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ortune-telling Princess RAW novel - Chapter (34)
이 학교에서 가장 으슥한 곳인 정령의 호수 쪽으로 향하던 카밀라는 결국 다시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고개를 돌리니 학생 귀신 에이미가 빙그레 웃으며 서 있었다.
“뭐야? 왜 계속 쫓아오는 건데? 너랑 엮이기 싫다니까.”
[너무하네. 오랜만에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있어 난 너무 기쁜데.]“딴 유령이랑 놀아. 유령이 유령이랑 놀아야지 왜 인간이랑 놀려고 해?”
[이 학교에 있는 유령들은 다 재미없어.]나도 너 재미없어.
“그래서 뭐? 나보고 어쩌라고?”
[그냥 대화 좀 하자는 거지. 나 너무 심심해.]“내가 그리 한가한 사람인 줄 아니?”
나 살기도 바빠! 돈 벌어야 한다고!
“그래서? 그 인간은 어디에 있는 건데?”
내 돈 줄 어디 있냐고.
[저기.]저기?
카밀라는 에이미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 무심코 시선을 줬다. 그리곤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아르시안이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언제부터?’
[처음부터.]카밀라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에이미가 작게 속삭였다.
‘그럼 내가 귀신이랑 떠들어 댄 걸 다 들었다는 말이잖아!’
카밀라는 서둘러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 제가 원래 혼잣말하는 걸 좋아해서요.”
…먹혔나?
“…….”
먹히긴 개뿔!
자신이 대화를 나눈 상대, 에이미가 있는 곳에 시선을 주는 아르시안의 모습을 보며 카밀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보이는 거군.”
역시?
아르시안이 혼잣말처럼 나직하게 내뱉는 말에 카밀라는 급히 다시 고개를 들었다.
“너도 보이는 거지? 저것들이.”
“보, 보이긴 뭐가 보인……!?”
잠깐. 일단 발뺌하고 보던 카밀라는 뒤늦게 그의 말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곤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 너도… 라고.”
자신을 바라보는 아르시안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는 걸 보며 카밀라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 *
‘형…….’
‘먹어.’
‘시, 싫어!’
‘먹어. 먹어야 살 거 아냐.’
‘형은… 벌써 일주일이나……. 흐윽.’
‘네가 안 먹으면 버린다.’
오래된 기억 한 조각.
절대 잊어서도 안 되고, 잊고 싶지도 않은 기억.
타악!
순간 들려오는 소리에 아르시안은 감았던 눈을 떴다. 자신의 앞에 빙그레 웃으며 서 있는 한 사람.
“좋은 물건 있는데, 구경 한번 해 보실래요?”
그 여자다. 최근 눈에 들어온 여자.
‘이 여자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괴상한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여자를 아르시안 역시 뚫어져라 바라봤다.
뭔가 다른 말을 할 건가 싶어 기다리던 아르시안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녀를 잠시 더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살짝 흥미가 돌았지만 바로 지루해졌다.
“어?”
순간 당황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향한 곳은 인적이 드문 정령의 숲 초입 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도 그녀를 보았었지. 정령의 호수로 향하던 그의 걸음이 멈칫했다.
역시 확인을 해 보는 게 좋을까?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그녀 역시…….
다시 교실 건물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뭐야? 왜 계속 쫓아오는 건데? 너랑 엮이기 싫다니까.”
그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그녀였다.
“딴 유령이랑 놀아. 유령이 유령이랑 놀아야지 왜 인간이랑 놀려고 해?”
빈 공간을 향해 계속해서 말을 지껄이는 여자. 그 모습을 아르시안은 한참 말없이 바라봤다.
“그래서 뭐?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그리 한가한 사람인 줄 아니?”
손가락까지 흔들며 누군가를 나무라던 그녀가.
“그 인간은 어디에 있는 건데?”
이내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잠시 당황한 듯 눈을 데구루루 굴리던 그녀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 관리를 하더니 빙긋 웃었다.
“제가 원래 혼잣말하는 걸 좋아해서요.”
“…….”
혼잣말이 아니라 대화였는데? 아르시안은 여자의 옆을 바라봤다.
“역시 보이는 거군.”
검은 연기처럼 꾸물거리는 저것들이.
자신을 평생 따라다니는 것들.
“너도 보이는 거지?”
표정이 굳어지는 그녀를 보며 아르시안은 검은 연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 * *
“뭐 하는 거야!”
‘너도’라는 말에 잠시 넋이 나갔던 카밀라는 순간 여학생 귀신 에이미를 향해 손을 뻗는 아르시안의 앞을 급히 막아섰다.
“보이는 거 맞네.”
너 고작 그거 확인하려고 귀신을 위협한 거냐!
‘너 방금 살기 엄청났거든!’
이런 미친놈!
“하아.”
짧은 한숨을 내쉰 카밀라는 고개를 돌려 에이미를 바라봤다. 에이미는 진심으로 떨고 있었다.
귀신도 살기를 느끼나? 이미 죽었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다고? 인간이 아무리 용을 써 봐야 귀신은 죽이지 못할 텐데?
“괜찮아?”
[아… 안 괜찮아! 죽는 줄 알았어!]“너 이미 죽었거든.”
