 듯 소르펠 공작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은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개가 짖는다고 사람이 반응을 해 주면 어찌 되는지 아니?’
‘네?’
‘오히려 더 짖는 법이란다.’
‘…….’
‘말 같은 소리를 해야 반응이라도 해 주지. 어디 정치 싸움에 감히 내 딸을. 넌 아무 신경 쓸 필요 없으니 걱정 말거라. 혹시 아비헬 전하께 마음이라도…….’
‘아뇨!’
뭐, 그렇게 됐다.
황실 사람을 개로 취급하는 소르펠 공작을 보며 그저 허허 어색한 웃음만 흘려야 했다.
“상대할 가치가 없을 땐 상대를 하지 않으면 되는 거다.”
“…무척 간단하네요.”
“간단한 일이지.”
세프라 공작도 어떤 상황인지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무시하라는 충고를 해 준다.
사실 아비헬 황자의 계산적인 호의야 별 신경이 쓰이지 않는데, 문제는 그 뒤에 있는 두 사람이다.
페이블러 황제와 쟈비엘라 황비. 그들의 의도가 대체 무엇인지 파악이 되지 않아 머리가 아팠다.
“공작님.”
“아버님이라고 불러라.”
“네?”
“그래, 뭐가 궁금하지?”
…방금 뭔가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신수는 언제부터 궁에 출입 금지가 된 거예요?”
페이블러 황제를 보는 순간 제일 먼저 들었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신수를 소유하고 있는 세 공작가의 가주들.
그들은 영혼이 수도 없이 붙어 있는 페이블러 황제의 상태를 그동안 단 한 번도 이상하게 여긴 적이 없는 걸까?
“아주 오래됐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수호의 탑이 생겼을 때쯤이었다고 들은 기억이 나는군.”
“굉장히 오래전이네요.”
“그렇지. 신수 하나가 수백, 수천의 군사와 맞먹는 힘을 갖고 있으니 궁에서 불러내는 것만으로도 반역으로 여겨졌다던가. 여하튼 그런 이유였을 거다.”
그렇다면 이해가 되었다.
황제 앞에서 신수를 불러내지 못하니 사특한 존재에 이를 드러내는 신수들이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헤르셀 가주 할아버지도 궁에서 독살을 당했던 거겠지.’
신수가 딱 붙어 있었다면 그리 쉽게 당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그 일도 좀 의심스럽지 않나?’
이미 그때부터 페이블러 황제가 그놈이었다는 거잖아. 혹시 헤르셀 가주를 죽인 것도 그놈 아냐?
“황제 폐하께 죽은 이들이 많이 붙어 있는 거, 알고 계시죠?”
카밀라가 가장 의아하게 여긴 건 세프라 공작이었다.
다른 가주들이야 신수가 없으면 죽은 자들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니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세프라 공작은 아니지 않은가.
죽은 자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존재의 유무 정도는 충분히 인지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지금껏 세프라 가주 중 그 누구도 페이블러 황제의 곁에 붙어 있는 죽은 자들을 의심해 보지 않았다는 게 이상했다.
“제법 수가 많긴 하지.”
“역시 보셨군요.”
“모를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왜 그냥 넘어간 걸까?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못한 건가?
한둘도 아니고 그렇게나 많은데?
“황제 자리가 마냥 편한 자리가 아니지.”
“네?”
“역대 황제들 모두 적이 많았단다. 현 황제 폐하 또한 그 자리를 지키며 여러 전쟁을 치르셨던 분이고.”
“아…….”
짧은 설명이었지만 카밀라는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다른 이도 아닌 제국의 황제다. 그를 원망하고 증오하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그 원한에 의해 죽은 이들이 따라다녀도 하나 이상할 게 없다고 여긴 것이다.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지?”
“그냥…….”
솔직히 지금 처한 상황을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상대가 제국을 이끄는 황제라는 것도 조심스럽지만 무엇보다 입을 여는 순간 저들과 정말 직접적으로 부딪치게 될 것 같아서.
‘무서워.’
그래, 무섭다. 솔직히 너무 두렵다.
‘내가 왜 저들과 직접 부딪쳐야 하는 건데?’
사람의 목숨도 장난감처럼 쉽게 여기며 뺏는 저들과 내가 맞서야 한다고?
‘그 성물도 그래.’
당장 그 위험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론화를 시키면? 정말 그 상황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른 척 잡아뗄 수 없게 되는데?
‘마치 태풍의 눈 위에 서 있는 것 같아.’
나름 고요하고 조용하지만 절대 안전하지는 않은, 그렇다고 마음대로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저번에 폐하를 뵈니 죽은 이들이 무척 많이 따라다녀서요.”
결국 오늘도 어물쩍 말을 돌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그들이 제 주변 이들을 건드린다면 분명 또 가만있지 못할 것이다. 결국은 또 부딪치게 되겠지.
하지만 최대한 그 시간을 미루고 싶다.
투욱.
“받아라.”
그 순간 카밀라 앞에 크고 작은 상자들이 수북하게 놓였다. 처음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한쪽에 쌓여 있던 것들이었다.
“이게 다 뭐예요?”
나에게 주려고 미리 준비해 두셨던 건가?
“약초.”
“약초요?”
이 많은 게 다 약초라고?
그러고 보니 쌓인 상자에서 알싸한 향이 풍겨 왔다.
아까부터 어디서 나는 냄새인가 했더니. 약초 향이었구나.
[이야, 이 집 돈 많구나. 이건 엄청 귀한 약촌데.]약초라는 말에 아레나가 바로 반응을 보였다.
오랫동안 신성력으로 사람들을 도우며 산 그녀는 약초 쪽에도 무척 지식이 많았다.
역사서에도 나와 있었다. 그녀가 약초학의 발전에 아주 크게 기여했다고.
[야!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