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ortune-telling Princess RAW novel - Chapter (187)
“정작 가족들에겐 아무 말도 못 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카밀라, 그녀를 더 괴롭혔다. 괜히 비꼬는 말을 건넸고 그녀와의 드잡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네가 아니라 나에게 하는 시비였을지도 몰라.”
카밀라를 대놓고 비꼬고 비웃었던 모든 행동이 어쩌면 스스로에게 던지는 비웃음과 비꼼이었지 않았나 싶다.
자조적으로 웅얼거리던 쥬엘라가 돌연 말을 멈추고 카밀라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 툭 한마디를 내뱉는다.
“너 재수 없어.”
“…야,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이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지금 누가 누구보고 재수 없대?
“자기 혼자 멋져지고.”
이건 또 웬 닭살 돋는 멘트? 내가 좀 멋진 건 맞는데 뜬금없어, 너!
“그래서 더 재수 없어.”
카밀라는 다시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너 재수 없거든.”
“나도 알아.”
쥬엘라는 툭툭 먼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걸까? 조금 전보다 그녀의 표정이 좀 홀가분해 보였다.
“아버지가 너한테 잘 보이라고 해서 친한 척 굴고 있지만 내가 지금 얼마나 웃긴지 나도 잘 알거든? 나도 좋아서 하는 거 아니니까 참아.”
새초롬하게 말을 내뱉은 그녀가 카밀라를 빠르게 지나쳐 갔다.
“헐.”
사람 할 말 없게 하네.
“진짜 안 맞아.”
황당하긴 한데, 이상하게 평소처럼 화가 나지는 않았다.
짜증 나게도 저 마음이 모두 이해가 가서.
“쯧.”
카밀라는 그렇게 사라져 가는 그녀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 * *
“카밀라 영애께 답장이 왔습니다.”
“그래?”
아비헬 황자는 시종이 건네는 편지를 바로 뜯어 읽어 내려갔다. 옅은 미소로 편지를 뜯던 그의 표정이 이내 빠르게 굳어졌다.
“어이가 없군.”
그의 입에서 연신 혀 차는 소리가 흘러나오자 주인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시종이 조용히 방을 나섰다.
그렇게 방에 홀로 남게 된 아비헬 황자는 불만스러운 감정을 더욱 표출했다.
“예전엔 그렇게 쫓아다니더니.”
이젠 자기가 가진 가치가 올랐다 하여 콧대를 세우는 건가?
그녀의 처지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어이없는 거부를 계속 용납해 줄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딱히 관심이 없었는데 말이야.”
처음에는 어머니의 명이었다.
카밀라, 그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라는 명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영 탐탁지 않았다.
전에 자신을 쫓아다니던 그녀의 음침한 모습을 생각하면 여전히 짜증스러웠다.
그녀가 공작가의 사람만 아니었어도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히 많이 변하긴 했지.”
그런데 얼마 전에 만난 그녀는 전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외모까지 달라 보였다.
물론 원래도 확실히 눈에 띄는 외모였지만, 그땐 전혀 마음이 가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힘에 겨웠으니까.
“그땐 왜 그랬지?”
스스로가 생각해도 지나치게 거부감을 느꼈던 거 같다. 지금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에드센 황태자. 형님이 처음으로 자신의 행보에 반응을 보였다.
‘네 생각이냐?’
‘무슨 말씀입니까?’
‘어머니께서 너와 그녀의 혼사를 추진하시려는 모양이던데. 카밀라 공녀를 끌어들인 거, 네 생각이냐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하든, 그 어떤 행동을 해도 무시하기 일쑤였던 그가 처음으로 적의를 드러낸 것이다.
솔직히 무척 놀라웠다. 그리고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카밀라 영애를 건드리는 것이 그의 신경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번 일에 흥미가 생겼다. 가볍게 시작했던 마음이 진심이 되어 버린 거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였다.
만남을 청하는 자신의 서신에 자꾸만 거부로 답신을 해 오는 것이다.
소르펠 공작 때문에 적극적으로 만남을 청할 수도 없었다. 그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아무래도 직접 찾아가 봐야겠어.”
그 정도 성의는 보여 주는 게 맞겠지?
이제 ‘성녀’라는 가치까지 붙은 그녀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 줄 용의가 충분히 있었다.
확실히 그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면 득이 되는 것이 무척 많았다.
“딱히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
그 순간 낯선 남자의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흠칫, 급히 고개를 든 그는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인지 모를 회색 가면을 쓴 남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창가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낯선 이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아비헬 황자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 줄은 안 당기시는 걸 추천합니다.”
슬그머니 설렁줄을 당기려던 아비헬 황자의 행동이 뚝 멈췄다. 황성 깊은 곳까지 침범한 걸 보면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누구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자신을 해하려는 이인 게 분명할 터.
“의뢰를 받고 왔답니다.”
역시나 예상한 답이 흘러나왔다. 누굴까? 누가 자신의 암살을 의뢰한 것일까?