[완전 소멸되는 줄 알았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저 인간, 나 같은 존재에겐 천적이야.]천적?
카밀라의 시선이 다시 아르시안에게 향했다.
“너, 유령도 막 소멸시킬 수 있고 그래?”
“너, 저것들과 대화도 해?”
“…….”
“…….”
동시에 질문을 던진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그러다 먼저 다시 입을 연 건 카밀라였다.
“유령이라고 막 소멸시키면 안 돼. 다 사연들이 있다고. 한 풀리면 알아서들 승천하니까 괜한 힘 쓰지 마.”
“내가 그런 귀찮은 짓을 왜 해.”
와… 방금 귀신 죽이겠다고 살기 뿜은 거 너 님이거든요.
“얘 얼굴 질린 거 안 보이니?”
“…넌, 얼굴도 보여?”
“뭐?”
카밀라는 황당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방금까지 귀신을 볼 수 있네 없네 하더니 갑자기 얼굴을 볼 수 있냐니?
“뭔 헛소리야?”
“보이냐고.”
“그럼 보이지, 안 보이니?”
“…….”
어라?
“안 보여?”
“내 눈에는 그저 다 검은 연기일 뿐이야.”
검은 연기? 카밀라는 다시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에이미를 바라봤다. 저게 저 모습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뭐야?’
귀신의 모습이 정확하게 보이는 건 아니라는 건가? 뭔가 영적인 존재가 있는 게 보이긴 하지만 그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는 않는다는 말?
“야!”
카밀라는 다시 나무라듯 그에게 소리쳤다.
“그러면 더더욱 그딴 기운 막 내보이면 안 되지. 상대가 어떤 귀신인 줄 알고 막 살기를 뿜어내고 그러냐!”
악귀도 아니고 말이지.
“그냥 평범한 귀신한테 그럼 되겠니? 얘도 어린 학생이잖아! 너 때문에 얼굴 질린 것 좀 봐!”
내가 정말 귀신 편들어 줄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이건 아니지. 그래도 얘들이 은근히 착한 구석도 있는데!
순간 자신을 도와주고 있는 집사 유령 데린과 요리사 유령 페롤, 그리고 얼마 전에 웃으며 이곳을 떠난 헤르셀이 떠올라 버럭해 버렸다.
“…….”
“…….”
미안.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아르시안의 시리도록 차가운 검은 눈동자와 마주한 카밀라는 스르륵 눈을 내리깔았다. 저 녀석의 더러운 성격을 잠시 잊고 있었다. 대체 뭘 믿고 소리를 친 거지.
“그럼 이것도 보여?”
한층 낮아진 아르시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그가 한곳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본인이 서 있는 곳, 바로 옆이다.
카밀라도 그곳에 시선을 줬다. 아까부터 애써 시선을 피하고 있던 존재와 결국 눈이 마주쳤다.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가 시선을 피한 이유는 그 존재가 귀신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살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앙상한 몸,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커다란 눈동자, 삭아서 너덜거리는 옷.
보기만 해도 안쓰러워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아르시안의 옷자락을 꼭 쥐고 있었다.
‘넌 누구니?’
누구기에 그런 모습이야?
* * *
‘대체 누구기에…….’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카밀라는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본인의 옆에 붙어 있는 검은 연기의 존재에 대해서 아르시안이 묻길래 사실 그대로 말해 줬다.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깡마른 남자아이가 그 검은 연기의 정체라고.
‘그런데…….’
그 대답에 냉랭했던 아르시안의 눈빛이,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뭔가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처럼 격한 감정을 드러내더니 그대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왜 그렇게 놀라지?’
역시 아는 아이인 건가?
“하아.”
카밀라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오늘 본 꼬마 귀신의 얼굴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체 그 어린아이가 어떻게 죽으면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을까? 앙상하게 뼈만 남았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에이씨.”
이래서 애들은 싫다고! 작은 것들은 조금만 이상해 보여도 자꾸 신경이 쓰이니까.
[규우?]투덜거리는 소리에 하얀 고양… 아니, 호랑이 신수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작게 울어 댔다.
아직 어려서 모습을 감추는 방법을 몰라 여전히 소환된 상태로 있는 신수는 카밀라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은 소르펠 공작이 돌봐 주고 있었다. 신수를 데리고 학교에는 갈 수 없었으니까.
“킹.”
[규우!]신수는 신수인지 어린 것이 벌써 말귀는 아주 잘 들어먹는다.
얼마 전에 소르펠 공작의 명 아닌 명으로 직접 이름을 지어 줬다.
그냥 간단하게 ‘킹’으로.
신수 중에서도 가장 잘난 놈으로 잘 크라는 뜻이었다. 소르펠 공작도 만족스러워했다.
라비가 이름을 듣고 작명 센스도 없다고 놀려댔지만, 초콜릿 맛보다는 낫지 않니?
[규우!]“그래, 너도 맘에 들지?”
카밀라는 킹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갸릉거리며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는 킹을 바라보던 카밀라는 다시 생각에 잠겨 들었다.
‘아무래도 또 찾아가는 건 무리겠지?’
아르시안을 다시 찾아가는 건 시간을 좀 둬야 할 듯했다. 마지막에 본 그의 눈빛이 신경 쓰였다.
거기서 더