‘형님이?’
아니면 형님 쪽 세력에 속한 다른 누군가가?
아비헬 황자는 잔뜩 경계 어린 눈빛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소리조차 칠 수 없었다. 저자가 들고 있는 검이 자신의 심장을 파고드는 게 더 빠를 테니까.
“의뢰인의 청은 단 하나였습니다. 경고를 하고 오라고.”
“경고? 무슨…….”
“카밀라 공녀.”
“카밀라?”
갑작스러운 말에 의문을 표하던 아비헬은 급히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남자가 성큼 자신에게 다가섰기 때문이다.
“건드리지 말랍니다.”
“……!”
“계속 찝쩍거리면 지금처럼 단순 경고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요.”
찝쩍이라는 단어가 유독 크게 귀를 파고들었다.
아비헬은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역시 형님이 보낸 건가?”
확신이 들었다. 고작 찾아와 카밀라 영애를 건드리지 말라니. 그런 경고를 할 자가 형님밖에 더 있겠는가.
“그건 아닙니다만… 황태자께서도 그녀에게 관심이 많으신가 보지요?”
아비헬 황자의 물음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남자의 미소가 비릿해졌다.
“안 그래도 여기저기 거슬리는 놈들 천지인데, 여기는 형제가 쌍으로 난리군.”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던 그가 다시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코앞까지 다가온 그가 얼굴을 더욱 가까이 밀착했다.
마른침을 다시 한번 삼킨 아비헬은 여전히 그 어떤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
“의뢰자는…….”
설마 의뢰한 이가 누군지 말해 주려는 건가?
“바로 접니다.”
“…뭐?”
하지만 이어진 그의 대답에 아비헬 황자는 저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도대체 저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의뢰자가 자기라고?
“절 다시 보고 싶으시다면 제가 한 경고를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그땐 이 가면도 벗어 드리지요.”
잠시 말을 멈춘 그가 들고 있던 단검을 벽에 푹 꽂았다. 검이 단단한 벽을 마치 푸딩처럼 쉽게 파고들었다.
움찔하며 떠는 아비헬 황자의 귓가에 나직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곧 죽을 자에게 얼굴 정도는 보여 줄 용의가 충분히 있거든요.”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한 발 물러서더니 아주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 모습에 아비헬은 더욱 몸을 움츠릴 뿐이었다.
“그럼 두 번 다시 뵐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마법을 쓴 것인지 그가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털썩.
아비헬 황자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른 이를 부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여전히 벽에 박혀 있는 단검에 꽂혔다.
부르르.
그의 몸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 * *
“웬 인형입니까?”
사무실에 들어서던 크리스는 먼저 와 있던 카밀라에게 인사를 건네려다 멈칫했다.
그녀가 앉아 있는 책상 위에 낯선 물건이 하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곰 인형이었다.
“선물 받았어.”
쥬엘라가 주최한 모임에 참석했다 받은 선물이 바로 이 테디 베어다.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며 모임에 참석한 이들 모두에게 선물로 하나씩 나눠 줬다.
“그런데 그 인형을 왜 들고 오신 겁니까?”
선물 받았다고 하여 인형을 들고 다닐 분이 아니신데?
“어때?”
카밀라가 곰 인형을 돌려 크리스가 자세히 볼 수 있게 했다. 점처럼 콕 박힌 인형의 눈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귀엽네요.”
“그게 다야?”
무슨 대답을 원하시는 걸까?
크리스는 쓰고 있던 안경을 고쳐 쓰며 좀 더 자세히 인형을 살폈다.
하지만 딱히 특별한 건 느끼지 못했다. 싸구려 곰 인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인형의 옷이 무척 화려하네요.”
“맞아. 옷이 화려하지?”
옅은 미소를 지은 카밀라는 다시 테디 베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잠시 후 그녀는 살피던 인형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좀 나갔다 올게.”
“어디 가십니까?”
잠시 멈칫한 그녀가 한 박자 늦게 대답을 내뱉었다.
“…친구 집.”
* * *
“도착했습니다, 아가씨.”
“응.”
마차에서 내린 카밀라는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바로 쥬엘라의 가문인 베이크스 백작가였다.
“어?”
마침 입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백작가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뭐가 그리도 급한지 곧장 안으로 들어간 그들을 본 카밀라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쥬엘라는?”
“방에 계십니다.”
“또 바느질을 하고 있는 건가?”
“아마도…….”
“쯧.”
무리의 중심에 있는 이는 바로 베이크스 백작이었다.
그는 무척 화가 난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연신 혀를 찼다.
“그것이 제정신이 아니지. 기껏 환심을 사라고 자리를 마련해 줬더니 고작 인형 따위나 만들어 선물해?”
얼마 전 쥬엘라가 주최했던 모임에서의 일을 오늘에서야 접한 그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 애가 생각이 짧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찌 그런 걸 선물이랍시고 건넨 건지.
“한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